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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前監司洪葳卒。 葳稍有文名, 實無吏幹, 驟除東萊, 旋授嶺節, 困於文簿, 精神耗盡, 遞還京師, 未幾而逝。출처전거顯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乙亥 / 以朴贄爲執義, 李壽曼爲掌令, 吳挺昌爲正言, 李夏爲東萊府使。출처전거顯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李夏新除東萊府使, 未及赴任, 與前府使鄭晳結婚。 婚家有交承相避之法, 許積以此白之, 上特令破格赴任。출처전거顯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拿推接慰官申厚載、東萊府使鄭晢, 平成太以正官倭病死, 副官倭等, 仍留東萊, 時朝議皆以爲, 宜召還接慰官, 於是朝廷命厚載上來。 諸倭以爲, 蔑視渠等,출처전거顯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拿推接慰官申厚載、東萊府使鄭晢, 平成太以正官倭病死, 副官倭等, 仍留東萊, 時朝議皆以爲, 宜召還接慰官, 於是朝廷命厚載上來。 諸倭以爲, 蔑視渠等,출처전거顯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上引見東萊府使李夏, 領相許積亦入侍, 上謂夏曰: “爾赴任之後, 言於倭曰: ‘汝雖造家千間, 留滯十年, 汝輩所望, 必無因此可成之理。 汝之所請者, 在출처전거顯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上引見東萊府使李夏, 領相許積亦入侍, 上謂夏曰: “爾赴任之後, 言於倭曰: ‘汝雖造家千間, 留滯十年, 汝輩所望, 必無因此可成之理。 汝之所請者, 在출처전거顯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上引見大臣、備局諸臣。 接慰官申厚載, 有拿命之後, 以其代差定與否, 論議不一。 或曰, 差送可, 或曰, 不可, 未有決定。 至是, 諸臣疑難於榻前, 終출처전거顯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東萊府使安縝馳啓言: “差倭橘成陳等, 密言於譯官等曰: ‘十餘年前阿蘭陀郡人三十六名, 載三十餘萬兩之物貨, 漂到耽羅, 耽羅 ...출처전거顯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東萊一氓, 貸布於館倭, 久不償之, 一日倭潛來, 急索其人殺之。 事覺梟示。 國綱漸〔壞〕, 防禁日弛, 邊氓與倭交通, 視以爲常, 守邊非人, 不能嚴禁,출처전거顯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근현대 소실위기 재중동포 서신 DB화 및 생활문화 분석(178,647)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76,8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