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76,835건의 연구성과가 있습니다.

홈 > 연구성과별 자료보기
  • 以臣自昨年以來, 卽一未勘律之罪人也。 旣無伸暴之路, 長在席藁之中, 跧伏鄕廬, 不能自齒於恒人, 日者聖候康復, 法宴載設, 實宗社無彊之休, 臣民罕覩之慶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n 江都移轉事, 着令廟堂, 從速覆啓。 仍念臣之衰朽無能, 不堪職事, 値此無前大歉之歲, 凡係賙賑之政, 旣不能先事區劃, 仰體聖上眷諭之至意, 至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際, 大駕駐蹕, 都城士民, 同力堅守, 則雖動天下之兵, 決難盡圍, 亦無攻拔之勢, 眞所謂金湯, 而論議不一, 擧皆沮戱, 故臣意以爲, 雖不能築北城, 都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如係不可已之役, 而四間之制, 果爲狹窄, 則依禮官所達, 兩殿各加一間, 似可矣, 第小臣有所懷, 惶恐敢達矣。 南漢是國家早晚依歸之地, 不幸而有播越之患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萬石爲請, 而前頭畿甸·湖西, 亦必請得江都軍餉, 而卽今江都米, 已發之數, 幾至萬餘石, 實數不過十萬石云。 五六萬石, 雖難盡許, 一萬石爲先移送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亦指北漢, 而外人不詳曲折, 而徒知沮撓城役, 以爲守北漢, 不如守都城, 及至蕩春之役, 則又以三處守城, 爲譏毁之柄。 自古堅守都城, 固爲正當之義,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勿更屬他役, 何如? 上曰, 依爲之。 錫胄曰, 頃日御營軍試射時, 別馬隊賓成元, 片箭三發三中, 自前如此之類, 皆以直赴殿試判下, 而今番則只踏啓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又啓曰, 卽者備邊司郞廳, 以三公意來言, 江都墩臺設築時, 僧軍, 全羅道則二千八百名, 忠淸道則一千八百名, 江原道則五百名, 咸鏡道則四百名分定, 來二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更爲移文, 而自備局, 亦爲公缺間之事, 實爲可悶。 當待留守之所爲處置後, 乃爲缺之意, 敢達。 上曰, 唯。 來善趨而更言曰, 臣本無似, 猥當重任, 精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010402]江都爲保障重地, 其地之人, 常加優恤, 則今雖免防, 亦合事宜, 第念試科賜第, 旣是格外特恩, 而又爲免防, 無乃太過耶? 以輦下禁軍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페이지 / 7684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