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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於救死, 奚暇於農事哉? 江都米一萬石, 已給西路, 則前頭畿邑, 亦宜加給, 戶曹·宣惠廳, 皆以目前經費爲急, 而不暇念及畿甸之當給, 畿內之民,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渴悶。 大抵此等邑, 則不可不別爲軫念, 以示朝家優恤之意, 而卽今京外穀物已盡, 恐無可以容手地, 不知將何以爲之也。 副使洪受疇曰, 目見龍·鐵·宣·郭飢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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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峙之時, 兵力尙强, 雖以高句麗之兵力, 能却隋唐之兵矣。 上曰, 隋唐百萬之衆, 皆不得志於高句麗矣。 錫鼎曰, 麗朝五百年, 我朝三百年以來, 尙文而不尙武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 至有二千同矣。 卽今未滿千同, 已甚可慮, 前頭酬應, 何以支當乎? 本曹五十同, 旣已移送都監, 其餘所請之數, 追後繼給, 似爲宜矣。 李畬曰,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禮曹判書閔鎭厚所啓, 軍餉事體, 與他還上自別, 每當凶歲, 他還上, 雖減數, 軍餉則必準捧, 此是應行法例也。 然一邑之中, 竝有本還上軍餉, 則固當如此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地, 而此後各道落講·代講之類, 亦皆屬之於江華餘丁事, 亦令兵曹, 惕念擧行, 何如? 上曰, 江都所送之木, 實爲緩急之用, 而移用於防軍給代, 則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又啓曰, 江都內軍器, 箭簇及箭羽, 俱有傷損之處, 而甲則鐵縫或斷, 胄則起花渝色, 此非鄕匠之所可改造。 鍊磨匠及甲胄匠, 令軍器寺起送, 而雉羽·樺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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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使統率, 則恐有不便之端。 申汝哲所慮, 似在於此, 而臣意則其割屬軍兵, 常時仍屬於摠戒使, 而臨急, 朝廷或不入江都, 則卒然以不服習之軍兵, 付之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華穀物之移轉湖南者, 欲待年事稍豐, 以爲收合之計, 而連値凶歉, 今年又不得收捧於民間。 今雖以本道米三萬石, 爲先爲移納之地, 而十餘萬石之米, 盡爲充數,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左議政睦來善, 右議政閔黯, 訓鍊大將李義徵, 御營大將黃徵, 禁衛大將閔宗道引見入侍時, 左議政睦來善所啓, 江都城役, 旣已垂畢, 而三營物力, 有所不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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