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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判府事崔錫鼎箚子。 大槪, 敢陳所懷, 冀蒙裁處事。 入啓。 原疏缺答曰, 省箚具悉卿懇。 今玆往審江都之命, 蓋所以重其事體也。 卿其安心往省焉。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入侍時, 江華留守閔鎭遠所啓, 小臣六月入侍時, 江都城役勿爲停輟事下敎, 臣以秋則浮石, 冬則運石, 開春後, 當始築役之意, 仰達而退。 其時, 前領相李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利益, 而地連山城, 中無礙隔, 形勢順便, 不但爲操場之得其所而已。 故臣敢圖其地形以來, 特賜睿覽後, 下詢于廟堂, 卽爲定界割給事, 分付于京畿監司處,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藥房入診入侍時, 提調趙泰耉所啓, 忠淸道丁丑條稅太, 仍留賑資, 其代以湖南山城穀, 上納本曹, 而留賑太代, 則待秋作米, 移納江都矣。 其中牙山縣之鄕田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引見時, 右議政吳始壽所啓, 頃日登對時, 水原府所貸戶曹木綿三十同, 則勿爲會減, 其代以管餉屯穀移給事, 旣已定奪, 而第木綿三十同之價, 其數零星, 殊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備邊司啓曰, 云云事, 傳敎矣。 實結田稅之不當減, 地部經費之不能支, 誠如該曹啓辭, 而但念今年農事之凶荒, 畿甸比他道特甚, 不但根本之地, 理宜憂恤,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又啓曰, 江都軍兵四千餘名, 而地方甚浩, 脫有緩急, 勢難獨守, 雖使通津·仁川等近邑軍士, 竝爲入守, 亦難分守諸堞, 此非蒼卒可爲之事, 不可不豫爲講定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戶曹啓曰, 本曹木同之儲置於江都者, 發遣郞廳, 旣已看審, 則南漢所儲地木之數, 亦至於九百餘同, 而一置於庫中之後, 不爲看審, 已過十年, 必不無腐傷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御營軍, 亦當輪替, 而又以病疫之熾盛, 還爲姑停矣。 今年年事, 初有登熟之望, 近聞收獲無實, 未免爲失稔之歸云, 若依常年例, 一竝上番, 則有違於當初因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主管處改築之事, 待秋卽爲擧行事, 曾已陳達矣。 至於浮石之役, 則必於夏間雨水前, 預爲浮置, 可無臨期窘迫之患, 故方爲發送將校, 蕫察役事, 而第念所築土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又所啓, 崔元立事。 措辭見上 上曰, 勿煩。 上曰, 承旨進來。 弘楨, 進前伏。 上曰, 典獄罪人孝心·月心等, 所當日次開坐, 鉤得情實, 而近來加刑公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寅燁曰, 喬桐旣設水營, 則宜料糧餉, 而卽今見在之數, 甚爲零星, 人戶亦且不少, 而還上亦爲不足云。 本府上納收稅米太六百餘石, 若許留作, 軍餉數少,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江華留守黃欽疏曰, 伏以臣冥行缺自顧慙恧, 分甘廢捐, 乃於千萬意象之外, 忽承江都新命, 臣驚惶震惕, 罔知所以自措。 夫江都一府, 係是保障重地, 目今雖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引見時, 閔鎭遠所啓, 江都·南漢, 俱是國家保障之地, 凡事不宜異同矣。 臣曾待罪江都, 見中軍之差除遞改, 一從留守之去留, 竊以爲不然, 陳達榻前, 定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南別倉米, 今方上來, 京司可支用, 一萬石依數許給, 似好矣。 寅燁曰, 民間若如戊寅之急, 則雖二萬石可也, 而今年本道飢荒, 不至於乙丙之慘, 三倉米許令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金弘楨啓曰, 中樞府錄事, 以崔判府事意來言, 往審江都事, 命下矣。 都監犒饋, 定於今二十六日, 過此後, 卽當出去云矣, 敢啓。 傳曰, 知道。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上曰, 令廟堂稟處。 又所啓, 本府, 當兩西孔道之初程, 處京都咽喉之重地。 旣有大興山城新兼管理使號, 實與南漢·江都鼎峙, 而爲掎角之勢, 其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則待秋作米, 移納江都矣。 其中牙山縣之鄕田反畓被災者, 六百二十一結零, 仍存田結, 不以畓懸錄, 故旱田本無給災之規, 不得減稅, 所出太代米一百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此山若不築城, 則盜賊必有窺覘江華之勢矣。 蓋文殊山, 西則角串, 東則通津, 從某至某有某水, 從某至某有某阻, 其相去不遠, 而直與江華相接, 若能築城以備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依當初分付, 區別新舊而收捧, 今若有所變改, 則不但有錯離難便之端, 該曹所謂無備嗣歲救民之資云者, 誠不可不念, 此則依當初定奪, 施行, 何如? 答曰,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又啓曰, 江都軍兵四千餘名, 而地方甚浩, 脫有緩急, 勢難獨守, 雖使通津·仁川等近邑軍士, 竝爲入守, 亦難分守諸堞, 此非蒼卒可爲之事, 不可不豫爲講定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府啓, 請海西內地新設鎭堡, 一倂革罷事。 還收前應敎金萬吉, 前校理黃欽, 前修撰金盛迪·洪受瀗, 前博士宋相琦罷職不敍之命事。 自今以後, 無論公私石物,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父, 名在凶疏, 是參凶疏之人, 臣聞來, 竊不勝崩隕冤痛, 求死不得也。 夫聖祖一言之褒, 昭如日星, 足以百世不磨, 且臣父死後, 知舊誄挽, 彰明較著,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掌令洪璛啓曰, 臣以無似, 屢忝憲職, 旣不能隨人俯仰, 又不能當事斟量, 尙招妄率之誚, 猶守樸陋之性, 其不合時樣, 動取顚僨, 臣亦自知病矣。 乃者,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常年例, 一竝上番, 則有違於當初因年凶輪番之意, 臣, 與都提調柳尙運相議, 則以爲必須更爲稟定云, 而久未行公, 今始入侍, 故敢此仰達矣。 上曰,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暗門女墻等役, 旣涉浩大, 所入物力, 亦甚不貲, 其在事體, 小臣當爲一番往審後始役, 而臣旣不可出離輦轂之下, 往來亦似有難, 姑先下送臣所管軍色郞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又啓曰, 今此江都築城時, 凡大小事, 留守當爲次知, 而主管堂上二員, 亦宜一體看檢, 寅燁·鎭遠, 使之交替往來, 以爲終始完役之地, 何如? 上曰, 依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寅燁曰, 喬桐旣設水營, 則宜料糧餉, 而卽今見在之數, 甚爲零星, 人戶亦且不少, 而還上亦爲不足云。 本府上納收稅米太六百餘石, 若許留作, 軍餉數少,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前, 定爲式例, 其後中軍, 自兵曹啓下, 且定朔數矣。 卽今廣州亦然, 故復此陳達, 山城中軍全百祿, 卽自上知名之武士也。 資級履歷頗高, 而前府尹朴弼明,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備邊司啓曰, 南漢軍餉反庫, 因守禦使閔鎭厚啓聞, 前後府尹, 旣已拿問査處矣。 其條陳中, 各庫落板腐朽之穀, 與無面虛錄有間, 故斛量作石, 以待朝家處分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下直, 守令留待引見入侍時, 訓鍊大將李基夏, 工曹參判閔鎭遠, 明日內除辭朝, 下往江都, 城址形便看審後稟定事, 榻前下敎。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牧場載錄, 故自本守[本寺]入啓, 還推其田畓, 而設場矣。 今因防營之新設, 若令還給, 則當此海防申飭之日, 雖本來牧場, 尙不敢靳固, 況此新設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興山城新兼管理使號, 實與南漢·江都鼎峙, 而爲掎角之勢, 其爲關防重鎭, 固不下於兩處, 而若其緩急可恃之形, 則恐無大於此矣。 設營之初, 朝家事目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鄕田反畓被災者, 六百二十一結零, 仍存田結, 不以畓懸錄, 故旱田本無給災之規, 不得減稅, 所出太代米一百十二石零, 竝入於收租實結, 移納江都數矣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某阻, 其相去不遠, 而直與江華相接, 若能築城以備, 則盜賊不敢入缺軍兵, 則通津·南陽兩營, 可以入守, 銀子則以江華餘儲, 載船缺且山中, 雖曰水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例責出於畿民, 則當自宣惠廳, 給其價米, 而本廳一年所捧, 不足以支一年之用, 凡干酬應, 常患不足, 況此近萬石之米, 決無辦出之路, 勢將以賑廳及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又啓曰, 江都軍餉, 亦甚難處, 積年陳久之穀, 將來未免腐棄之患矣。 壬子·癸丑所捧之米, 尙在庫中, 臣取其尤甚者, 而使之炊飯, 則有酸臭, 作粥則無粘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刦諸生署名, 衆不敢不從, 或有踰垣避去者, 君奮曰, 臨死苟免, 恥也。 前問此事何義, 其徒盛氣, 核其名以懾之, 君徐言欲知我名, 取筆來, 卽大書姓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朝參入侍時, 開城留守李鳳徵, 平安兵使韓樞, 朔州府使徐穉, 昌城府使金重三改差事, 榻前定奪。 兵曹啓曰, 平安兵使有闕, 依近例令備邊司議薦, 何如?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領議政南九萬所啓, 卽今戶曹所儲, 可支今秋云, 而今年田稅, 來年四五月間, 方可上納, 且今秋豐登, 亦未可知, 若不預爲其間可繼之道, 則誠極可慮, 頃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江都軍餉米, 前後移轉之數, 殆四萬石矣。 在當時則蒙惠實大, 而江都積貯, 餘存無幾, 其在陰雨之備, 誠極寒心, 不可不趁速還納, 而屢年荐飢之餘,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捧口布, 非不知分數區別, 而近於太寬, 而參以形勢, 亦不得不如此矣。 得聞外方之言, 以爲今年則庶可依定式徵捧云。 今若續續變改, 則外方必難適從, 事甚可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未滿千同, 其中二百同, 下送江華, 卽今所儲, 如是匱乏, 都監則兵卒衣食, 專仰於戶兵曹, 誠難支當。 且臣曾經騎省佐郞, 軍色所留木數, 至有二千同矣。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寅燁曰, 今此江都築城時, 三南僧軍, 當爲調發, 而不可預爲稟定, 通三南三千名, 使之限一二朔, 爲先輪回赴役事, 分付, 何如? 上曰, 依爲之。 以上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又啓曰, 英陵蟲損木, 自江都取用事, 曾已定奪, 而數百年長養之材, 率皆拱抱, 不合於大椽。 故以體木五百株, 加用之意狀請, 今方回啓, 而大木腐傷之際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城中軍全百祿, 卽自上知名之武士也。 資級履歷頗高, 而前府尹朴弼明, 曾以中軍, 人多勸令勿赴, 則百祿曰, 吾受國恩甚厚, 苟有酬報之道, 豈憚燥濕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工曹參判閔鎭遠疏曰, 伏以, 臣冒嫌犯戒, 濫帶樞密, 自知不似, 尋常愧懼, 而黽勉隨逐, 不能力辭, 終至聖敎俯勤, 開示迷塗, 臣誠惶感慙悚, 直欲鑽地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不惜此擧措也? 臣之僭竊已多, 干負已深, 螻蟻微悃, 亦嘗縷縷申暴, 自以爲亦已披瀝略盡矣。 今乃不復加察, 無所裁量, 誤恩如前, 申命輒下, 一授再授,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多至二千餘同, 卽今留庫者, 只是年久渝色者八百餘同矣。 各衙門·各營門貸去之後, 無意還報, 誠可悶慮, 取考文書, 則平安監營貸去未報者九百餘同, 賑恤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無異同矣。 南漢·江都, 則旣有設行試才之擧, 而江都則頃又啓請試才, 蓋出於激勸興起之意, 而本府則以其軍門草創營號未建之故, 不遑慮此以致欠闕。 此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不得減稅, 所出太代米一百十二石零, 竝入於收租實結, 移納江都數矣。 戊寅年九月日, 因道臣狀請, 本曹覆啓, 以反畓災頉, 特爲蕩滌, 而自本曹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江華留守趙泰老所啓, 摠戎廳, 舊有軍器庫舍於江都, 而今春定奪後, 移置軍器於北漢, 庫舍四間, 大廳三間, 自摠廳將爲撤移以去矣。 曾前御營·禁衛兩營倉舍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今日召對入侍時, 吏曹參判趙師錫所啓, 還上蕩滌之擧, 實關後弊, 且啓奸民倖希之心, 固不當容易請減。 至於軍餉, 事體尤別, 而廣州辛亥以上未捧各穀, 多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到今追崇, 恐合事宜。 呂聖齊·安縝·朴泰孫·權持, 以爲我朝列聖, 皆上廟號, 而獨於恭靖大王, 未有廟號, 追擧闕典, 實合事宜, 而莫重典禮, 不敢輕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又啓曰, 江都所屬八島, 漁採所産者五處, 而其中長擧島[長峯島], 則兵曹判書金錫胄, 欲爲聚民設鎭之計, 罷其牧場, 仍置屯將, 遂爲御營廳所屬。 蓋本府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甕所捧, 而都監所納, 則每年不減, 不得已別定監色, 島民中有船隻者, 使之捉納, 格軍則以煙戶定送, 自五月至九月, 僅捉二十餘甕之蝦, 沈醢鹽石,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今浦落廣闊, 便成一海, 彼此津船各五隻, 自公家旣爲造置。 高陽境, 則本無居民, 令本郡定置五名, 至於給復, 使之濟人, 而津夫無一名居其津頭。 故陽川境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領議政南九萬所啓, 卽今戶曹所儲, 可支今秋云, 而今年田稅, 來年四五月間, 方可上納, 且今秋豐登, 亦未可知, 若不預爲其間可繼之道, 則誠極可慮, 頃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而屢年荐飢之餘, 轉輸之勞, 耗費之弊, 民所難堪。 且於其中, 必多流亡絶戶之類, 自朝家或有督納之令, 則未必其準捧, 而終爲請減之歸, 如是則江都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收, 以至二百石未收, 亦當同其分數, 勿論數之多少, 皆將爲不能準捧之歸, 豈非可慮乎? 今此兩道, 設令更減分數, 通諸道, 未必一一平均, 而一道之內,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盡分, 而道臣, 想必爲前頭之慮, 因入侍有此陳請也。 湖西山邑被災特甚, 楊津則勢不可不給貢, 津穀, 則元數不當, 此兩倉則依所請施行, 至於安興,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至有二千同矣。 卽今未滿千同, 已甚可慮, 前頭酬應, 何以支當乎? 本曹五十同, 旣已移送都監, 其餘所請之數, 追後繼給, 似爲宜矣。 李畬曰,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又啓曰, 英陵蟲損木, 自江都取用事, 曾已定奪, 而數百年長養之材, 率皆拱抱, 不合於大椽。 故以體木五百株, 加用之意狀請, 今方回啓, 而大木腐傷之際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上曰, 外方守令, 決訟之際, 捨公心挾私意者, 甚多。 凡干請囑, 一切勿聽之意, 入侍守令處分付。 守令以次退出。 上曰, 承旨進來。 命雄伏于前。 上曰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又以扈衛別將, 以大將意啓曰, 臣錫鼎今將承命, 往審江都矣。 出去未還間本廳所屬軍官等, 當爲移屬於他廳, 何大將處移屬乎? 敢此仰稟。 且大臣因公出使時,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以此議于諸大臣處, 則皆以臣言爲好。 徐宗泰以爲, 文書所付之數, 割用於城役之後, 雖不能盡充本數, 各隨力還償則似好云, 此言誠是, 而臣素無幹辦之才, 朝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而自本曹不爲知委於江都, 其時本縣, 亦不卽枚報變通, 尙在江都未收之中, 今者自江都行關, 催促本縣, 始爲報來, 請爲蕩減, 考見其時文書, 則實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江華留守趙泰老所啓, 摠戎廳, 舊有軍器庫舍於江都, 而今春定奪後, 移置軍器於北漢, 庫舍四間, 大廳三間, 自摠廳將爲撤移以去矣。 曾前御營·禁衛兩營倉舍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備邊司郞廳, 以領議政意啓曰, 今十三日引見時, 諸臣所奏擧行條件, 多有疎漏者。 臣所請新出身除防米, 旣全納於江都及各其道海倉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今日召對入侍時, 吏曹參判趙師錫所啓, 還上蕩滌之擧, 實關後弊, 且啓奸民倖希之心, 固不當容易請減。 至於軍餉, 事體尤別, 而廣州辛亥以上未捧各穀, 多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不可勒令分給於饑荒望哺之時。 臣意則卽今戶曹所儲之太稍優, 可支二三年云, 令戶曹, 移送新捧之太於江華, 而取來陳太, 換充於需用之數, 如無可用之處, 則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濟人, 每當風波流澌之時, 頻有臭載之患, 脫有緩急, 勢必狼狽, 事之可慮, 莫大於此。 孔岩上流, 有楊花渡, 改以此處, 定爲官津, 則非但江水不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今秋豐登, 亦未可知, 若不預爲其間可繼之道, 則誠極可慮, 頃日戶曹判書李世華, 請得江都米四五萬石者, 以此故也。 至於賑廳, 所儲尤少, 飢民日增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以備緩急之需, 而無他拮据之道, 守禦廳舊廳, 與校書館相換之後, 空舍無人守護, 年久頹落, 若過一年二年, 則將爲無用之物, 誠爲可惜, 斥賣捧價, 送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010402]江都之地, 而其移轉本穀之散在民間者, 自本道區別其可捧與不可捧, 或蕩滌或仍留各邑, 則旣除侵徵轉輸之弊, 亦無軍餉欠缺之患, 以此意有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當, 此兩倉則依所請施行, 至於安興, 則似當姑留, 觀勢處之矣。 申琓曰, 況當海防申飭之日, 尤不可留置, 楊津·貢津兩倉, 先令分給, 何如? 上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今日大臣引見時, 左議政徐宗泰所啓, 此黃海巡撫使尹就商狀啓也。 平山等數三邑, 癸未·甲申受去江都·京倉移轉米太, 合二千餘石, 上年秋, 因本道狀請, 許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江都取用事, 曾已定奪, 而數百年長養之材, 率皆拱抱, 不合於大椽。 故以體木五百株, 加用之意狀請, 今方回啓, 而大木腐傷之際, 所見甚不佳, 稚松亦不能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江華留守李寅燁所啓, 臣於年前登對時, 以三軍門藥丸, 間式年移置於江都·南漢事, 有所定奪矣。 臣未知厥後諸軍門, 果皆輸送與否, 成命之下, 不可不着實擧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上曰, 外方守令, 決訟之際, 捨公心挾私意者, 甚多。 凡干請囑, 一切勿聽之意, 入侍守令處分付。 守令以次退出。 上曰, 承旨進來。 命雄伏于前。 上曰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許玧啓曰, 中樞府錄事, 以判府事崔錫鼎意來言, 江都往審事, 今日將除朝辭出去矣, 身病自昨添重, 不得發行, 欲於前頭觀勢下去云矣, 敢啓。 傳曰, 知道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數, 各隨力還償則似好云, 此言誠是, 而臣素無幹辦之才, 朝家必令隨力還償, 則當與戶曹·宣惠廳相議, 有所料理, 而伏聞備局所管關西木每年所捧三百餘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時本縣, 亦不卽枚報變通, 尙在江都未收之中, 今者自江都行關, 催促本縣, 始爲報來, 請爲蕩減, 考見其時文書, 則實狀如此, 反畓田結所出太代米一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飢饉日甚, 欲趁未解氷之前, 以餘存之米, 分給還上於都民, 而如有不足之數, 則當以戶曹穀物充給矣。 上曰, 依爲之。 掌令吳挺昌所啓, 專對之任, 不輕而重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而若其死於逆獄, 則皆稱其瞹昧矣。 許積曰, 旣非犯逆, 則其子孫, 固無不可用之理。 故曾在孝廟朝, 使冕之弟最, 製進公一二字缺文。 今於其子, 苟有可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廣州辛亥以上未捧各穀, 多至一萬一千六百餘石零也, 今過十年, 指徵無處, 雖欲收捧, 其勢未易矣。 頃因江華留守李䎘所達, 江都辛亥以上還上之未捧,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如無可用之處, 則或令兵曹, 時時試才, 禁軍及兩軍門馬軍, 以此太給賞, 使之喂馬, 似好。 陳米則令賑恤廳, 取用於饑民, 白給後, 待秋改備新米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名, 至京江都監運納之際, 人情所費, 亦爲不貲, 此爲島民之巨弊云。 臣招問訓局吏, 則答以工匠等供饋饌物, 無他出處, 不得已有此求請之事云。 水營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御營廳啓曰, 昌·敬陵內蟲損木, 各軍門許斫取用事, 曾已定奪矣。 本廳所管江都女墻之役, 匪久當擧, 而役軍及工匠等炊飯木, 容入浩多, 猝難辦備。 今聞昌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領議政權大運所啓, 頃因左議政所達, 有南漢·江都兩處移轉餉穀, 令所受各邑, 一竝捧留事, 令廟堂商確稟處事, 命下矣。 今秋輸納, 明春受出, 民間之耗費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亦將取用江都米, 此外無可着手處, 而兩西·京畿·三道還上所捧, 不足以全活其民, 故竝請得江都米, 雖不可, 其求, 亦不可全然不給, 勢將量留京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引見時, 李彦綱所啓, 臣有沿路見聞, 故敢達。 淸北·龍·鐵·宣·郭等四邑, 飢饉特甚, 而其中龍川爲甚, 蓋自辛未以後, 邑倅九易, 迎送之際, 物力益復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將不免凶, 雖欲預爲料理, 公私儲蓄蕩竭, 實無着手處, 誠可悶慮, 自前賑資, 只以江都·南漢軍餉取用, 而都下則非米穀所出, 故前後所分給, 不得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本道先許復故, 似爲重難, 而今年事雖未及出場, 他道自當次第復故, 至於平安道, 則異於他道, 姑先許之, 似當, 而聞各邑軍器之中, 藥丸尤多不足之處,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金麗仁, 則卽今見存者, 不過三萬餘兩之錢, 數千兩之銀云, 與當初所料大違, 殊甚慨然, 勢將以見存之數, 使之爲先料理, 換得貢物價, 移納江都,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付種處幾結, 一一區別, 論移戶曹, 以爲年分時憑考之地, 而多有未付種處, 則當該守令, 別爲警責, 宜當。 且臣於頃日受由往來時見之, 則秋牟向茂, 春牟已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大臣·備局堂上引見。 入侍時, 左參贊鄭維岳所啓, 臣自史閣歸時, 行到廣城津, 其浦邊, 有作草家, 入置御船, 此乃判尹申厚載, 爲江都留守, 爲緩急之慮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H010402]江都則當初土城之築, 有意存焉, 而不能盡築, 如欲完役, 則物力不逮, 至於已築之處, 又不能修繕, 今年纔補, 明年旋潰, 今若因循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李彦綱爲工曹判書, 趙鳴鳳爲兵曹佐郞, 李徵道爲典籍, 李薈爲童蒙敎官, 崔守慶單付承文博士, 呂必禧單付副正字, 柳廷喬爲濟州敎授, 金萬胄爲安州牧使, 洪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江華留守李寅燁所啓, 臣於年前登對時, 以三軍門藥丸, 間式年移置於江都·南漢事, 有所定奪矣。 臣未知厥後諸軍門, 果皆輸送與否, 成命之下, 不可不着實擧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근현대 소실위기 재중동포 서신 DB화 및 생활문화 분석(178,6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