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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以山城事仰達, 而引對時, 時刻淹遲, 心甚未安, 未及反覆陳達而退矣。 卽今外議以爲可, 而決意築之, 則當預爲料理銀貨米布, 轉販措置, 精神所注, 事無不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四面今爲泊船之處, 更無可恃, 反欲築城以守, 而周回至於一百卄餘里, 如是廣闊之城, 以何軍兵, 使之排立拒守乎? 議者或曰, 前後之爲留守者, 相繼增築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4]北一場之後, 使人看審, 則以畓爲名, 只有數十石落, 而皆是薄田, 故民不願入, 外方流民, 初欲居入, 而率皆還歸云, 殊非朝家革罷之本意也。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引見時, 兵曹參判朴權所啓, 臣在江都時, 有一欲陳達之事, 今始仰稟矣。 江都 ...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禮曹參判金鎭圭疏曰, 伏以臣, 於前秋, 奉使江都, 及其還朝, 以所經通八九字缺處給災事, 仰陳於備局次對十餘字缺以畿甸諸邑之一體, 給災事, 繼陳四五字缺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而遂還罷, 則月串鎭相去, 亦且不邇, 待變之地, 往來兼察, 爲難, 其所差遣者, 又不過軍門久勤之類, 而未必擇人, 則實無修擧馬政之望, 至於經歷, 則其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審決定, 以致農節已迫, 城基近處田畓, 姑先許其春耕, 城役, 則以冬春退定, 而更令大臣重臣, 往審便否, 商確以定, 三軍門, 助其物力, 而令本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掌令韓永徽·李相成啓曰, 臣等伏見儒臣之疏, 極論申球疏語之無狀, 而以臺閣之臣, 尙無待罪之擧, 大加非斥, 臣於此, 不勝驚惑之至。 夫尹宣擧文集刊出之後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敎京畿觀察使沈梓書, 王若曰, 旬宣八方, 爲任固大, 保釐三輔, 其責尤難。 兼江都·松都節制之權, 有廣城·隋城關防之重。 郟鄏之扞蔽洛邑, 以藩周家,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漸難, 殊爲可慮。 自靑松面近處, 求得可合炭所之處, 則自漣川五峰山圓寂洞·鵂鶹洞, 至鐵原初面寶蓋山葛項·大松面, 可至六十里許, 材木頗多, 足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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