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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給代, 又不可還寢, 則亦不宜一向泄泄, 不爲變通之策, 而所可變通者, 惟在於汰其冗食之窠, 一除給米之數而已。 蓋一鎭防布, 昔爲二千餘疋, 今爲一千餘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丁丑七月十六日未時。 上御涵仁亭。 東萊府使入侍時, 東萊府使趙曮, 右承旨尹東度, 假注書 金再郁, 記事官李鎭恒·李東泰, 以次進伏訖。 上曰, 注書誰也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竭, 實無推移之路。 其中尤甚之尤甚邑, 姑令待秋退捧, 其餘則催促上送, 恐爲得宜, 大臣之意如此, 敢達矣。 上曰, 卽今三南, 雖値大無, 經用亦不可不念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羅風俗之美矣。 上曰, 然矣。 此事俱在於三綱行實矣。 儼曰, 金歆運事, 權近之論, 誤矣。 爲將臨陣, 苟以人無知者, 而逃其死, 則安用將帥爲哉? 且不死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辰時, 上御資政殿。 親傳香入侍時, 行都承旨鄭彥燮, 左承旨韓師得, 右承旨金尙迪, 左副承旨洪鳳漢, 右副承旨李昌壽, 同副承旨權相一, 注書朴盛源, 假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金應淳, 以義禁府言啓曰, 平安道朔州府減等徒配罪人李應協, 咸鏡道三水府安置罪人金光國, 會寧府極邊遠竄罪人李萬恢, 慶尙道東萊府極邊遠竄罪人曺命采, 全羅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大體則已知之矣, 今則末如之何, 奈何? 曮曰, 下去而詳探彼倭之情跡, 然後可以登聞矣。 上曰, 李彝章在官時, 倭人畏威, 而不敢肆云矣。 洪重孝受代之後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金致垕, 以禮曹言啓曰, 因慶尙監司狀啓, 潛商禁斷大差倭接慰官本道都事催促辭朝, 罔夜下送事, 纔已覆啓分付, 而近因都事之頻數遞易, 趁未下去, 接待倭人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發關知委。 故臣在關西時, 因地方官所報, 狀請還寢矣。 蓋戶曹所納元數, 爲三十斤。 而中間朝家, 爲軫蔘採漸艱之狀, 江民難堪之弊, 量減十斤, 亦多年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此亦大臣之意也。 上曰, 依爲之。 出擧條 秉常曰, 此乃東萊府使李重協狀啓也。 下倭輩, 毀撤守直幕之事, 誠極驚駭。 裁判倭, 雖以渠則全無所知,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근현대 소실위기 재중동포 서신 DB화 및 생활문화 분석(178,647)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76,8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