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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引見時, 吏曹判書金壽恒所啓, 南漢山城積草價半元數一百六十石, 而丁未年, 則因凶荒, 四十石減除矣。 今年飢饉, 比丁未尤甚, 一依丁未年例減除乎? 上曰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於此, 非此則無以成形矣, 十三萬石, 盡爲取用矣。 萬基曰, 除耗換作之米, 幾充元數, 姑觀前頭, 可知矣。 壽興曰, 戶曹當償之穀, 三萬六千石內, 二萬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引見時, 左參贊金佐明所啓, 南漢米, 前日則轉移各邑, 待秋還捧於山城矣。 近年以來, 不許轉移, 故畿民呼飢者, 皆望此穀, 軍餉所需, 固難輕散, 而當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引見時, 右議政金壽興所啓, 庚辛兩年賑恤廳所貸江都米, 他無料理備償之路, 故以兩湖大同米, 相換移送矣。 今見江華留守閔蓍重所報, 則結城所納大同米三百餘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右議政所啓, 洪命夏曾管江都·紫燕之事, 而今爲南漢守禦之任, 勢難仍爲兼察。 早晩有事, 則李浣當守禦江都之人, 洪命夏之代, 以李浣差下, 句管江都·紫燕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引見, 入侍領議政鄭太和, 左議政洪命夏, 右議政許積, 戶曹判書洪重普, 護軍李浣, 同知柳赫然, 吏曹參議李慶徽, 左副承旨金壽興, 副提學李慶億, 大司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引見時, 左參贊金佐明所啓, 南漢米, 前日則轉移各邑, 待秋還捧於山城矣。 近年以來, 不許轉移, 故畿民呼飢者, 皆望此穀, 軍餉所需, 固難輕散, 而當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右議政所啓, 洪命夏曾管江都·紫燕之事, 而今爲南漢守禦之任, 勢難仍爲兼察。 早晩有事, 則李浣當守禦江都之人, 洪命夏之代, 以李浣差下, 句管江都·紫燕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010402]江都所藏列聖實錄未完卷帙補缺事, 禮曹請令本館稟處矣。 此事不但今史官之言, 自先朝已有此議, 或云當下送春秋館堂上於外方史庫, 使之謄來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金佐明所啓, 南漢米, 前日則轉移各邑, 待秋還捧於山城矣。 近年以來, 不許轉移, 故畿民呼飢者, 皆望此穀, 軍餉所需, 固難輕散, 而當此無前凶荒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備邊司啓曰, 以司憲府啓辭, 命下矣。 畿甸前後分給元會穀及江都·南漢移轉之米, 多至二十二萬餘石。 卽今民間形勢, 決難準數還捧, 故自上軫念民事, 特令折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右議政所啓, 洪命夏曾管江都·紫燕之事, 而今爲南漢守禦之任, 勢難仍爲兼察。 早晩有事, 則李浣當守禦江都之人, 洪命夏之代, 以李浣差下, 句管江都·紫燕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執義李垕, 持平閔光熽啓曰, 江都留守徐元履不治誤事之狀, 臣等已論列, 而殿下尙靳兪音, 臣等非不知聖意之所在, 而累日爭執, 猶不知止者, 蓋以保障之地,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可以傳寫, 非惟文官守令其數無多, 供億物力, 亦甚浩大, 實有難便之勢, 且因年凶, 不得擧行。 或云其所缺之卷, 奉來城中, 別爲設局, 差出兼春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保障之地, 得人和爲上, 其餘設施等事, 乃其末也。 設或其所設施, 俱得其宜, 苟有民怨, 則決不可仍置重任, 況今元履凡所作爲, 事事失當, 莫不拂民之情而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倍其功, 不但豐沛·晉陽之比, 如寸土一民, 無非可惜而不可棄也。 始焉, 祖宗勤苦以得之, 終焉, 子孫怠忽以失之, 則其可謂肯搆肯獲[穫], 而能承前烈乎?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故卽爲取見, 則與原情, 大異矣。 上曰, 以故, 令取見矣。 龍翼曰, 魏天會情狀, 可疑, 似當直爲請刑, 而始刑之後, 則事涉難處, 故請更査矣。 承香,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以損其戶口, 爲保障之先務, 其不以勞民動衆爲能, 而急於得民之意, 可見矣。 再昨榻前, 大臣亦以元履所爲, 果有民怨爲達, 臣等豈非眞的之事, 而煩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失]政, 於其身爲不祥, 人鬼交怒, 釁孽來竝, 小官尙然, 況亞卿之列乎? 以臣揆之, 無分寸可記之事, 而今茲增秩, 實爲無名, 伏惟聖明, 愛惜名器, 審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府啓, 畿甸·江都·南漢還上半減事, 持平鄭樍罷職事, 獻納崔商翼遞差事。 答曰, 不允。 末端兩件事, 依啓。 見內下日記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失]政, 於其身爲不祥, 人鬼交怒, 釁孽來竝, 小官尙然, 況亞卿之列乎? 以臣揆之, 無分寸可記之事, 而今茲增秩, 實爲無名, 伏惟聖明, 愛惜名器, 審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貢物裁減頗多, 藏氷大役, 不可責之於貢物下人, 聞其費用之數, 則幾至三千石云。 若自賑恤一二字缺出米募軍, 則不過千石, 可以藏氷, 省費除弊, 事極便當矣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右議政金壽興所啓, 頃以江都所納, 結城大同米色麁事, 該邑守令, 旣已推考矣。 今聞連山·尼山所納之米, 色品又爲麁劣, 而其中連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以今年木花之甚不實也。 限年減其一疋爲可, 而永以爲規, 未知如何也。 右議政元斗杓曰, 他軍士, 亦有身役三疋者, 如水軍砲保皆是也。 上曰, 遼軍元數幾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有違令守令, 從重治罪, 何如? 上曰, 依爲之, 而着實收捧留置, 摘奸論罪之意, 豫爲嚴明知委, 可也。 吏曹判書洪命夏所啓, 南漢還上, 有防納之事云,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引見時, 右議政金壽興所啓, 義州毛物犯禁人金雨善, 令本道依例定罪, 則當用杖一百徒三年之律云, 而卽玉江全家罪人也, 全家罪人, 不可徒配, 似當仍配於玉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依爲之。 右議政元斗杓曰, 江都有火砲而無丸, 曾令兩西覔送水鐵丸, 而其數不多。 訓鍊大將李浣, 募人多得水鐵於蔚山地, 造鐵丸三十萬五千餘箇, 旣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而其軍士, 無大關於國家, 當此凶歲, 尤宜罷去。 上曰, 食料者幾何? 鄭太和曰, 以武缺付料, 故所食者不多, 一廳所食, 一月五十斗。 上曰, 此非到今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聞後, 以爲變通之地, 似可矣。 上曰, 問于戶曹, 處之。 兪棨曰, 江都米運來事, 去冬旣已定奪, 而卽今江氷未解, 雖不能轉來, 宣惠廳米數千石,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矣。 嶺南所捧, 若是些少, 而其民猶以爲苦, 至於陳疏請免, 可異也。 各道還上則有多有少, 而頃與領相議之, 則以爲, 上年所捧, 今年所給, 其數不多,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本道監司, 嚴刑三次, 如其不死, 則定配南方, 可也。 領議政鄭太和所啓, 江華所捧租一萬七千石, 此租乃還米一石之代, 收捧二石者也。 留守徐必遠, 擇實收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頃與領相議之, 則以爲, 上年所捧, 今年所給, 其數不多, 竝令准捧爲可, 往未捧則宜定分數, 或捧其半, 或捧三分之一, 從便議爲云矣。 上曰, 戶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書入於別歲抄, 永絶收錄缺爲廢錮之人, 枉法淫刑者, 固爲可惡, 而缺邂逅, 致斃於笞杖, 薄罰者, 因其發狀, 竝缺末世人心不淑, 法不勝奸, 而且內外官司,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執義李垕, 持平閔周冕前啓, 江都留守徐元履罷職事。 答曰, 姑先推考。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10402]江都·南漢移轉之穀, 亦多矣。 上曰, 江都移轉穀幾何? 壽興曰, 往未捧, 一萬八千八百五十八石, 上年未捧, 四萬九十八石, 通計近六萬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辭, 言言切實, 不但缺嘉納, 臣等當與之相勉是白在果, 其所缺, 自上應爲體念之事, 不爲逐條覆啓, 都在聖明務盡誠實是白乎旀, 選擇守令, 當缺銓曹, 而揀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2]江都移轉穀幾何? 壽興曰, 往未捧, 一萬八千八百五十八石, 上年未捧, 四萬九十八石, 通計近六萬石矣。 上曰, 畿邑無不受處耶? 壽興曰, 南漢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石矣。 上曰, 畿邑無不受處耶? 壽興曰, 南漢近處, 或有上年不受之邑矣, 南漢移轉穀, 往未捧六千五百三十五石, 上年未捧二萬九千二百八十三石, 通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引見時, 右議政金壽興所啓, 賑恤廳貸用江都米所償, 咸平大同米, 米租相雜, 當該守令, 推考, 何如? 上曰, 依爲之。 又所啓, 遷陵都監郞廳, 刑曹佐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捧二萬九千二百八十三石, 通計三萬五千八百餘石, 江都移轉合計, 則九萬四千餘石矣。 上曰, 上年江都穀, 折半捧之, 而又其中, 一半則留置本官, 一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引見時, 右議政金壽興所啓, 賑恤廳貸用江都米所償, 咸平大同米, 米租相雜, 當該守令, 推考, 何如? 上曰, 依爲之。 備局謄錄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江都穀, 折半捧之, 而又其中, 一半則留置本官, 一半則輸納江都矣。 壽興曰, 所當捧者, 又減半, 留置本官, 用於賑救, 江都所納, 只是四分之一也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李慶徽, 以備邊司言啓曰, 缺邑江都·南漢移轉穀物捧未捧開缺, 今已累日, 時無發落, 而正月將盡缺之請相繼, 而京官未反庫之前, 不可缺來稟於本司矣。 當此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銓衡, 士林倚以爲重, 兼摠戎政, 師徒莫不歸心。 逮予嗣服以來, 於卿注意之彌切, 早負公輔之望, 何待夢卜之求? 爰陟台鼎之尊, 冀見燮理之效, 寇萊公之在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京畿監司書目, 交河等五邑呈, 以願受江都米一千石, 以活飢民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只是四分之一也。 今年則一半減捧者, 及一半內分半捧留本官者, 乃是當捧之數也。 上曰, 江都穀, 今年則不爲移給耶? 萬基曰, 租種及豆太改色者, 若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李慶徽, 以備邊司言啓曰, 本司郞廳校理金宇亨, 發送畿邑, 捧留缺反庫事草記, 答曰, 日子已迫, 分遣兩人缺事, 命下矣。 江都屬十一邑, 則仍以缺發送,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京畿形勢, 今年分給者外, 似難可捧, 若欲盡捧往未捧者, 則江都·南漢還上, 必不着實矣。 壽興曰, 此則係是軍餉重物, 不可不捧, 而亦恐民力, 有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壽興曰, 此則係是軍餉重物, 不可不捧, 而亦恐民力, 有難盡捧矣。 上曰, 南漢穀三萬餘石, 通計往未捧數耶? 壽興曰, 然矣。 丙午以前, 一萬三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應爲上京砲保, 竝令停止。 又所啓, 軍役流亡絶戶, 徵布於隣族之弊, 爲當今病民之痼疾。 州縣雖爲頉報, 而該曹或不聽理, 外方以此爲最冤云矣。 左承旨李廷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通計往未捧數耶? 壽興曰, 然矣。 丙午以前, 一萬三千石蕩減, 故無久遠之缺餘存者, 纔六千五百餘石, 其數不多, 前後三千石, 蕩減故也。 上曰,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前後三千石, 蕩減故也。 上曰, 江都還上, 幾何? 壽興曰, 五萬八千石零, 幾至六萬石矣。 萬基曰, 京畿往未捧元數中, 江都·南漢穀, 居半矣。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則有過多矣。 上曰, 上年所捧, 亦幾至二分也, 半於元數矣。 萬基曰, 本官捧留之者, 未可知其果捧否也。 上曰, 此亦然矣。 且自前定分數過多, 則或因道臣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減者, 從當觀勢磨鍊。 且末所書濟用監長興庫校書館所納蠲減之物, 今年亦依上年例, 減之可矣。 鄭太和曰, 京畿則比忠洪道, 加捧六斗, 而今年則京畿失稔太甚,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備邊司啓曰, 江都軍餉分糶之際, 不定其數, 還捧未易, 故今年, 則以一萬五千石定限分付之後, 因留守狀啓, 加許五千石矣。 今見前留守趙復陽待罪狀啓, 則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將減, 不爲盡力捧之, 今年則宜酌定分數, 勿復撓改, 可也。 壽興曰, 減半捧之, 何如? 慶億曰, 先定京畿當捧之數, 可也。 上曰, 上年所捧,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稔太甚, 且以山陵諸役, 財力殫竭, 監司將欲啓聞, 變通減捧來年春等收米, 而山陵敬慕殿進排物饍價, 一年通計, 幾入五千石矣。 差減其山陵敬慕殿物膳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備邊司啓曰, 忠淸監司閔維重, 請得湖南沿海官所儲米租二萬石, 分糶道內, 如難準數, 則或以江都米租, 拔例劃給事狀啓, 啓下本司。 今當回啓, 而湖南米穀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南漢穀外, 通各邑捧五萬餘石, 似可矣, 今年分給者, 宜令准捧, 此則無論元會付, 各廳之穀, 當一體爲之矣。 壽興曰, 江都·南漢之穀, 則何以爲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禮曹啓曰, 江都忠烈祠祭文秪受日字, 問于本祠, 則今五月初七日, 當爲秪受云。 謹依純祖朝丙子年例, 遣近臣設行, 而祭文, 令藝文館撰出, 祭物, 令本府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修德, 豈不可戒也哉? 禮樂文物, 若如成周, 則邦籙可綿矣, 奚必大封同姓乎? 鍾序曰, 聖敎切當矣。 仍奏曰, 每於筵退之後, 臣僚先問聖學之如何, 而若謂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又啓曰, 今初七日, 江都忠烈祠, 遣近臣致祭事, 禮曹草記, 允下矣。 何承旨進去乎? 敢稟。 傳曰, 左副承旨進去。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金敬均, 以奎章閣言啓曰, 宙合樓所奉大行大妃各年冊寶, 明日臣進詣奉出, 當傳于殯殿都監, 而辛亥敎命玉冊, 前已移奉于江都, 入于丙寅回祿, 不得一體奉傳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禦遏防守, 事係時急, 相率請對矣。 景在曰, 洋夷之各持兵器, 毋難下陸, 不但痛惋, 出於惡意, 推可知矣, 則備禦之策, 不容少緩矣。 炳學曰, 洋舶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又以議政府言啓曰, 江都旣失守矣。 守臣之坐失全城, 藉曰事勢攸迫, 而無一備禦, 任其克斥者, 由前由後, 溺職大矣。 雖以中軍言之, 均有失守之責, 竝姑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以爲均俵之地。 其一, 大興·臨津·長山餉穀, 依已例, 全數捧留本邑, 附近民之自願輸納者, 依願許施, 耗條竝爲代錢輸送事也。 大興, 折半, 臨津·長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趙鍾弼, 以漢城府言啓曰, 每式年成籍後, 五部帳籍江都件, 例於翌年春, 臣府郞廳, 持往江都, 舊籍曝曬, 竝與新籍藏置矣。 乙酉式帳籍, 發遣本府郞廳,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趙鍾弼, 以漢城府言啓曰, 每式年成籍後, 五部帳籍江都件, 例於翌年春, 臣府郞廳, 持往江都, 舊籍曝曬, 竝與新籍藏置矣。 乙酉式帳籍, 發遣本府郞廳,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又以議政府言啓曰, 江都失守之後, 賊情虛實, 漠然無聞矣。 通津, 隔在一帶水之間, 于今幾日, 一不馳報, 事體疎忽, 莫此爲甚。 該府使李公濂爲先罷黜,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車有聲, 記注官石宗珍·金鼎燮, 前鎭撫使李容熙, 以次進伏訖。 上曰, 史官分左右, 仍命鎭撫使進前。 容熙進前訖。 上曰, 善留往還耶? 容熙曰, 王靈攸曁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正之前, 不當因循, 事目外五百結加劃, 以爲略綽均派之地。 其一, 大興·臨津·長山等餉穀, 依已例全數捧留本邑, 附近民之自願輸納者, 依願許施, 耗條竝爲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參爲元功, 鄂千秋獨以蕭何爲第一, 眞可謂善論也。 㳣曰, 誠然矣。 曹參攻略之功, 亦非小矣, 而其不及蕭何者, 以地則關中爲本, 以兵則糧餉爲本, 蕭何常保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之事, 而巍業大勳, 莫與汝競矣。 千秋, 以一言定爲元功, 此實萬世不易之公議也。 道熙曰, 經筵儒臣, 備陳無餘, 臣無容更達矣。 景在曰, 論功之際, 皆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傳于鄭雲龜曰, 江都失守之後, 不無疎虞之慮, 所以有各道召募之擧矣。 今聞彼情虛實, 則有不必徵兵列邑, 徒致騷訛, 各道召募及出身赴陣, 更待京師指揮之意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持通鑑第二卷, 以次進伏訖。 上曰, 史官分左右。 厚祚進前。 奏曰, 朝氣稍涼, 聖體, 若何? 上曰, 一樣矣。 厚祚曰, 寢睡·水刺之節, 何如? 上曰,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世道交喪, 自六七十年以來, 怨國失志之徒, 凶險邪慝之輩, 糾結七八萬里外凶醜異類, 思欲以易天下, 前後朝家之所以鋤治而殄滅之者, 非不至矣, 而種下生種,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之者, 非不至矣, 而種下生種, 滋蔓不已, 至于今春鍾三之獄而極矣。 嗚呼, 尙忍言哉? 今此輩, 乃敢眉語額瞬, 跡祕計憯, 呼吸相通, 暗地輸情,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金性均, 以議政府言啓曰, 卽見京畿監司金輔鉉年分狀啓, 則三等分劑, 不爲擧論後錄諸條, 竝請令廟堂稟處矣。 其一, 大興·臨津·長山等餉穀, 依已例全數捧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又以漢城府言啓曰, 每式年成籍後, 五部帳籍江都件, 例於翌年春, 臣府郞廳, 持往江都, 舊籍曝曬, 竝與新籍藏置矣。 戊子式帳籍, 發遣本府郞廳, 藏置曝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又以漢城府言啓曰, 每式年成籍後, 五部帳籍江都件, 例於翌年春, 臣府郞廳, 持往江都, 舊籍曝曬, 竝與新籍藏置矣。 戊子式帳籍, 發遣本府郞廳, 藏置曝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攘, 聖衷, 安得不憧憧乎? 仍奏曰, 洋舶終不退去, 制勝之方, 姑無萬全, 臣等冒忝台司, 一言一策, 無有裨補, 惶恐待罪而已。 伏願寢睡諸節, 一如平常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相薰災實狀啓, 則三等分劑, 不爲擧論, 各樣新災二千一百結七十五負九束, 準數劃下, 甲戌胎封時, 沿路果川等三邑流來虛結三百五十八結八十一負一束, 已蒙十年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見也。 是以, 雖從敬言, 其後, 卒致遺書呂后之辱, 向所謂與大父抗禮者, 猶屬歇後也。 謙洙曰, 劉敬, 旣云未可以仁義說也, 且曰豈敢與大父抗禮, 不仁不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一束, 已蒙五年減稅, 今旣限滿, 而皆是川浦汰覆, 起墾無路, 特令限五年更加展限, 後錄諸條, 竝請令廟堂稟處矣。 其一, 被災邑今春錢還立本條, 與元還本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江華留守李喬翼疏略曰, 崇禎丙丁之變, 尙忍言哉? 百官士民之逬戮於是, 俘辱於是, 感憤傷衋, 自倍他年。 蓋禍之作, 始於丙子, 而城陷在於丁丑。 故在肅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傳于趙秉世曰, 國有患難之時, 或以召募, 或以倡義, 而終底戡定者, 卽上下相須之道也。 見今洋夷之磐據江都, 已至旬餘日, 四方之向義募赴者, 尙此零星,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江華留守李喬翼疏略曰, 崇禎丙丁之變, 尙忍言哉? 百官士民之逬戮於是, 俘辱於是, 感憤傷衋, 自倍他年。 蓋禍之作, 始於丙子, 而城陷在於丁丑。 故在肅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以丙子舊甲, 特宣恩侑於斥和死節諸臣, 今年, 又命賜祭於忠烈祠, 此寔出於宸念之增感, 孰不聳聽而欽歎, 而至若忠剛公李尙伋, 以忠肅公尙吉之弟, 力主斥和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於楹戺之間, 周旋於樽爼之下, 只以有事爲榮, 安有微勞可記? 不圖謬恩遽下, 授臣以嘉善大夫之階, 繼伏奉兵曹參判除旨, 臣拚誥震駴, 五官迷錯。 噫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一草一木一毛一髮,莫非帝賜拯濟之功, 巍蕩之德, 生隕首而無感, 死結草而圖報, 窮天地亘萬古而難忘者也。 嗚呼, 甲申之變, 尙忍言哉神州陸沈, 九廟邱墟,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也。 近日邪術之肆行, 禍機之醞釀, 無不根窩於此, 憂深伏莽, 何異黃巾·綠林, 禍將滔天, 有浮洪水·猛獸。 何幸太陽中天, 奸狀莫逃, 快伸三尺之章, 遄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事目災一百五十結外, 不足災三千四百六十二結八十負三束, 特許準劃。 坡州等三邑新舊汰落田畓結二百三十二結九十八負六束, 今年爲始, 限五年竝令減稅, 而交河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揆以邦憲, 焉追當律? 雖以前中軍李龍會言之, 旣在副將之職, 承佐贊劃, 不措一策, 以致失守, 厥罪惟同。 臣等請薪智島圍籬安置〈罪〉人李寅夔,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吳炳文, 以議政府言啓曰, 卽見京畿監司吳俊泳災實分等狀啓, 則喬桐等十邑鎭置之尤甚, 坡州等八邑置之之次, 各樣新災三千五百八十九結六十七負一束, 特爲準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同知申應朝疏曰, 伏以, 臣荐被謬恩, 惶隕靡措, 而義分是懼, 冒昧出膺, 間嘗隨群彦之後, 赴政府之坐, 而未有絲毫謀劃, 可裨末議, 實不勝兢惕悸恐之至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又以議政府言啓曰, 卽見京畿監司金明鎭年分狀啓, 則三等分劑, 不爲擧論, 後錄諸條, 竝請令廟堂稟處矣。 其一, 大興·臨津·長山等餉穀, 依已例全數捧留本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有絲毫謀劃, 可裨末議, 實不勝兢惕悸恐之至。 今朝家有事, 聖心憂勞, 苟有一得, 可以報補聖政之萬一者, 不可謂身無言責, 而終於含默。 臣請以目下數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江都之長江天塹, 風雲儲胥, 自古稱金湯天府。 且彼賊之出沒閃躱, 情形叵測, 非一朝一夕之故, 而乃不能發一矢殺一賊, 擧全城而與之, 則朝家宜明守臣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宣惠廳啓曰, 魂殿山陵, 三年內所用菜物柴炭等價, 自戶曹磨鍊, 分定京畿各邑, 而己亥以後國恤時, 爲除畿民之弊, 始令本廳, 句管給價, 而價本則或以江都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所處, 使國言沸騰, 衆情懷憤, 此豈有私惡於守臣而然哉? 誠恐三軍解體, 而蕩寇無日矣, 臣不勝懍然而寒心也。 今撫臣開府, 廟堂齊會, 江都之民,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근현대 소실위기 재중동포 서신 DB화 및 생활문화 분석(178,6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