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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一百同, 自惠廳劃來本府, 而六十同, 已爲取用於築城工役, 四十同疋數, 尙在該廳矣。 今城役雖停, 自朝家已爲劃給本府, 且墩臺多有修補之處, 而修城所餘儲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出擧條 象漢曰, 典牲署·氷庫, 皆有位田, 而多隱漏見失之弊, 如兵曹之馬位田矣。 發遣郞廳打量, 如有橫執隱漏之人, 則依律重繩, 何如? 上曰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擧條 天輔曰, 廣州軍官, 庚子加定後, 摠數恰爲五千七百餘人, 其中在逃者甚多, 害及隣族, 足可以感傷和氣。 每年軍餉耗米一千八九百石內, 前後定奪, 每年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藏子匱中, 付臣迪輔曰, 注書出去時持去, 藏之藝文館東壁。 上曰, 今世無可任將之人矣。 尙魯曰, 安知其必無, 忠武公壬辰前無知之者矣。 上曰, 有畫像乎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鄭玉, 以義禁府言達曰, 全羅道沿海邑太種之艱乏, 江都別會太, 限一千石移轉之意, 仰達蒙允矣。 頃日江都守臣入京時, 聞其所言, 則別會太, 已以改色盡分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2]江都, 而移置該鎭者, 爲其緩急所需也。 今則法意掃地, 散在於列邑, 旣割於 江都, 又移安興者, 事極不當, 今此守臣之欲爲還置於本府者, 實有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番入格將士中, 有壯元及第及親臨觀武才時居都壯元者, 而今番試才, 又以六兩居魁, 其武藝之出衆, 可推而知。 其餘善射有膂力者, 亦有數人, 今若依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云, 三萬石, 不過爲左道龍安等八邑分給之資, 豈可以此, 盡爲周恤也? 聞湖市價一兩錢, 換二斗米云, 人心大變, 盜賊甚多, 兩麥又失, 則湖南一路, 當爲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又以賑恤廳言啓曰, 卽今兩賑所飢民, 所饋粥醬, 其數浩多, 而舊儲垂乏, 新醬未熟, 不得已間煮白粥以饋, 救活飢口之道, 誠甚悶慮, 取考曾前設粥時謄錄,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江都米, 則猶可以分給, 而只以北漢米一千石, 何能分俵於六邑乎? 在畿邑似無補益, 在北漢所關不輕, 亦難許給矣。 然而此則未雨前狀請也。 移轉還報,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夫, 始以其妻果無失行之事。 而老昏所致, 信聽相殷之言, 誣以失行奸狀現露之意, 遲晩納供, 相殷亦以欲奪昌夏妻之財産, 相鬨毆打之意, 直告服罪, 壽長則以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省。 且自前山城修補時, 每許空名帖, 而江都·北漢, 皆有許給之近例。 今亦參酌許之無妨矣。 寅明曰, 北漢比南漢尤重, 旣許於彼, 則不可不竝許於此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辛壬還上事, 流亡合沒者, 前已査出蕩減, 無論合沒與否, 一竝蕩減, 亦涉重難, 三件事, 宜皆置之矣。 上曰, 依爲之。 出擧條 寅明曰, 量陳田降續,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尹彙貞, 以漢城府言啓曰, 京中戶籍二件內, 一件藏置於江都事, 曾已事目啓下矣。 戶籍旣已完畢, 今當發遣本府郞廳, 持往江都, 戶籍冊結裹雜物, 令各該司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臣狀聞, 則以花梁·大阜兩處形勢, 有所論啓矣。 兩處皆南陽地, 而臣於頃年, 外補南陽府使時, 遍觀兩處, 稔知其地勢矣。 丙子亂前, 則京畿水使,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經大法言之, 守都城宜矣。 而子女玉帛, 皆在於斯。 以卽今人心, 雖欲守之, 必不能守矣。 西關嶺隘, 若能嚴守, 則都城之守不守, 非所可論矣。 上曰, 卿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n 江都城築之爲好, 而留守足可爲之。 江都留守處, 另加申飭。 春秋內奉審時, 知有不築者, 則當該留守, 大則拿處, 小則罷職。 而其築城節目, 則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萬壽寺。 而五里十里, 輒有宮闕, 其侈靡壯麗, 不可形容。 而萬壽寺後五峯上, 或有六面層閣, 或有八面層臺, 而蓋以靑紅丹碧而瓦, 五彩玲瓏矣。 上曰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感傷和氣。 每年軍餉耗米一千八九百石內, 前後定奪, 每年會試應下者四百石, 實添餉, 可爲一千四五百石。 就其中折半作銀作木, 則年年所積, 亦自不少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鄭玉, 以義禁府言達曰, 全羅道沿海邑太種之艱乏, 江都別會太, 限一千石移轉之意, 仰達蒙允矣。 頃日江都守臣入京時, 聞其所言, 則別會太, 已以改色盡分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鄭好仁, 以戶曹言啓曰, 稅船皆來皆捧乎, 令該曹以奏事, 命下矣。 各道稅船, 業已盡到, 而畢捧, 新請得西湖軍米江都米, 亦皆到泊, 或已捧上, 或已入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賢之病, 不欲敦迫之盛意, 當初特遣入侍左史, 別爲敦召, 而一番馳啓, 旋卽收還, 未知何如? 史官處, 回還有旨, 初旣書出矣, 還爲持入, 惶恐敢達矣。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又以賑恤廳言啓曰, 卽今兩賑所飢民, 所饋粥醬, 其數浩多, 而舊儲垂乏, 新醬未熟, 不得已間煮白粥以饋, 救活飢口之道, 誠甚悶慮, 取考曾前設粥時謄錄,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授院位田, 以此事勢, 自不無掣肘之端, 而凡事當參量利害之大小而爲之, 更令問議于道臣, 從速商確而處之, 似宜矣。 上曰, 事勢則然矣。 而此等事, 若急遽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道, 可矣。 上曰, 拯米則工判有守, 予欲從之, 而工判之言, 過矣。 筵中說話, 民人豈不得聞知耶? 廷濟曰, 橋梁修治邑, 則用力多矣。 上曰, 備局,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守矣。 西關嶺隘, 若能嚴守, 則都城之守不守, 非所可論矣。 上曰, 卿不見戊申年乎? 一胡出來云爾, 則人心必瓦解矣。 若移此一步地, 則無可言矣。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江都留守處, 另加申飭。 春秋內奉審時, 知有不築者, 則當該留守, 大則拿處, 小則罷職。 而其築城節目, 則令備局, 議定, 分付, 可也。 在魯曰,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敢有所達矣。 一新, 有壬辰殉節諸臣忠烈祠, 列聖朝皆爲致祭, 而當宁尙無致祭之命, 其在激勸之道, 似宜考例賜祭矣。 上曰, 予未及知之矣。 依古例爲之, 而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夏亨之行己詭悖, 一世皆疑, 居官貪虐, 萬口同傳, 若毛擧世所喧騰之說, 索言於疏啓之中, 則雖勘之以誅殛之典, 未足以塞其罪。 而大抵論人之道, 貴在平恕,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鹽利未爲國家之用, 誠爲慨然。 沁都所屬諸島, 多煮鹽, 鹽利亦不歸於公家。 煮鹽貿鹽之間, 從長區劃, 以爲裕財儲穀之道似好, 而本府無物力出處。 大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壯麗, 不可形容。 而萬壽寺後五峯上, 或有六面層閣, 或有八面層臺, 而蓋以靑紅丹碧而瓦, 五彩玲瓏矣。 上曰, 其往來之時, 乘船而遊云, 然耶?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鄭玉, 以義禁府言達曰, 全羅道沿海邑太種之艱乏, 江都別會太, 限一千石移轉之意, 仰達蒙允矣。 頃日江都守臣入京時, 聞其所言, 則別會太, 已以改色盡分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安興者, 事極不當, 今此守臣之欲爲還置於本府者, 實有所據, 而全數則恐似掣礙, 姑以三分一之數, 分排各邑, 除給船價, 運納江華事, 分付該道道臣,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比前顯加, 又能善爲立苗, 若無大災, 或望其有秋, 然阻飢之民, 先摘半實以延命, 則成實後所收, 必將無幾, 明年且有閏節, 新穀之收, 其勢又晩, 各邑倉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農前矣。 上曰, 然則其間不過數月, 秋操則姑爲停止, 而待明春設行之意, 分付, 可也。 出擧條 興慶曰, 江華留守金東弼, 以合操設行與否, 有此狀稟矣。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追述先志, 乃亦繼述, 其令禮官, 特爲致祭于書院。 今聞大臣所達, 贈議政臣尹暹, 贈判書臣尹棨等墓, 俱在此地云, 亦爲致祭。 文烈公趙憲, 纔已致祭於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來云爾, 則人心必瓦解矣。 若移此一步地, 則無可言矣。 欲守都城, 此予苦心矣。 寅明曰, 臨急移都, 人心必大駭。 若聞中原撓亂, 則率百姓, 先爲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則何以爲之? 上曰, 退出後, 更爲看審商確, 後日議定, 可也。 寅明曰, 江都使留守築城事定奪。 而臣意則以江都物力, 決無自辦可築之道矣。 上曰,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以少伸叨[叩]謝之忱? 而又於夏初, 重經衄血之症, 幾死僅甦, 眞元大脫。 澟澟然朝不謀夕之中, 積傷於無前暑濕, 舊恙新症, 疊見層生, 手足麻木, 頭目眩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慨然於此, 將以爲煮鹽儲穀之計, 誠得之矣。 賑廳有三南還穀三萬石上來者, 就此劃給五千石, 使之爲煮鹽費, 似好矣。 吏曹判書鄭羽良曰, 城役旣停, 則稅作木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則恐似掣礙, 姑以三分一之數, 分排各邑, 除給船價, 運納江華事, 分付該道道臣, 何如? 東度曰, 江都句管軍餉之屬於安興者, 法意有在, 固不可盡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權噵, 以漢城府言啓曰, 每式年京中五部帳籍二件內, 一件則翌年解凍卽時, 發遣郞廳, 藏置於江都後, 舊帳籍曝曬事, 曾已定奪矣。 戊子式帳籍, 今方遣郞廳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能勉出, 終至遞免, 至今思之, 寧不慙赧, 致中曰, 小臣之不肖, 一無可取, 而前後恩眷, 若是罔極, 才智淺短, 無他圖報, 只有爲國一死而已。 臣旣以死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是仰達, 而當初所條列五者, 雖在治平之時, 不可放倒, 雖在變亂之時, 亦不可放倒矣。 上曰, 頃因尹淳之言, 聞世宗大王於便殿側, 構草堂, 不礎不階, 而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辰時, 上御進修堂。 江華留守尹游, 留待引見入侍時, 同副承旨趙尙慶, 假注書權贒, 記注官鄭敞選, 記事官趙明履。 上曰, 今之沁府, 卽古之晉陽也。 居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弼, 以合操設行與否, 有此狀稟矣。 原狀之意以爲, 本府穡事, 旣不至全然失稔, 詰戎之政, 所當及時修擧, 而但因海西道臣狀請, 有今年水陸操竝許停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乎? 興慶曰, 此非倉卒可言者矣。 上曰, 非卽今可言也。 俾欲不忘, 而大臣之意, 其欲勿施矣。 興慶曰, 小臣必欲擔當變通矣。 上曰, 常時行人, 皆由孔巖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當爲設行, 而本府軍兵, 皆是逐末之類, 時未還集, 且本府財力蕩竭, 無以過操云矣。 本府乙卯春操後, 昨年春旣停止矣, 非慘凶之歲, 則操鍊等事, 不可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明曰, 臨急移都, 人心必大駭。 若聞中原撓亂, 則率百姓, 先爲移入, 可保無虞矣。 以卽今人心觀之, 若欲臨急移都, 則必無得入江都之理矣。 宗玉曰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10402]江都築城之役, 益肆椎剝, 虐害島民, 或有投水而死者, 或有自縊而死者, 此等殘酷之狀, 容有未盡徹於天聽者。 而桴長山萬株之木, 爲役所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煮鹽費, 似好矣。 吏曹判書鄭羽良曰, 城役旣停, 則稅作木元無輸送之義。 而此則初旣劃給之物, 不爲覆難, 而至於賑米之劃給, 實無意義。 且賑穀所餘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甲子七月十四日申時, 上御興政堂。 領右相·秋判引見。 領議政金在魯, 右議政趙顯明, 刑曹判書徐宗玉, 右副承旨金尙迪, 假注書南濟萬, 記事官鄭元淳·李永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所達, 兵曹所管雇軍撥軍一也。 其所上下, 不宜異同, 依爲之。 出擧條 象漢曰, 聞日昨筵中, 承宣, 有以各邑積芻之貽弊民間, 陳達云, 臣不得不更陳事狀矣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權噵, 以漢城府言啓曰, 每式年京中五部帳籍二件內, 一件則翌年解凍卽時, 發遣郞廳, 藏置於江都後, 舊帳籍曝曬事, 曾已定奪矣。 戊子式帳籍, 今方遣郞廳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以承傳色口傳下敎曰, 江都行, 當由孔巖, 而以楊花渡作路, 創開津將, 其宜端本, 明日令訓局沙場, 決棍五十度。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爲之。 出擧條 致中曰, 全羅監司狀啓, 凡三度, 而其一, 卽請得戶曹貿米錢, 移送惠廳, 以上納大同木留賑後, 作木上送事也。 此一款, 旣已許施, 今無可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而又皆爲媢嫉者所枳, 物情稱惜, 公議抑鬱, 聖重歷典五邑, 閔暹按節七道, 而今其子孫, 無立錐之地, 臣謂右所達三臣, 一體褒尙, 錄其子孫, 俾廉吏不可爲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障之地, 而西北兩路, 無備禦之策, 臣以爲兩道監·兵使, 必須十年久任, 然後方略得宜, 庶可責效矣。 趙充國馳進金城, 圖上方略, 若無素定之計, 則雖有百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又以賑恤廳言啓曰, 卽今兩賑所飢民, 所饋粥醬, 其數浩多, 而舊儲垂乏, 新醬未熟, 不得已間煮白粥以饋, 救活飢口之道, 誠甚悶慮, 取考曾前設粥時謄錄,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其承旨當從重論罪矣。 上曰, 庚戌親鞫日記, 注書出去, 持入, 可也。 逅, 承命出去。 命均曰, 此是海邊, 而積貯好矣。 上曰, 外方之不從命令, 是廟堂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農節, 春操與營將巡歷, 竝權停, 依近例發遣敎鍊官, 只行哨隊鍊事爲請矣。 昨秋旣行合操, 則此與許久抛棄者, 有間, 春操停止, 依近例以哨隊鍊, 設行無妨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故今年年事, 反不如上年矣。 上曰, 守禦使, 今亦入侍, 而廣州軍餉甚小, 是爲悶事。 與之相議, 各別勉旃, 可也。 命敎曰, 臣曾有疏陳之事, 而所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民弊請停, 固無不可, 而今以犒饋賞資之難辦, 請停操鍊者, 未免失體。 留守金就慶推考, 今年春操, 使之擧行, 何如? 上曰, 依爲之。 出擧條 寅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之理矣。 宗玉曰, 移入江都, 非播遷也。 寅明曰, 高麗時入江都, 非必臨難也。 今若以江都爲行宮, 時時行幸, 有何不可乎? 上笑曰, 欲聞經理倉泛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其何强爭? 勿煩。 又所啓, 請刑曹參判李世璡遞差。 措辭見上 上曰, 其人之强健旣知, 此雖過矣, 亦不必相持者, 依啓。 又所啓, 竹山, 卽畿湖孔道, 而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又以禮曹言啓曰, 賢嬪宮敎命冊印在江都, 尙不取來, 內出日子, 以來月旬間擇入事, 命下矣。 敎命冊印奉下都監吉日, 更令日官推擇, 則來十二月初十日巳時爲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陽, 築斯之役, 實是保障哉之意。 而惜乎任事者, 不得其人, 費了國家許多物力, 而所築城堞, 一經雨水, 輒皆崩頹。 事之寒心, 莫此爲甚。 且大失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一事, 臣若獨當爲之, 則實有江都私物之嫌, 煮鹽儲置後, 自廟堂或劃留江都, 或劃給賑廳, 則均爲國儲矣。 臣不宜獨當, 與惠廳堂上鄭羽良, 句管設施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矣。 先王朝, 有特送備邊郞試才之規, 考出舊例後, 擧行, 何如? 宗玉曰, 臣意則不然, 若使備邊郞試才, 則不過取其中一二人, 使之直赴而已, 恐非朝家慰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李彝章, 以宣惠廳言啓曰, 魂宮墓所, 三年內所供菜蔬柴炭等物, 本自兵曹磨鍊, 分定於京畿各邑, 而己亥以後國恤時, 爲除畿邑之弊, 始令本廳, 句管給價。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所奏得體, 依爲之。 勿待罪。 出擧條 鳳漢曰, 此京畿前監司元景淳災實分等狀啓也。 永平等九邑, 置之稍實, 楊州等十二邑, 置之之次, 陽川等十六邑, 置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納大同木留賑後, 作木上送事也。 此一款, 旣已許施, 今無可論, 其二, 卽請得慈母山城留布六百同, 移送三軍門及兵曹, 而以保米布與四五六月當騎步布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而流寓上京, 立役雇軍云矣。 上曰, 渠爲加資, 用之何處? 反不如雇軍, 必爲飢餓矣。 申吉萬則爲同知追贈矣, 此則加資實爲無用, 而其在激勸之道, 不可只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庶可責效矣。 趙充國馳進金城, 圖上方略, 若無素定之計, 則雖有百萬之士, 金城湯池, 亦不可恃矣。 上曰, 素定之計, 誠爲得宜, 而予則以得人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數十年前, 則至於十四萬石矣。 又其後, 戶曹所貸用, 幾至六萬六千餘石, 兩都監所貸四千餘石, 其外還上未捧, 移轉未捧, 久遠無面, 倂殆近三萬餘石。 上年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又以賑恤廳言啓曰, 卽今兩賑所飢民, 所饋粥醬, 其數浩多, 而舊儲垂乏, 新醬未熟, 不得已間煮白粥以饋, 救活飢口之道, 誠甚悶慮, 取考曾前設粥時謄錄,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所達竝依爲之。 眞明曰, 北路關防, 城津爲最, 而餉穀旣少, 皮穀居多, 故曾以秋捧時, 作米儲置事, 稟請, 分付矣。 迄無擧行形止報來之事, 一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今無闕額之患, 而後世享闢異之名, 豈不誠兩得其宜? 且待之又十年, 則其所蕃育, 將不知幾百萬, 何患乎軍丁之不足哉? 中間死亡, 則使之卽出物故, 以爲徵信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設行無妨矣。 上曰, 不必年年爲之。 今春則竝與哨隊鍊而停止, 可也。 出擧條 寅明曰, 諸道陸操, 旣令停止, 則畿甸尤宜軫念, 摠戎廳所屬畿輔三鎭及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軍餉米劃送後, 守令中周年在任, 全然不納者, 令本道査出現告, 先罷後拿事, 啓下矣。 今見道臣狀啓, 則江都劃送米未盡收納邑瑞山·公州·洪州·結城·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402]江都爲行宮, 時時行幸, 有何不可乎? 上笑曰, 欲聞經理倉泛濫, 及於移都築城矣。 聖應曰, 能爲固圉之策, 善防敵人, 則不必論江都·北漢,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煮鹽儲置後, 自廟堂或劃留江都, 或劃給賑廳, 則均爲國儲矣。 臣不宜獨當, 與惠廳堂上鄭羽良, 句管設施, 則似好矣。 煮鹽貿鹽之間, 先以百餘石經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好過矣。 問候訖。 上曰, 元良有微感, 故頃日有更下敎之敎矣。 今則快復, 此後書筵, 依例, 取稟, 今日晝講爲之事, 分付侍講院。 錫五曰, 此乃忠淸監司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以今番栗峯察訪見之, 亦可知矣。 其人有同名, 予知以彼安鼎大矣。 見之則乃他安鼎大也。 其所奏之言亦糢糊, 故遞之矣。 鳳漢曰, 頃有蔡膺一副摠管擬差之命,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江華留守洪樂性書曰, 伏以, 臣至愚極劣, 本不合於盛明之需, 而濫蒙洪造, 早竊科名, 前後踐歷, 涯分已踰, 毫絲無補, 懍愧徒積, 沁都居留之命, 遽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施直劃, 則兵曹·均廳, 皆無損益之可言, 鎭軍之除弊蒙惠則極矣, 以臣所奏便否, 下詢僚相與諸臣處之, 何如? 東度曰, 臣亦稔聞鎭卒之至願, 在於直劃, 首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楊州等十二邑, 置之之次, 陽川等十六邑, 置之尤甚, 面分等, 依朝令分三等開錄, 仍以爲災摠不足, 爲一千五百八十二結零, 劃卽準施。 北漢軍餉,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留布, 聞方罄竭, 固難準此數許貸, 而朝家旣已推移區劃, 亦不必擧論, 其三, 以爲嶺南別餉米五千石, 劃給本道, 其代以江都米, 移送惠廳後, 自本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矣。 至聖考戊辰, 駕臨南漢, 特詢戰亡家子孫, 故相臣金壽興, 對以池汝海, 無眞孫, 有外孫奉其祀, 上特命依眞孫例收用, 其後又命旌閭南漢顯節之祀, 竝侑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矣。 東弼曰, 加資後, 給逆家田畓若干, 似好矣。 上曰, 田畓米布, 不可疊給, 此則米布田畓間, 自地部參酌, 或從其願給之, 可也。 出榻前下敎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有百萬之士, 金城湯池, 亦不可恃矣。 上曰, 素定之計, 誠爲得宜, 而予則以得人, 爲素定之要計也。 予於孝廟, 尤有所景慕者, 頃日謁陵, 不專出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實爲可悶矣。 今後則雖有所請, 更勿許給, 何如? 上曰, 軍餉之比古太減, 予豈不知乎? 若循例爲請, 則予豈聽施, 而若爲民而請, 則亦難防塞, 故京畿三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督, 尤爲難支之患。 此一款, 亦不可輕許, 至於軍保米, 雖未知己捧之幾何, 而尤甚之次竝以災減, 則又爲觀望不捧, 必欲渾歸於備徵隣·族之科, 而布覬停退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誠爲可慮, 故臣於昨年, 以嶺南監·統營, 關西管餉營別會耗, 海西詳定米, 定其石數, 每年輪回, 上納南漢·江都事, 定奪矣。 嶺南監營, 則以年凶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又不從令者, 現捉則卽施梟示之律, 捕捉者用捕賊之賞, 則必無逃匿難禁之理, 以此書之信史, 則亦豈不有辭於天下萬世乎? 以殿下高出百王之聖, 不待臣一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則似難禦之, 此不可等閒看之矣。 寅明曰, 我國之事, 玩愒成習, 臣每以爲北漢, 則終是得力之處矣。 上曰, 雖有事變, 都城之人, 似難盡容於城中, 而大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沁州一隅, 雖不過爲宰相徊翔之所, 而睿簡猶且難愼, 況當此築城之時, 尤宜擇人。 新除授江華留守李益炡, 資級踐歷, 非不高顯, 而至於保障之任, 實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時, 三部軍兵, 每年一部式輪操, 定奪矣。 一自輪操之後, 軍兵等服色軍裝, 不爲各自措備, 擧皆臨時推移, 或至於名額之相換代點, 實無操習之效, 反不如間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能賀。 禮闕分虧, 固已萬萬惶悚, 而不見人容, 罕接朝紙, 又不知世間有甚事。 雖大限有定, 姑不遽死, 而亦不可謂之生也。 今者伏聞摸寫先朝御容, 躋奉於三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p, 或劃給賑廳, 則均爲國儲矣。 臣不宜獨當, 與惠廳堂上鄭羽良, 句管設施, 則似好矣。 煮鹽貿鹽之間, 先以百餘石經紀, 有害卽止, 如有所效,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근현대 소실위기 재중동포 서신 DB화 및 생활문화 분석(178,6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