전체 76,835건의 연구성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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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走深藏, 豈有公然大膽, 敢出入都下者耶? 盡閱八路之人, 有難必得其人, 況初不知其人之居京居鄕, 而只缺按籍點閱, 如點軍兵, 而能得其人者哉? 國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沿海邑者, 其數甚多云, 竝自備局, 抄出人名, 計其應捧價布實數, 以戶曹所儲木綿, 準數移送於都監及工曹, 而砲保及匠人所捧價布, 從市直以米折定代捧, 明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啓, 紫燕一島, 遮在江都一面, 實爲海防一隅, 卽今雖有僉使, 官秩旣卑, 事權又輕, 似難得力於鎭守, 喬桐水營船泊處, 甚爲不便, 一朔兩度湖[潮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02]江都, 此若有不便之端, 則以京倉新捧之太移送, 則可謂用舊蓄新之道矣。 左議政南九萬曰, 江都之太, 旣是陳久, 而亦必有欠縮, 發賣之價, 移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爲留守時, 始爲築堰, 而朝家分付, 只令分給他處人, 以爲募入耕食之地, 本土人及士大夫, 則勿許折給矣。 至乙巳年, 又因築堰之事, 別爲事目, 啓下知委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都·南漢同是保障之地, 朝家一視無間, 而江都則連設觀武才, 南漢則壬戌年後, 更不設行云云。 自萬科之後, 武土極多, 已有淹滯之歎, 不宜又設別科,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又所啓, 今年木花, 最爲無實, 前頭軍布, 實無備納之勢, 且冬節將迫, 許多窮民, 必多凍死之患, 臣於到任之後, 有若干拮据措備者, 若以銀貨, 換得江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 一年則伐石輸運, 兩年則當完築。 役時軍丁, 非一島所可獨當, 自朝家必調給數萬軍丁, 然後可期完畢矣。 今者聖意, 必欲速完, 則必優給物力, 調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又以司僕寺官員, 以提調意啓曰, 頃日江都北一場出給本寺事, 定奪之後, 移馬一款, 待明春發遣郞廳, 看審近處諸島形勢, 而處之事, 允下矣。 其後鎭江場繼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似, 猥叨江都句管之任, 非不欲殫慮竭力, 而第臣近來, 衰耗日甚, 精力不逮, 何可獨任大事乎? 當與留守相議爲之, 而留守則在於江都, 臣則在於京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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