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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以木直納云。 以此推之, 則非但軍兵衣資之用, 一日爲急, 保人等, 以木換米之際, 亦不無呼冤之端, 合有變通之道, 令廟堂急速稟處, 如何? 傳曰, 允事,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入侍時, 領議政許積所啓, 宣惠廳穀三萬石, 自賑廳貸用者, 則不可不還償。 初意則關西有豐熟之望, 故其處穀物, 初欲多數取用矣, 不幸秋雨支離, 又有風災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晝講時, 行副護軍李行益所啓, 江都以保障之地, 朝家特爲優恤, 各邑軍兵, 旣不徵布, 且屢設觀武才, 慰悅將士, 而至於喬桐, 實是江都咽喉, 則亦可爲重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付, 何如? 上曰, 依爲之。 來善曰, 凡江華·南漢之穀, 蓋爲他日緩急之用, 則今此江華築城時役糧, 不可以待變軍餉, 除給, 而本府, 亦無出處, 自朝家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而但聞訓將之言, 則其山最爲險絶, 無平穩之處, 軍兵住着亦難, 是爲可慮云矣。 且臣意則以爲, 通津邑居, 移於城內, 然後前頭防守, 似甚便宜,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之事, 以穀梁所論觀之, 更無可達, 此公不溺也, 而其不稱公子者, 聖人, 特惡其會仇讐而伐同姓也。 以下缺 特進官閔鎭厚曰, 臣有所懷, 敢此仰達矣。 頃日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奸贓狼藉, 罪狀彰露, 國言喧謄, 無所不至, 而泰采, 不惟不自忸縮, 又從而周旋彌縫, 惟恐按治之盡法, 人心疑惑, 久猶未已, 則在泰采之道, 惟當稍加斂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榻前下敎。 掌令李翊漢所啓, 卽者持平盧世夏·李大成, 相繼引避, 臣當處置, 而第臣於軍資監前後官請罪事, 有所嫌礙, 旣不得參啓, 而今此兩僚之避, 皆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李濡所啓, 頃年西關飢饉之時, 朝家特爲許貸江都木千餘同, 以爲貿穀補賑, 還報本邑之地, 而自本道分授別將輩, 貿穀於三南各處, 其中別將一人, 卽桂雲芳也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可也。 李頤命曰, 然則不令廟堂稟處, 而直爲分付乎? 上曰, 然矣。 提調趙泰耉所啓, 今年收租大縮, 田稅米與三手米上納, 都不過六萬石, 而一年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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