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76,835건의 연구성과가 있습니다.

홈 > 연구성과별 자료보기
  • 以補經費, 其代則令本道待秋, 卽時輸納于本所宜當事, 前後關文, 不啻明白。 故臣於春初, 已令上納大同中三斗之米, 納錢一兩, 小紓民力, 餘米則使之準數收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堡防軍給代之布, 無他出處, 每以此布計給, 故卽今餘在, 只是三百三十九同, 其他方物價木九十同三十二疋, 五升布五同十五疋, 而各鎭堡防軍給代之木, 旣無辦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萬石, 則此不可猝然罷棄, 必須備局堂上中一人, 仍爲主管, 而凡干號令, 皆自備局分付擧行, 庶可無虛疏之弊矣。 左議政閔鼎重曰, 臣於頃日奉使之行, 歷見大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烏鳶萃喙, 驚心慘目, 有不忍言, 而惟殿下, 深居九重, 獨未知盡燭耳。 倘得一二登聞, 則以殿下恤民之盛德, 哀傷惻怛, 必無所不用其極, 而牧民之官,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引見時, 李彦綱所啓, 臣有沿路見聞, 故敢達。 淸北·龍·鐵·宣·郭等四邑, 飢饉特甚, 而其中龍川爲甚, 蓋自辛未以後, 邑倅九易, 迎送之際, 物力益復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四面今爲泊船之處, 更無可恃, 反欲築城以守, 而周回至於一百卄餘里, 如是廣闊之城, 以何軍兵, 使之排立拒守乎? 議者或曰, 前後之爲留守者, 相繼增築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永宗鎭僉使, 仍兼防禦之任。 以仁川爲管下, 而永宗以彈丸之地, 甚爲疲弊, 反不如南中僉使, 故不能管束本官, 則文南中有形勢之人, 故不能相下, 每有爭詰之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海寇之報, 誠甚可懼, 必須留意根本之地, 內築都城而後, 外定信地, 可也。 向來北城之議, 迄無歸宿, 而或以爲都城, 則闊大難守, 北城形勢, 固爲絶險,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來不多, 他無拮据之策, 故依癸亥年例, 請得江都米五六萬石, 而有令廟堂稟處之敎, 故敢達。 上曰, 此果有癸亥年前例矣。 昌集曰, 今年災荒, 無異於癸甲兩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納錢一兩, 小紓民力, 餘米則使之準數收捧, 量宜發賣, 以平市直矣。 卽伏聞惠廳堂上之言, 今此行幸時, 本道大同米一萬一百餘石, 特爲蠲減之外, 餘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페이지 / 7684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