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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敎京畿觀察使兼兵馬水軍節度使·巡察使開城府留守·江華府留守趙尙絅書。 王若曰, 職重藩維, 簡拔自先朝攸愼, 地要畿甸, 委畀視諸道尤隆。 苟非練事識治之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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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精詳, 務殫乃職, 所以名塗之揚歷, 蔚然聲績之已彰, 恢銓部激揚之風, 時望所係, 受寧考特達之眷, 委任不疑, 逮寡人任使亦多, 賴先朝簡拔以遺, 眷遇靡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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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妄, 爲目。 全羅左水使閔昌基啓本中, 蛇渡僉使申珩, 以沈病廢務, 事多乖當, 爲目, 則宜置下考, 而竝置中考, 致勤點下。 慶尙監司權以鎭啓本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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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必得汲長孺方可, 開封若要無事, 顧非范希文其誰, 陵寢奉審之行, 爲任甚重。 京師捍衛之地, 其責最專, 歲値水旱饑饉之災, 若爲濟救, 民多賦役供億之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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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則今此雨水, 累日暴注, 故璿源閣前後外面, 有滲漏處, 而外墻亦多有壓頹處云。 前頭事不可預料, 趁此時修改, 不容暫緩。 今番所修御牒及璿源譜略, 乙卯式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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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假注書金錫一啓曰, 臣承命馳往于江華府鎭江村致仕奉朝賀崔奎瑞所住處, 傳宣聖批, 則以爲臣封疏自列, 恭俟嚴譴, 不意聖慈寬恕, 不惟不罪, 反蒙近侍之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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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禮曹言啓曰, 卽接江華府留守金相福移文, 則大行王妃殯殿, 本府進香吉日, 以今五月十三日, 已爲推擇啓下, 而當職方遘風病, 手臂癱瘓, 言語蹇吃, 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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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禮曹言啓曰, 今此大行大王殯殿進香時, 依前例諸道監司, 竝令定官代行, 而京畿監司及開城府·江華府兩都留守, 上來進香事, 分付, 何如? 傳曰, 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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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江華府留守, 以佛恩面居金貴興家失火, 其子牙兵鳥弄等三人燒死事狀啓, 傳于趙錫命曰, 燒死人等, 令本道恤典擧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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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兵曹言啓曰, 江華府試才時, 閑良鄭泰興, 三技入格, 而猝然身死, 故未得參榜, 令該曹取來本府草榜, 以其入格第次付標, 榜目殿試則付之末端, 仍給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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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江華府留守沈宅賢上疏。 伏以臣, 半年淹病, 一味沈頓, 杜門深蟄, 念斷供世, 連尋疏單, 見阻喉司, 虛帶職名, 悶蹙度日矣。 乃者沁都居留之命, 遽下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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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普昱, 以江華府留守金光世狀達達曰, 拯劣米, 不得依關文擧行, 惶恐待罪事。 令曰, 勿待罪事, 回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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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讀奏吏判金鍾正疏, 上曰, 彼必固心在矣。 命書批答, 翼謩啓曰, 曾經備堂之人蔡濟恭·徐命膺·朴相德·鄭尙淳·尹得養, 今竝還差, 何如? 上曰, 依爲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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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敎江華府留守兼鎭撫使黃爾章書。 王若曰, 湖臬宣化, 已著牧御之能, 沁都分司, 玆申保釐之命, 實循僉擧, 惟簡予心。 惟卿, 幹邦通材, 赫世華胄, 少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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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洪景輔啓曰, 守禦使申思喆, 以知春秋實錄奉安事, 今方出往于江華府, 而勢將屢日經宿, 所受密符, 來請還納, 何以爲之? 敢稟。 傳曰, 仍佩往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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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待敎鄭履儉啓曰, 臣承命祗詣于江華府鼎足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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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假注書李昌儒書啓。 臣承命馳往于江華府鎭江里議政府右贊成鄭齊斗所住處, 傳宣聖批則以爲, 冊禮旣慶, 八域同歡, 惟臣一息猶存, 獨不能身奉盛儀, 以伸微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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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江華府留守金相福書曰, 伏以臣於日昨, 伏奉敎旨, 以臣擢授嘉善大夫江華府留守者, 臣聞命驚惶, 不知所自措也。 臣自立朝〈以〉來, 猥被洪造, 叨竊華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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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以巨洋, 旣天塹之難越, 築斯重壘, 復地利之足憑。 然沮洳最利於防船, 今則爲堤堰之所塡塞, 顧儲峙莫重於備變, 今則爲移轉之所耗消。 雖緩急以晉陽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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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上入仁政殿, 御寶座。 諸臣以次入侍, 引儀朝服趨入。 樂止。 引儀讀箋又曰, 左議政趙文命等云云, 引儀讀訖出。 樂作。 趙明翼跪告上前曰, 傳敎遂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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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權抗, 以七陵表石營建廳言啓曰, 今此厚陵·敬陵·昌陵碑閣所用籠臺加簷階砌等石, 自江華府, 定差員浮出事, 曾已筵稟定矣。 顧今敬陵·昌陵啓下吉日, 尤爲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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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江華府留守金相福書曰, 伏以臣於日昨, 伏奉敎旨, 以臣擢授嘉善大夫江華府留守者, 臣聞命驚惶, 不知所自措也。 臣自立朝〈以〉來, 猥被洪造, 叨竊華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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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假注書尹鵬擧啓曰, 臣承命馳往于江華府·鎭江里奉朝賀崔奎瑞所住處, 傳宣聖批, 則以爲臣猥陳自列之章, 方俟重誅, 意外近侍遠臨, 俯布聖旨, 不惟不罪, 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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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趙榮國, 以弘文館言啓曰, 新除授校理金尙迪, 時在京畿江華府, 校理李濟遠, 時在龍仁地, 經筵入番事緊, 請斯速乘馹上來事, 下諭。 本館上番, 他無推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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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倚天, 以兵曹啓啓曰, 今此江華府, 遣重臣, 武科, 一依觀武才例試取時, 規矩才已啓下, 應行節目, 當爲磨鍊, 而凡試才時, 則只試名隷軍案者, 故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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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易方伯, 弊瘼滋留。 伊敗局要得其人, 肆愼簡倍難他日。 惟卿襲徽名閥, 蜚英華塗。 雅操沖襟, 絶無少輩浮薄之態, 淡容款語, 自有大家醇謹之風。 木天題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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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南泰著, 以春秋館言達曰, 史庫曝曬, 間一年擧, 乃是定式, 而江華府鼎足山城史庫曝曬今年當次, 依例發遣史官, 擇日擧行, 何如? 令曰, 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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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膏芃黍, 將欲試乎按巡。 眷惟畿甸之大藩, 必揀卿宰之峻望。 若句陳之拱帝座, 扞衛都城, 如江漢之被王風, 敷揚政敎。 災荒洊至, 公私之儲蓄俱空, 疾癘彌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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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擧條 益輔曰, 卽見慶尙監司所報, 則濟民倉, 今已畢役, 當自今冬爲始, 可以糶糴, 成節目啓下, 以爲擧行之地, 何如? 領議政洪鳳漢曰, 三南濟民倉各道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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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正言李長夏所達, 李時蕃事·坦事·泰績事·畬事·戊申逆賊巨魁之子事·濂事·龍發·斗齡·戒剛事·恒延·命垕·敏樞事·八金事·爟事。 措辭見上 答曰, 不從。 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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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洪麟漢, 以禮曹言啓曰, 江華府, 遣重臣文武科試取吉日, 令日官推擇, 則來二月二十一日·二日俱吉云, 試官下去後, 以此兩日中推移定行, 而試官, 亦令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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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鄭履儉曰, 臣昨以江華船頭浦畓, 參酌劃給於鼎足山史庫守衛傳燈寺僧人, 使得歲收數十石穀之意, 有所, 書啓, 而令該曹依施事, 命下矣。 但此畓, 本自江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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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一事, 未得聞知矣。 上曰, 年數幾何? 對曰, 年今三十矣。 聖揆進伏。 上曰, 職姓名。 對曰, 南學訓導洪聖揆。 上曰, 履歷不問。 職掌達之。 對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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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轄三都, 壯關防於左右。 奉園陵而修輦路, 徭役寔繁, 納總銍而進御供, 責應亦大, 惟八路按察之任, 孰非重歟? 顧一方牧禦之才, 尤所難者, 與我共理, 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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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宗簿寺官員, 以提調意啓曰, 璿源譜略改刊後, 一體奉安事, 命下矣。 譜略旣已改刊進上, 今番所修國朝御牒及譜略, 今月望前, 爲先奉安于江華府鼎足山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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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參酌劃給於鼎足山史庫守衛傳燈寺僧人, 使得歲收數十石穀之意, 有所, 書啓, 而令該曹依施事, 命下矣。 但此畓, 本自江華府, 築堰作畓, 而當初物役不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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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啓曰, 前江華府留守曺命敎, 今已遞罷, 從前外任陞資之人, 未赴任遞改, 則所收加資, 例爲還收。 而留守則與外任有異, 故其規不一, 故判書金昌協未赴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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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趙英鎭, 以宣惠廳言啓曰, 三處稅船, 俱無監官·色吏, 所報時遺漏, 本處果闕與否, 問啓事, 命下矣。 取考各該道裝發文書, 則藍浦稅大同所載船沙工高以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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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記事官金聲發書啓, 臣承命馳往于江華府鎭江里司憲府大司憲鄭齊斗所住處, 傳宣聖批, 則以爲, 臣昨上危懇, 不啻爲前日賤私而已。 誠以國家事重, 有不容力請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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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史庫守衛傳燈寺僧人, 使得歲收數十石穀之意, 有所, 書啓, 而令該曹依施事, 命下矣。 但此畓, 本自江華府, 築堰作畓, 而當初物役不逮, 貸用兵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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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授宣敎官任珽, 珽跪受。 彥燮隨敎文而出, 北向立陛頭唱曰, 宣敎, 珽北向立, 讀敎文訖, 展敎官捧敎文。 還置于舊所, 百官四拜, 軒架樂作, 拜訖樂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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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劑, 上進御。 上曰, 暮年復政, 心許民國, 其若許民, 其在守令。 噫, 昔年有代柱帖, 其宜法先, 令東銓, 抄十考十上在人, 依官案例作帖, 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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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今營門, 只有五哨行用旗幟, 臣心甚怪訝而詳査, 則上番五哨所用旗幟造用, 而弊盡則更造而已。 此外則初無造置者, 且他器械, 亦多如此。 事之疏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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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戶曹言啓曰, 三處稅船監官·色吏遺漏與否, 令該曹·該廳問啓事, 命下矣。 考見裝發文書, 則藍浦稅大同所載船隻, 沙工高以奉, 監官任聖顥, 色吏車聖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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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假注書黃泰彬啓曰, 臣承命馳往于 江華府鎭江村奉朝賀崔奎瑞所住處, 傳宣聖批, 則以爲, 臣陳章自列, 方竢嚴命。 不意聖慈矜念, 不惟不罪, 反賜恩批, 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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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敢請矣。 上曰, 江都科事, 禮判先爲稟定, 可也。 雲逵曰, 取考謄錄, 則丙午年江華府別科時文科額數, 江華·通津·喬桐三府合試取五人, 而儒生試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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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今營門, 只有五哨行用旗幟, 臣心甚怪訝而詳査, 則上番五哨所用旗幟造用, 而弊盡則更造而已。 此外則初無造置者, 且他器械, 亦多如此。 事之疏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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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江都則取三人, 通·喬則各一人矣。 今此江華府別試文科額數, 當取幾人乎? 敢稟。 上曰, 丙午以上別科取人前例, 詳考以稟。 雲逵曰, 取考謄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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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江華留守李溵疏曰, 伏以臣, 伏奉敎旨, 以臣爲江華府留守者, 臣聞命驚恐, 不知所措。 夫保障重地也, 居留重任也。 從古委畀, 難愼其人者, 誠以緩急有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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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忠淸水使狀啓, 江華府居田介叱同等渰死事, 傳曰, 令本道恤典擧行。 傳于李得臣曰, 次對明日爲之, 儒臣持問答入侍。 出榻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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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秉常曰, 故相臣李濡子, 有除職之命。 本曹事當擧行, 而與本曹參判洪錫輔, 有相避, 不可擬望, 使西銓隨闕擬差, 似好, 故敢達矣。 上曰, 當爲翊衛司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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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假注書許集書啓, 臣承命馳到于江華府鎭江村兼贊善臣鄭齊斗所住處傳宣聖諭, 則以爲臣於新授召命之下, 惶隕無地, 敢以一疏申請恩譴而未及上徹, 復有史官下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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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孝大, 以國葬都監郞廳, 以摠護使意啓曰, 大轝長杠, 以前排取來看審, 則本木雖爲可用, 而筋膠則不可不全改, 計其容入, 其數夥然, 取考謄錄, 則以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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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以春秋館領監事意, 又達曰, 史庫曝曬, 間一年擧行, 乃是定式, 江華府鼎足山城史庫曝曬, 今年當次, 發遣史官, 擇日擧行, 列聖誌狀, 璿源譜略, 依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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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以上別科取人前例, 詳考以稟。 雲逵曰, 取考謄錄, 則仁廟朝丁卯年, 江華·通津·喬桐等三邑, 別設庭試, 取四人矣。 上曰, 依丁卯年例, 取四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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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洪麟漢, 以禮曹言啓曰, 江華府, 遣重臣文武科試取吉日, 令日官推擇, 則來二月二十一日·二日俱吉云, 試官下去後, 以此兩日中推移定行, 而試官, 亦令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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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假注書許集書啓, 臣承命馳到于江華府鎭江村兼贊善臣鄭齊斗所住處傳宣聖諭, 則以爲臣於新授召命之下, 惶隕無地, 敢以一疏申請恩譴而未及上徹, 復有史官下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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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河南君垙疏曰, 伏惟璿牒奉安, 我朝家莫重莫大之事也。 凡於奉安之所, 必盡敬謹之道, 屋宇堂廡, 非不奕奕翼翼, 而至於門路, 亦當嚴整, 不可少有苟且之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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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潗啓曰, 司僕寺官員, 以一提調意啓曰, 各牧場牧子之役, 最爲苦重, 故, 劃給位田, 使之無稅耕食者, 自古通行之規。 而北一場許給江都之後, 牧子所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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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禁衛營言啓曰, 江華伏波門樓, 今已造成矣。 此門旣是鎭門, 與江都正門, 無異, 故在前凡於喪轝, 自暗門出送, 毋得出行於伏波門矣。 一自樓門毁撤之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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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再次上言, 猥越甚矣。 事在旣往, 雖不請治, 外方山訟, 何可自京司替當乎? 還送本道, 令道臣別定剛明官, 從公處決, 何如? 上曰, 依爲之。 出擧條 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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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尹得雨, 以宗簿寺官員, 以提調意啓曰, 觀此 H010403]江華府留守黃景源狀啓, 則璿源閣閣內北邊樑上第二椽間沙壁剝落, 南邊中樑第二椽間沙壁剝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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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北一場許給江都之後, 牧子所耕位田, 仍前耕作事定奪, 而江華府必欲收稅, 累次往復, 終不敢施, 事甚未安。 北一場牧子所耕位田, 依舊例勿爲收稅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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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喆輔, 以義禁府言啓曰, 翰林被薦人閔百行·尹尙任等, 拿問處之事傳旨啓下矣。 閔百行今方待命於本府, 卽爲拿囚, 而尹尙任時在江華府云。 依例發遣府羅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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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南平營哨官姜起磻, 貫一中邊二中, 黃海兵營權鼓官尹震英, 貫二中邊二中, 江原監營知彀官崔鎭坤, 貫一中邊二中, 慶尙右兵營把摠朴龍紀, 邊三中, 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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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宗簿寺官員, 以提調意啓曰, 璿源譜略改刊後, 一體奉安事, 命下矣。 譜略旣已改刊進上, 今番所修國朝御牒及譜略, 今月望前, 爲先奉安于江華府鼎足山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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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元仁孫, 以侍講院言達曰, 本院下番闕直, 事甚未安。 司書韓師直, 旣有只推之令, 新除授說書金和澤書批已下, 卽爲牌招, 以爲推移入直。 新除授弼善李翼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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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營建廳言啓曰, 今此七陵表石營建時, 厚陵·敬陵·昌陵籠臺加簷下磚階砌等石, 發遣本廳郞廳於江華府, 搜得私儲而未得者, 依甲子年 例, 自本府, 定差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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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화부거 강필식이가 법국공관에 잇... [제국신문의 수집, 정리 및 DB자료화 | 한양대학교]
    강화부거 강필식이가 법국공관에 잇 최홍직을 소야 강화쟝진도를 오쳔량에 법공에게 방야 셰납은 년소산 어물도 법관에쥬게고 법공 갈림덕씨가 문셔 여지라 강화부에셔 그실을 들어 외부로 보고엿다더라
    게재일1900년 8월 11일 | 기사분류잡보
  • 강화부근리점골지석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점골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지석묘.
    연계항목강화부근리점골지석묘(江華富近里점골지석묘)
  • ○兵曹啓: “京畿江華府使及慶尙道知迎日縣事, 兼任監牧, 境內牧場馬匹牧養孶息, 與監牧官一體檢察, 其褒貶, 依監牧官例。” 從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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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上王謂左議政朴訔、右議政李原曰: “讓寧常言: ‘願與平民處, 以遊獵自適。’ 吾欲令讓寧、懷安率其家人, 耕穫遊田如何?” 訔等對曰: “讓寧則宜給月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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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火賊李永生ㆍ張元萬等供招: “同(儻)〔黨〕宋吾莫知ㆍ金佛子等六七人乘船, 欲於水邊各處作賊, 向喬桐、江華而去。” 命鎭撫洪師錫, 與江華府使、喬桐知縣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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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以鐵原府使裵屯與江華府使洪延安換差。 鐵原爲講武場, 而屯乃儒生, 故換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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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前左軍都摠制朴齡卒。 齡字浩夫, 慶尙道義昌人也。 累遷判司宰、戶曹典書、判通禮、兵曹參議, 出爲江州鎭僉節制使、江華府使、江界節制使、慶源ㆍ朔州兵馬使、洪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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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癸丑 / 領議政黃喜啓: “臣不仕在家, 救旱之術, 反覆思之, 近者憲府風聞守令所犯, 其官人吏, 散囚他郡, 拷訊累次, 不無冤抑。 前江華府使楊脩, 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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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己巳朔 / 京畿問弊使玉山君躋, 來復命。 摘發所犯, 被覈者, 凡三人, 江華府使禹繼蕃、果川縣監任彭孫、前縣監尹繼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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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傳旨刑曹曰: “前龍宮縣監宋守殷, 決杖一百, 屬官奴。 前陜川郡守權得經、永川郡守申命之、眞寶縣監李質、玄風縣監孫閏生、昌原府使李壽生、密陽府使禹垓, 決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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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傳于吏曹曰: “僉知中樞府事呂允哲、富平府使徐克哲、江華府使柳益厚等, 廉謹有操行, 其各特加一資, 因政府擧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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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臺諫啓: “吏曺參判閔祥安, 未協物望, 不可久曠其位, 請速遞。 蠶室雖導率之事, 蠶室太多, 故弊及於民, 新蠶室, 請速革罷。 內需司長利收納事, 又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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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己未 / 憲府啓曰: “今聞江華京在所別監稱號, 劉繼男者, 常於部將趙彦琛、趙希英、柳塢等會坐處, 詆毁江華府使。 乃於峩嵯山打圍還宮時, 部將等, 見劉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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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憲府啓前事。 諫院啓: “公主、翁主第宅修理材木, 與新造成不異云。 此事, 非自內知而爲之, 專是次知內官, 希旨、喜事, 務售己功, 罔上貽弊。 請別推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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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大司憲潘佑亨、執義金士元、掌令金彦平ㆍ金祉啓曰: “江原道觀察使愼自健, 得罪成宗朝, 近以椒房之親, 攀附任士洪, 得陞顯秩。 觀察使乃重任, 宜速改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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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或割場, 馬多耗斃。 馬改虛踈, 無如今時之甚, 誠非細慮。 江華牧馬之地, 擅名沃饒, 豪强之家, 窺占已久。 在廢朝昏亂之時, 許人折受, 靖國初, 旋卽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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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樂院正邊成, 爲三陟府使時, 不能治事, 使官庫虛竭, 已爲被論, 而旋卽陞遷, 亦爲非矣。 司宰僉正金璿, 別無賢能, 遽陞四品, 請竝改正。 成均館司藝鄭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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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光海時孝誠以布衣抗䟽諌銅西宫被刑遠謪 仁祖即位馹召除職官至大司憲 尹鴻 初名鸞坡平人生本縣登武科守小豊鎮甞以単騎奮撃牟部落三千騎於長白山下三日不食伏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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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上御資政殿, 引見江華府使金起宗、定平府使李廷馦、永川郡守朴安孝、康津縣監宋行吉。 上謂金起宗曰: “圍籬中凡事, 各別留念。 至於廢人所欲飮食之物, 十分無
    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書中不及擧論, 何也?” 瑬曰: “聖敎誠是。 當以蕩滌之意, 宣布中外, 而事多蒼黃, 未及擧論。” 上曰: “將士施賞, 固當從容査處, 而犒饋則不可不速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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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江華府尹李重老、平山府使李廓。 瑬曰: “廢君之行, 勿發軍兵, 雖有下敎, 而因風勢不順, 今當陸行, 似難全廢矣。” 上曰: “然則從略發軍, 可也。 自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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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甲子 / 憲府啓曰: “錦溪君朴東亮, 於癸丑置對之際, 措語妄錯, 至引不敢言之事, 以爲兇徒藉口之資, 其罪不可不懲。 請命削奪官爵, 門外黜送。 鄭沆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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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辛亥 / 廢世子祬, 自圍籬中掘地七十餘尺, 通於棘城之外, 乘夜跳出, 爲邏卒所捉。 江華府使李重老馳啓以聞。 卽拿致別將權綵、中使朴弘秀及所率內人莫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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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下敎政院曰: “兩圍籬處饌物, 常令豐備以入, 如有求食之物, 趁速精備以入, 無少怠緩。 廢嬪歛殯及發引諸事, 盡心擧行之意, 言于江華府使李元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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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以江華留守尹履之爲江華府使, 李澥爲江原監司, 梁曼容、李之恒爲奉敎, 金弘郁爲待敎。
    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言閔氏當得之, 王子之母, 卽閔氏, 其事甚異。 邦說亦曰: ‘光海作仁慶宮於仁王山, 必有此宮之主。’ 安亨曰: ‘吾輩定以二月擧兵, 公等須爲募武士以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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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甲寅七月十一日辛酉王(御視事廳), 引見江華府使李廷彪。 王曰: “近來本府府使頻數遞易, 必有虛疎之弊。 軍兵、糧餉等事, 各別措置。”廷彪曰: “下三道行
    출처전거光海君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司諫院啓: “江華府使遞差, 以秩高有才局文官差送事及赴京使臣軍官, 勿以市井牟利之徒, 自望帶去事, 曾已入啓。 而聖批以徐當發落爲敎, 臣等姑停累日, 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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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司諫院前啓江華府使遞差, 文官差送事, 赴京軍官勿以市井人自望事。入啓。 答曰: “已諭, 勿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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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司諫院前啓江華府使事, 赴京軍官事, 停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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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傳曰: “江華府使合之人, 令備邊司議薦。”)○巳時, 太白見於未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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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備邊司郞廳以領相意啓曰: “江華府使, 就本司諸堂上所薦十六人中, 九人抄出, 而權盼則無薦矣。 聞本司諸堂上中有言: ‘雖再赴, 必此人爲之, 然後渠曾收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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