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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江都米亦已劃給, 而自監營, 均分道內, 猶患穀少民多, 所及於沿江災邑者, 只僅爲旬日延命之資, 卽今麥事尙遠, 無以接續, 且雨水浹洽, 而以無種糧, 陳廢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取其尤甚傷破者, 加造鋪帳百餘浮, 然後會減, 何如? 上曰, 年久之後, 則自致腐破, 造作布帳[鋪帳], 可也。 □□□□□□□□□□□□□□□□□□□□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等, 長立軍門, 其供饋饌物, 所用白蝦二十甕, 自喬桐縣收稅上納, 其來已久矣。 頃因兵曹判書閔宗道, 陳達榻前, 永爲革罷。 故所饋之饍, 他無出處, 欲爲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未時, 上御熙政堂。 訓鍊大將李義徵, 同副承旨李元齡, 假注書全命三, 記事官申奎·李柱天入侍。 義徵進曰, 文殊山築城基址看審事命下, 故臣於初六日發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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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矣。 今觀形便, 則當初所定基址, 雖似狹窄, 內有三洞, 有數日耕田十餘斗落種之畓, 足以作家成村。 但洞壑之水, 常時盡溷, 井泉甚少, 可謂無水之城, 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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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給, 牽補架漏, 殆不成官家模樣, 略加收拾, 尙且不易, 蘇殘起廢, 實無其路, 而然此則係是守臣之責, 臣何敢一一煩浼於天聽乎? 至於兵政一事, 關係尤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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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所啓, 黃海監司李德成, 以本道各邑稅收米, 一依江都所納之數相換事, 論報備局矣。 卽今形勢, 雖不可准副其請, 而本道民事, 亦不可不慮。 H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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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7]騸馬, 則□□彼國嚴禁買賣, 自下當相議善缺。 上曰, 勿出擧條, 可也。 寅燁啓曰, 乙丙缺宣惠廳江都木六百餘同, 啓下取用, 而至今未償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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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若猝當變亂, 則事無可爲, 念及于此, 則百姓賑救, 反是第二件事, 陰雨之備, 豈可少緩也? 雖以江都言之, 周回一百二十里, 而無外城之藩蔽, 則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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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狀啓也, 通津前府使李行成, 以本府傳掌文書, 甲戌以後應納官需儲置等米, 連因歲歉, 不得收捧, 江都捧留米百十一石零, 及文殊山城軍需米八十五石零, 那移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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