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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己巳 / 議政府據禮曹呈啓: “東萊屬縣東平, 距富山浦四五里, 依熊神鎭例置鎭, 移東萊鎭兵馬, 以爲富山浦外援, 於東萊仍舊置單縣事。 且前此乃而浦仍居倭
    출처전거世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己巳 / 議政府據禮曹呈啓: “東萊屬縣東平, 距富山浦四五里, 依熊神鎭例置鎭, 移東萊鎭兵馬, 以爲富山浦外援, 於東萊仍舊置單縣事。 且前此乃而浦仍居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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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鹽浦者, 經由蔚山、彦陽、慶州、安東、榮川、丹陽、堤川、原州、楊根、平丘入京。 驛路民戶, 迎送勞逸, 庶得均平。” 下政府諸曹同議, 僉曰: “由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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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大肆淫行, 非女子之罪, 實殷之不法之致然也。 聖諭以爲: ‘子孫之罪, 何延及父母?’ 臣等以爲殷之倡導子孫之醜行, 《大明律》有止坐家長之律, 則子孫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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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兵曹據慶尙道監司關啓: “東(來)〔萊〕縣人車元吉女子小斤, 嘗被虜於倭, 居對馬島五十年, 生女及孫。 今率子孫, 隨商倭逃至東萊倭館, 請就元吉完聚以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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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被貶黜者, 爭効由性之所爲矣, 其勿劾。” 孝剛啓曰: “季聞爲一方統察, 以(蔚縣縣)〔蔚珍縣〕守鄭隣爲同年, 名爲納壻之資, 給神稅布若干。 又托進上, 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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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慶尙道監司啓: “今以倭語傳習之事, 訪于金海ㆍ梁山ㆍ東萊等官及乃而ㆍ富山等浦, 皆云: “若聚各官傳習, 則以有數通事當番, 及率倭上京之時, 無敎訓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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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命都體察使, 先遣人致書于對沿海之地, 死傷相藉, 蓋有年矣。 我太祖康獻大王龍飛應運, 撫綏相信, 尙亦不悛, 歲丙子, 入寇東萊, 搶奪兵船, 殺戮軍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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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已矣。 對馬爲島, 本是我國之地, 但以阻僻隘陋, 聽爲倭奴所據。 乃懷狗盜鼠竊之計, 歲自庚寅, 始肆跳梁於邊徼, 虔劉軍民, 俘虜父兄, 火其室屋, 孤兒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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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草島、務安縣古鐵金山ㆍ鍮達山ㆍ茅頭串、興德縣所要山、(臨波縣)〔臨陂縣〕城山、(減悅縣)〔咸悅縣〕城山。○慶尙道寧海府奉松坪ㆍ烏項串、東萊縣蘇苽亭山ㆍ絶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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