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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則江都, 當爲保障之所, 而如有海寇, 則江都, 決不可往, 南漢, 雖險固, 非萬全之地, 當此災異孔酷, 國事疎虞之日, 恬憘狃安, 不早定計, 脫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備邊司達曰, 因右參贊李健命所啓, 淸北監賑御史, 旣已差出, 而江都米及海西詳定米, 畫給關西元數中, 以義州飢荒之尤酷, 除出移給, 則餘數不多, 今若以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爲之。 戶曹判書鄭載嵩所啓, 一朔頒料支用之數, 不下八千石, 而卽今所儲, 僅支明年二月, 漕運則例在五月間, 必得三萬石, 可以支給於漕運前。 管理·賑恤兩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兵曹判書趙師錫所啓, 江都築城時所用地乃木, 斫用於摩尼山, 則事甚便好, 而係是保障之地, 不敢率意擅行, 敢此仰達。 上曰, 斫用, 可也。 謄錄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且卽今江都, 南漢軍餉之蕩竭, 誠非細慮, 自上別爲下敎, 令廟堂料理充備, 臣等亦嘗晝夜思度, 而未得善策, 嶺南大同儲置米, 餘數稍優, 故使之除出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慶尙監司李聃命上疏。 大槪, 猥膺不似之重寄, 適値無前之歉歲, 不勝惓惓之愚忠, 敢陳區區之瞽言事。 入啓。 已上春坊朝報 答曰, 省疏具悉。 百官頒祿,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戶曹判書李敏敍所啓, 江都太, 移轉全羅道一萬石, 今當自本道還償, 而今年太甚不實, 本道形勢, 極以爲悶, 而本曹所儲之太, 頗裕, 江都太一萬石, 自本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偸斫事, 中禁金世郁, 次知婢一分, 婢一春等段, 金世郁不入番事, 私婢業伊段, 其父春白, 以宗親府陪使令, 不立役事, 私婢夫禮段, 其夫得禧, 以刑曹奴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則無流澌可以過涉。 若於其上, 先築墩臺, 以爲防遮之計, 似宜云, 而凡人所見, 各自不同, 前日請築山城之人, 旣已往見, 而審察矣。 今日兵判及訓將, 皆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而能守死社稷之義者, 萬古百王, 只一人而已。 臣意以爲臨難保障之計, 終不如守都之便。 上曰, 都城闊大, 似不可矣。 昌集曰, 李濡爲楊牧時, 欲築洪福未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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