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76,835건의 연구성과가 있습니다.

홈 > 연구성과별 자료보기
  • ○朴世, 以禁衛營言啓曰, 今此文殊山城役時, 三軍門役軍工匠, 其數甚多, 不可無疾病救護之人, 依江都土築時例, 令醫司, 各定醫官一員, 持藥物下去,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今日大臣·備局堂上引見, 入侍時, 領議政柳尙運所啓, 陸運米二千石, 則劃給湖西, 六千石, 則劃給畿甸事, 前已定奪。 若令發賣, 則窮民, 無以備價以納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別爲下諭乎? 右議政李世白曰, 故判書李秀彦處, 曾有以擧行條件, 分付上來之敎矣, 今亦依此例分付, 似可矣。 上曰, 其時果以擧行條件 分付矣。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李濡所啓, 頃年西關飢饉之時, 朝家特爲許貸江都木千餘同, 以爲貿穀補賑, 還報本邑之地, 而自本道分授別將輩, 貿穀於三南各處, 其中別將一人, 卽桂雲芳也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當初議築時, 臣亦預謀, 而古語曰, 天下有道, 守在四夷, 我國, 雖僻在海隅, 而封疆六千里, 則雖有邊警, 皆非數三日程, 自外備防, 坐而禦戎, 實是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前, 定爲式例, 其後中軍, 自兵曹啓下, 且定朔數矣。 卽今廣州亦然, 故復此陳達, 山城中軍全百祿, 卽自上知名之武士也。 資級履歷頗高, 而前府尹朴弼明,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意, 似宜參酌減數, 以省船材之用矣。 領議政申琓曰, 此不可猝然變通, 當熟講善處, 而第江都待變船, 其數甚多, 常時別無待變之用, 長泊於江邊,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受灸入侍時, 都提調李頤命所啓, 近來百度廢隳, 事務多滯, 甚爲可慮, 以備局言之, 舊例, 堂上各有次知, 如江都·關西·東萊等處, 莫不分掌矣。 近來無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更爲分付於慶尙監司, 何如? 令曰, 依爲之。 又所達, 江華前留守沈宅賢狀達, 本府所屬各鎭邊將牒報, 據各鎭土卒, 率皆無田土, 至貧無依之類, 該曹諉以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豈有重於南漢, 墩臺雖有監董之勞, 豈有加於城役, 而今此賞典, 反優於前, 此豈聖明愼賞之道也? 夫官爵者, 人主馭世之大柄, 一有僭濫, 則無以勸一世,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페이지 / 7684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