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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以白給救活, 本府無他物力, 可以料販備穀之望。 空名帖貿穀, 値此凶歲, 其勢尤難, 而此外, 朝家亦無他顧濟之道。 若得折衝·通政·嘉善等帖, 減價發賣,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牟利而不可爲。 於此兩款, 無一措手, 則玆豈非欲其本事之一切停廢乎? 北漢則旣已築城, 諸事, 宜其次第措置, 而行宮之創建, 已至五六年, 雨漏傾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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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故惟泰, 會宿於奉恩寺時, 擧似於宋, 蓋壽芳之語, 卽私相可否者, 而在乙卯以前, 許璜所傳, 乃通文懸祿事, 而在於辛酉, 事段旣別, 年條逈左, 而今錫文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宣惠廳達曰, 詔使山陵之役, 本不入於大同收米中, 故凡於國恤時三年內所供菜蔬·柴炭等物, 初則戶曹磨鍊分定於京畿, 直自各邑進排。 而已亥因大臣陳達, 爲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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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雖難盡爲築城, 其施設, 則任事者議定, 惟在從速區劃耳。 堂揆曰, 雖陸賊, 乘船下泊, 則無防遏之計, 築城之言, 誠爲有理矣。 柳赫然曰, 臣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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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今見後面形勢, 則此亦不可不設, 故更以四十九墩爲定, 且登于文殊山最高頂, 則俯壓江華府內, 有若坐高臨枰, 若敵人先據此産, 則不但守禦爲難,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引見時, 副提學趙持謙所啓, 南漢祠宇三臣中洪翼漢之子, 當丁丑亂時, 入江都, 以身蔽其繼母, 母子俱死。 其後朝家, 有恤後之命, 故嗣子及孫, 皆蒙錄用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大臣·備局堂上引見入侍時, 江華留守申晸所啓, 江都物力凋弊, 雖欲有爲, 無力可施, 此甚可悶矣。 海西遂安·谷山·新溪等邑, 距水路甚遠, 故田稅輸納之際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債於關西琴姓人, 尙不得還償於備局, 故頃者摠戎軍兵, 移屬江都, 復其軍兵, 所持器械之價, 自備局計給銀兩時, 尹堦所貸銀, 竝計於其數中, 使江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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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領議政權所啓, 江華留守別單, 今當稟旨定奪矣。 墩臺無井, 儲水之器, 不可不預備, 誠如申厚載所陳, 今聞自海西, 逐年造送釜鼎於江都, 而釜鼎破鐵, 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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