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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千餘名, 移定於兵曹, 騎步之闕額, 四千餘石, 十年徵布, 已迫千餘同。 此實本廳所當有之物, 而反爲兵曹之所獨占。 此木五六十同, 俾令劃給於本廳, 則庶可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殆至十家九空, 還上身布, 萬無備納之勢, 況本官民戶七千餘人口, 三萬餘石新分還上, 僅一千五百餘石, 卽今收捧者, 四百石, 雖畢捧, 新還不爲一二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啓曰, 前頭開市時, 所貿米, 京運三萬石之價, 以平安道所在江都木價銀, 入送義州之意, 纔以覆稟矣。 今聞江都木價銀, 曾前留庫及近來差人輩, 自京運納營下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付種處幾結, 一一區別, 論移戶曹, 以爲年分時憑考之地, 而多有未付種處, 則當該守令, 別爲警責, 宜當。 且臣於頃日受由往來時見之, 則秋牟向茂, 春牟已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支明年三四月, 而舊穀欠縮, 亦不知其幾何, 若除其欠縮, 則不過支過來年二月, 前頭經費, 他無推移之道, 誠爲可慮。 卽今國家積儲, 只是南漢·江都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又啓曰, 嶺南竝保身布, 自備局句管, 而有同公物, 故各處或買或貨, 隨捧隨散, 終無着實區處之事矣。 江都·南漢自朝宗朝以來, 務加儲積, 而物力猶患凋殘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n 江都四十餘年矣。 其時契丹, 充斥列邑, 而猶不得攻陷, 只自外威喝而伏之矣。 大抵論之, 保障之地, 糧餉爲大, 諸處山城, 皆有運道不便之形,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之亂, 罷散家居, 誤聞大駕幸江都, 蒼黃就道, 行至露梁, 路遇正郞朴知警, 與之相訣曰, 此島形勢, 必敗無疑, 吾當一死殉國云云, 其時完陵君崔後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之之敎, 臣於伊時, 以雖未有實效, 旣設之規, 猝罷似不便, 仰達矣。 第此惟在守臣, 勿參私意, 精擇元居士人之鄕望, 而務歸着實。 寒素登仕之路, 本來甚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引見時, 江華留守趙泰老所啓, 臣待罪江都, 故敢此仰達。 江都沿邊周回三百餘里, 建置四十九墩臺, 鎭撫營設立之初, 內浦十二邑及海西之延白及京畿之南陽·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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