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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備邊司啓曰: “惟政之去, 今已七朔, 了無消息。 其間事情, 雖未可知, 而亦不無意外之慮。 自下亦欲稍遲時月, 送人探知, 今承聖敎, 至爲允當。 先令慶
    출처전거宣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近日十條之規, 正得此意, 而守令一科之外, 未聞有拔擢之擧。 此雖有司之失, 亦豈非殿下用人之實, 猶有所未盡而然也? 若夫所以保民、治兵者, 則其勢不得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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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丁丑 / 掌令尹暘來啓曰: “前東萊府使金遵階拿鞫, 海南縣監元守義罷職事, 前啓。” 答曰: “依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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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慶尙左水使李英馳啓: “韓襸招辭, ‘原係典醫監生徒, 壬辰九月, 自交河上京, 負米下去, 被擄於淸正軍人, 卽送日本肥後州留住, 戊戌七月, 隨淸正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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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邈然懸絶。 已設之營, 固難輕廢, 而如淸州, 乃三路要衝之地, 自恩津、金山、鳥ㆍ竹三嶺衝突之賊, 皆可以遮截。 必得可爲兵使者, 而兼以牧使, 付以李時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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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以鄭曄爲兵曹參知, 金權爲司僕寺僉正, 李志完爲侍講院司書, 睦長欽爲藝文館奉敎, 李善復爲待敎, 鄭岦、洪命元爲撿閱, 李馨郁爲東萊府使。【體察使狀啓, 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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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以鄭曄爲兵曹參知, 金權爲司僕寺僉正, 李志完爲侍講院司書, 睦長欽爲藝文館奉敎, 李善復爲待敎, 鄭岦、洪命元爲撿閱, 李馨郁爲東萊府使。【體察使狀啓, 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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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左承旨李馨郁以院意啓曰: “去九月二十六日, 卒領議政柳㙉妻貞敬夫人金氏以: ‘堂上官夫人, 凡有切迫事理, 直呈政院。’ 有受敎爲援例, 親到闕門外, 以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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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就。 沿海, 人物稍集, 聚民作爲土兵, 其勢不便。 依前監司狀啓,【略曰: “全州、南原及兵營等處, 各以所屬軍兵, 分番操鍊, 只近邊一處, 聚集民兵數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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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備邊司啓曰: “尹慶元, 雖無表表可稱之事, 因公身死, 亦爲可矜。 依上敎, 量宜贈職。 事變之後, 死事之臣, 不無其人。 如東萊府使宋象賢、淮陽府使金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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