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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有政。 吏批, 尹趾仁爲知義禁, 李善溥爲同義禁, 南道揆爲弼善, 李萬衢爲价川郡守, 李宜顯爲開城留守, 李坦爲廣州府尹, 韓重熙爲東萊府使。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金聲久, 以義禁府言啓曰, 譯官朴有年·鄭文秀等, 拿問處之事, 允下, 而朴有年·鄭文秀等, 時在慶尙道東萊地, 本府拿將發遣拿來, 何如? 傳曰, 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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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入侍時, 領議政崔錫鼎所啓, 臣伏見東萊府使金德基狀啓, 則倭館修改之後, 別差倭二名, 稱以守護, 以六名, 分三番出來, 而自彼中給祿云云, 其情狀極可駭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後可禁操縱之習矣。 曾聞祖宗朝故事, 訓·別有罪, 則府使自斷, 重則啓聞, 輕則決棍矣。 中年以來, 此法廢閣, 訓·別別無管束之道, 自今以後, 隨其罪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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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臣憲周承命趨出, 招舜元以入。 缺 世白曰, 還上之中, 軍餉最重, 外方尤當着實擧行, 而今者, 取考京畿水使尹就商軍餉捧未捧成冊, 則未捧者至於三分之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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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閣, 訓·別別無管束之道, 自今以後, 隨其罪犯, 嚴加操切, 然後可無將來之患, 故敢達。 上曰, 訓導·別差, 朝家常隨現處之, 而訓·別操縱云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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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慶尙監司書目, 道內農事, 柒谷等四十五邑汚下之畓, 間因暴注, 川反覆沙春耕豆·太·黍·粟, 又有蟲損之災。 安東等二十六邑, 有水根處外, 終不得移秧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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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禮曹啓曰, 卽見東萊府使黃一夏報狀, 則漂人領來差倭處, 所贈本曹回答書契, 紙品不好, 書晝非正字, 不爲受去, 累次相爭, 終不回聽, 故書契及別幅, 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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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備邊司啓曰, 頃觀東萊府使李明浚狀啓, 則倭館燒燼處重建時, 工役價, 監董譯官崔尙㠎·金顯門等, 與裁判倭磨鍊, 而倭人初以一千五百九十餘兩爲定, 則崔尙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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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所啓, 東萊訓導崔尙㠎箇滿之代, 以洪舜明差出矣。 舜明以公幹, 已爲下往, 在前亦有除下直赴任之例, 今亦直爲赴任之意, 分付, 何如? 上曰, 依爲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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