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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深。 崇報之典, 如有不稱於其節, 則臣等之必欲一進黈纊, 闡發幽光者, 豈非秉彝之不可已者乎? 尙伋, 卽贈左議政忠肅公臣尙吉之弟也, 當丙子之難,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文正公李縡, 繼爲之贊。 垶之精忠大節, 已自炳著, 前後褒崇之典, 固已至矣, 而先朝庚戌下敎若曰, 一家竝時立慬, 爲十二人, 以此節義, 豈止於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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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只緣穀價之騰踊, 所餘無留, 以致積逋之充報, 始料大違兺除良, 結役收殺, 旣在四月, 則作還充逋之未及區別磨鍊, 其勢似然是白遣, 大同旣作儲置, 結稅初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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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桐穀簿, 自來不敷, 賑糶之資, 不可不以他邑穀移轉, 而沿邑無非尤甚。 山邑道里絶遠, 駄運有弊, 江都訓·禁·御三倉留穀中, 折米限四百石, 姑令借貸, 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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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江都陷敗, 將往求其兄, 遇賊陣於道, 劫欲使降, 以死自誓, 罵不絶口, 賊脫其衣服, 而猶且不屈, 竟至被害, 至今思之, 令人髮豎, 是以尊周錄死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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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傷國事, 日夜號泣, 而下城之日, 欲求其兄尙吉于江都, 遇賊歿于道, 先正臣宋時烈, 撰神道碑略曰, 公執靮從難, 觸冒風雪, 而傷痛國事, 日夜涕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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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吏曹啓目粘連, 觀此慶尙道尙州幼學李重林等上言內辭緣, 則以爲, 臣矣身等六代祖贈參判臣惇敍, 卽八旌門中一人, 而忠顯公臣惇五之弟也。 丙子江都之亂, 與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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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江都, 遇賊歿于道, 先正臣宋時烈, 撰神道碑略曰, 公執靮從難, 觸冒風雪, 而傷痛國事, 日夜涕泣, 及大駕幸三田, 公痛哭曰, 和議之害, 一至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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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徐長輔, 以禮曹言啓曰, 忠愍公閔垶追配忠烈祠當否, 問議大臣處之事, 草記, 蒙允矣。 發遣郞廳, 問議于大臣, 則議政府右議政金思穆以爲, 閔垶之危忠卓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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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臣矣身等之六代祖戶曹參判贈職, 乃是以子壽職二品追榮, 謹稽忠烈祠二十諸忠之中, 如臣矣身等六代祖, 而以韋布配享之人, 俱施正卿以上贈官, 亦皆蒙賜諡之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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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雖求之當日殉節之家, 鮮有其倫, 竊伏念南漢之顯節祠, 卽圍城後殉節人報侑之所也, 凡從扈於入城之日, 而殉節於城下之後者, 無不與是享焉。 當初斥和三臣, 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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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穀價之騰踊, 所餘無多, 以致積逋之充報, 始料大違兺除良, 結役收殺, 旣在四月, 則徵還充逋之未及區別磨鍊, 其勢似然是白遣, 大同旣作儲置, 結稅初不上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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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原籍官事也。 限前移送, 旣有近例, 災民輪供, 亦所當恤, 依所請竝令還送。 其一, 魯城等四邑反逋, 限年分捧條中, 今年當捧民反條, 特許限明秋停捧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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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將無充納之日, 且其年條, 多在三年之內, 則不可以年久難捧言, 今年當捧條, 竝令收納, 而至於魯城, 則被災最甚, 姑令折半停捧。 其一, 江都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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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者然, 烏在其置圜土之義哉? 年前大臣, 以此事, 筵達申飭, 伊時不無實效, 而近又依舊蕩然, 誠極寒心, 更加嚴飭, 從今以後, 如非病勢之眞箇危重者, 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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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令收納, 而至於魯城, 則被災最甚, 姑令折半停捧。 其一, 江都移轉米之散在沿邑者, 姑許仍留, 待明秋作送事也。 各邑散俵之穀, 雖難一時收送, 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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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備邊司言啓曰, 卽見公忠監司趙秉鉉, 黃海監司鄭知容狀啓, 則俱以爲, 綿農判歉, 而湖西則請以各營各衙門所納各軍布之以木上納條, 自今年十月至明年九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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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爲人道之常, 則臣子之爲國效忠, 固不足稱詡嘉尙, 而若夫貞忠大節, 彌綸撑宙, 卓越激世, 則在朝家崇報之典, 不止於貤贈, 而必有節惠之恩, 不止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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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豐熟勝於昨年, 而請災則較之兩年, 更加三四千結, 實無以依此準施, 事目災六百三十八結外, 畓災二千八百六十二結, 綿田災七百結, 特爲加劃。 其一, 辛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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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半, 稍實邑三分一, 仍停事也, 辛未壬申停退條, 依道啓分數仍停, 癸西條, 尤甚邑折半, 之次邑三分一停退, 稍實邑勿論。 其一, 無論三等邑, 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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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長生之門人也。 生有至性, 忠孝根天, 深山哭墓, 猛虎屛迹, 昏朝廢母, 荊圍斷蹤, 及登師門得聞爲學之方, 潛心講究, 見解超詣, 同門儕友, 莫不推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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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惟卿, 受知先朝, 蜚英妙歲, 三世傳靑箱之業, 相繼閣學士之班, 十載殫丹鉛之勞, 早推行祕書之譽。 歷翰苑而長論思之席, 班綴深嚴, 綰國子而處喉舌之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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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麾手迎謂曰, 火將發矣, 吾已決死, 公等速避, 秀南笑曰, 大監欲獨爲忠臣耶? 爵秩雖有高下, 死國義無異同, 語未卒火起, 遂與金尙容及臣之從高祖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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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還餉折半停退, 折半準折代捧, 其翌年秋停退者, 收捧代捧者, 還作本色, 今年信川等五邑被災民戶, 當年條各樣錢米布與還餉, 依此例施行事也。 其一, 延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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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弘敎, 以漢城府言啓曰, 每式年成籍後, 五部帳籍江都件, 例於翌年春, 臣府郞官, 轉往江都, 舊籍曝曬, 竝與新籍藏置矣。 辛卯式帳籍, 發遣本府郞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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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令純錢捧納, 信川等五邑, 依丁卯例, 捄恤之意, 自本司, 旣爲行會, 則到今特施之典, 當從丁卯水災尤甚坊里, 當年條各樣軍錢布身米布, 依已例, 竝爲停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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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禁衛營言啓曰, 本營經費, 自來不敷, 各色保米, 又多未捧, 許多軍需, 排比無路。 在前如此之時, 本營所管江都留營倉餉穀中, 量宜取用, 亦多已例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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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弘敎, 以漢城府言啓曰, 每式年成籍後, 五部帳籍江都件, 例於翌年春, 臣府郞官, 轉往江都, 舊籍曝曬, 竝與新籍藏置矣。 辛卯式帳籍, 發遣本府郞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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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鄭文始, 以御營廳言啓曰, 本廳米條, 自來不敷之中, 近因荐歉, 各道應捧, 或停或代, 至於今年, 元數大縮, 排比無路, 目下事勢, 誠爲切悶。 本廳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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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岐壽, 以漢城府言達曰, 每式年成籍後, 五部帳籍江都件, 例於翌年春, 臣府郞官, 持往江都, 舊籍曝曬, 竝與新籍藏置矣, 戊子式帳籍, 發遣本府郞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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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岐壽, 以漢城府言達曰, 每式年成籍後, 五部帳籍江都件, 例於翌年春, 臣府郞官, 持往江都, 舊籍曝曬, 竝與新籍藏置矣, 戊子式帳籍, 發遣本府郞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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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上章請斬, 其略曰, 醜虜僭號, 卽天地之大變, 至使我背父母之邦而面凶渠, 此言奚宜至哉? 今宜斬其使而函其首, 以奏天朝, 仍以大義, 奬勵三軍, 則喑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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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竝請令廟堂稟處矣。 其一, 辛巳以前各年舊布, 依前仍停事也。 其一, 禁御兩營沿海各邑昨今兩年拯米, 竝待明秋收捧事也, 今年年形, 足可曰, 八路均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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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一, 各衙門軍布, 尤甚邑三分一, 之次邑四分一停退, 待明秋收捧, 各年停退身布, 一倂仍停事也, 民情非不切悶, 而軍需實係莫重, 舊布仍停, 今雖曲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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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備邊司言啓曰, 卽見開城留守鄭祖榮狀啓, 則備陳本府及舊豐德農形荐歉之狀, 後錄諸條, 竝請令廟堂稟旨分付矣。 其一, 本府城鎭餉昨年停退條仍停, 其餘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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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或以詳定例代捧, 待明秋還作本色事也。 其一, 舊豐德辛巳·壬辰兩年停退, 及大·小二南面壬辰停退身軍布, 竝許仍停事也。 其一, 舊豐德及大·小二南面當年條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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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趙晉和, 以漢城府言啓曰, 每式年成籍後, 五部帳籍, 江都件, 例於翌年春, 臣府郞官, 持往江都, 舊籍曝曬, 竝與新籍藏置矣。 癸酉式帳籍, 發遣本府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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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趙晉和, 以漢城府言啓曰, 每式年成籍後, 五部帳籍, 江都件, 例於翌年春, 臣府郞官, 持往江都, 舊籍曝曬, 竝與新籍藏置矣。 癸酉式帳籍, 發遣本府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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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江華留守吳載紹疏曰, 伏以臣綿力薄材, 最居人下, 特蒙甄拔, 濫躋華顯, 曾無絲毫之禆, 徒積冥埴之罪, 而聖度包荒, 不賜斥退, 出入近密, 昵侍耿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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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京外儒生進士李漢明等上疏批旨內, 有令該曹稟處之命矣。 取見其疏本, 則以爲, 故成均生員贈領議政忠正公臣金益兼, 幼習詩·禮之家聲, 早服義方之庭訓, 加之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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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至於御覽會計中, 以遺在懸錄, 事甚不當。 布帳造作之木, 勢當依其數會減, 而此外稱以朽破, 分給城底居民, 使之改色還納, 而未捧之數亦多, 趁速徵捧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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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頓無止接居生之望云, 亦甚可慮。 城內民丁, 殆近千人, 若於明春始役時, 計給料布, 使之董役, 則此亦賑救之一道也。 但料米, 自本廳某條措置, 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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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孝旌門, 孝誠之子監司百昌妻韓氏, 江都陷沒時, 自縊而死, 以烈女旌門, 百昌之弟弼善百亨, 江都陷沒時死節, 以忠臣旌門, 百昌之子善興妻權氏, 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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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柳尙運曰, 都城民戶, 三秩抄出, 或給乞糧, 或給還上, 而外方民事, 尤爲可㦖, 至於畿甸之民, 所當特加顧恤, 而前頭種子農〈糧〉還上, 若不能遍及則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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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無依者, 屬之於乾粮, 還上·乾粮應受之口相半, 男女壯弱又相半, 量之以朝家所定式例, 則以五千石米, 爲一萬口五朔之資, 可免於死亡, 還上·乾粮容入之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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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平安道監賑御史李寅燁引見時所啓, 江都木變通事, 曾因狀聞, 旣蒙準許, 實爲西民之大惠, 而第列邑之區處立本, 有所不一, 或有以米留置者, 或以本色木俵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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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春秋館郞廳, 以監事意啓曰, 因政院啓辭, 王子冠禮節目, 日記中, 亦無可考之端, 更令本館稟處事, 命下矣。 今當下送堂上郞廳于江都史閣, 考諸列聖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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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摩尼山近處浦口, 有可以築堰作畓累百石者云, 以此分給於各鎭堡, 而無論公私田畓, 從其附近, 推移相換, 使所屬一哨之軍, 得以耕作, 如屯田之法, 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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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甚於凍節, 不但有傷農之患而已也。 石旣運入, 凡具畢備之後, 則築役, 不過時月間事耳。 目今雖不無可虞之端, 事變之來, 遲速難定, 根本之先撓, 實爲可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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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萬石爲請, 而前頭畿甸·湖西, 亦必請得江都軍餉, 而卽今江都米, 已發之數, 幾至萬餘石, 實數不過十萬石云。 五六萬石, 雖難盡許, 一萬石爲先移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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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國家, 以 江都, 爲保障重地, 設置留守·經歷, 意有所在, 今亦依此例設置, 似爲便好矣。 領府事宋時烈曰, 大凡變通之道, 或慮其窒礙難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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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備邊司郞廳, 以領議政意啓曰, 今十三日引見時, 諸臣所奏擧行條件, 多有疎漏者。 臣所請新出身除防米, 旣全納於江都及各其道海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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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答江華留守許秩疏曰, 省疏具悉。 江都乃是保障之地, 雖在平時, 不可不擇人, 況當今艱虞之秋乎? 卿累經州府, 治績已著, 故特拜重任, 卿其勿辭速往, 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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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啓曰, 江都還上, 每歲以米五千石, 皮穀七千石, 使之定式分給, 而近來連値凶荒, 不能以此遍救, 故例有定式外加給之擧矣。 卽今民間之艱乏方極, 米一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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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實是振古所無也。 前頭賑濟, 一日爲急, 而連値凶荒, 公私儲蓄, 一倂掃如, 百爾思量, 罔知所以爲計也。 臣伏聞本道月課米四千石, 移送江都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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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應入於江都, 而常時則仍屬摠戒使, 臨急始爲入守, 似宜云。 厥後大提學, 李敏敍上箚, 以申汝哲所陳, 爲非宜, 而軍兵變通之事, 本兵當主之。 趙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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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禁衛營啓曰, 今此江都城築時, 江春道赴役軍兵, 自監營逐名考閱, 都目狀修正, 以送于江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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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禁衛營啓曰, 江都女墻役軍, 以上番軍兵, 推移調用事, 曾已定奪矣。 女墻之築, 當爲始役於三月初一日, 而江原·京畿, 黃海三道軍兵, 則已爲除出, 用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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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訓鍊大將李義徵所啓, 江都築城時, 他軍門, 則以元軍立役, 而都監, 則募集役夫, 給價雇立, 雖有豫期料辦之物, 許多役價, 難以繼給, 不得已以江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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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至于上年而極矣。 一道之內, 淸北尤甚, 淸北之中, 宣·郭·龍·鐵尤甚, 人民之死亡最多, 而雖有孑遺之民, 旣無種食, 不能善爲耕耘兺不喩, 酷被種種災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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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作, 如屯田之法, 則軍兵旣有食糧, 可無渙散之慮, 邊將收稅取資, 亦可省兵曹軍布之費矣。 築堰時物力, 用米一千石, 則可以完役云, 而若出二千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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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稅入大縮事, 大臣旣已陳達, 臣不敢更有所煩陳矣。 常年稅入, 至於十三萬石, 而今年所捧, 不過七萬三千石零, 比常年半減, 且近年以來, 稅入雖縮, 或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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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杳無差出之期, 致令初秋上來之人, 抵冬淹京, 則飢寒之不免, 勢所必至。 況六鎭邸吏, 絶塞窮民, 無他接濟之人, 彷徨道路, 見官員則輒有告訴, 誠甚矜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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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江華留守趙泰老所啓, 今年年事, 初有豐登之望, 民不愛穀, 甔石盡空, 而水旱風雹, 被災甚酷, 全不掛鎌者, 固無論已, 其所稍勝之處, 收穫不能十之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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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極爲驚慘。 以沿海邑所在各營軍保米, 相換運送。 蓋前後所劃得之穀, 厥數雖似顆然, 第當初沿海邑所儲某樣穀中, 別爲分定, 使之整待於各其邑, 而臣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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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守禦使, 雖廣州留守兼帶, 而初頭, 須擇送秩高者, 以爲整頓措置之地, 依江都例, 經歷, 亦當差出, 而凡干節目, 令留守詳察講議, 與廟堂相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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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答院啓曰, 殲闕巨魁, 脅從罔治。 時烈旣以首惡栫棘絶島, 則附麗枝葉, 有何追罪之理乎? 江都之役, 與大興有異, 今玆賞典, 少無過濫矣。 不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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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晝講入侍時, 領議政金壽恒所啓, 今年失稔, 諸道同然, 新舊還上, 勢難竝徵, 故只以當年條收捧事, 定奪, 而江都移轉一款, 則姑未及稟定矣。 畿甸各邑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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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尹以道曰, 此以上江都事, 只出擧行條件, 勿出朝報, 可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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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本道月課米四千石, 移送江都事, 驪陽府院君閔維重, 曾已定奪於榻前云。 保障重地, 軍餉不足, 則此雖可慮, 而然念本道形勢, 民生遑遑, 大命近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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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議處之, 未卽稟定矣。 今日尹堦·趙師錫, 皆入侍, 當爲定奪矣。 脫有事變, 朝廷若入江都, 則各軍門軍兵, 皆當隨入, 守衛備禦, 不患不足, 而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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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禁衛營啓曰, 今此江都城築時, 江春道赴役軍兵, 自監營逐名考閱, 都目狀修正, 以送于江都役所事, 曾已知委本道, 而淮陽·伊川·春川·狼川等八九邑道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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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訓鍊大將李義徵所啓, 江都築城時, 他軍門, 則以元軍立役, 而都監, 則募集役夫, 給價雇立, 雖有豫期料辦之物, 許多役價, 難以繼給, 不得已以江都所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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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不過七萬三千石零, 比常年半減, 且近年以來, 稅入雖縮, 或至九萬石, 或至十萬餘石, 而猶不能支過周年, 每以一萬石取用於宣惠廳矣。 今年則姑不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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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錫鼎曰, 知事李寅燁, 以關防事, 陳疏條列, 而有令廟堂稟處之命矣。 近緣邦內粗安, 關防極甚疏虛, 陰雨之備, 不可不趁時爲之, 而此非造次間議定之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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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行判中樞崔錫鼎箚曰, 伏以, 臣於日昨, 自江都還來, 宜卽登對, 面陳內城委折, 而適當初寒, 冒風跋涉, 數日程撼頓, 猶爲疾病添傷之資, 未克趁時入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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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致令守令, 不辨其被災之輕重, 而混同督捧, 準其減定之數, 則輒卽停捧, 故失農之殘民, 怯於官令, 不計口糧, 艱備以納, 土豪頑民, 故爲延拕, 俟其停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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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晝講入侍時, 領議政金壽恒所啓, 今年失稔, 諸道同然, 新舊還上, 勢難竝徵, 故只以當年條收捧事, 定奪, 而江都移轉一款, 則姑未及稟定矣。 畿甸各邑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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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江都, 則各軍門軍兵, 皆當隨入, 守衛備禦, 不患不足, 而不然則且本府若干軍兵, 決難防禦寇敵, 有此三通軍門割屬之擧。 旣令割屬之後, 則必須常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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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江都城築時, 江春道赴役軍兵, 自監營逐名考閱, 都目狀修正, 以送于江都役所事, 曾已知委本道, 而淮陽·伊川·春川·狼川等八九邑道里, 距監營相左, 迂路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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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仙源庫米布, 乃是待變之具, 不可不及時充上, 而軍門財力, 已渴於築役, 卽今形勢, 有同强弩之末, 勢實無從他拮据之策, 誠爲渴悶矣。 都監所儲銅錫, 其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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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萬餘石, 半是無面, 竝計新殼而撙節磨鍊, 則僅至明年二月, 三手米, 則乃止於來十月, 本曹事勢, 誠甚可慮。 在前如此之時, 有江都米取用之例, 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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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關防事, 陳疏條列, 而有令廟堂稟處之命矣。 近緣邦內粗安, 關防極甚疏虛, 陰雨之備, 不可不趁時爲之, 而此非造次間議定之事, 惟當從容講究, 以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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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半退捧事, 詢問大臣而處之, 何如? 上曰, 大臣之意, 何如? 左議政金昌集曰, 小臣今番下去江華時, 目見年事, 則府內近處, 或不無稍實之處, 而至於沿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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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院啓, 閔鼎重等遠竄事。 江都築墩大將以下加資還收事。 措辭竝見上答曰, 勿爲煩論。 以上朝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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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晝講入侍時, 領議政金壽恒所啓, 今年失稔, 諸道同然, 新舊還上, 勢難竝徵, 故只以當年條收捧事, 定奪, 而江都移轉一款, 則姑未及稟定矣。 畿甸各邑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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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使軍兵習知其信地, 然後臨急, 可無違誤掣肘之患, 事變固不可豫料, 而朝廷若入江都, 則摠戒使, 亦當隨入, 常時畿邑軍兵, 旣令江都主管, 而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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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江都米取用之例, 以此就議廟堂, 則江都米, 乃軍餉也, 事體重大, 姑爲取用於賑恤廳, 姑觀前頭有不足之患, 則取用宜當云, 敢此仰達。 閔鎭厚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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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當初議築時, 臣亦預謀, 而古語曰, 天下有道, 守在四夷, 我國, 雖僻在海隅, 而封疆六千里, 則雖有邊警, 皆非數三日程, 自外備防, 坐而禦戎, 實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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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遠, 必將募得役丁, 而都監財力之不敷, 頃年相臣收議時, 已悉無餘, 今不敢瀆撓於靜攝之中, 而第物力凋殘之餘, 所入鐵炭葛灰等物, 雖已料理措置, 而許多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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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堡防軍給代之布, 無他出處, 每以此布計給, 故卽今餘在, 只是三百三十九同, 其他方物價木九十同三十二疋, 五升布五同十五疋, 而各鎭堡防軍給代之木, 旣無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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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邑還上, 本來數少, 而上年亦以凶荒, 只捧當年條, 故今年分給應捧之數無多, 各年移轉江都之米, 雖不可一時準捧, 而江都軍餉, 遺儲甚少, 其在不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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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江都, 則摠戒使, 亦當隨入, 常時畿邑軍兵, 旣令江都主管, 而臨急, 始令摠戒使使統率, 則恐有不便之端。 申汝哲所慮, 似在於此, 而臣意則其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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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之功, 民天所係, 人之所賴而生, 國之所賴而存者, 其本專在於農功, 民無種粮, 不得耕稼, 則人何賴而生活, 國何賴而保存哉? 目今國儲不富, 雖未能遍濟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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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則姑未知其朝夕必死, 而常漢則必難支保數日, 今當東作之節, 而亦不能耕種, 終日所見, 不過一兩處起土而已, 所見極爲矜惻。 蓋龍·鐵兩邑, 去冬遞易之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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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上年得見議築節目, 則以五軍門分排改築, 而守禦·摠戎, 雖曰軍門, 實無擔當之勢, 以三軍門隨毁隨築之意, 言之矣。 江都·南漢, 不可依歸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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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未滿千同, 其中二百同, 下送江華, 卽今所儲, 如是匱乏, 都監則兵卒衣食, 專仰於戶兵曹, 誠難支當。 且臣曾經騎省佐郞, 軍色所留木數, 至有二千同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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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哥則容或不給, 而次通官則尤無可給之事矣。 趙泰耉曰, 自朝家追送贈物於通官, 恐非國體所宜, 若以使臣之意, 言之, 仍爲分給, 則未爲不可矣。 上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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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以備日給之資矣。 沿海尤甚邑, 被災如是孔慘, 而賑資實難措手, 勢當依所請劃給矣。 上曰, 依所請施行可也。 戶曹判書趙泰耉曰, 凡於賑民之事, 固無所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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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水軍之外, 其餘盡屬於江都, 餘丁收布繼給事, 曾有定奪之事云。 令江華句管堂上柳赫然, 亦爲主管, 着實收布, 以繼給代之布, 則戶曹所送木, 可無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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