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76,835건의 연구성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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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之。 鎭圭曰, 所畫換服一本, 當待御覽後始工乎? 上曰, 已啓所羃紅袱, 看過矣。 鎭遠曰, 旣已睿覽, 則其無所欠乎? 上曰, 無一可欠。 卿等果善爲圖寫矣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後二行缺 濡曰, 北漢自上親臨見之, 雖有北漢, 若無蕩春臺, 則無以支撐, 古人所見, 亦如此矣。 小臣受命七八年, 尙未訖功者, 非但物力之不足, 且緣論議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執義李箕翊啓曰, 臣伏見李弘躋等還給之疏, 乃敢待罪諸臺, 而以臣頃日處置事, 竝擧爲言, 臣於是, 竊不勝駭惋之至。 夫臺閣處置, 觀其避辭, 卽定其立落,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領議政許積請對入侍時, 都承旨鄭榏所啓, 江都米穀, 卽軍餉也, 而畿甸各邑, 每因年凶, 以移轉多數, 受出還納之際, 不能畢納, 或有未收之處, 事甚未妥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本官, 一置監營, 二件則本送戶曹及京兆, 而四件紙地與書寫之價, 擧皆責出於民戶, 上納之際, 民弊甚多。 戶籍之藏於地部者, 蓋爲版籍之意也, 而京兆則有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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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雖不可多得, 一千石, 特爲劃給, 以塞其望, 秋後竝耗收捧, 使之還納於本倉, 何如? 吳挺緯曰, 賑恤之米, 在於忠淸道, 而有未及輸來者, 江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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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啓曰, 江都所儲軍餉米, 只有四萬餘石, 保障重地, 蓄儲之匱竭如此, 誠極寒心。 故曾於九月十三日, 因榻前下敎, 抄出京畿各邑, 開城府及延白今年應捧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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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使之劃卽擧行, 可也。 又所啓, 頃日御營大將尹趾完, 以三南月課之價, 添助十哨軍兵番上時, 糧料爲請, 而右議政南九萬, 亦以禁衛營五哨上番, 旣與御營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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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大同所納之米, 自江都代納京倉, 似合兩便矣。 領議政金壽恒曰, 火藥, 乃是軍門最緊之物, 而江都所儲不多, 則不可不多數措備, 嶺南大同米三千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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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乙丑三年良中, 同軍米, 自江都, 以米直納於該廳後, 以銀從市直, 徵捧於軍人是白如乎, 今年段置, 若依前例, 以江都米代納, 則事甚便好是白在如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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