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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上曰, 依爲之。 大載又啓曰, 東萊之人, 壬辰之亂, 起義勦賊者, 李安訥爲府使時, 査出報監司復戶矣, 其人身死之後, 其子孫或有充定賤役者,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上·副使·書狀官, 入侍。 副使申晸所啓, 自前赴京時, 譯官輩, 例爲齎去銀貨, 到京之後, 多有聚斂酬應之事, 而今番則譯官, 空手以去, 無以酬應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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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之罪, 今姑更爲嚴敎, 使之供職, 而終若厭避, 則懲治未晩耳。 左議政睦來善曰, 旣有成命之後, 乃敢如是厭避, 事之無據, 莫此爲甚, 不可無懲治之道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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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又所啓, 前慶尙水使張羽瀛, 貪婪不法之狀, 曾被削版之律, 而有不足以徵其罪者, 坤宮復位時, 三殿賀禮進上, 例自水營, 私大同備送, 而陪持上京之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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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遞改裁判, 更送他裁判, 呈文東萊府使, 辭語巽順, 明言其有年限, 且曰, 島中四十七八年, 專賴是穀云, 足以知其悔過之意。 議于諸大臣及諸堂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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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禮曹啓曰, 壬辰之亂死節陣亡, 如東萊·尙州等處, 尤爲表著, 而頃於遣近臣致祭處啓下之時, 未免遺漏, 臣等疎忽之失, 大矣, 不勝惶恐。 嶺南下去近臣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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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軍官者, 如此之類, 常漢則減除其役, 軍官則隨時錄用, 以知褒異之典, 則邊民聳動之擧, 似無過於此矣。 積曰, 年久之後, 起義實狀, 誠難覈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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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海一啓曰, 伏見東萊府使李瑞雨狀啓, 則末端善啓以下六字, 落漏不書, 殊涉不察, 請推考。 傳曰, 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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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持平權歆啓曰, 請還收前參贊閔維重, 前參判李端夏, 前佐郞朴泰輔敍用之命, 前東萊府使加資還收事。 啓辭上同 新除授執義韓垽, 時在京畿高陽地, 掌令宋光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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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鞫廳大臣以下請對入侍時, 領議政南九萬所啓, 頃者譯官等, 自對馬島回來, 而廟堂分付內, 三件事皆不得成, 故因東萊府使狀啓, 禮曹回啓, 譯官罪罰, 請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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