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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而信時稱道, 疑時非斥, 亦事理之所必然也, 江都事則先正, 以宣擧於亂前, 有請斬虜使一節, 故頗爲之調護, 嘗欲以朱子所譏胡澹庵詩處之。 及宣擧自廢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長峰、注文誠若門戶, 然猶未如文殊之最急也。 江都軍餉不過七萬石, 若値軍興, 能支幾日, 宜置海倉於延安、白川等處, 仍築倉城, 收置糶糴, 以濟江都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戊子 / 上以江都築城及遠陵治道之役, 圻甸民弊, 不可不恤, 特下備忘, 令減圻邑大同收米。 宣惠廳以爲: “城役需用, 皆自軍門擔當, 別無及民之害。 陵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H010103]海倉於延安、白川等處, 仍築倉城, 收置糶糴, 以濟江都之急, 則可爲萬全之圖也。” 上然之。○【史臣曰: “嘗觀李選、尹趾完論江都事,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上特遣中官于江都, 慰諭築城將士, 賜香醞六十甁, 其他賜賚甚厚。 仍令江華留守宣諭曰: “可信可恤, 非士卒乎? 無事則環衛, 有警則前驅, 休戚與共, 而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忠淸道儒生成楚栢等上疏, 請與李之麟對辨, 以雪惡逆之名, 上答曰: “事甚驚駭。 第當初之麟之疏, 退却不受, 則今因此疏, 遽自朝家覈治, 豈無紛紜之事乎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乙丑 / 上因筵臣言, 聞江都築城之役, 民田多被蹂躪, 命宣惠廳減田租。 嘗於己未年築墩時, 有蠲賦之惠, 今亦用其例也。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但峽民鮮少, 無糶糴之路, 糧餉不足, 他日有事變, 不可爲駐蹕之地。 只以一將守之似好, 而物力不贍, 亦難經營。” 金錫冑曰: “地形則奇矣。” 上曰: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遣御史宋成明, 試武才于江都。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而至於淸北, 便成赤地。 聞秋成時蟲災非常, 數日內遍滿一道, 凡以穀爲名者, 食盡無餘, 自秋間, 民已艱食, 或以豆殼, 作屑爲食, 決無歲前存活之望。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而積、大運猶慮上心, 或有少解宋時烈及伸救被罪者, 得以少寬, 縷縷爲言, 必欲防遏於始也。 其意與鑴所言一套, 壽恒久不言。 積又請上曰: “以臣等前所云云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於臨終之日, 而至遺以高山仰止四字, 示其終身尊敬之意耶? 以此觀之, 則拯非但誣時烈也, 竝與浚吉而誣之矣。 若惟泰權數之言, 臣亦未之聞矣。 設有之, 惟泰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引見大臣備局諸宰, 議北漢築城利害, 大臣以江都城役未了, 難之。 上令待江都畢役後, 更議處之。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供辭, 誣毁先正臣宋時烈, 靡不用極, 而多引臣師先正臣朴世采之言, 粧撰文飾, 以(訂)〔證〕其說, 臣竊駭焉。 臣師撰尹宣擧行狀, 在於癸丑, 而拯之問銘於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而壬子例則太多。 疏決時, 知悉爲之。” 江華留守鄭榏亦入侍, 請罷江都牧場, 許民耕食。 積曰: “臣之今行, 民情皆然。 而孝宗大王欲爲戰場之用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乙卯 / 兵曹判書金錫冑請對言: “憲府連有告廟及按律首發人摘發請罪之啓, 而臣意則主告廟之論者, 其罪實重於請爲按律之人, 蓋告廟爲按律之張本, 按律卽告廟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說。】少有未契。 兄若於海, 【善道居海南故云海。】竝加原貸, 我之疑晦, 片言卽解。” 時烈之於宣擧, 疑其未快者, 有如是矣。 其後, 拯謁其父墓文於時烈,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引見大臣備局諸宰, 議北漢築城利害, 大臣以江都城役未了, 難之。 上令待江都畢役後, 更議處之。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可死。 倡明大義之力, 安可誣也? 此其不死也。 噫! 鑴之後來謀戕時烈, 略無遺算, 而尙不敢以大義爲虛假, 拯乃忍爲之。 噫! 國小力弱, 旣不能滌蕩區宇,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親迎虜勑於郊外, 使儐臣言于虜使。 虜使頗有操縱之意, 上命別遣重臣于松都, 更請于虜使。 金錫冑以年事失稔, 請三名日方物物膳仍前減省, 又請都城頹圮處築役時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持平尹聖時上疏, 首以災異陳戒, 仍言:○壬辰舊甲重回, 宜遵丁丑賜祭江都之例, 分遣近臣、禮官, 酹祭沙場猿鶴之魂。 死事人湮滅不得上聞者, 令諸道搜啓,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承旨李觀徵亦以爲追罪有傷聖德。”】○上曰: “卿等之言如此, 只施儒罰可也。” 上問柳赫然曰: “沐浴之行, 所見何如?” 赫然進開城府、江華、平山、坡州四城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拯遽怨毒往復之際, 迫束操切, 無所不至, 蓋以禍福趨避之心, 本欲肖貳先正, 得此墓文一事, 作爲欛柄也。 今世德於宣擧所以處鑴者, 全不提論, 而但曰: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采疏救拯, 引金宏弼、朴衡、黃愼之與其師, 略有崖異, 謂拯亦如此, 斥愼猝見其書, 如得奇寶。 是日左議政閔鼎重白上曰: “近以崔愼上疏, 多有紛紜之事。 此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況其死後遺札, 有何可怒耶? 其引先正祭文中句語及《三學士傳》序文贊美之語, 以爲江都事, 不爲宣擧疵累之證者, 尤極可笑。 夫一時諸賢之不棄宣擧, 謂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實關風敎矣。” 上曰: “崔愼疏, 語雖或過當, 大意則爲師辨白, 故優答矣。 尹拯是自前禮待之人, 今以此事見之, 可異矣。” 領議政金壽恒曰: “拯之事,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其流入於不是處矣。” 上曰: “此事出於私憾, 而師生之間, 乃至於此, 此實世道之大變。 日後如有爲拯伸救者, 則大老想必不安, 而朝著生閙端, 殊可慮也。”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掌令鄭東後上書言:○湖南之蟲孽、雨雹, 湖西之沿江水害, 未秋前已判其大無。 朝家賑濟之方, 宜無所不用其極, 而江都移轉之米, 猶爲督徵。 重保障濟緩急之慮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領議政金壽恒上箚言:○比歲飢荒, 八路凋攰, 今此三都監需用之取給於民者, 名目甚夥。 若不方便拮据, 少紓其力, 或致怨咨之興, 則豈不大傷我聖母平日慈覆之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儕流。 始, 丙子淸人僭號遣使至, 宣擧倡諸生上疏, 請斬虜使, 虜使大驚跳去。 其父煌以諫官, 亦力斥主和柄臣, 由是宣擧父子直聲, 動一世。 及淸兵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障濟緩急之慮, 有不得不然, 而至於尤甚之邑, 景象之慘, 有倍去年。 夫旣移賑於去年, 還督於今歲, 朝家濟活之意, 始終剌謬。 乞令停捧, 以卒其惠。 量田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負誓俱死, 宣擧亦欲同死, 逼其妻李氏自經, 而宣擧不能死。 會, 宗室珍原君自圍中, 以虜酋令, 詣南漢行在所, 宣擧舊與珍原同里閈相善, 遂求爲其奴, 改名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上受灸畢。 命兩大臣三大將入侍, 詢以江都城役事及西北沿邊治道便否。 初藥房都提調金德遠, 因入侍陳達曰: “江都 ...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校理尹暹, 以李鎰從事官, 殉節於尙州, 朝家施以旌表贈諡之典。 其孫集, 以斥和臣, 往瀋陽秉義而死, 朝家特爲贈諡, 而集之兄棨則丙子冬, 守南陽, 謀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上受灸畢。 命兩大臣三大將入侍, 詢以江都城役事及西北沿邊治道便否。 初藥房都提調金德遠, 因入侍陳達曰: “江都土城女墻, 三軍門今方始役, 而地勢沮洳,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朔庚戌 / 忠淸監司尹憲柱狀陳沿海邑被災狀, 仍請前春所貸安興米及江都米, 竝捧留本邑, 各樣身布停捧, 軍兵大都案, 待秋擧行, 備局覆奏, 許之。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議于首相權大運, 則亦以爲財力旣聚, 大事不可不速成。” 右議政閔黯曰: “未崩頹之前, 不可以易頹預慮, 有所等待。” 禁衛大將閔宗道、訓鍊大將李義徴,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刑曹參判權尙游在淸風地, 上疏言:○臣目覩廣州、楊根, 以至驪州所在麥田, 皆成赤地。 且聞畿邑麥凶, 皆無異同。 宜捐江都、南漢及京賑廳幾萬石米穀, 及時分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四十一歲坐五十歲, 納米三十石, 五十一歲至五十五歲, 納米二十石, 五十六歲至六十歲, 納米十石。】雲澤又請許西路校生、軍官之不能應講、試才者, 納米頉案,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咸陵君李澥亦以爲好, 兪棨欲請之, 宋時烈以爲譎而不正而止之。 此請可除勑使旁午之弊, 又可以觀彼動靜。” 金錫冑曰: “彼若效王朝事, 令我輸去, 則難便,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時畿內大饑。 觀察使權瑎以聞。 命發江都軍餉米以賑之。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狽, 誘以若出而相助, 則當令安其位, 穆乃大喜從之。 積等令構出文字, 袖而入以折鑴, 穆如其言。 積、大運等, 乃交口譽穆, 請上溫諭, 又請敍壽慶, 而安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持尤憂悶, 不知所出。 鑴乃以許秩拜留守事, 餌積而入言, 積始解之, 瀗得定配, 而秩陞江都。 積等所爲, 如賈竪相博也。 秩卽不文無識白徒, 屢拜州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乙丑 / 引見大臣備局諸宰, 時有文柱天者上疏以爲: “今年是開國周甲, 不可無告廟陳賀之擧。” 上以聞諸大臣。 領議政權大運等對以: “其言不經, 不足施。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癸巳 / 大司憲李敏叙上疏辭職, 仍陳江都形便, 且作地圖以進曰:○從前論江都之險者, 徒知四面阻水之爲固, 而以今觀之, 地多外護, 不但畿湖、海西之鎭望相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今年是開國周甲, 不可無告廟陳賀之擧。” 上以聞諸大臣。 領議政權大運等對以: “其言不經, 不足施。” 上可之。 大運曰: “永宗設鎭, 臣意則自初以爲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磨鍊擧行。○前此兵曹判書李寅燁疏言, 戊寅以上糴穀蕩減中, 軍餉穀物, 不當混同蠲減, 又瑞山郡守柳泰明疏請, 敗船拯米及軍餉米未收, 在戊寅以上者蕩減, 領議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辛卯 / 引見大臣、備局諸臣。 訓鍊大將柳赫然陳天磨山築城之意, 尹鑴以爲不可。 上令許積往見。 尹鑴請往見江都形勝, 命待春往見江都及諸島 ...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校理朴泰遜疏言洪命亨事。 疏下該曹, 而臣嘗聞長者言, 皆以未蒙旌閭之典爲歎。 請下詢宋時烈。” 時烈曰: “臣聞, 故相金尙容之死節也, 坐於門樓, 放火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癸巳 / 大司憲李敏叙上疏辭職, 仍陳江都形便, 且作地圖以進曰:○從前論江都之險者, 徒知四面阻水之爲固, 而以今觀之, 地多外護, 不但畿湖、海西之鎭望相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王世子引接大臣、備局諸宰。 右議政趙泰采曰: “京畿水使張漢相狀言: ‘軍民飢甚, 島中方在絶火中, 請得江都改色米一千石。’ 宜從其所請。 黃海 ...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辛卯 / 引見大臣、備局諸臣。 訓鍊大將柳赫然陳天磨山築城之意, 尹鑴以爲不可。 上令許積往見。 尹鑴請往見江都形勝, 命待春往見江都及諸島。 鑴請設體府,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江都形便, 且作地圖以進曰:○從前論江都之險者, 徒知四面阻水之爲固, 而以今觀之, 地多外護, 不但畿湖、海西之鎭望相阻者。 控引於百里之近, 而島嶼羅絡,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乙丑 / 左議政睦來善袖箚記入對, 條陳民事, 請停諸道舊糶之捧, 上可之。 又請軍保身布奴婢貢木, 或減半或減三之一。 江都移穀之給畿民者, 亦許所在捧留,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丁亥 / 春秋館領、監事, 請遣史官於江都, 考出實錄中文宗在東宮時嬪宮喪事及順懷世子嬪喪事節目, 上可之。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置之得失在人。 近聞, 畿湖近營添配江都事及內城廣築事, 廟堂方欲措置, 此皆所欲請而未暇者。 至於臣前所請文殊、白馬築城事, 廟謨亦不以爲不然, 延白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己丑 / 引見大臣、備局諸臣。 刑曹判書閔鎭厚曰: “先正臣趙憲, 謫居吉州時, 有賤産子孫, 本非官屬, 而誤入於官籍。 設令果是官屬, 旣知其爲趙憲之子孫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召對玉堂官, 領府事宋時烈同入。 侍講官趙持謙言: “李翮、丁時翰有至行, 尹以健亦以孝稱。 以健今方帶職, 而翮與時翰時無職名, 宜施收用之典。” 翮當丙子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令果是官屬, 旣知其爲趙憲之子孫, 亦不可仍置賤籍, 況非官屬而誤錄者乎? 特命一倂免賤則似好矣。” 上曰: “竝特爲免賤。” 江華留守李思永言: “江都土城,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甲戌 / 引見大臣、備局諸臣。 領議政徐宗泰曰: “北漢營役幾完, 句管之道, 亟宜講定。 臣意宜依東萊、江都例, 別出主管堂上一人, 而閔鎭厚爲可。” 諸臣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八代爲平章, 人號其居爲平章洞。 本朝諱國光, 事我世祖大王爲左議政, 封光山府院君。 子諱克忸, 官大司諫。 其曾孫諱繼輝, 官大司憲, 聰明博達, 爲宣廟朝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百十八步, 一處則爲三千餘步。 其四百步則使本府擔當石築, 其三千餘步則使三軍門, 各當一千步, 石築爲宜。” 上命熟講而爲之。 思永又言: “今方團束本府軍官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以今紀綱, 決不可行, 戶布, 亦難均一, 至於口錢, 自漢已行之, 今若通計國中, 一年所資於軍布者, 均別於中外之戶, 勿論貴賤, 計口收錢, 使其僅可繼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政李濡曰: “金錫衍於金吾兼任, 不爲行公, 昨已得遞矣。 若於榻前面諭, 則此後何敢不承乎?” 錫衍辭以不文, 上曰: “科獄至重, 此時則行公無妨。” 上問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科獄至重, 此時則行公無妨。” 上問洪璛眼病輕重, 濡以實狀對, 上命改差。 濡又以大政遷就 請更催促吏判上來, 上命推考申飭。 濡又以鍾城府使趙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濡又以鍾城府使趙湜, 年已六十五歲, 請改差, 仍以勿論文武, 年過六十者, 毋差六鎭等處邊將、守令事, 稟達定式。 江華留守趙泰老曰: “通津與江都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之禍, 臣等未嘗不痛恨於斯。 不意今者, 邢恕之事, 復出於聖明之朝, 將致人心糜潰, 世道壞亂, 士林之憂, 有不可盡言。 尹拯之受業於奉朝賀宋時烈之門, 今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循私懸錄, 濫蒙重賞。 亦宜嚴飭監、兵使, 査實以聞。” 上可之。 右議政申琓, 奉一地圖進曰: “此乃彰義門外城基址圖也。 臣與備局諸臣及兩局大將, 偕往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事, 稟達定式。 江華留守趙泰老曰: “通津與江都, 實有唇齒輔車之勢, 而文殊山城在津路要害, 登其上則江都形勢, 無不洞見。 竝守合勢然後, 可以得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蓋拯書首尾上下, 一句一字, 皆從私憾中出來, 故假托論學, 自稱公議, 以爲掩人耳目之計。 噫! 自古門弟子之於先生長者, 因事論辨則固多有之, 而何嘗有擧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及木川隣近之處, 了無所聞, 而忽自門下傳出, 意者, 以告於門下者, 陰懷疵病先人之意, 故托他人, 以播其說, 使之紛然辨詰之際, 作一場詬鬨耳。 以此誠不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東萊府使韓配夏狀啓, 倭人與村女交奸, 村女及同情人, 不待訊問而直招, 言于倭館, 則謂無犯奸之事, 我國人誣服云, 屢次責諭, 終不回聽。 宜令訓、別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仰問者, 而門下不賜說破, 反有自當未安之敎云。’ 故不勝惶恐, 竟不敢呈, 而惠書, 有問於許璜之敎矣。 然當初致疑於門下者, 誠有由焉。 昔日門下之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村女及同情人, 不待訊問而直招, 言于倭館, 則謂無犯奸之事, 我國人誣服云, 屢次責諭, 終不回聽。 宜令訓、別等, 更加責諭。” 上許之。 錫鼎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左議政睦來善請對入侍。 先是, 來善請於陵幸時, 以春收米待秋退捧之意, 慰諭父老。 至是, 又言: “各邑中收米, 有本邑應下者外, 無上納之數云。 此邑則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御晝講。 李同揆言: “許穆邃於《易》, 宜擇年少文官, 學於穆, 使備進講。” 從之。 睦來善言: “姜翯於丙子之亂, 以寧遠郡守, 爲見重試上京, 聞賊報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壬寅 / 命旌郡守李惇五、學生李崇仁之閭。 惇五, 丙子亂, 入江都, 差分司訓局郞, 在城外, 分俵軍器, 聞賊渡江, 送言於其母曰: “吾有職名, 當與宗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堂講究而行之, 豈宜纔罷還仍, 有同兒戲?” 基夏曰: “事苟失宜, 雖十改何妨?” 上曰: “決意罷之, 有意存焉。 日昨左相箚, 亦不允從者, 以此也。”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藥房入診。 診候畢, 提調閔鎭厚曰: “目今, 飢饉之餘, 癘疫大熾, 東西兩郊, 病幕連亘。 五部之報於備局者, 數已過萬, 田疇之間, 未見耕耘之人云。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戊申 / 引見備局諸臣。 領議政金壽恒言: “李后定之不仕, 雖未知其執意如何, 而家世淸貧, 常在飢餒中, 而終不從仕, 豈不愈於奔走營營者乎? 今以不仕之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就商以爲: “都城則闊大難守, 北城基址形勢甚好, 博議新築爲宜。 江華留守李思永曰: “壬辰之亂, 麻貴、楊鎬謂都城難守云。 臣則以爲決不可守。” 開城留守金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京畿監司金演上書, 言畿內飢困狀, 乞得移粟五六萬斛以救之, 世子下之備局。 時, 大臣俱在城外, 覆奏無人, 禮曹判書宋相琦上書, 請以 江都、北漢、楊津倉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但張虛聲, 使人心離而邦本搖也。” 濡又陳弘福山城, 四無窺峰, 水草極盛, 前有道峰、三角, 以達白岳, 可爲士民避難之路, 北門險隘, 車不得方軌, 連接沃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癸亥 / 正言具萬理啓曰: “江都, 乃保障重地。 新除授留守兪集一, 居官乏廉謹之聲, 爲政多苛虐之誚, 而試以出按海臬時事言之, 自用小智, 意在衒能,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賑後所送流丐死生形止, 使之啓聞。” 鎭圭曰: “凡爲守令者, 若盡心於賑事, 則邑民亦有所恃, 而不止於大段流散。 若分付各道, 流民數多之邑, 當査覈論罪之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引見大臣、備局諸臣。 領議政李濡曰: “尊崇凡事, 當考前例, 而世祖朝謄錄無存者, 宣廟朝謄錄, 亦多殘缺。 請遣史官, 考出江都所藏兩朝實錄以來。” 上從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行愍懷嬪宣謚禮。 都監, 於十八日, 以諡冊, 進于內。 是日, 宣謚改題主禮也。 諡冊文曰:○滌九地之銜冤, 追復位號; 揭二字之節惠, 寔遵彝章。 斷自予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戊寅 / 從仕郞李㫼上疏, 請修築都城, 據險設備, 設柵江都, 以防不虞。 別設營將, 申飭軍務, 毋令士族, 降定軍役, 收捧戶布, 以充軍布。 萬科會試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摠戎使金錫翼狀啓言: “本廳所屬通津等十二邑軍兵, 旣已割給江華之外, 尙有餘軍二千四百餘名, 若仍屬本廳, 則兩處句管, 不無其弊, 請以其餘兵, 分屬水原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枯渴, 水澤乾涸, 實是非常之災。 必有至誠修省之實, 庶有感通之效。” 上曰: “所戒切實, 當留意。” 兵曹判書趙泰采曰: “仁川一境, 據山臨海, 可以鎭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據山臨海, 可以鎭守之地, 故朝家設置永宗鎭僉使, 仍兼防禦之任, 而永宗疲弊, 不能管束, 以本官兼防禦使。 以武弁曾經閫帥及文臣秩高人差送, 以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臣秩高人差送, 以爲關防重鎭則好矣。” 仍披地圖, 指陳築城處曰: “江都之於紫燕, 不過一帆可到之地, 而紫燕之距此, 亦且不遠。 若築城於此, 與江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初江華留守尹堦, 陳紫燕島形勝, 請移設水營, 朝廷令統禦使【京畿水使例兼三道統禦使。】 審奏形便, 至是, 備局據統禦使狀聞, 覆奏言: “本島形勢之可合保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江華留守李頣命疏言: “明年卽江都城陷之歲, 請於歲首, 致祭殉節諸臣及陣亡將士。” 事下禮曹施行。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司宰奉事李相休應旨上疏, 陳修實德, 開言路, 禁橫斂, 革折受, 平獄訟, 祛黨習數事, 且言:○方今松蟲日滋, 盜賊橫行, 妻殺其夫, 女殺其父, 天理滅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報恩幼學李震顔上疏曰:○文成公李珥, 道德學問, 誠可謂東方之程、朱, 百世之師表。 而蔡振後ㆍ柳㮨等, 敢以少時, 入山, 指爲疪纇, 醜正之狀, 其亦慘矣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癸酉 / 引見大臣備局諸臣, 上以通津文殊山江都要害之地, 議築城守之。 領議政權大運等, 合辭贊之。 上命訓鍊大將李義徵, 往視形勢。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甲戌 / 判敦寧府事權是經卒。 是經, 歷按五藩, 不無聲績, 而性乏淳實, 工於趨時, 晩見少輩黨盛, 遂附之。 是經之父順長, 丙子之亂, 與金益兼、尹宣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戊辰 / 引見時任ㆍ原任大臣、諸承旨、都監諸臣。 王世子亦入侍, 同審御容圖寫草本, 皆以草本爲彷彿, 上命倣此寫出正本。 都提調李頤命請於寫出後, 姑奉于大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丙申 / 召對玉堂官。 領議政金壽恒亦爲入侍。 上問尹理於壽恒。 壽恒曰: “臣未詳其爲人, 而比之近日處銀臺者, 似無不及, 臺啓臣未知其恰當。” 上曰: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근현대 소실위기 재중동포 서신 DB화 및 생활문화 분석(178,6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