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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興山城新兼管理使號, 實與南漢·江都鼎峙, 而爲掎角之勢, 其爲關防重鎭, 固不下於兩處, 而若其緩急可恃之形, 則恐無大於此矣。 設營之初, 朝家事目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鄕田反畓被災者, 六百二十一結零, 仍存田結, 不以畓懸錄, 故旱田本無給災之規, 不得減稅, 所出太代米一百十二石零, 竝入於收租實結, 移納江都數矣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某阻, 其相去不遠, 而直與江華相接, 若能築城以備, 則盜賊不敢入缺軍兵, 則通津·南陽兩營, 可以入守, 銀子則以江華餘儲, 載船缺且山中, 雖曰水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例責出於畿民, 則當自宣惠廳, 給其價米, 而本廳一年所捧, 不足以支一年之用, 凡干酬應, 常患不足, 況此近萬石之米, 決無辦出之路, 勢將以賑廳及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又啓曰, 江都軍餉, 亦甚難處, 積年陳久之穀, 將來未免腐棄之患矣。 壬子·癸丑所捧之米, 尙在庫中, 臣取其尤甚者, 而使之炊飯, 則有酸臭, 作粥則無粘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刦諸生署名, 衆不敢不從, 或有踰垣避去者, 君奮曰, 臨死苟免, 恥也。 前問此事何義, 其徒盛氣, 核其名以懾之, 君徐言欲知我名, 取筆來, 卽大書姓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朝參入侍時, 開城留守李鳳徵, 平安兵使韓樞, 朔州府使徐穉, 昌城府使金重三改差事, 榻前定奪。 兵曹啓曰, 平安兵使有闕, 依近例令備邊司議薦, 何如?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領議政南九萬所啓, 卽今戶曹所儲, 可支今秋云, 而今年田稅, 來年四五月間, 方可上納, 且今秋豐登, 亦未可知, 若不預爲其間可繼之道, 則誠極可慮, 頃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江都軍餉米, 前後移轉之數, 殆四萬石矣。 在當時則蒙惠實大, 而江都積貯, 餘存無幾, 其在陰雨之備, 誠極寒心, 不可不趁速還納, 而屢年荐飢之餘,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捧口布, 非不知分數區別, 而近於太寬, 而參以形勢, 亦不得不如此矣。 得聞外方之言, 以爲今年則庶可依定式徵捧云。 今若續續變改, 則外方必難適從, 事甚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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