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76,835건의 연구성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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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江都事定奪, 而卽今民情, 不願輸納江都, 擧皆稱冤, 欲爲上納賑廳云。 下詢于大臣, 更爲定奪, 何如? 尙運曰, 此是江都軍需還償之米, 故以輸納江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動駕後魂殿次之, 魂殿後世子隨往, 可也。 出擧行條 又所啓, 魂殿缺 啓祥堂後, 亦當有奉安祭矣。 以情禮言之, 王世子, 當爲親行, 而告由奉安, 與大祭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安興前津, 故因本道狀聞, 備局覆啓, 萬戶則纔已罷職, 而其船本板, 仍留置安興, 將至於朽腐不用, 當此船材絶乏之日, 誠爲可惜。 初欲請仍前萬戶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聞守禦廳所得之鐵, 乃是銅鐵相合者, 比水鐵尤好矣。 大槪佛狼, 是軍器之最良者, 而江都只有若干資, 今此所鑄百坐之外, 又欲加造一百坐, 而物力難辦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外援隨至, 則賊兵, 亦何能相持久留乎? 向日趙道彬疏批中, 利害不待智者而知之云者, 蓋以此也。 城基, 則前日議定時及今日兩臣所見, 皆以竝包南山爲言, 似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執遵削之際, 本州人幼學權大夏, 肆然大倡於齋會中曰, 光海旣立其母, 則廢論元無所失云。 夫以光海爲是者, 乃是宗社之罪人也。 苟非陰凶不道無忌憚者, 何忍發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京畿監司尹以濟敎書, 王若曰, 察能任官, 固君道之當務, 分憂共理, 亦臣職之攸宜, 玆擇國耳之藎臣, 以寄方面之重任, 睠彼京輔之爲道, 實是王化之所基,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甲津告急, 興一乃點儒兵, 分守城堞。 俄而賊渡甲津, 以兵逼城而誘脅之, 分司宰相, 窘迫無策, 與賊約和, 遂出詣賊營, 卽無交鋒遺矢之事, 而賊兵遂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江都時, 則本數一萬石外, 監司, 自備加送六七百石, 俾充其數, 而猶慮不足云。 若以常平米輸送, 則欠縮加納之數, 他無出處, 必當竝徵於民間,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南九萬曰, 仁祖丁丑年, 洪翼漢·尹集·吳達濟, 死於瀋中, 我國可以有辭於天下後世者, 賴有此三人, 守正而死, 國家宜有追奬之典, 而其時有所忌諱, 不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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