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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禮曹啓: “曾設薺浦、富山浦倭學訓導, 請分置熊川、東萊兩邑, 營建學舍, 而訓導及僕從、馬料, 依諸邑鄕校例。” 從之。
    출처전거睿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亮經濟弘化佐理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上黨府院君兼領經筵事兵曹判書 臣韓明澮。○監館事:○輸忠衛社協贊靖難佐翼純誠明亮經濟弘化佐理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議政兼
    출처전거睿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戊戌 / 舍人羅洪緖將堂上議啓曰: “世宗大王嘗曰: ‘凡民家, 女壻見其妻母, 友壻相見其妻, 此何風俗耶? 甚可怪也。’ 宮禁男女之別, 其謹嚴至矣。 東
    출처전거端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丙子 / 議政府據三道都體察使啓本啓曰: “全羅道康津縣界站串周回九十里, 土山肥厚, 水草俱足, 可放馬一千匹。 慶尙道東萊縣石乙浦寬闊, 可放馬二千餘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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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釋充軍丁善奇、金良貴、周陽復。 初, 廣平大君璵夫人申氏擅往東萊溫井, 皆良貴等從臾之也。 議政府啓, 令憲府推劾充軍, 至是, 以經赦釋之。 議政府啓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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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司憲府啓: “賈人趙興貴往東萊, 聞老女萬德多財, 而娶之, 往來有年, 及萬德死, 中樞院府事李澄石, 稱萬德爲侍養, 指興貴爲奸夫, 盡奪所有財産文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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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慶尙道觀察使啓: “東萊縣淑人李氏年一百六歲, 令所在邑歲給米十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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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初, 文宗命世祖, 撰兵書音註。 校理權擥參侍。 擥, 後以病辭職, 往浴東萊溫井, 及還, 宮直韓明澮訪擥, 因謂曰:“今主少國疑, 大臣顓擅, 多以無賴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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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忠淸、全羅、慶尙道都體察使鄭苯啓曰: “請遣從事官金淳于慶尙道, 抄軍七千五百名, 築蔚山柳浦石堡, 令左右道都萬戶, 領兵船守護。 遣李皎然于忠淸道, 築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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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丙寅 / 慶尙道觀察使移文禮曹曰: “一岐州源聞所遣于界沙也文還到東萊, 東萊官卽拿三甫羅灑毛, 授之于界沙也文, 率其下二十餘人, 斬於倭館前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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