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총 1,548,274건의 연구성과가 있습니다.
홈 > 연구성과별 자료보기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今湖西形勢, 左道則猶或可捧, 而右道必難準捧矣。 臺臣陳疏, 以全減一道爲言, 而在藩臣之道, 不敢請蠲惟正之供, 有此相換之請, 今若只留右道之太, 則名爲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且海路有寇, 則尤不當入也。 南漢雖近, 曾亦缺六七字有津路, 倉皇急遽之時, 渡涉實難, 二處俱未缺四五行則倚險, 故城堞尤少, 賊若久據都城, 則與駐蹕之所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當例有一起方物, 故欲爲稟旨擧行矣。 上曰, 彼人旣以此夸大, 若不別爲稱謝, 必有不滿之意, 更具一起方物, 別爲謝恩, 似當矣。 申琓曰, 從前謝恩, 或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多, 坡州長陵, 亦多有之云。 以事體言之, 陵寢之木, 斫伐取用, 誠爲未安, 而空棄亦甚可惜, 下詢處之, 何如? 畬曰, 蟲損木取用, 似好, 此等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人情大可見。 孟子曰, 地利不如人和。 人和若失, 則天險亦不足恃, 衆心成城, 則纓帶可以禦賊。 惟殿下, 審察人心去就之判, 益勉强大自剛之策, 無或先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畫蛇於北漢, 又着足於蕩春, 而馴致都城於決棄之地, 噫, 都城雖棄, 而由北漢包蕩春, 周遭之闊大, 殆過於都城, 則豈不大違於當初聖慮之所及乎? 我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則必不能鎭定, 而有損傷國體之事矣。 都事朴世樟, 乃以新及第之人, 旣無履歷, 如或有見輕取笑之患, 則是亦可慮, 姑遞世樟, 差送他人, 何如? 上曰, 依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移入侍, 安心勿辭。 又啓曰, 禁衛營, 以新設衙門, 凡係措辦, 物力板蕩, 必須前期料理, 然後乃可成就。 折衝李旭·李忠伯等, 軍需別將差下, 各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及江華移轉, 則姑令仍留補賑, 以爲待秋上納之地, 爲宜矣。 崔錫鼎曰, 當初以京官摘奸事分付, 意在督捧, 而此時郞廳往來, 不無貽弊之端, 不必下送矣。 鎭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柳尙運曰, 江華留守李頤命狀啓, 以爲本府各鎭堡土卒給代, 例以餘丁木下送, 而今年則四月以後, 全未給代, 請令廟堂, 斯速分付下送云。 江都十一鎭土卒等給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之窺伺, 近則愈殆, 缺八九字此一節, 商量而爲之, 似好矣。 琓曰, 遠則以上爲難, 近則以□爲嫌, 駐蹕之地, 賊所必到, 苟有渙散之心, 何處不然? 鎭厚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閉而不出。 金昌集爲留守時, 一番俵分改色, 而其後又無出入之事, 若過今年, 則將腐敗而不用矣。 旣不能立銀本色, 則與其留置, 而以待朽傷, 無寧分給飢民,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使其如此也哉? 臣以此意, 送言于兵曹判書金鎭龜, 則答以移職兵曹屬耳, 近當回報云。 又言于戶曹判書趙泰采, 則泰采亦爲地部物力果爾罄乏, 而都監軍情, 亦不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其爲緩緩作行, 可以推知, 而猶且稱病落後, 此莫非不有國法, 徒爲自便之計, 其爲痛駭, 已不可勝言, 而使臣初不擇送, 致有如此之弊, 不可無警責之道矣。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趙泰老所啓, 臣以江都事, 有所稟達矣。 今番良役變通, 蓋出於軫念白骨徵布·隣族侵徵之弊也。 校生試講·軍官試射, 定額汰定之擧, 不無騷擾之端, 而以其本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引見時, 江華留守趙泰老所啓, 臣待罪江都, 故敢此仰達。 江都沿邊周回三百餘里, 建置四十九墩臺, 鎭撫營設立之初, 內浦十二邑及海西之延白及京畿之南陽·安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鎭江場事, 朴權, 於筵中請罷, 旣已許之, 而其後, 以司僕郞廳稟目之, 故至今未決, 此事, 何如? 領議政李畬曰, 其狀啓, 尙有之, 而事須商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障, 常數南漢·江都, 而南漢孤危, 無異北漢, 又且病涉, 丙子之難, 江都路阻, 不得不爲一時駐蹕之所, 而決非萬全之地, 江都天險, 固爲難得,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姑遞世樟, 差送他人, 何如? 上曰, 依爲之。 錫胄曰, 昨日晝講罷後, 驪陽府院君, 歷入臣家, 仍及其所達四件事, 皆令廟堂稟處云, 而兩大臣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而其他大臣, 皆無別意, 臣亦以當罷之意, 仰達榻前, 而且聞廣州民情, 皆願革罷, 群議民情, 如此, 則不可不趁速變通矣。 守禦廳, 創於仁祖朝, 設置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而故判書臣宋浚吉, 曾在先朝, 屢陳其冤, 至擧臣祖父爲證。 臣少時, 聞祖父之言, 沈諿失對之事, 歸之於一時詿誤, 不以賣國致疑矣。 臣之祖父, 與諿雖是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亦是要害, 水澌塞江之時, 甲串津渡, 累日不通, 則必由新德浦過涉矣。 設有事變, 此處設置一鎭, 事勢便當, 而至於鐵串井浦, 則卽今留守尹堦,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引注於月串水門, 拆浦水道, 則制勝墩近處堅固之地, 設一水門, 則可以引注。 兩浦趁今下弦潮落之時, 本營各牌役軍, 合力竝築, 則不過四五日內, 可得完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始知其十七名渰死之數, 而前後所拯, 已至於十六名, 隨其拯出, 辨其面目, 卽以衣服·空石, 斂屍埋葬, 一一立栍, 以爲各其屍親隨後返葬之地, 而其中長鬐軍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備邊司啓曰, 以回還使臣所啓, 平安道龍·鐵·宣·郭四邑, 前頭繼賑之資, 不可不更爲移給, 以示朝家軫念之意, 令廟堂稟處事, 命下矣。 此四邑凶荒最酷之狀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而此乃備邊司所管也, 曾任西營, 知有此布, 今若陳達移用, 則似好云, 而夏等衣資, 至今不給, 軍心之落莫甚矣。 若待西布取來之期, 則衣資頒給,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江都米三千石及折衝帖三百張·嘉善帖二百張, 特令許給, 以補賑資之意, 令廟堂稟處云矣。 今年海西民事孔慘, 其於賑恤之道, 靡不用極, 前後道臣狀聞,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趙泰老所啓, 臣以江都事, 有所稟達矣。 今番良役變通, 蓋出於軫念白骨徵布·隣族侵徵之弊也。 校生試講·軍官試射, 定額汰定之擧, 不無騷擾之端, 而以其本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引見時, 江華留守趙泰老所啓, 臣待罪江都, 故敢此仰達。 江都沿邊周回三百餘里, 建置四十九墩臺, 鎭撫營設立之初, 內浦十二邑及海西之延白及京畿之南陽·安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決, 此事, 何如? 領議政李畬曰, 其狀啓, 尙有之, 而事須商議, 然後可決, 故姑未稟定矣。 司僕郞廳, 摘奸書啓, 以罷場重難爲言, 臣亦曾經司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爲要害之處, 陞爲防禦, 增置舟師, 割給統水營數小之戰船, 有若竝設左右水使者然, 彼此俱爲不實, 且率舟師赴援之後, 則本城無可守之人。 又令泰安府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而南漢孤危, 無異北漢, 又且病涉, 丙子之難, 江都路阻, 不得不爲一時駐蹕之所, 而決非萬全之地, 江都天險, 固爲難得, 而水賊不可避也, 百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又讀京畿水使張鵬翼狀達, 江都移轉捧留安數字缺一千石移給事。 達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具崟書啓, 臣承命, 往諭于領議政許積則以爲, 臣嚴畏分義, 冒還江都, 纔以一疏, 仰溷淸聽, 而不意近侍, 親奉聖敎, 遠臨口宣, 旨意丁寧, 二行缺未能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華亦爲一體降資, 何如? 上曰, 李師命今雖還收一資, 自當循序進用, 而範華則朝家之用文南, 事勢有異, 勿爲還收, 仍存爵秩可也。 參贊官尹趾善所啓, 頃者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爲緩急之用, 而今乃積兵峙糧于京中, 此非當初設廳本意也。 且以廣州形勢言之, 府尹, 乃一城主將, 而兵餉一款, 不得干預, 至於還穀斂散之際, 亦自本廳,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禁府啓目, 李益泰·李獜徵議處云云, 李益泰段, 以爲地土船, 只有三隻, 穀多船小, 不得已依前分運載送, 而大同段, 初巡載納, 田稅段, 再巡分載, 再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頭繼賑之資, 不可不更爲移給, 以示朝家軫念之意, 令廟堂稟處事, 命下矣。 此四邑凶荒最酷之狀, 道臣, 亦曾累爲啓聞, 今番江都移轉穀一萬石, 道臣啓聞中,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而能守死社稷之義者, 萬古百王, 只一人而已。 臣意以爲臨難保障之計, 終不如守都之便。 上曰, 都城闊大, 似不可矣。 昌集曰, 李濡爲楊牧時, 欲築洪福未果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曰, 銀布之在江都者, 無論各廳所儲, 莫非國家他日緩急之所用也。 今聞關西饑饉孔極, 斗米直一貫錢云, 若以此米, 運送關西, 發賣換錢, 則一則可以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給, 又不知在於何時, 軍士之望, 又復如何? 江都·南漢, 俱有待變綿布, 若於其中, 依前所達之數, 三百同先給軍兵衣資, 而使戶·兵兩曹, 追送裁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江都事, 有所稟達矣。 今番良役變通, 蓋出於軫念白骨徵布·隣族侵徵之弊也。 校生試講·軍官試射, 定額汰定之擧, 不無騷擾之端, 而以其本出於惻怛民隱之意,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引見時, 錫鼎啓曰, 江都船頭浦築垣董役人等, 論賞典事狀啓, 昨年啓下, 而曾於榻前, 以兵判往來江都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場有別, 故不可輕罷, 然旣以江都爲緩急依歸之所, 而若以此可以得力於保障, 則存亡所關, 孰有大於此事者乎? 江都守備虛實, 果係於鎭江罷場與否, 則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人逆天, 則生育之節, 殺伐甚矣。 雖以剛柔之義, 亦不可用剛於柔時。 故孟子曰, 行仁政而王天下, 莫之能禦也。 鐔曰, 天人一理, 本無二致, 故先儒以爲天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入診時, 都提調李頤命所啓, 今此御容陪往江都時, 儀仗當爲措置, 而其數則依戊辰年慶基殿奉往影幀時例, 頃日大禮時所備儀仗, 新造色鮮, 今不必又爲新造,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右議政金宇杭所啓, 咸鏡監司李光佐狀報於備局, 以爲, 今春赦後, 有京外還上未捧蕩減之令, 而取考前例, 則在丁亥年, 戊寅以上未捧還上蕩減時, 元會付及常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江都路阻, 不得不爲一時駐蹕之所, 而決非萬全之地, 江都天險, 固爲難得, 而水賊不可避也, 百里遠莫致也。 況且近年, 港路漸錯, 四面船泊, 今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人, 則朝家, 將何處之? 此不可使之獨任也, 決矣。 議者, 或意其守禦廳之所取用者, 過多, 而其數可知也。 屯田之收, 歲不過二千餘石, 軍保米七八百石,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李鏶啓曰, 備邊司郞廳以三公意來言, 尹天賚拿來事, 命下矣。 江都墩役, 雖已垂畢, 而役所什物, 未及收拾。 若於此時拿來, 則恐有閪失之患, 差遲拿來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領相以爲, 別遣重臣, 實是前古所無, 分義所在, 不得不發程, 而至於帶職入城, 終有所不敢, 勢將留住江外, 以爲辭免之計云。 臣又以自上企待之意, 夐出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雖有職秩高下之分, 人臣死國之義, 古無異同云云, 遂同死於鬱攸中, 光城府院君金萬基父金益謙, 亦與金尙容同死, 尙容及金益謙入於啓聞中, 皆有追典, 命亨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其中十邑, 全無所收, 卽今民間, 遑遑呼泣, 若過今月, 則擧皆塡壑, 必得一萬石之穀, 可以分賑十邑之民, 而本道旣無餘穀, 可以推移, 自朝若不別樣救濟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國家, 以江都, 爲保障重地, 設置留守·經歷, 意有所在, 今亦依此例設置, 似爲便好矣。 領府事宋時烈曰, 大凡變通之道, 或慮其窒礙難行, 而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訓鍊都監啓曰, 本都監庫舍, 在於江都者, 旣已藏置各樣軍物, 欲爲儲置米穀, 而更無可容之處, 故庫舍加造之意, 上年秋, 曾已啓達矣。 卽今庫舍材木, 自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同日晝講入侍時, 同知中樞府事鄭后亮所啓, 江都乃國家保障, 而喬桐之於江都, 有唇齒之勢。 臣纔遞喬桐, 水使, 本營有可慮事, 故敢達矣。 海防戎備, 莫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賑恤廳啓曰, 本廳所管兩所就粥飢民, 時時以醬藿合作湯粥分饋, 而醬則戶曹前秋稟定新沈三百中取用矣, 卽今戶曹所儲, 旣已垂乏, 他無繼用之道, 江都待變醬,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而此則相距四十里, 而路又坦坦矣, 形勢之好, 又高出南漢矣。 鎭龜曰, 大臣, 告而駐蹕之地, 賊所必到, 此言則誠缺八九字之隨到者, 與以都城爲家, 而晝夜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都, 則元無納布之民, 且無隣族侵徵之事, 校生軍官額數, 各千餘名, 而校生則義旅作隊, 軍官則壯旅作隊, 俱有千把摠哨官團束參操, 則與行伍之卒,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引見時, 江華留守趙泰老所啓, 臣待罪江都, 故敢此仰達。 江都沿邊周回三百餘里, 建置四十九墩臺, 鎭撫營設立之初, 內浦十二邑及海西之延白及京畿之南陽·安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引見時, 錫鼎啓曰, 江都船頭浦築垣董役人等, 論賞典事狀啓, 昨年啓下, 而曾於榻前, 以兵判往來江都看審後, 稟處事下敎。 李寅燁, 以其時兵判, 欲以往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今日藥房入診時, 提調閔鎭厚所啓, 頃因江華留守閔鎭遠所啓及報狀, 各司貸用米布, 有從速還償之令矣。 臣所兼賑廳各年貸來者, 米七千三百九十石零, 又有木七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入診時, 都提調李頤命所啓, 今此御容陪往江都時, 儀仗當爲措置, 而其數則依戊辰年慶基殿奉往影幀時例, 頃日大禮時所備儀仗, 新造色鮮, 今不必又爲新造,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丁亥年, 戊寅以上未捧還上蕩減時, 元會付及常平·賑恤兩廳, 與移轉穀及軍餉穀, 一體蕩減事, 明白稟定事, 有所牒報故事, 當依丁亥年例施行, 而今番定奪時,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其內夷而外險也, 井泉之饒足也, 公私蓄積之在於是也, 中外關防之無此比也。 前後諸臣, 章牘筵奏, 旣已畢陳無餘, 則臣無容疊說, 而今欲以許多倉積, 許多軍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蒸積之氣, 誣爲吉祥, 置億萬無窮之患, 請外修封築, 罪當死者二也。 時烈擅國自用, 迸逐賢良, 傲蔑前古, 變更先王舊章, 無所畏忌, 世道陷溺, 誤國亂政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晝講入侍時, 特進官閔維重所啓, 曾於六月間, 戶曹判書尹堦, 以京畿各邑會付穀物蕩竭之故, 請以沿海邑二千餘石, 爲先輸納於沿海邑者, 其數甚多云, 竝自備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十邑爲尤甚, 今若只得萬石之米, 則邑雖有大小, 大抵一邑, 只得千石, 其中, 又當除出船價, 此恐不足以活數十萬之命。 江都米, 則限一萬二千石給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守禦使, 雖廣州留守兼帶, 而初頭, 須擇送秩高者, 以爲整頓措置之地, 依江都例, 經歷, 亦當差出, 而凡干節目, 令留守詳察講議, 與廟堂相議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訓鍊都監啓曰, 本都監庫舍, 在於江都者, 旣已藏置各樣軍物, 欲爲儲置米穀, 而更無可容之處, 故庫舍加造之意, 上年秋, 曾已啓達矣。 卽今庫舍材木, 自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稟處, 何如? 上曰, 依爲之。 又所啓, 江華留守申厚載, 甲串津東邊堂峴之下, 作鎭海寺之前面五間門樓, 鍊石爲女墻, 中通大炮之穴, 以爲他日防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同日晝講入侍時, 同知中樞府事鄭后亮所啓, 江都乃國家保障, 而喬桐之於江都, 有唇齒之勢。 臣纔遞喬桐, 水使, 本營有可慮事, 故敢達矣。 海防戎備, 莫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本廳渰死軍士十七名內, 十六名, 卽爲拯出, 其中長鬐軍徐有信一名尸體, 累日窮搜, 尙未拯出矣。 有一尸體, 漂到於銅雀津邊, 自果川已爲拯出云。 故本廳,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陳達, 洪福則形勢孤單, 非可守之地, 都城則臣嘗攷見政院日記, 丁酉之缺六七字 麻貴, 堅守都城, 我人, 以不可守之缺六七字 楊經理, 不見都城形勢, 故有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縷縷, 而上之處分, 實軫民隱, 白骨徵布之弊, 專由於軍門之多, 故自上夬施乾斷, 爲此大變通之計者, 欲爲保存民生之地也。 此政所謂苟有利於百姓, 吾無愛於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則渠輩以爲差勝, 而一朝汰定軍額, 則呼冤不貲。 江都則與各邑有異, 保障之地, 宜以收拾人心爲本, 今雖汰定, 別無實效, 徒貽呼冤之端。 江都則校生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二邑及海西之延白及京畿之南陽·安山·果川·衿川·陽川·交河·高陽·通津等邑, 俱屬江都矣。 其後, 湖西諸邑, 以道里之遠, 罷屬本道, 南陽等諸邑,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監賑御史洪錫輔所啓, 賑恤廳米二萬石, 沿海邑民事, 誠爲慘然, 賑貸之政, 宜無所靳惜, 而第御史所請賑廳米二萬石, 其數太多, 畿內各邑還穀, 本來不多,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令矣。 臣所兼賑廳各年貸來者, 米七千三百九十石零, 又有木七百七十七同零, 銀一萬二千五百兩, 以木折銀, 以銀折米, 則都合米二萬九千九百七十七石零, 而己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劑, 則必有效矣。 震成曰, 此乃歸芍六君子湯, 入山査之劑, 連進累劑, 宜矣。 徵夏曰, 此藥益脾, 進御爲宜。 頤命曰, 諸醫皆以爲, 進御爲宜云, 此雲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萬分必敗之形。 又有甚焉者, 夫丙子南漢之不能久守, 何也? 良以江都先陷, 三軍破膽, 無可自振故耳。 他日有警, 大駕旣入北漢, 連營蕩春, 而等棄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又所啓, 上年江華環刀五百柄打造之時, 本廳亦造五百柄, 今欲限千柄加造, 全州釰匠中善手者, 當爲抄擇下送於梁山, 先打釰鐵而來矣。 工匠之料, 將以本廳屯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沿海邑者, 其數甚多云, 竝自備局, 抄出人名, 計其應捧價布實數, 以戶曹所儲木綿, 準數移送於都監及工曹, 而砲保及匠人所捧價布, 從市直以米折定代捧, 明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詳察形勢, 其城樓制作, 極爲堅實, 斜暾甲串津越邊, 正當文殊山前面, 實是要害之處, 必募入僧徒, 使之居守, 然後可爲他日有用之地, 總攝雖難設置,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入侍時, 兵曹判書李師命所啓, 楊州軍兵, 移給摠戎廳事, 前日榻前, 以議大臣定奪之意, 陳達矣。 在外諸大臣, 則皆已問議, 而判敦寧府事趙師錫處, 未及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府啓, 請還收昌城君佖惠民署提調之命, 措辭上同 長湍府使柳重起, 曾典南閫, 已騰貪縱之謗, 及莅本邑, 且多侵漁之事, 政令則委諸下吏, 官捧則付之軍官,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事, 故今年, 則別樣申飭擇捧, 未知到彼之後, 以爲如何, 而槪自大同設立之後, 三南楮田, 盡爲種穀之地, 帋地之絶貴, 實由於此, 若此不已, 則不但前頭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搖, 甚非所以安民禦敵之道也。 上曰, 甲子騷屑, 亦孔之將而自定, 今日訛言, 亦當不久而息矣。 鎭圭曰, 下詢築城之事, 臣未得見大臣冊子, 足迹亦未嘗到,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利於百姓, 吾無愛於髮膚者也缺五六行上曰, 決意罷之者, 有意存焉, 大臣箚子, 不允者, 以此也。 上曰, 凡事利害, 當謀於始, 十分若有八九分,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則校生試講·軍官試射之事, 姑爲停止, 似宜。 詢問于大臣·諸臣, 何如? 上曰, 其言, 何如? 相愚曰, 朝家旣以試才試講爲節目, 而江都異於他所,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H010402]江都矣。 其後, 湖西諸邑, 以道里之遠, 罷屬本道, 南陽等諸邑, 亦以摠戎軍兵單弱, 移屬摠戎廳, 獨通津, 爲本府屬左營, 而豐德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宜無所靳惜, 而第御史所請賑廳米二萬石, 其數太多, 畿內各邑還穀, 本來不多, 開春後當有移轉之擧, 都下之民, 或發賣或還分然後, 可以濟活,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衣袽之備, 不容不爲之加意。 況今虛實間, 旣有警報, 所當聳動奮刷, 及其未亂未危, 而以圖其全安宗社之計, 不宜泄泄沓沓, 束手而坐待也。 大抵禦敵之道,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劃送江都, 稱以別餉米者, 三萬二千七百十三石零, 以此準償, 所貸之外, 尙餘二千七百三十六石零。 禁衛營則文殊山城役時, 所貸米二千九百八十五石零,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故欲於今日歡慶之餘, 先施大惠, 以爲變通良役之兆, 其意儘好。 而倉卒陳達, 似未及商量矣。 李濡曰, 以上年湖南與濟州民事言之, 聖上之憂念救恤, 特出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廷榮, 上曰, 竝仍。 韓舜錫, 上曰, 減等。 邊進明, 上曰, 仍。 趙根·李墰, 上曰, 仍。 讀李煥罪名訖, 來善曰, 此人, 本是極惡者也。 臣爲刑判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及工曹, 而砲保及匠人所捧價布, 從市直以米折定代捧, 明春輸送於江都, 亦似宜當, 竝此仰稟。 上曰, 宣惠廳貢物價米, 以木相換事, 還寢勿施, 其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禁衛營啓曰, 今以江都築城時運石船十隻新造事, 下送本營將校二員於公洪水營矣。 所騎馬匹, 令該曹題給, 何如? 傳曰, 允。 謄錄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罷摠戎廳, 則已, 不然, 則三營之制, 不可不備, 且廣州, 則一邑人丁, 使之專屬, 亦無守城人不足之患, 南漢之憂, 惟在糧食之乏, 不在軍兵之少, 楊州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京畿監司李翊上疏, 伏以臣, 一自江都遞任以來, 疾病沈淹, 廢伏田野, 屢違朝旨, 尋常悚懼, 若無所容, 不意畿輔除命, 遽出望外, 揆以私分, 已難一向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근현대 소실위기 재중동포 서신 DB화 및 생활문화 분석(178,6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