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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竝命依律定罪。 見上 三司之請罪尹昉, 今已閱月而聖批一向牢拒, 一則曰不無可恕之事, 一則曰事勢不得不往見。 殿下之敎及此, 臣等之惑滋甚。 尹昉之前後處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韓興一, 以戶曹言啓曰, 以司憲府啓辭, 依啓事, 傳敎矣。 本曹書吏, 法典內元數四十一名, 而國家多事之後, 別設所掌處亦多, 故常患不足於使喚, 丁卯以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則乭屎做出虛言曰, 倭人云, 朝鮮被兵於淸國, 隣國之患, 不可不救, 將出來救也, 立金牌三柄而去, 淸國亦不久出去, 缺臣擬而聞之, 則云聞之國王云云。 金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不起, 不得已捨馬而徒〈步〉, 則臣自是病人, 胸喘股慄, 寸步難致, 暫退息歇, 眩症重發, 良久不省人事, 最晩聞大駕已向南漢, 臣不忍留死於城中,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似難定其高低矣。 鳴吉曰, 龜船甚好云, 第使京畿水營, 先造一二隻見之, 如何? 上曰, 曾經統制使者, 可以知之, 何如? 宏曰, 至於衝突,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日引見時, 戶曹參判李時昉所啓, 前者慮有補運之事。 載米船三十隻, 分定於三南, 已爲畢造, 而今無他用之地。 所當區處, 兵·水營所造船, 則移用於戰·兵船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執義權濤, 持平奇晩獻啓曰, 慶尙左水使文載道, 本以兇狡之人, 濟以殘酷之性, 曾爲司僕僉正, 多行麤濫之事, 及爲釜山僉使, 益無忌憚, 專事肥己, 此非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數四十一名, 而國家多事之後, 別設所掌處亦多, 故常患不足於使喚, 丁卯以前五十五名, 而在江都時, 裁減十名, 厥後事務益煩, 或無料使喚, 而待闕陞差者,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金牌三柄而去, 淸國亦不久出去, 缺臣擬而聞之, 則云聞之國王云云。 金乭屎雖缺某某人處, 然而我國慮倭之事, 彼必知之, 以備倭之意, 缺可也。 申曰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義州府尹黃一皓疏曰, 伏以臣, 遺腹失怙, 終鮮兄弟, 母子二人, 相依爲命, 頃於江都之變, 老母獨在, 臣十四歲稚子, 漂轉海島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慮倭之事, 彼必知之, 以備倭之意, 缺可也。 申曰, 微通於鄭命守, 何如? 上曰, 不必潛言之, 缺之, 可也。 承旨曰, 臣在鄕之時, 雖未聞金牌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用, 極爲寒心。 海島之備, 莫切於船, 三南所造, 量宜移給, 爲當云。 兵營則元無用船之處, 水營則所造船體, 亦不合於戰·兵船。 今雖還給, 別無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等處漁箭, 初屬訓鍊都監, 而丁巳年間, 爲梨峴宮所占, 及至癸亥, 移屬體府, 措備糧餉, 而上年梨峴宮, 還爲奪占, 本官不得下手, 極爲未便, 依前事目,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缺之, 可也。 承旨曰, 臣在鄕之時, 雖未聞金牌之說, 以倭奇人心洶洶, 則如上敎矣。 上曰, 前頭欲爲收拾江都, 今但言南漢之事, 不言江都之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行若由山城近處, 則見之, 可也。 潢曰, 不過一二日程, 見之何難? 已有廟堂分付矣。 慶尙道則南海·巨濟之外, 無沿海身兵, 則皆屬巡檢使, 則雖有事變,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心, 下正頹俗也? 上曰, 災異之作, 無日無之, 何以則仰答天心也? 金尙容曰, 古來禍患, 在於冥冥, 何以知某事之應也? 以今日表著者言之, 則島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掌令吳達狀啓曰, 臣伏承昨日聖批, 辭意峻嚴, 不勝瞿然惶感之至, 臣頃因省母, 久在鄕曲, 從前朝廷論議, 有同聾瞽, 江都諸將失刑之事, 非不知之, 缺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敎矣。 上曰, 前頭欲爲收拾江都, 今但言南漢之事, 不言江都之事, 不可也。 旣言南漢之事, 又言江都之事, 又不可也, 以此爲念。 李曰, 江都亦在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島中之事, 可憂也。 緣有毛哥作亂之事, 西款不來, 彼不無坐而餓死之理, 若出陸討食, 則誠爲可慮, 朝廷方以兩西爲憂, 而小臣以爲江都多積糧餉, 彼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掌令吳達狀啓曰, 臣伏承昨日聖批, 辭意峻嚴, 不勝瞿然惶感之至, 臣頃因省母, 久在鄕曲, 從前朝廷論議, 有同聾瞽, 江都諸將失刑之事, 非不知之, 缺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餉, 彼若以數十船隻, 擧帆直來, 則何以禦之? 此可憂也。 臣意, 今欲別擇將領一人, 送於江都, 限四五月防守, 公淸道戰船, 又使移置于水使處,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爲惶恐也。 上曰, 朝廷旣知其罪之輕重有無, 已爲參酌而定之, 安意察任? 銑曰, 臣若疾馳, 則可及於東宮□□道內山城各浦鎭堡等處, 亦難搶劫之弊, 雖以彼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執義李尙馨, 掌令洪茂績, 持平曺漢英啓曰, 請亟還收金自點江都留守之命。 答曰, 已諭勿煩。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執義李尙馨, 掌令洪茂績, 持平曺漢英, 請亟還收金自點江都留守之命。 答曰, 不允。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戶曹粘連啓目。 答曰, 依狀啓施行。 俾無民冤, 宜當更議處置。 江都換米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府啓, 前判書趙翼, 乃朝廷之重臣, 而大宗伯之任, 異於庶官, 當國事危急之日, 翠蓋蒼黃, 而翼旣不從, 移奉廟社, 而翼又不隨。 及其缺乃無聊, 自號奮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戶曹粘連啓目。 答曰, 米穀, 移置于泰安縣, 以爲他日江都糧餉。 木棉, 移給御營廳, 使之兵器措備。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行大司憲崔惠吉, 司諫朴吉應, 獻納金鉽啓曰, 宋熙業, 請命拿推。 請槐山郡守李碩龍, 亟命改差。 措辭見上當此春饑方急之日, 四勅先聲已爲來到, 目前渴悶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執義李尙馨, 掌令洪茂績, 持平曺漢英啓曰, 請亟還收金自點江都留守之命。 答曰, 勿爲不中之言, 可也。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推。 請槐山郡守李碩龍, 亟命改差。 措辭見上當此春饑方急之日, 四勅先聲已爲來到, 目前渴悶之狀, 不須更言, 上年再逢勅使, 公私蕩然, 幾不能支梧, 秋勅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備忘記, 頃在江都時, 尹煌等, 搆成君父之罪, 播於遠近, 故逆賊仁居, 乘其人心不平, 肆意逞兇, 豈不痛甚哉? 兪伯曾亦是尹煌之類也。 今使此輩治送,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莫如責餉於我國, 而在於島中者, 雖有萬一僥倖之志, 似不出來也。 李貴曰, 漢人若不用干戈, 只爲討糧事出陸, 則天朝赤子, 不可先以干戈制之也。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大司憲金榮祖, 持平嚴鼎耉啓曰, 前判書趙翼, 乃朝廷之重臣, 而大宗伯之任, 異於庶官, 當國事危急之日, 翠華蒼荒, 而翼旣不從, 移奉廟社, 而翼又不隨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備局啓曰: “全羅左水使安夢尹、統營虞候黃瀷, 徵兵之後, 領舟師趁不回泊, 請竝罷職。 兩南舟師到安興, 留連觀變, 江都陷沒後, 始乃行船云。 令忠淸監司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熟於眼目, 狃於尋常, 將不復知我與醜虜之異也。 庸詎知南漢乎, 庸詎知犬羊之易我君臣乎? 然則自强何時而可得, 雪恥何時而可辦? 夫造軍器、築城壘、峙糧芻、充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張晩啓曰: “伏見黃海監司狀啓, 本道軍兵, 旣已調入於平安道云。 臣雖馳赴, 空手而已, 令摠戎使調發京畿兵三四千, 卽送于臣處。 下三道軍兵, 亦令陸續調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己丑 / 諫院啓曰: “江都圍內雜物潛入之事, 殊極兇秘。 其時守直之官, 旣被訊鞫, 則所當嚴刑, 期於得情, 而別將成大勳未及輸情, 特有停刑之命, 物情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癸酉 / 兩司合啓曰:○“領議政都體察使金瑬, 以一國首相,掌八路戎兵, 運籌禦侮,漫不省爲何事。 江都重任, 初不愼擇, 輕授其子, 以致廟社、嬪宮, 一時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其不在此乎? 虜以得國不取, 執君輒釋之言, 常矜德色, 而一種議論, 亦以爲然, 不欲以陵寢之讐待虜, 人心陷溺, 一至此哉? 仇讐而臣妾事之, 金帛奉之者,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丙戌 / 引見大臣、備局堂上、兩司長官。 尹昉曰: “賊已迫安州。 自上雖未輕動, 而內殿則不可不早自出避。” 上曰: “慈殿則明日, 當先幸江都。” 吳允謙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賊若嗔怒, 答以‘毛將諉以天朝人, 責令刷還, 爲屬國者, 何敢不從’ 云, 則猶愈於觸怒都督也。” 申欽曰: “古者以一女子採桑, 終至於兩國搆兵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丁酉 / 兩司合啓曰: “江都圍籬之移置, 實出於慮患之計, 而其於終始保全之道, 亦不可不念也。 頃日大臣稟定於喬桐, 而群情皆以爲, 喬桐事涉難便, 況必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領議政都體察使金瑬, 以一國首相,掌八路戎兵, 運籌禦侮,漫不省爲何事。 江都重任, 初不愼擇, 輕授其子, 以致廟社、嬪宮, 一時淪陷, 孤城受圍之後,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而聖人復起, 不易吾言矣。 擧世泄泄, 此言猶可與令兄道。 《春秋》, 許世子止以不嘗藥, 書弑其父; 趙盾以不討賊, 又書弑其君。 朱子當宋光宗之朝, 以久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李曙修築南漢, 其意有在。 今不可爲彼此不及之論。” 李貴曰: “臣本不避嫌。 李時白, 卽臣之子也。 三千之軍, 鍊習已久, 若令臨陣, 必不旋踵, 而今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國者, 何敢不從’ 云, 則猶愈於觸怒都督也。” 申欽曰: “古者以一女子採桑, 終至於兩國搆兵。 況於三百漢人乎? 宜修送一揭於毛將, 直陳王弟胡差往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丁酉 / 兩司合啓曰: “江都圍籬之移置, 實出於慮患之計, 而其於終始保全之道, 亦不可不念也。 頃日大臣稟定於喬桐, 而群情皆以爲, 喬桐事涉難便, 況必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所補益, 豈淺淺哉?” 上曰: “張維病矣。 舍此則誰可者?” 鳴吉曰: “人器雖相當, 而物議有不快者。 必名實相孚然後, 方可爲親卜也。” 上曰: “謂誰?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議, 而大駕一入江都之後, 則南漢形勢, 不如禿峴。 何可捨便近之禿峴, 而以南漢爲重乎?” 鳴吉曰: “宜令李時白, 往守臨津, 事急則入守坡州山城,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丁亥 / 朝講《詩傳》。 講訖, 左議政崔鳴吉進曰: “江都、南漢, 皆爲保障之地, 不若專意一處, 以爲陰雨之計。” 特進官李時白進曰: “江都蕩殘無餘。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則南漢形勢, 不如禿峴。 何可捨便近之禿峴, 而以南漢爲重乎?” 鳴吉曰: “宜令李時白, 往守臨津, 事急則入守坡州山城, 以忠淸道軍, 俾守禿峴。”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丁亥 / 朝講《詩傳》。 講訖, 左議政崔鳴吉進曰: “江都、南漢, 皆爲保障之地, 不若專意一處, 以爲陰雨之計。” 特進官李時白進曰: “江都蕩殘無餘。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入守坡州山城, 以忠淸道軍, 俾守禿峴。” 上曰: “都監軍則可專屬扈衛。” 昉曰: “摠戎軍兵, 亦可抽送臨津。” 貴曰: “水原之軍, 請置之輦下扈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講訖, 左議政崔鳴吉進曰: “江都、南漢, 皆爲保障之地, 不若專意一處, 以爲陰雨之計。” 特進官李時白進曰: “江都蕩殘無餘。 雖欲收拾, 而恐煩淸人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今日告祭于廟、社, 明日奉移。” 金自點曰: “內殿行次, 事勢甚急。 金慶徵多有風力, 願與同事。” 上許之。 上又曰: “今日卜相。 右相則廟ㆍ社主、慈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甲午 / 執義閔光勳啓曰: “臣於變初, 以宗廟令, 陪廟主入江都。 及敵兵渡江之日, 奔告于都提調尹昉曰: “事已急矣。 請奉廟主, 乘船出避’ 云, 則答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備局啓曰: “以李曙、崔晛把守臨津便否, 有議處之命, 而本津上下五十里, 處處淺灘, 兵單勢弱, 一或失利, 次第瓦解。 不如專力南漢, 以爲江都應援。 李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乙巳 / 持平尹得說啓曰: “昨日同僚, 以姜碩期、呂爾徵、韓興一等, 俱有偸生之失, 將欲論啓, 臣以爲: ‘姜碩期之奉還嬪宮也, 事勢容有不得不爾者, 未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兩司合啓曰: “分朝之擧, 自漢、唐以來, 亦有行之者。 況江都僻在海島 ...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何如?” 元翼對曰: “平時旣不得預加防備, 以致今日, 未知何策以救之。且下三道軍兵, 不可恃也, 京中精兵, 宜急發遣。 且御營軍尙不許發, 人皆不快。 國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啓曰: “昨日同僚, 以姜碩期、呂爾徵、韓興一等, 俱有偸生之失, 將欲論啓, 臣以爲: ‘姜碩期之奉還嬪宮也, 事勢容有不得不爾者, 未可輕論。’ 以此論難,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江都失身之罪, 莫尹昉若也, 而今乃停啓, 則如姜碩期, 本無身詣敵營之事, 不可輕論’, 再三論難, 而不能終守己見,至於搆草, 臣之罷軟甚矣。 請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屯兵乎? 李貴分朝之請, 甚是矣。 亦宜早下哀痛之敎, 收拾人心, 急送沈器遠于南方, 以爲號召, 而鄭經世則專委嶺南宜當。” 上曰: “罪己書, 自政院製入。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左議政崔鳴吉啓曰: “江都數臣, 遭遇逆境, 不免人言, 然其周旋保護之功, 亦不爲少, 而尹昉業蒙罷職之罰, 姜碩期尤無徑死之理。 近日三司之論, 臣竊以爲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辛亥 / 憲府啓曰: “廟社、嬪宮之先詣江都也, 京畿監司呂爾徵、吏曹參議韓興一, 以禮官、承旨, 陪從以入, 事去之後,義不能死, 先往陣前, 迎敵入城。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江都, 則唯有背城一戰耳。 豈但爲避亂之計而已?” 李元翼曰: “世子雖幼沖, 名號已定, 人望所係, 依壬辰時事, 分朝宜當。 雖勢迫, 可入閑山島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政院啓曰: “今年旱魃之虐, 至於此極, 孑遺之民, 擧將塡壑, 前頭國事, 尙忍言哉? 聖明勿以虛文末節爲應天之能事, 而恐懼修省, 惟盡在我之實德, 則庶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之道。” 上謂金藎國曰: “京倉所儲, 須思輸運之計。” 對曰: “江都儲穀, 僅二三萬石, 此何足繼用, 至於京倉, 雖有萬餘石之米, 何由輸運乎?”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p儲穀, 僅二三萬石, 此何足繼用, 至於京倉, 雖有萬餘石之米, 何由輸運乎?” 上敎留都大將金尙容曰: “亂民或有毁人家舍者, 另加嚴禁。” 李曙曰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朔丙寅 / 以辛啓榮爲江都留守。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禁。” 李曙曰: “李植、尹履之中, 或稱副使, 或稱贊畫使, 請與臣同事。” 答曰: “尹履之可矣。” 金瑬曰: “可令一人, 先往江都, 審其形勢。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辛巳 / 憲府啓曰: “大亂之後, 必先訪節義之人, 褒而旌之, 以爲追奬激勵之地。 去年江都死節之人, 表表在人耳目者, 本非一二。 當初旣有査出旌表之命,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備邊司啓曰: “海中, 與江都相望, 若遇便風, 一日可至, 實與江都, 有唇齒相依之勢。 若將兩湖財穀, 聚集於此, 則正爲江都之外府。 以此言之, 此邑緊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以制亂。 發政圖事, 動乖道理, 賦繁、役重, 民困、兵疲。 甲子之變, 逆竪反噬, 廟貌顚倒, 神器阽危。 深思亂階, 咎實在予。 天災、物怪, 式月斯生;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丙戌 / 憲府啓曰: “敬陵參奉權嶷, 頃於江都見陷之日, 三寸叔益慶, 至嶷泊船處, 哀號求活, 嶷解纜而去, 曾不顧念, 益慶終爲敵兵所殺, 其子女亦皆被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備邊司啓曰: “海中, 與江都相望, 若遇便風, 一日可至, 實與江都, 有唇齒相依之勢。 若將兩湖財穀, 聚集於此, 則正爲江都之外府。 以此言之, 此邑緊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始賜金慶徵死, 斬姜晋昕、邊以惕。○【史臣曰: “噫! 江都, 天險也。 丁卯以後, 設爲保障, 修其城郭, 利其兵戈, 畜其米粟, 以爲有事駐蹕之地。 廟堂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備邊司啓曰: “海中, 與江都相望, 若遇便風, 一日可至, 實與江都, 有唇齒相依之勢。 若將兩湖財穀, 聚集於此, 則正爲江都[之外府。 以此言之, 此邑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兵曹請令邊郡, 嚴飭烽火, 直連江都, 上從之。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臣曰: “噫! 江都, 天險也。 丁卯以後, 設爲保障, 修其城郭, 利其兵戈, 畜其米粟, 以爲有事駐蹕之地。 廟堂固當擇其人而委之, 以盡其備禦之道, 而慶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備邊司啓曰: “海中, 與江都相望, 若遇便風, 一日可至, 實與江都, 有唇齒相依之勢。 若將兩湖財穀, 聚集於此, 則正爲江都之外府。 以此言之, 此邑緊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上下敎曰: “光海當移置喬桐。 令廟堂量處。” 備局回啓曰: “适變時則令洪振道率去湖西, 而今則自江都往喬桐, 未滿一日程, 令副察使, 商確善處。” 政院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江都, 整理舟師, 以其子慶徵, 力薦于右議政李弘冑, 使之入啓。 弘冑心知其必敗, 然怵於權勢, 勉從焉, 以李敏求爲副使。 敏求卽兵曹判書李聖求之弟也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初, 虜之入境也, 朝廷慮江都糧餉不繼, 發遣督運御史於三南。 至是, 戶曹啓曰: “今者虜將撤歸, 諸道之兵調發已停。 三南御史亦當罷還, 其米穀已出浦裝載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壬辰 / 朝講《詩傳》。 講訖, 上曰: “國家脫有緩急, 無可將之人。 被罪中沈器遠、申景瑗, 厥罪稍輕, 移配於南漢” 領議政李弘冑曰: “江都雖曰蕩殘,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憲府啓曰: “江都臣子, 有可罪而無可賞, 自上特念武士之暴露, 別施恩賞, 不分有勞、無勞, 混被重典, 亦極濫觴, 而波及蔭官, 至陞金玉重加, 參下亦出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矣。 受國深恩, 無路報效, 瞻望魏闕, 悲不自勝。 病蹇顚仆, 不得趨辭於闕下, 徑還村舍, 惶恐待罪。 臣頃日登對, 耄耋昏聵, 言無頭緖, 略陳瞽見, 今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壬戌 / 故參判權盡己妻呈文于備局以爲:○子順長死節於江都, 而其女被擄在瀋中。 請送奴、馬, 持贖價以去。○備局以聞, 上許之, 仍令戶曹, 量給其價。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己丑 / 平安兵使南以興等馳啓曰: “賊兵攻陷凌漢。 臣等與諸將相議, 募人入探, 亦遺書於姜、朴矣。” 上引見大臣、備局、兩司長官。 李元翼曰: “此城旣陷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官吏亦以悅民爲嫌, 而自沮。 朝家懲勸如此, 故聖明雖切於保民, 而澤不下究, 民散而怨。 竊願聖明, 念玆在玆, 至誠常在於保民, 則實惠自及於民, 而民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良醫之救大病, 期以三四年, 則雖有不得已而賦於民者, 民必知惠, 而不以爲怨矣。 伏願殿下, 講而必行, 以蘇邦本焉。 賞罰者, 人主之大柄。 自古言治國之要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江都士民, 以丙子死節人金尙容、李尙吉、沈誢、李時稷、宋時榮、具元一及南陽府使尹棨等, 立祠祀之。 棨以久居江都, 故亦與焉。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元臣, 憂深於賊去之後, 言切於身退之際, 箚中所陳, 無非爲國長慮。 江都保障, 南漢輔車, 朝廷之方所講究; 收拾三南, 激勸兩西, 聖朝之所宜留念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江都士民, 以丙子死節人金尙容、李尙吉、沈誢、李時稷、宋時榮、具元一及南陽府使尹棨等, 立祠祀之。 棨以久居江都, 故亦與焉。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政院啓曰: “臣等竊念, 匹夫匹婦之死義, 特施褒典, 而況大臣死節, 豈可置之晻昧, 使不得瞑目乎? 臣金廵曾到江都, 得聞顚末, 蓋當事急之日, 尙容脫表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晩書答之曰: ‘我國臣事皇朝二百餘年。 天朝旣已許和, 則我何不從? 但無故興兵, 屠戮軍民, 城下劫盟, 雖死不從。 當奏聞天朝’ 云, 如何?” 上曰: “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器寺及訓錬都監, 盡心措備, 預先移置, 俾無臨戰乏用之患。 許多糧餉, 必無出處, 今年三名日各殿進上方物, 作木移送, 戶、兵曹亦出數百同木綿, 以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付家人, 卽上城門樓, 取火藥樻, 托以吸南草, 取火自焚, 其家人取其遺衣, 以爲招魂之用。 且其時參議洪命亨、別坐權順長亦隨往, 尙容揮之使却, 而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上命召對, 講《書傳》。 講訖, 完豐府院君李曙請對, 上召見之。 曙曰: “臣以備局啓辭, 將往審靑石洞、狻猊及平山設鎭處, 而臣之意, 與備局小異。 備局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幹焉, 其隆其替, 興喪攸繫。 是以, 國有死節之臣, 史官必謹書之, 朝廷必褒錄之, 雖在敵國, 有封其墓, 而表其閭者。 臣於出城之後, 見人之視死節者,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근현대 소실위기 재중동포 서신 DB화 및 생활문화 분석(178,6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