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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漁, 似合事宜。 且己丑年間, 又以書吏·廳直·使令·官奴·書記等, 作爲一哨, 名之曰親兵, 定出哨官, 而至於聚軍行操之際, 凡係官屬, 各有所掌, 奔走使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果能無他患入島, 則似或可以繼賑, 而御史, 又以此預待爲請者, 亦出於周詳之慮。 聖敎, 有稟處之命, 臣等今欲於入侍時陳達後, 分付本道, 使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走深藏, 豈有公然大膽, 敢出入都下者耶? 盡閱八路之人, 有難必得其人, 況初不知其人之居京居鄕, 而只缺按籍點閱, 如點軍兵, 而能得其人者哉? 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沿海邑者, 其數甚多云, 竝自備局, 抄出人名, 計其應捧價布實數, 以戶曹所儲木綿, 準數移送於都監及工曹, 而砲保及匠人所捧價布, 從市直以米折定代捧, 明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啓, 紫燕一島, 遮在江都一面, 實爲海防一隅, 卽今雖有僉使, 官秩旣卑, 事權又輕, 似難得力於鎭守, 喬桐水營船泊處, 甚爲不便, 一朔兩度湖[潮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02]江都, 此若有不便之端, 則以京倉新捧之太移送, 則可謂用舊蓄新之道矣。 左議政南九萬曰, 江都之太, 旣是陳久, 而亦必有欠縮, 發賣之價, 移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爲留守時, 始爲築堰, 而朝家分付, 只令分給他處人, 以爲募入耕食之地, 本土人及士大夫, 則勿許折給矣。 至乙巳年, 又因築堰之事, 別爲事目, 啓下知委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都·南漢同是保障之地, 朝家一視無間, 而江都則連設觀武才, 南漢則壬戌年後, 更不設行云云。 自萬科之後, 武土極多, 已有淹滯之歎, 不宜又設別科,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又所啓, 今年木花, 最爲無實, 前頭軍布, 實無備納之勢, 且冬節將迫, 許多窮民, 必多凍死之患, 臣於到任之後, 有若干拮据措備者, 若以銀貨, 換得江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一年則伐石輸運, 兩年則當完築。 役時軍丁, 非一島所可獨當, 自朝家必調給數萬軍丁, 然後可期完畢矣。 今者聖意, 必欲速完, 則必優給物力, 調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又以司僕寺官員, 以提調意啓曰, 頃日江都北一場出給本寺事, 定奪之後, 移馬一款, 待明春發遣郞廳, 看審近處諸島形勢, 而處之事, 允下矣。 其後鎭江場繼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似, 猥叨江都句管之任, 非不欲殫慮竭力, 而第臣近來, 衰耗日甚, 精力不逮, 何可獨任大事乎? 當與留守相議爲之, 而留守則在於江都, 臣則在於京中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趙泰老所啓, 臣以江都事, 有所稟達矣。 今番良役變通, 蓋出於軫念白骨徵布·隣族侵徵之弊也。 校生試講·軍官試射, 定額汰定之擧, 不無騷擾之端, 而以其本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罷哨官, 使各其班頭領次知, 宜當。 此兩款, 俱是曾前啓聞之事, 故革罷之由, 敢此仰達。 上曰, 依所達爲之。 出擧條 又所啓, 摠戎廳, 舊有軍器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今欲於入侍時陳達後, 分付本道, 使之預待矣。 且御史處所許米四千石, 太二千石內, 太則爲戶曹稅太, 此雖正稅, 朝家, 爲濟州有何所惜? 使之白給,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十之故, 自吏曹依例啓遞云。 振翰以獨子, 其七十四歲老父, 在於慶尙道密陽地, 其情理, 則誠爲切迫, 該曹之援例請遞, 在所當然, 而但念江界, 以邊上大邑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只缺按籍點閱, 如點軍兵, 而能得其人者哉? 國家, 凡於發號施令之際, 雖良法美政, 亦必思始思終而後行之, 方可無弊, 而今乃卒然爲此無稽之擧, 竊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及工曹, 而砲保及匠人所捧價布, 從市直以米折定代捧, 明春輸送於江都, 亦似宜當, 竝此仰稟。 上曰, 宣惠廳貢物價米, 以木相換事, 還寢勿施, 其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權又輕, 似難得力於鎭守, 喬桐水營船泊處, 甚爲不便, 一朔兩度湖[潮]滿之時, 只可運船, 地勢平衍, 固非據險防守之處, 日後緩急, 委屬可慮,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發賣之價, 移送戶曹, 而必計其價, 還償江都, 則似不充移來之數, 勿論其價之多少, 只爲還充本數之地, 似可矣。 李師命曰, 江都捧上之高重,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江都·南漢, 亦宜均施, 江都, 旣有連設觀武之擧, 南漢, 武士之以不均, 爲缺望者, 亦其宜矣。 柳尙運, 曾爲廣州留守, 備諳其地人情, 今方入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何? 上曰, 分揀放送。 黯曰, 趙亨期, 以徒三年擬律, 以待結末矣。 上曰, 徒配宜當, 趙正紳分揀。 黯曰, 吳命羲·李舜英, 此人等, 宜若無罪, 何以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戶曹啓曰, 別營砲放三手米匱乏之代, 江都米七千石移給事, 自廟堂, 旣已入啓定奪, 而左右水站船, 以兩都漕運事, 已爲下去, 容載船隻, 他無辦出之路,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諸般積逋, 若不於如此之年, 漸次收捧, 則將無畢捧之期, 而第四五年間飢饉癘疫之餘, 孑遺殘氓, 有若大病新蘇, 若以一歲之稍稔, 盡責累年之逋負, 則民力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領議政申琓所啓, 訓鍊都監三手糧載運待變船, 凡九隻, 而若至腐破, 則例自朝家, 分付三南, 使之改造。 卽今年限已滿, 當爲改造者二隻, 使全羅左右各營改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江華留守兪集一上疏。 大槪, 臣於前任, 情病亦有所難强, 累朔撕捱, 方俟誅譴之際, 遽有此江都居留之命。 尤非如臣所可堪承, 伏乞亟命鐫遞, 以重保釐之任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工役木布, 亦至數百餘同, 可以容入。 物力雖多, 營始大事, 豈可計較乎? 鎭遠曰, 臣亦曾聞尹趾完之言矣。 其時嶺南儲置米, 其數頗優。 若以此米三萬石,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何可獨任大事乎? 當與留守相議爲之, 而留守則在於江都, 臣則在於京中, 彼此物情, 未能詳知。 廟堂諸臣中, 擇一二幹事者, 與之各陳所見, 商確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趙泰老所啓, 臣以江都事, 有所稟達矣。 今番良役變通, 蓋出於軫念白骨徵布·隣族侵徵之弊也。 校生試講·軍官試射, 定額汰定之擧, 不無騷擾之端, 而以其本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擧孝廟同德之臣, 看作重罪, 而反以宣擧之敢援聖祖, 欲歸同浴之地, 謂之無失者, 獨何故也? 夫杜擧之說, 雖欲借喩曲解, 其事實之不倫, 何哉, 凱風寒泉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上御時敏堂, 引見。 入侍。 行兵曹判書金錫胄進曰, 昨日以榻前所達五部點考事, 言于大臣及柳赫然矣, 大臣曰, 今日欲爲請對, 有所達事矣, 宋尙敏奴子,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言于備局, 速爲擧行, 可也。 宗道曰, 臣嘗往藥房, 聞大臣之言, 則以鄭維岳之言爲是, 而第此等甄拔, 非可猝然爲之, 當從容訪問而後, 乃可擧行云矣, 然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02]江都, 亦似宜當, 竝此仰稟。 上曰, 宣惠廳貢物價米, 以木相換事, 還寢勿施, 其餘所陳等事, 皆爲便易, 竝依爲之。 侍讀官李墪所啓, 畿邑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勢平衍, 固非據險防守之處, 日後緩急, 委屬可慮, 若令水使, 移營於紫燕, 則船泊處, 旣勝於喬桐, 江都紫燕, 相爲應援號令, 水路, 亦與僉使有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方入侍, 下詢, 何如? 聞渠輩之言, 則守禦廳, 設營於京中時, 則將官輩, 得赴於春塘臺觀武才, 而自移鎭之後, 不爲許赴, 又不如江都之別設, 以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黯曰, 吳命羲·李舜英, 此人等, 宜若無罪, 何以爲之? 上曰, 分揀。 大運曰, 頃以大提學差出事, 陳箚矣。 別兼春秋一員, 實錄相考事, 命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戶曹啓曰, 別營砲放三手米匱乏之代, 江都米七千石移給事, 自廟堂, 旣已入啓定奪, 而左右水站船, 以兩都漕運事, 已爲下去, 容載船隻, 他無辦出之路,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李寅燁曰, 數三年來, 江都軍餉之收蓄者, 至於十萬餘石, 則比諸山城之匱竭, 雖似有間, 而猶不準於曾前所儲之穀, 保障重地, 誠爲可慮。 一時充補, 其勢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改造, 而改槊船二隻, 則所入船材, 不至如改造之多, 送于忠淸各營, 使之依例改色以送, 何如? 上曰, 依爲之。 左議政李畬曰, 都監三手糧所載船, 冬月,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正言具萬理啓曰, 江都, 乃保障重地, 爲任不輕, 其不可人人濫授也, 明矣。 新除授留守兪集一, 歷典郡邑, 無一善狀, 居官乏廉謹之聲, 爲政多苛虐之誚,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取用, 則可以始手云, 而卽今則南山之入與不入, 爲先定奪, 然後可以議築役, 自上下覽圖形後, 速賜處分, 好矣。 權曰, 南山當面高壁, 若不幷包,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傷, 貧寒軍卒, 難以自修, 有此推移放火云。 故聞甚驚駭, 抄出破傷之銃, 則三十哨中, 可改者八百四十餘柄矣。 渠輩難以自辦, 故不得不自官改造以給, 而本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於京中, 彼此物情, 未能詳知。 廟堂諸臣中, 擇一二幹事者, 與之各陳所見, 商確爲之, 則似好矣。 錫鼎曰, 此言是矣。 禮判, 惟當江都句管之任,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江都事, 有所稟達矣。 今番良役變通, 蓋出於軫念白骨徵布·隣族侵徵之弊也。 校生試講·軍官試射, 定額汰定之擧, 不無騷擾之端, 而以其本出於惻怛民隱之意,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官李墪所啓, 畿邑收米及賑恤廳分糶之穀, 輸納江都事, 旣已定奪, 而若使本廳收捧, 輸送江都, 則可以省弊矣。 待罪龍仁時見之, 則江都捧上之規, 比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別營砲放三手米匱乏之代, 江都米七千石移給事, 自廟堂, 旣已入啓定奪, 而左右水站船, 以兩都漕運事, 已爲下去, 容載船隻, 他無辦出之路, 姑待湖南稅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李寅燁曰, 數三年來, 江都軍餉之收蓄者, 至於十萬餘石, 則比諸山城之匱竭, 雖似有間, 而猶不準於曾前所儲之穀, 保障重地, 誠爲可慮。 一時充補, 其勢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云, 三手糧, 則自有船價, 賃船無妨, 而待變爲重, 似宜造給矣。 卽今船材漸乏, 前頭之憂, 實爲無限, 造船之中, 戰船最重, 漕船次之, 待變船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又所啓, 常平廳月課火藥·鉛丸, 優數措備, 分送各邑之外, 餘數則一一留儲, 以爲不時之需事, 曾已定奪矣。 卽今所餘者, 火藥五千餘斤, 鉛丸八萬箇, 都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之間, 有所不計, 民安得奠居也? 田宅旣已盡網, 而衆墩簇立, 視若碁布, 民皆駭愕, 相顧號哭, 怨詈罔有其極。 夫身爲按道之身[臣], 積失民心, 貽怨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都, 則元無納布之民, 且無隣族侵徵之事, 校生軍官額數, 各千餘名, 而校生則義旅作隊, 軍官則壯旅作隊, 俱有千把摠哨官團束參操, 則與行伍之卒,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大臣·備局堂上引見入侍時, 領議政金壽恒所啓, 全羅道檢[?]營軍餉穀物, 自格浦句管糶糴於茂長者, 六千百餘石, 此外移轉於沿海五邑者, 其數亦多至二萬餘石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2]江都時, 往見而來, 嘗言紫燕形勢之勝於江都矣。 自孝廟朝, 令備局堂上一員, 主管經營措置, 意非偶然, 而事未就緖, 未免中廢, 今則專屬御營廳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難保其必無, 移送他邑, 何如? 領議政金壽恒曰, 此輩, 仍置茂山, 則前頭生事可慮, 移送南方, 似宜矣。 上曰, 大臣所達誠然, 移送南方, 可也。 廣州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民必難支堪, 五六字缺 秋還上租穀, 趁今以麥代捧, 則必有樂從者矣。 以此意分付各邑, 數字缺, 何如? 壽恒曰, 今年牟麥, 雖曰豐熟, 本牟還上之外, 代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備邊司啓曰, 江都城役, 待秋擧行事, 春間曾已定奪矣。 三軍門浮石, 將爲始役於今月望後, 當有擇日告祭之擧, 令該曹, 斯速擧行, 何如? 答曰, 允。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引見時, 領議政南九萬所啓, 江都, 自是保障重地, 而或慮有行幸之時, 設置御座船七隻, 常時則不敢用, 使江岸假家而藏之矣。 蓋此船之設, 非古制也, 自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尹趾善又所啓, 忠淸監司洪受疇, 以楊津·貢津·安興三倉米移轉, 依上年例, 除耗捧留本官事, 上疏陳請矣。 上年, 或有腐朽米分給改色, 今此移轉還上, 不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李寅燁所啓, 三南米二萬石, 劃送南漢事, 旣已定奪, 而但南漢地勢, 異於江都, 輸運之際, 事多難矣。 蓋水下船隻體大, 難泝上流, 渡泊京江之後, 又復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意, 似宜參酌減數, 以省船材之用矣。 領議政申琓曰, 此不可猝然變通, 當熟講善處, 而第江都待變船, 其數甚多, 常時別無待變之用, 長泊於江邊,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又所啓, 臣行過海西地, 處處人民來訴, 皆以庚辰·辛巳·壬午·癸未四年身役, 三分捧一, 爲萬分難堪, 山郡上年設賑四邑, 尤以延安·江都, 兩年移轉, 一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分給三南貢物, 以米三萬石, 將欲取用於賑廳, 而今此城役, 旣是猝辦, 雖以此盡歸之糧料, 亦當劃送役布, 則分定於各道監兵營, 使之取用一分, 而訓局則耗弊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北一場出給本寺事, 定奪之後, 移馬一款, 待明春發遣郞廳, 看審近處諸島形勢, 而處之事, 允下矣。 其後鎭江場繼有許給之命, 許多國馬移放之處, 不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錫鼎曰, 李寅燁書啓中, 以兩營及各鎭分劃控制等事, 頃日筵中, 待留守上來, 更爲稟定事, 定奪矣。 今日留守入侍, 詢問而處之, 何如? 朴權曰, 臣等巡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則渠輩以爲差勝, 而一朝汰定軍額, 則呼冤不貲。 江都則與各邑有異, 保障之地, 宜以收拾人心爲本, 今雖汰定, 別無實效, 徒貽呼冤之端。 江都則校生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疊。 又達曰, 此乃江華留守沈宅賢狀達也。 甲子年全羅道癸巳田稅, 以本府軍餉二萬三千石相換京運後, 其代米令本道輸納本府, 而一千石則丁酉年賙賑次, 入送濟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大臣·備局堂上引見入侍時, 領議政金壽恒所啓, 全羅道檢[?]營軍餉穀物, 自格浦句管糶糴於茂長者, 六千百餘石, 此外移轉於沿海五邑者, 其數亦多至二萬餘石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又啓曰, 畿甸·海西軍兵, 割屬江都之後, 議定事目, 分付江都及三道之意, 稟啓, 命下矣。 鎭撫使事目磨鍊, 別單書入之意, 敢啓。 答曰, 知道。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賴於本廳, 若以小事言之, 狀啓紙, 皆取於本廳, 本廳, 以此實難支堪, 若如江華例, 劃給田稅, 則庶可補用, 敢此仰稟。 上曰, 此言, 何如?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至腐破, 其理然也。 李秀彦以其在陸之故, 罅隙易生, 太半已至破傷云矣。 上曰, 自今罷去, 更勿造置, 可也。 南九萬曰, 此船若罷, 則當分付其置處, 本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尹趾善所啓, 大司諫李濡, 以江都木二千同, 移給平安道事, 及各邑還上, 勿定分數, 隨民力捧納事, 上疏矣。 江都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不當, 故臣於前日回啓中, 如此之類, 請令造送矣。 今當依此定節目, 以爲申飭之地矣。 左議政李畬曰, 江都待變船, 自朝家造給之外, 又以其退船,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在之數, 爲千餘同, 而木品麤短, 以其二疋, 當砲保布一疋, 又於本道軍兵試射時所用, 一年常至四五百同云, 以其餘數, 取給都監, 亦未爲優足矣。 卽今戶兵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江都時, 內城築設事, 有所傳敎, 而其後三四年, 迄無所聞矣。 頃日禮判, 筵中言城事, 故喜聞之矣。 都城則守之爲好, 而非但闊大難守, 不可以一二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德池垌], 自是官家所管, 則豈有民田之混入者乎? 設有之, 李世載必已出給矣。 其後奸民, 多有圖成文券, 稱冤呈訴, 故泰耉未免聽理出給, 今依吏判所達,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則校生試講·軍官試射之事, 姑爲停止, 似宜。 詢問于大臣·諸臣, 何如? 上曰, 其言, 何如? 相愚曰, 朝家旣以試才試講爲節目, 而江都異於他所,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疊書 以備邊司言啓曰, 畿邑尤甚被災面居生數字缺則還上只捧三分之一事, 自戶曹曾已定奪一字缺會, 而江都·南漢則係是軍餉之故, 不敢一數字缺付, 而江華一境,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兵曹啓曰, 昨以宣仁門南邊宮墻內, 新造軍營數間, 以添宿衛事, 定奪矣。 臣錫胄, 退出後, 召匠計之, 則木石, 時無見存者, 工匠中, 可以使役者, 亦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官輩, 尤以此爲悶云。 上曰, 復設, 不是別有建置者, 只送舊印而巳, 使之復號, 可也。 鼎重曰, 旣罷而復設, 則事體亦不輕, 更可詢議於諸大臣。 上曰,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大臣·備局堂上引見入侍時, 領議政金壽恒所啓, 全羅道檢[?]營軍餉穀物, 自格浦句管糶糴於茂長者, 六千百餘石, 此外移轉於沿海五邑者, 其數亦多至二萬餘石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欲得掛榜者而治之, 本非以匿名書取實而成人之罪也。 然而當初處分, 旣不能盡如法例, 故奸細不逞之徒, 冀其復如前日之自朝家取見, 其習益長。 今若定爲事目,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又啓曰, 畿甸·海西軍兵, 割屬江都之後, 議定事目, 分付江都及三道之意, 稟啓, 命下矣。 鎭撫使事目磨鍊, 別單書入之意, 敢啓。 答曰, 知道。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田稅, 則庶可補用, 敢此仰稟。 上曰, 此言, 何如? 領議政金壽恒曰, 江都田稅, 果爲劃給本府, 則廣州亦當一體爲之, 而以常規言之, 則田稅,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大臣·備局堂上引見時, 左議政睦來善所啓, 扶安·格浦, 當初設鎭, 有爲江都, 聲勢相依, 中間移屬本道, 未知何故也。 近日差出僉使, 且令禮曹判書柳命賢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本曹料理題給, 故每有難繼之患。 此船, 歸之各站, 以爲使用之地, 其所載運者, 卽惟正之供, 豈不合於事宜耶? 閔鎭周曰, 此船, 係江都津船之傷破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救, 若至一萬五千餘石, 則其在聽聞, 雖似數多, 而麥秋尙遠, 且當農節, 救民之道, 當倍於春初無事之時, 而卽今餘儲, 只有七八千石, 臣不敢多數請得,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尹趾善所啓, 大司諫李濡, 以江都木二千同, 移給平安道事, 及各邑還上, 勿定分數, 隨民力捧納事, 上疏矣。 江都木綿, 因本道啓請, 一千五百同, 覆啓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今日大臣·備局堂上引見入侍時, 左尹羅弘佐所啓, 江都城役事, 浮石則今方始役, 湖西保米, 來納役所事, 已爲分付, 而其來遲速, 有未可知, 江都留守句管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以其餘數, 取給都監, 亦未爲優足矣。 卽今戶兵曹, 固爲匱乏, 而衛卒衣資, 過時不給, 實爲目前之急, 不暇計他, 理宜充給, 曾前戶兵曹, 或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閔鎭厚曰, 臣曾爲留守, 一日卽遞。 雖私行累度往見, 築城形勢, 曾未料量, 而竝包南山, 似爲太闊, 就其內而築之, 似可矣。 行司直金錫衍曰, 小臣曾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錫鼎曰, 李寅燁書啓中, 以兩營及各鎭分劃控制等事, 頃日筵中, 待留守上來, 更爲稟定事, 定奪矣。 今日留守入侍, 詢問而處之, 何如? 朴權曰, 臣等巡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生·軍官, 各有係名, 雖在事目, 旣下之後, 創出無前之規, 汰定軍額, 似不宜矣。 上曰, 諸臣各陳所見。 錫恒曰, 汰定軍額, 蓋慮逃故之難充,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正言金台壽啓曰, 臣以己卯榜中之人, 冒進榮次, 情勢難安, 且於月初, 重得吐血之症, 失血無算, 眞元大脫, 若將垂絶。 以此病狀, 尤無起動之勢, 玆敢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自格浦句管糶糴於茂長者, 六千百餘石, 此外移轉於沿海五邑者, 其數亦多至二萬餘石矣。 江都軍餉, 今方料理充上, 格浦本爲江都聲援, 則以其軍餉,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立事目中, 添入李煥事曲折, 以爲曉人之地, 可也。 此一條, 出朝報 大臣·備局堂上引見時, 始壽曰, 臣有區區之見, 敢此仰達。 自仁祖朝, 除出戶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分屬於旁近河東·求禮等縣則似可, 下詢廟堂而處之, 何如? 上曰, 不可不變通, 令廟堂, 問于本道監司而處之。 又所啓, 故判書朴長遠, 善養其偏母, 誠孝備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亦不可〈不〉深念, 如不得已, 則守禦使, 還入京中或可, 而至於置之山城, 使之仍領京中將校·軍兵, 則決不可矣。 如以一時盡罷, 爲無漸, 則或定三分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江華留守閔鎭周所啓, 本府軍餉還上蕩減者, 洽[給]數萬石矣, 自先朝銖累寸積, 僅成儲蓄, 而一時蕩減之數, 至於此多, 臣則守土之官也, 不無缺然之心。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今日大臣·備局堂上引見入侍時, 左尹羅弘佐所啓, 江都城役事, 浮石則今方始役, 湖西保米, 來納役所事, 已爲分付, 而其來遲速, 有未可知, 江都留守句管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未時, 上御宣政殿。 江華留守金錫衍, 留待引見入侍, 留守金錫衍, 右副承旨任胤元, 假注書兪彦明, 記事官金興慶。 上曰, 進前。 錫衍進伏, 上曰, 卿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근현대 소실위기 재중동포 서신 DB화 및 생활문화 분석(178,6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