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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上御養和堂, 左議政李聖求, 右議政崔鳴吉, 請對, 承旨李景曾, 注書柳淰, 記事官兪㯙·金振入侍。 鳴吉曰, 椵島之事, 意以爲, 不至如此矣, 終至於陷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지역분류평안북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承旨李景曾, 注書柳淰, 記事官兪㯙·金振入侍。 鳴吉曰, 椵島之事, 意以爲, 不至如此矣, 終至於陷沒, 都督竟能死節, 極可驚歎矣。 但我軍, 則似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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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平安監司書目, 興治若不北走, 仍據椵島, 納和于瀋陽, 以舟師直犯登萊, 則其爲我國之患, 有所難言, 而興治前後所發八十九隻, 一船所載, 必不下三四十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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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延平府院君李貴身病出仕啓曰, 今者請討空島之議, 出於慮外, 殿下曾有告孫閣老后伐椵島之敎, 必不以一二臣之議, 有所撓改聖算也。 恐不無先入之慮, 故迫於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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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興治若不北走, 仍據椵島, 納和于瀋陽, 以舟師直犯登萊, 則其爲我國之患, 有所難言, 而興治前後所發八十九隻, 一船所載, 必不下三四十人, 槪計軍數三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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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民·崔震立皆能戰死, 俱是常時擢用之輩矣。 鳴吉曰, 喬桐事, 前以退去相議爲敎, 而各陳所懷, 則自上, 裁擇可矣。 當初, 或以濟州, 或以嶺東爲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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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裁擇可矣。 當初, 或以濟州, 或以嶺東爲可, 而其時天使出來, 故仍置江都矣。 缺二行若遷動於彼, 似有驚動之患, 移置濟州則彼亦好矣, 濟州亦不無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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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則上年收納之數, 一千五百兩, 可以論賞, 而自古有錄事, 去官而爲東班職者, 依其規爲之, 何如? 上曰, 觀今年來納之數, 該曹更爲, 取稟施行。 溟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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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鄭百昌, 以禮曹言啓曰, 政院啓辭, 以禮曹草記, 平壤以東, 四處迎慰使, 今當差出矣。 但今此詔使之行, 當於石多山下陸, 則石多山, 乃甑山地方, 我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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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所當擇差, 則與平壤·黃州·開城府·碧蹄, 當爲五員矣。 且乙丑丙寅兩年, 則皆有椵島別問安使, 今則何以爲之? 竝令禮官議定, 何如? 傳曰, 允事, 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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