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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行知中樞府事閔鼎重箚曰, 伏以, 臣昨奉疏決時亦爲入侍之命, 而所患賤疾, 入夏添劇, 委頓垂盡者, 已至六十餘日, 近幸略有生意, 而猶不能自力於趨走拜跪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府啓, 請海州妖巫, 拿致京獄, 嚴問定罪。 其他兩西列邑, 爲凶逆設祠處摘發, 一體論斷事。 海西內地, 新設鎭堡, 一倂革罷事。 關西寧邊等九邑守令, 以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備忘記, 明春江都經營之事, 實出於陰雨之備, 而第此巨役, 適當災荒溢目餓莩顚連之日, 雖已從便料理, 不煩力民, 一面設賑, 一面動役, 於予心終有所未安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戶曹判書李敏敍所啓, 近因年凶, 歲入日縮, 本曹別庫所儲米, 乃雜色作米, 而自丙子以後, 流來陳腐, 將爲無用之物, 故本曹於春夏間, 歇價發賣, 欲待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給於江都爲宜, 而朝家旣有處分之後, 均是公用, 似不必更請。 且閔鎭周狀啓中, 有傍聽之人, 橫加占奪之語, 凡朝廷之上, 禮讓爲先, 況身居卿列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啓, 江都軍兵, 合爲六千餘名, 今方鍊習放射, 不可無激勸之道, 而江原無一疋木可得處, 朝家爲軍兵賞格, 今年爲始, 劃給延白撥軍四名餘名, 而不知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際, 大駕駐蹕, 都城士民, 同力堅守, 則雖動天下之兵, 決難盡圍, 亦無攻拔之勢, 眞所謂金湯, 而論議不一, 擧皆沮戱, 故臣意以爲, 雖不能築北城, 都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以此議于諸大臣處, 則皆以臣言爲好。 徐宗泰以爲, 文書所付之數, 割用於城役之後, 雖不能盡充本數, 各隨力還償則似好云, 此言誠是, 而臣素無幹辦之才, 朝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傳于任舜元曰, 工曹參判閔鎭遠牌不進, 備局堂上趙泰耉, 與訓鍊大將李基夏, 偕往江都。 以上燼餘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喬桐·永宗三鎭, 列置於海口尋丈之間, 而不相統攝, 此失於輔車相依之勢, 終不知其施設之得宜也。 蓋江都之外, 喬桐·永宗, 分哨於左右, 此外大小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金宇杭啓曰, 上年農事, 種種被災, 旣給諸道分災, 歲入之大縮, 固已料之, 各道收租案, 皆已上來, 湖南雖未及上來, 而槪以諸道田結摠數計之, 則將不滿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上曰, 冬至正使以從二品中備擬事, 下敎之後, 李墪見擬末望, 此人雖以久次言之, 固合陞擢, 而但見甚衰且多病, 崔奎瑞旣以病許遞, 而又遣衰疾之人, 有非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卽今都城, 周回闊大, 雖動八路之民, 非一二月之間, 所可修築, 南漢則地勢孤絶, 亦非久守之地, 江都雖有天塹, 內無城築, 尙未完備, 故欲築內城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備邊司啓曰, 今年還上, 勢難準捧, 自戶曹參酌定式, 減捧事, 命下矣。 各道還上, 當自戶曹, 從其災實, 定式分付, 至於江都 南漢移轉之穀, 所當準數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丁昌燾啓曰, 告廟後頒敎事, 旣已定奪矣。 敎文, 大提學當爲製進, 而方有江都往來之事, 勢未及撰出, 令提學代撰似當。 大臣之意如此, 敢啓。 傳曰, 依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政院啓曰, 訓導安愼徽, 次知唜男, 以愼徽 江都銀貨, 旣已被執於倭館, 而尙不準捧上送也, 罪名雖輕, 有難全釋, 故姑爲保放, 以待各衙門處置。 傳曰,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給延白撥軍四名餘名, 而不知逃故幾許, 又以今年大凶, 趁期輸送, 未可必, 臣前見黃海兵營, 劃給騎步兵一千一百名, 兵監二千名, 水原府, 亦給十八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湯, 而論議不一, 擧皆沮戱, 故臣意以爲, 雖不能築北城, 都城, 乃其次也。 玆能增築而堅守, 亦足爲根本之計, 惟在上意之堅定如何耳。 外定信地,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數, 各隨力還償則似好云, 此言誠是, 而臣素無幹辦之才, 朝家必令隨力還償, 則當與戶曹·宣惠廳相議, 有所料理, 而伏聞備局所管關西木每年所捧三百餘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江都之外, 喬桐·永宗, 分哨於左右, 此外大小島嶼, 星羅碁布, 觀其地勢, 實爲江都而設也。 今使喬桐·永宗, 統制於江都, 則觀制得宜, 緩急可以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皆已上來, 湖南雖未及上來, 而槪以諸道田結摠數計之, 則將不滿七萬石矣。 近來連値凶荒, 殆無遺儲, 一年經用, 當入十一萬石, 而今歲所入, 不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之用, 故臣於頃年待罪本兵時, 點見禁衛營軍器, 則只有四十位, 故以多數鑄成, 分置江都及嶺阨之意, 有所陳達, 仍使守禦廳監官李有華, 擔當鑄造,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出, 引入兵曹判書金錫胄。 進伏于前曰, 臣承命進去于仁逷家, 則仁逷, 以其父神道碑監造事, 出去方外, 待其還來, 推見其遺疏, 則乃其父浣所錄建州衛事蹟也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民, 今又納米五十石, 各別論賞之道, 馳啓, 自備邊司覆啓, 以邊將除授差下矣。 崔淳, 以此呈狀于本曹, 臣招見其人, 則年已六十, 難任邊將, 以加設僉知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府啓, 請海州妖巫, 拿致京獄, 嚴問定罪。 其他兩西列邑, 爲凶逆設立神祠處, 摘發之後, 一體論斷事。 海西內地新設鎭堡處, 一倂革罷事。 關西寧邊等九邑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府前啓, 請還收韓錫祚還發配所之命。 請還收申範華減死定配之命, 拿鞫處斷, 以正王法事。 新啓, 綾原大君遷葬時, 碑石·床石, 纔因江華留守狀啓, 有待秋成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左議政睦來善, 右議政閔黯, 訓鍊大將李義徵, 御營大將黃徵, 禁衛大將閔宗道引見入侍時, 左議政睦來善所啓, 江都城役, 旣已垂畢, 而三營物力, 有所不逮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或言旣費許多功力, 且不無料賴之力, 棄之可惜云, 且當初以爲, 十年之內, 則使各軍門, 分管其築處, 隨毁修築, 十年之後, 則專責本府, 以軍門物力, 猶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又以迎接都監言啓曰, 軍色郞廳兵曹正郞李相周, 以丙子年江都被禍之家, 曾前客使接待之事, 不能隨參, 斯速改差事, 呈狀不爲仕進, 情勢之難便, 果如所訴,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每年所捧二百餘同, 移送於慈母山城, 以爲待變之需云, 慈母小城, 而屢年儲置者, 已至數百同。 今後則以慈母山城所送者, 每年移送於江都, 嶺南射軍木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賑廳米萬餘石, 推移用之, 而卽今江都·賑廳, 竝皆難恃, 他無容手之處, 三南儲置米, 其數有裕, 今若取米三萬石, 則可以支用於前頭矣。 主管堂上,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予於民事, 豈嘗暫忘耶? 以濟州牧使狀啓見之, 昨年凶荒甚慘, 而所送穀數, 終不如意, 予甚悶之, 大臣所達好矣。 令廟堂急速稟處可也事, 命下矣。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老之人, 必不堪邊將之任, 以加設僉知, 論賞, 可也。 又啓曰, 京畿宣惠廳所納收米, 上年秋等, 旣減五千石, 今春所減, 又至七千石, 廳儲匱竭,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農事連年大凶, 天災如此, 須存寅畏一念, 以爲敬天之本, 宜矣。 缺曰, 敬天之道, 則常以上帝若臨之意, 操存不忘, 憂民之道, 則爲缺先矣。 上曰, 雖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禁衛營啓曰, 來辛未二三月,當七番中部中·右司屬, 京畿四哨, 江春道六哨, 八番中部後司屬, 江春道五哨, 當以次第徵召上番, 而前頭江都城役時, 從便近使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禁衛營啓曰, 大將臣閔宗道, 以江都城役基址看審事, 明日下去江華府, 未回還間營中諸事, 依近例都提調臣睦□□竝爲擧行之意, 敢啓。 答曰, 知道。 出備局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左議政睦來善, 右議政閔黯, 訓鍊大將李義徵, 御營大將黃徵, 禁衛大將閔宗道引見入侍時, 左議政睦來善所啓, 江都城役, 旣已垂畢, 而三營物力, 有所不逮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曰, 昨年失稔, 畿湖最甚。 至以湖西分等觀之, 入於尤甚者, 殆至三十餘邑, 實結由此大縮, 經費誠爲可慮, 賑廳及江都[/穀, 則以城役, 實難遷動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而殺之也。 都監軍士, 異於他人, 則缺死之人, 而知賊之所在, 不爲來告, 如此軍士, 將焉用哉? 大運曰, 三司缺各異, 唯在自上斷而處之。 上曰, 備局諸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詳見其形勢矣。 上曰, 缺三行 錫胄曰, 臣嘗見輿地乘覽[輿地勝覽], 文殊山, 卽睥睨山也, 以其見江華城中故也。 高麗時, 改以文殊山, 缺窄梁每入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愁怨, 而思得文吏者也, 爲今矯弊之道, 莫如間以文官, 另擇差遣, 以之慰邊氓而懲汚吏, 該曹之參酌覆啓, 蓋爲是也, 而終歸寢格而不行, 豈非可惜哉? 請依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訓鍊大將李義徵所啓, 江都, 乃保障重地, 四十里新城, 已得完畢, 誠是大幸, 而苟無器械, 則難以守禦, 訓局分守之城, 乃一千七百餘堞也。 若以水鐵,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家, 得一百姓女子, 生一子, 而辛卯放歸, 壬辰死於兵火, 彼此生死, 不相聞矣。 其後本官, 以趙憲之子, 故定爲站上熟手, 仍定爲官奴矣。 臣聞之, 問于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斫用於摩尼山禁養之處, 而其山, 皆是石山, 材木絶無可用者。 伏聞長山串所養眞雜木甚盛, 船材禁養之處, 不可輕易斫用, 而擧此大役, 不暇他顧。 且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永宗鎭僉使, 仍兼防禦之任。 以仁川爲管下, 而永宗以彈丸之地, 甚爲疲弊, 反不如南中僉使, 故不能管束本官, 則文南中有形勢之人, 故不能相下, 每有爭詰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是與初不設烽奚異哉? 北路烽絶, 例不爲異, 故烽無待令之軍, 官無査覈之擧。 雖自六鎭通火之時, 咸興以後, 每每絶烽, 是則欲連六鎭難連之烽, 反絶內地當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有告廟頒敎之擧, 如濟州賊吉云節, 不知何時之賊, 而就捕正刑者, 只是二人, 其時亦爲告廟頒敎, 百官各加一資。 旣已治逆, 告廟頒敎, 自是應行之事矣。 吳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處也。 上曰, 唯。 講畢。 上以兵曹立馬草記, 下于魚震翼曰, 兩驛馬軍營立待, 意非偶然, 而今日津船摘奸時十五匹, 騎馬不能備立, 至以卜馬, 推移入把,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殊山, 卽睥睨山也, 以其見江華城中故也。 高麗時, 改以文殊山, 缺 窄梁每入戰, 文殊卽窄梁之傍也。 至於丙子, 淸將登此山, 以十餘歲兒祭天, 因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上曰, 一體敍用, 可也。 又所啓, 今年兩麥有秋, 而雨水周洽, 秋成庶有望矣。 穀賤則糴之, 貴則糶之, 如此本末俱利, 卽古常平之意也。 如此之歲, 必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引見時, 右參贊徐文重所啓, 三南月課鳥銃, 旣已打造, 今當粧家, 而所入加西木, 當初不爲措置, 今難取用於遠地。 訓局·摠戎廳及江都所儲者, 從其容入,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政院啓曰, 卽者兵曹判書閔□□以江都城役基址看審事, 明當出往, 而本職兵曹判書命召及兼帶禁衛大將命召, 來請還納, 而考見前例, 則或替授都提調, 或仍佩往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江華留守閔鎭周疏曰, 伏以臣猥將迷滯之見, 有所披陳, 而率爾馳啓, 語無倫脊, 方用踧踖俟命。 昨於邸報中, 得見戶曹判書李世華疏本, 則乃以凌踏醜詆爲言,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鎭龜曰, 臣嘗暫爲待罪江都, 其處形勢, 雖未能周覽, 今者守臣與大臣所達, 皆言土城隨築隨毁之弊, 諸軍門物力有限, 而修築之役, 了無已時, 從前軍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正言李裕民啓曰, 臣之受人凌籍, 罔有紀極, 無論是非之如何, 在臣廉義, 萬無冒沒就列之理, 尋單未徹, 縮伏俟譴, 嚴召之命, 又降此際, 分義所在, 不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幾至三百同, 戶曹奴婢貢木及兵曹餘丁木, 其數亦多, 而本道, 木甚稀貴之故, 民間皆願以米代納云。 令本道一從民願, 及可價折米代捧, 以爲運來補賑之地,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處, 而其山, 皆是石山, 材木絶無可用者。 伏聞長山串所養眞雜木甚盛, 船材禁養之處, 不可輕易斫用, 而擧此大役, 不暇他顧。 且所入之木, 當以體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人逆天, 則生育之節, 殺伐甚矣。 雖以剛柔之義, 亦不可用剛於柔時。 故孟子曰, 行仁政而王天下, 莫之能禦也。 鐔曰, 天人一理, 本無二致, 故先儒以爲天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平之時, 不念淫雨之戒, 致此臨急狼狽之患。 卽今邊境無虞, 國家樂暇, 而前頭之事, 有不可逆睹, 以聖上居安思危之意, 不可不擇一晉陽, 以爲依歸之所矣。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皆爲監司之管下, 則恐不必以此爲拘也。 且諸鎭之分屬於喬·永兩營, 旣無物力之耗費, 又非事端之難處, 惟在於一號令之間。 若以德浦·花梁及德積·延興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視, 則亦何難守乎? 大抵戰爭之事, 勝敗無常, 故設爲城關, 時看勢頭之不好, 暫爲入守, 以防其馳突而已, 豈有將一片孤堞, 以爲我雖蝟縮繭緘, 束手安坐,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時猶不可犯禁。 況如此之時乎? 各別申飭, 嚴加禁斷, 可也。 又所啓, 伏見昨日問安批答, 以旱災如此, 病裏深憂爲敎, 臣等不勝煎悶之至。 卽今飢饉之餘,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不廢享祀者, 有何所傷, 而言之悖慢, 乃至於此, 爾等, 將何顔面, 復謁祖宗於地下乎? 可謂太嚴於執法, 而太薄於君父也, 豈不痛心哉? 至於五里三里築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且有乖於勸後之道, 分等論賞, 未知, 何如? 權大運曰, 邊將, 元無聚穀之路, 而或有希賞之輩, 至以私財, 充補賑資, 此誠可惡, 雖不可一切防塞,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江都西南水邊, 尙多未築之處。 若環一島, 盡爲築城, 則便作金湯之地。 自今以後, 定限以給, 使本府留守, 漸次連築, 磨以歲月, 則自可以環一島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備邊司啓曰, 今二十一日晝講入侍時, 同知中樞府事鄭后亮所啓, 江都乃國家保障, 而喬桐之於江都, 有唇齒之勢。 臣纔遞喬桐水使, 本營有可慮事, 故敢達矣。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故各樣身布折錢之數, 量宜加定矣。 今則年事稍登, 米價跳登, 至於木花, 雖曰稀貴, 視當初折錢之時, 亦似稍勝, 而其加定之數, 若不減捧, 則一年勤勞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前日有本兵之臣, 下往 江都, 審察形勢之分付, 而時未及擧行。 臣意則依前分付, 遣本兵之臣, 先爲周察形勢後, 詢議諸大臣而處之, 似可矣。 思永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賑恤廳啓曰, 今正月二十九日大臣·備局堂上引見入侍時, 正言孟萬澤所啓, 飢民救活之資, 鹽·醬最爲緊要, 前頭菜生之時, 尤不可無者, 而嶺西一路, 海程稍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運納於江都, 船格糧則自江都上下似好, 議于大臣, 亦似爲宜, 故敢達。 上曰, 依爲之。 又所啓, 前因故判書李寅燁所啓, 有漢原築城之擧, 姑未始役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乃是金湯之地, 益置軍餉器械, 作爲一京, 若於此處築城, 而以紫燕屬之, 彼此相倚, 以爲猗角[掎角]之勢, 脫有緩急, 必以依歸, 則不亦便好乎?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102]德浦·花梁及德積·延興, 屬於永宗, 鎭串·井浦·延白·龍媒, 屬之喬桐, 使其形勢均敵, 捍蔽江都, 則關防形便, 庶有克壯之效, 故曾已陳白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私之積蓄, 諸營之器械, 雖能運去乎? 勢將盡爲寇奪, 京城十萬丁夫, 勢將盡爲散亡, 缺一行餘淸野入守, 則我豈不能旬月自守, 而四掠無資, 則敵亦豈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方殷, 營將巡點, 姑爲待秋之意, 爲請矣。 戎政雖不可廢, 而方當農節, 民弊不些, 則待秋擧行, 似爲得宜, 故敢達。 上曰, 今春巡點, 姑令停止, 可也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江華留守沈宅賢所達, 各鎭堡土卒, 本甚貧殘, 終年所靠, 只在每朔代布, 而該曹每以曹儲不足, 或過六朔而不給, 或以麻布代給, 將無支保之勢, 而流離,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備邊司啓曰, 京畿水營, 爲海路要衝, 江都唇齒之地, 而本營物力, 十分凋殘, 軍器戰船, 無計修補, 此時海坊之虛疏, 尤涉可慮。 故曾因水使李益亨狀啓,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卽今金錫胄, 諸軍門竝皆兼帶, 且是本寺提調, 軍兵所授之馬廋病者, 亦令金錫胄, 毋論訓局軍兵, 從重決棍宜當。 且甚者, 或一年再度還納而改定, 尤極可駭,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處。 若環一島, 盡爲築城, 則便作金湯之地。 自今以後, 定限以給, 使本府留守, 漸次連築, 磨以歲月, 則自可以環一島成城, 所入物力, 留守有難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備邊司啓曰, 今二十一日晝講入侍時, 同知中樞府事鄭后亮所啓, 江都乃國家保障, 而喬桐之於江都, 有唇齒之勢。 臣纔遞喬桐水使, 本營有可慮事, 故敢達矣。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大臣·備局堂上引見入侍時, 領議政柳尙運所啓, 江都留儲木一千五百同, 許貸關西, 九百同則令關西每年還納, 而六百同, 則使之折銀上送矣。 留儲軍需·銀布何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則一年勤勞之所獲, 盡歸於一二名身布之價, 不但有所不足, 小民安得免窮且逃也。 其在子惠之道, 不可不變通矣。 大臣今方入侍, 下詢而處之, 何如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有若干稅鹽, 而例下於養賢庫沈醬時, 其他諸衙門, 則無一石應納云, 若不得公家所有, 則其勢, 不可不買用私鹽, 而卽今江上鹽價, 比前稍減云, 亦令賑廳,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上下似好, 議于大臣, 亦似爲宜, 故敢達。 上曰, 依爲之。 又所啓, 前因故判書李寅燁所啓, 有漢原築城之擧, 姑未始役, 而聞大臣之言, 則漢原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今又仰達矣。 錫鼎曰, 防·水兩營之受節制於江都, 各鎭之分屬, 此出於積久商度, 旣無弊端, 事涉便當, 寅燁所達, 是矣。 第永宗, 不必分爲左右水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缺一行餘淸野入守, 則我豈不能旬月自守, 而四掠無資, 則敵亦豈能曠日築圍乎? 至不可必守而後, 西歸江都, 東歸漢都, 未爲不可。 且夫三都, 互相爲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政院達曰, 令下矣, 問于春秋館郞廳, 則以爲, 似聞下輩所傳, 則本館堂郞, 今月十五日, 到江都史閣, 方考實錄, 而其後遲滯之由, 更無所聞, 不得的知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華留守沈宅賢所達, 各鎭堡土卒, 本甚貧殘, 終年所靠, 只在每朔代布, 而該曹每以曹儲不足, 或過六朔而不給, 或以麻布代給, 將無支保之勢, 而流離, 誠甚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獻納李眞儒上疏。 大槪, 臣之本生母, 自再昨猝得胸膈關塞之症, 症情危急, 臣聞來, 方寸前灼, 不得不留疏發向江都, 臣罪萬死。 伏乞聖明, 亟遞臣職,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備邊司啓曰, 京畿水營, 爲海路要衝, 江都唇齒之地, 而本營物力, 十分凋殘, 軍器戰船, 無計修補, 此時海坊之虛疏, 尤涉可慮。 故曾因水使李益亨狀啓,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四十餘處, 今可完畢於今月旬前, 而其中有平地處所, 起築甚難, 未免差遲, 然此亦可畢於十二三日之間云矣。 土石之役, 旣已盡力, 而卽今繼有四十八門朴鐵打造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鳶島[紫燕島], 亦欲見之矣。 師錫曰, 益勳往見時, 維重之偕往, 可矣。 上曰, 二人偕往見之, 可也。 師錫曰, 本府還上缺石, 而耗穀爲五百餘石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政院啓曰, 江都築城軍兵數書啓事, 昨日命下之後, 卽爲分付於三軍門矣。 訓鍊都監·御營廳, 趁不擧行, 致勤聖敎, 自本院, 發牌於各其郞廳, 催促書啓,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晝講時, 行副護軍李行益所啓, 江都以保障之地, 朝家特爲優恤, 各邑軍兵, 旣不徵布, 且屢設觀武才, 慰悅將士, 而至於喬桐, 實是江都咽喉, 則亦可爲重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司諫金相稷啓曰, 昨者同僚, 引避退待, 臣當處置, 而臣於此, 亦有所難安者, 頃日江都換米銀査覈之啓, 只言其銀貨之數, 故臣之避辭, 亦只言白金之數,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濡曰, 尹會請推尹世紀, 事體則好矣, 而此非世紀之本意也, 朝廷議論皆然, 故率爾仰達矣, 上曰, 禮判進來坤輿萬國全圖, 卽唐本, 而萬曆·天啓間出來,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各鎭之分屬, 此出於積久商度, 旣無弊端, 事涉便當, 寅燁所達, 是矣。 第永宗, 不必分爲左右水營, 以防禦使亦可爲之矣。 上曰, 昔者趙簡子之必欲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之勢, 而流離, 誠甚悶慮, 今後則必以本木, 逐朔上下之意, 分付該曹, 何如? 令曰, 申飭于該曹, 可也。 又所達, 自前備局堂上中, 有江都〈句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大臣·備局堂上引見入侍時, 領議政金壽恒所啓, 全羅道檢[?]營軍餉穀物, 自格浦句管糶糴於茂長者, 六千百餘石, 此外移轉於沿海五邑者, 其數亦多至二萬餘石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又啓曰, 云云事, 傳敎矣, 宣惠所儲之匱竭, 事勢之掣肘, 誠如本廳啓辭, 而但念新服之初, 蠲除之役, 爲慮用度之匱竭, 而有所反汗, 則其在事理, 大有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群議皆以爲, 如此劇賊, 旣已正刑, 則不可不告廟頒敎云, 其言誠是, 臣意亦然。 下詢于入侍諸臣, 而處之, 何如? 大運曰, 當初邦禮旣正之後, 若卽告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근현대 소실위기 재중동포 서신 DB화 및 생활문화 분석(178,6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