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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有濫及之弊, 且見各人供辭, 則亦無更爲執問之端, 滯獄之弊, 疎釋, 似可, 而但海成, 旣有往來尹憘家之迹, 其妻母之某時治裝入闕, 某時在於差備門外, 某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左議政李世白所啓, 頃日右相, 以彰義門外築城事, 仰達, 自上有看審基址之敎矣。 蓋此與北漢, 無甚異同, 自前不無此議。 南漢·江都, 雖是保障之地, 事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以畵之者, 乃朴權上來時, 所議定城基也。 周回甚爲闊大, 諸議皆以稍損而狹小之爲宜云, 而臣到其地, 目見形便, 缺七字不容不竝包南山。 乙丑年議築內城時,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餉, 似難輕議, 然十年前逋欠, 則實難收捧, 與其徒存虛簿, 而招怨於民, 無寧竝許蕩減, 以示均惠之意, 恐無所妨矣。 閔鎭遠曰, 臣曾經水原·江華兩邑,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道之民, 賴而生活, 故至今感祝國恩矣。 上曰, 甲子年, 全羅一道, 尤甚凶荒矣。 昌集曰, 道臣, 以五六萬石爲請, 而前頭畿甸·湖西, 亦必請得江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爲緩急之用, 而今乃積兵峙糧于京中, 此非當初設廳本意也。 且以廣州形勢言之, 府尹, 乃一城主將, 而兵餉一款, 不得干預, 至於還穀斂散之際, 亦自本廳,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保民, 爲邦之本, 使民各安其業, 則國豈不安乎? 今若築城, 則民必不安, 設有緩急, 城果築得, 而將無以爲守也, 且其山, 極爲巖險, 全無着足處, 臣年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晝講時, 參贊官金德遠所啓, 江華留守洪宇遠, 淸名直節, 爲一世之所推仰。 當聖明春秋鼎盛, 方懋學問之日, 如此之人, 留置朝廷, 出入經席, 輔導君德,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豈有重於南漢, 墩臺雖有監董之勞, 豈有加於城役, 而今此賞典, 反優於前, 此豈聖明愼賞之道也? 夫官爵者, 人主馭世之大柄, 一有僭濫, 則無以勸一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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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此固難處之事也。 礪山郡守李迪吉, 則身病極重, 決難還任云, 當此災傷覆審之日, 字牧之任, 不可久曠, 自朝廷速差新官, 催促下送, 似宜矣。 上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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