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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請以貸用於賑民, 待秋直納南漢, 而連値凶荒, 至今未償矣。 本郡, 距南漢頗遠, 輸運甚艱, 願許移納於江都, 少除民弊云云, 初以直納南漢, 爲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則十二斗, 私賤則六斗, 收捧則當爲七百餘石, 以此補用於官家, 誠爲不少, 何可歸之於浪費乎? 自今以後, 革罷將官給料之規, 其他凡事, 一依江都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姑未知其上來否也。 申晸則落傷甚重, 似當變通, 而但申晸奉職甚勤, 其所撰出, 視諸堂上爲最多, 故姑待其差歇矣。 金萬重, 當初奉職頗勤, 而近以本職之辭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右議政金德遠, 工曹參判李鏶引見時, 右議政金德遠所啓, 臣奉命往 江都, 一邊啓聞, 一邊聚會將校試才, 則其中義旅鄭潤, 邊四中入格, 旗牌官安夢祥, 三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沈季良啓曰, 以禁衛營言啓曰, 今十月十三日大臣·備局堂上引見入侍時, 兵曹判書睦昌明所啓, 明春築城事, 纔已定奪矣。 本營軍兵, 至今年十二月, 五哨上番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事, 更無可爲者, 存亡之機, 實係秋事之如何, 江都米儲置之說, 誠合事宜, 而但念鄕民飢餒, 不能作農, 則雖値雨順風調, 何望其不耕之有秋乎? 加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大臣·備局堂上引見入侍時, 領議政柳尙運所啓, 畿·湖兩道諸般身役, 旣已全減, 前頭實無上納之物, 如立撥軍等軍料米, 亦當自京題給矣。 卽今戶兵曹銀布,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其子女重器, 付之於敵, 都城之於北城, 有主客內外之別, 而語其相限, 僅一山岡短堞, 今乃置敵於腹心, 凡攻守之事, 無不據其形便, 而我則贅寄匏懸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之移納江都, 其代則以南漢附近邑移轉穀, 當納京倉者, 劃給, 則似爲便當, 麻田外他邑, 亦有以此爲願者, 一體施行, 何如? 上曰, 依爲之。 又所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傳于李徵龜曰, 江都築城時, 前後留守賞典, 令廟堂登對時, 稟處。 以上燼餘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以後, 革罷將官給料之規, 其他凡事, 一依江都例施行, 似合事宜矣。 上曰, 江都·松都, 旣是一體, 而與京軍門有異矣, 依所達爲之。 江華留守趙泰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徐文重, 以備邊司言啓曰, 訓鍊都監啓辭, 保布上納之規, 每年十月初, 各道差使員領來催督畢納, 而分給冬衣之資矣。 今年則各道被災裁減之數, 及庚申·辛酉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兵曹啓曰, 江都米一萬石運來, 繼用於經費事, 定奪矣。 本曹正郞李喜澤, 今將發送, 依辛亥年已行之例, 事目別單書啓, 以此江華府及下去郞廳左右站官處,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李義徵所啓, 永宗僉使, 旣兼防禦使, 則以防禦使, 依前兼把摠, 似爲未安。 事當以兼千摠改下批, 而卽今軍額之數, 不過一司, 則其領將之爲千摠, 亦有違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晝講時, 行副護軍李行益所啓, 江都以保障之地, 朝家特爲優恤, 各邑軍兵, 旣不徵布, 且屢設觀武才, 慰悅將士, 而至於喬桐, 實是江都咽喉, 則亦可爲重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後, 令水原軍入守之意, 稟議于大臣事, 旣承聖敎, 故臣往議于首相, 則首相以爲, 文殊山築城, 在所不已, 而但聞訓將之言, 則其山最爲險絶, 無平穩之處,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徐文重曰, 賑廳之穀, 只有米一萬數千石, 還上分給, 亦患不足, 而粥米則必須精白, 故頃日廣興倉米, 啓辭取用, 而一日所用甚多, 前頭有乏絶之患, 江都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指日始役矣。 卽伏見原任大臣疏本, 臣無任慙靦悚惕之至, 疏中城基之〈?〉形勢之難易, 皆臣前日與諸臣, 辨難於前席者, 諸臣只言事勢之非便, 未聞詆疵之言,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浩鉅, 而備局諸宰, 或以爲城不如大, 內城以十里爲限, 爲他日駐蹕之所, 而且爲自外備禦之計, 則物力亦似少費云。 未知此議何如也。 留守持圖形以來, 前任江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故每年未收, 最多, 今後則別單書入, 以爲啓下廟堂, 一體論責之地, 何如? 上曰, 依爲之。 又所啓, 頃年關西貸用江都木價銀一萬五千兩, 旣已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宜矣。 上曰, 江都·松都, 旣是一體, 而與京軍門有異矣, 依所達爲之。 江華留守趙泰老曰, 臣曾經松都, 今方待罪江都, 槪審兩都事矣。 松都之制度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堪之弊, 何敢不陳乎? 軍兵上番與否, 戎政之重者, 更令廟堂, 商議稟處, 何如? 上曰, 予意則限秋成停番, 宜矣。 待秋成上送事, 分付, 可也。 李頤命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以木直納云。 以此推之, 則非但軍兵衣資之用, 一日爲急, 保人等, 以木換米之際, 亦不無呼冤之端, 合有變通之道, 令廟堂急速稟處, 如何? 傳曰, 允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入侍時, 領議政許積所啓, 宣惠廳穀三萬石, 自賑廳貸用者, 則不可不還償。 初意則關西有豐熟之望, 故其處穀物, 初欲多數取用矣, 不幸秋雨支離, 又有風災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晝講時, 行副護軍李行益所啓, 江都以保障之地, 朝家特爲優恤, 各邑軍兵, 旣不徵布, 且屢設觀武才, 慰悅將士, 而至於喬桐, 實是江都咽喉, 則亦可爲重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付, 何如? 上曰, 依爲之。 來善曰, 凡江華·南漢之穀, 蓋爲他日緩急之用, 則今此江華築城時役糧, 不可以待變軍餉, 除給, 而本府, 亦無出處, 自朝家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而但聞訓將之言, 則其山最爲險絶, 無平穩之處, 軍兵住着亦難, 是爲可慮云矣。 且臣意則以爲, 通津邑居, 移於城內, 然後前頭防守, 似甚便宜,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之事, 以穀梁所論觀之, 更無可達, 此公不溺也, 而其不稱公子者, 聖人, 特惡其會仇讐而伐同姓也。 以下缺 特進官閔鎭厚曰, 臣有所懷, 敢此仰達矣。 頃日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奸贓狼藉, 罪狀彰露, 國言喧謄, 無所不至, 而泰采, 不惟不自忸縮, 又從而周旋彌縫, 惟恐按治之盡法, 人心疑惑, 久猶未已, 則在泰采之道, 惟當稍加斂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榻前下敎。 掌令李翊漢所啓, 卽者持平盧世夏·李大成, 相繼引避, 臣當處置, 而第臣於軍資監前後官請罪事, 有所嫌礙, 旣不得參啓, 而今此兩僚之避, 皆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李濡所啓, 頃年西關飢饉之時, 朝家特爲許貸江都木千餘同, 以爲貿穀補賑, 還報本邑之地, 而自本道分授別將輩, 貿穀於三南各處, 其中別將一人, 卽桂雲芳也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可也。 李頤命曰, 然則不令廟堂稟處, 而直爲分付乎? 上曰, 然矣。 提調趙泰耉所啓, 今年收租大縮, 田稅米與三手米上納, 都不過六萬石, 而一年經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兵營所在軍木取用事, 亦當與大臣, 相議以啓矣。 今春畿甸賑救所用米, 至於二萬九千餘石, 而以卽今形勢觀之, 明春賑救, 有倍於今春都下之飢。 卽今如此, 前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例, 六代以上則自是應爲受爵之人, 雖西北奴婢, 亦當一體無贖身從良, 而七代以下, 亦依他奴婢子, 限代數, 代口許贖, 或以爲太無限節, 未知其以幾代爲限,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今日引見時, 戶曹正郞朴明義仍任事及禁軍別將以堂上閫帥陞差事及明聖王后誌文, 以今番改撰之文, 改錄於儀軌事及江都所置戶曹封不動木綿三千同內, 一千同移送賑恤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晝講時, 行副護軍李行益所啓, 江都以保障之地, 朝家特爲優恤, 各邑軍兵, 旣不徵布, 且屢設觀武才, 慰悅將士, 而至於喬桐, 實是江都咽喉, 則亦可爲重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徵曰, 臣於己未年間, 以江都築墩事差往時, 詳見文殊山形勢, 則其山, 俯臨江都, 相距不遠, 脫有緩急, 不可無防守之事, 若築數三處墩臺, 則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得晏然缺而徑先瀆擾, 有所未安, 故未及陳暴矣。 今此築城, 共缺計, 則豈可以私意, 參錯於其間哉? 若其所見各異, 則各陳所懷, 未爲不可, 而以其所見之不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資監前後官請罪事, 有所嫌礙, 旣不得參啓, 而今此兩僚之避, 皆因此事而發, 則其不敢參涉可否於其間者, 與前無異, 何可晏然處置, 而仍冒於臺席乎?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從略爲之, 似好矣。 寅燁曰, 頃於筵中, 小臣陳江都內城之議, 而自上有所定設築之敎, 故江華留守朴權, 爲此上來, 略與之商確矣。 卽今雖無外虞,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亦不可不豫爲料理, 而實無善策。 管餉統營穀, 大米少而雜穀多, 取來大米之數亦不敷, 本廳卽今賑餘之米, 僅至一萬餘石, 以此無充報三萬之數, 罔知所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之本意矣。 上曰, 西北奴婢, 亦依他道, 一體許贖, 可也。 刑曹判書李師命所啓, 江都陳太五千餘石, 欲爲改色, 分送海西矣。 海西各邑, 因年凶,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所懷, 未爲不可, 而以其所見之不同, 加之以沮敗撓惑之目, 如小臣者, 不足恤, 而原任大臣, 亦不缺受此語, 以事體言之, 豈非未安之甚者乎? 小臣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准數還本, 而及其遞歸之時, 只以二千石米, 代充銀價, 視諸本數, 不滿半直, 而其後代莅, 亦不啓稟朝家, 登時變通, 抄出富戶, 私自斂散, 以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度申飭, 比諸甲申年, 雖有減縮, 不至大段, 收租摠數, 當爲七萬石零, 甲申收租稍過此數, 而一年經費不足者, 至於數萬餘石, 昨年則猶有舊遺穀與賑廳米一萬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辭, 退待物論。 戶曹判書尹世紀所啓, 頃於初三日引見時, 領相及李寅燁, 以海西近萬石之田稅收米, 留作賑資, 而自戶曹取用江都小米, 明秋以海西小米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而臣曾聞老卒之言, 以爲丙子賊騎新渡之初, 忙忙急急, 顯有恇㤼之狀。 若使其時, 城不可以數日相持, 則賊必不敢久留矣。 彼卽深入腹心, 亦豈無顧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H010402]江都陳太五千餘石, 欲爲改色, 分送海西矣。 海西各邑, 因年凶, 民人等, 不爲願受, 故不得已, 自賑廳運來發賣, 待秋改色, 而本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戶曹參判李義徵所啓, 臣頃往江都時, 永宗試才事, 旣已定奪, 下去之後, 發令分付, 而猝聞國有慘慽, 未及轉往永宗, 而復命矣。 若仍停其試才之擧, 則本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轉之穀, 其數浩多, 今若竝與還穀, 而一時督捧, 則民間必不無窘急之患, 兩西·咸鏡·江原·京畿新還上, 畢捧, 舊還上, 三分之一收捧, 三南則雖云稍稔,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役, 至以救活飢民, 爲第二件事, 陰雨之備, 雖不可不念, 而外間若聞此言, 將謂斯何? 國家姑無〈目〉前之急, 民生, 擧罹顚連之患, 而主事之臣, 緩本急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10402]江都, 卽保障重地, 銀貨, 乃是待變緊需, 朝家, 積年拮据, 辛勤儲置, 而一朝散失, 充報無路, 脫有緩急, 將何爲需? 其欠縮軍儲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與賑廳米一萬石, 推移繼用, 卽今則各倉遺在, 名雖四萬餘石, 幾盡逋欠, 百官頒祿, 軍兵放料, 其他雜費之用, 雖十分撙節磨鍊, 必有九萬餘石, 可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米, 留作賑資, 而自戶曹取用江都小米, 明秋以海西小米, 還報於江都事, 陳達定奪矣。 第收米, 特減二斗, 經費之欠縮旣多, 惟正之供, 又不當留置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或有議欲重修者而不果矣。 臣雖未知其時曲折之如何, 而槪言其山城形勢, 則三角諸峯, 鱗次列立, 而城子與峯巒, 連亘相接, 只有三路, 一由道成菴, 一由釋伽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賑廳運來發賣, 待秋改色, 而本廳太會付, 亦甚些少, 事涉可慮, 今聞戶曹判書柳尙運之言, 則兩倉之太, 繼用今年後, 餘數, 可至七萬餘石云。 若以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參判李義徵所啓, 臣頃往江都時, 永宗試才事, 旣已定奪, 下去之後, 發令分付, 而猝聞國有慘慽, 未及轉往永宗, 而復命矣。 若仍停其試才之擧, 則本鎭將校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曰, 事當依律, 而姑待三覆, 更議處之。 來善曰, 卒崇善君延諡時, 有賜樂宣醞之命, 幽明之榮感, 至矣, 而第念其家, 方在喪中, 賜樂宣醞, 是未免於吉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可以支繼一年, 若値國家有事之時, 十萬之穀, 亦且不贍不可不及時變通, 以爲推移繼用之地矣。 上年以江都米取用之意陳達, 而禮曹判書閔鎭厚, 以爲移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此三城乎? 受任大臣, 經畫旣審, 而臣之迷見, 今築土城, 未知其得宜, 前頭或更度事勢, 而處之則, 可矣。 李濡曰, 大臣所達, 三城之說, 有不然者,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不付種, 仍爲荒蕪處給災事, 更爲定奪於榻前矣。 今此各邑成冊, 或稱甲寅仍災田, 或稱中耕全災田, 或稱旱災田, 或稱今陳田, 今陳畓, 不有事目, 私作名目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府啓, 噫嘻, 時烈誤禮亂統之罪, 尙忍言哉? 敢爲體而不正之說, 至喩以檀弓免, 子游衰, 誣辱宗祊, 譏貶君父。 論其罪犯, 實難容於覆載之間, 而一自迸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若以江都太發賣價, 移給於戶曹後, 以戶曹餘儲, 輸送於江都, 似合事宜。 大臣, 今方入侍, 下詢而處之, 何如? 領議政金壽恒曰, 江都陳太改色之際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惟以堅築爲務, 似好耳。 錫鼎曰, 寅燁, 曾任守臣, 備諳形便, 秋間又使往看, 而今當築城之始, 必得更往, 詳審其基址周圍, 然後可無未盡之慮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散漫參錯, 重巒複岑, 遮擁遠近, 賊雖欲圍城, 其勢實難。 若登高遠望, 則松都·江都·南漢·內浦等數百里之外, 如在眼底, 三江風帆歷歷可數, 左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n 江都, 似合事宜。 大臣, 今方入侍, 下詢而處之, 何如? 領議政金壽恒曰, 江都陳太改色之際, 畿民, 每有呼冤之弊, 陳久之太, 又不可不改色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端夏曰, 臣奉審還歸時, 歷入南漢, 日勢已暮, 未及復命, 且念保障重地, 有蠭巖新築之處, 故臣仍留周覽, 則新築城堞, 功役旣浩大, 體制亦且完固, 可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晝講時, 正言徐文裕所啓, 請罪人金重夏嚴鞫處斷事。 上曰, 亟停勿煩。 又所啓, 請罪人李斗鎭, 更令該府考律勘斷事。 上曰, 勿煩。 又所啓, 豐德府使沈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領議政權大運, 右議政閔黯, 江華留守吳始大, 請對入侍時, 領議政權大運所啓, 江都留守有稟定事, 故敢爲請對矣, 築城之役, 當趁解凍始役, 而不得給價募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啓, 本營各穀銀貨之散貸未捧者, 勿論新舊債, 當爲次第徵捧, 而近來萊館銀路斷塞, 故京外銀貨極貴, 以本色一時督納, 其勢未易, 誠甚可慮。 今年年事, 若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尹趾善又所啓, 忠淸監司洪受疇, 以楊津·貢津·安興三倉米移轉, 依上年例, 除耗捧留本官事, 上疏陳請矣。 上年, 或有腐朽米分給改色, 今此移轉還上, 不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廟堂稟處, 何如? 上曰, 一體稟處, 可也。 刑曹參判李世載所啓, 賑民之政, 非攸司之臣, 所敢干預, 而臣昨遞畿輔之任, 新監司雖已赴任, 臣旣周年按察,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尹世紀啓曰, 惟正之供, 則雖災荒之歲, 自下不敢擅用者。 因兩西凶歉, 吏曹判書李寅燁, 因本道狀請, 海西惟正與收米合三萬餘斛, 或移轉關西, 或留賑作錢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宣惠廳達曰, 山陵之役, 本不入於大同收米之中, 故凡於國恤時三年內所供菜蔬·柴炭等物, 初則戶曹磨鍊, 分定於京畿, 直自各邑進排。 而己亥因大臣陳達, 爲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晝講入侍時, 同知事閔宗道所啓, 禁衛營所管, 江都月串城門樓, 今已造成, 蓋瓦丹艧, 方爲始役, 而浮椽施采, 非僧畫員, 莫敢爲之, 故募得僧人中善畫者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物力凋弊, 雖欲有爲, 無力可施, 此甚可悶矣。 海西遂安·谷山·新溪等邑, 距水路甚遠, 故田稅輸納之際, 民多怨苦, 而自江都, 折價防納於戶曹,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則備局, 替償其器械之價, 江都貸木, 不爲還償, 則屢次分付, 無如之何。 又以兵曹木, 備給摠戎新屬軍器械之價, 其在事體, 寧有是理? 江都今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引見入侍時, 江華留守吳始大所啓, 本府築壕之役, 九月初, 將爲始役, 役軍糧料, 則朝家旣已劃給, 而至於石手冶匠輩使役之類, 不可不繼給功錢, 而本府無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有異議, 不得上達矣。 上曰, 文殊山形勢, 不可不築, 故斷定始役矣。 涏曰, 小臣, 頃年待罪通津, 備諳文殊山形勢。 若留置大軍, 則糧餉難繼,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010402]江都移轉米二千餘石, 而卽今民力, 萬無徵捧之勢, 臣下去之後, 未知其幾何收捧, 而多少間所捧之穀, 留置本官, 以爲明春賑救之地, 何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判中樞府事崔錫鼎所啓, 莊陵募軍役價, 自惠廳分定本道七百石, 而窮峽之地, 米穀輸運極難之中, 江原道, 江都移轉一千石, 今年有輸納本所之令, 當此飢饉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啓, 本營各穀銀貨之散貸未捧者, 勿論新舊債, 當爲次第徵捧, 而近來萊館銀路斷塞, 故京外銀貨極貴, 以本色一時督納, 其勢未易, 誠甚可慮。 今年年事, 若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常時不能着實之失, 據此可知。 今此犯越所居地方官及所渡地方官, 所當依事目論罪, 而其時永達萬戶金後申, 則旣已遞來, 自此直爲拿問, 鍾城·穩城兩邑守令及北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右議政李濡, 禮曹判書閔鎭厚請對入侍時, 禮曹判書閔鎭厚所啓, 頃見麻田郡守報狀, 則丙子年間賑廳米, 當送南漢者, 本郡, 請以貸用於賑民, 待秋直納南漢,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處所築之城, 雖多不緊, 亦不能堅缺數十字, 卽今國儲哀痛, 版曹經費缺數字惠廳, 雖有八九萬石之儲, 此外無他蓋藏, 設或有數次客使之行, 則無以接應, 何可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則本陵主山鷹峯下西麓, 自垓子至破土處, 三十九步, 穴後北邊數步許, 有常漢古塚破土處, 又是元田, 旣是火巢外數十步許, 元田民塚下, 而民塚, 上年本曹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賣, 又多人言者, 亦甚不韙。 且關西·江都移轉米事, 則泰采, 元無貿錢之事, 繼莅之臣, 亦以臺啓爲爽實云, 而地曹發賣之事, 則槪聞十月, 守禦廳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倉廨亦設, 國家他日, 擬將奉廟社率都民, 爲入保固守之計, 人心亦皆知廟算之已定, 大計之所在, 今因蕩春之會議議臣, 竝與北漢, 而欲棄之。 從今以往, 雖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江都苟活之後, 又以不死於節義, 自廢不仕, 使世人, 有以知不死之爲可愧, 節義之爲可尙, 則豈無一分有裨於世敎也。 此所以附見於三學士傳者也。 褒述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更設會試, 可也。 又所啓, 科場隨從闌入之弊, 不可不嚴禁, 此後, 則凡於會試殿試時, 自五更頭, 逐名照點入門, 定式施行, 何如? 上曰, 依爲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擊錚者, 嫡妾分辨, 刑戮及身, 良賤辨別, 父子分別四件事外 , 嚴加刑訊, 以杜猥雜之弊事, 累次定奪云, 而禁府無此定奪之文書, 刑曹亦無文書,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而本邑則以爲便好, 故自前江都, 曾爲此事, 而戶曹, 或有不許之時, 今後則此三邑田稅, 限五六年, 皆自江都, 以銀備納後, 代捧其土産, 以爲軍需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0402]江都貸木, 不爲還償, 則屢次分付, 無如之何。 又以兵曹木, 備給摠戎新屬軍器械之價, 其在事體, 寧有是理? 江都今日留守, 雖非當初貸木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小臣, 頃年待罪通津, 備諳文殊山形勢。 若留置大軍, 則糧餉難繼, 若置一枝軍, 則亦不可捍禦敵兵, 設有不虞之變, 文殊不守, 則江都之大軍沮喪,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而窮峽之地, 米穀輸運極難之中, 江原道, 江都移轉一千石, 今年有輸納本所之令, 當此飢饉之時, 民甚爲憫云。 江都所納之穀, 從其情願, 使之納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相訟銀貨, 而雲芳, 有本營興販, 差人受出本銀二萬兩, 轉買江都留木一千五百同, 以甲利賣之, 而其時監司, 適當遞歸, 以十五生殖, 現錄於重記中矣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李思永, 亦爲推考, 何如? 上曰, 依爲之。 左尹羅弘佐所啓, 江都土城·水門修築事, 前大將金鎭龜, 以今秋浮石, 明春始役之意, 前已稟定矣。 小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入侍時, 禮曹判書閔鎭厚所啓, 頃見麻田郡守報狀, 則丙子年間賑廳米, 當送南漢者, 本郡, 請以貸用於賑民, 待秋直納南漢, 而連値凶荒, 至今未償矣。 本郡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司僕寺官員, 以提調意啓曰, 今月二十日大臣·備局堂上引見入侍時, 江華留守朴權, 請對時所達鎭江場等處, 許民耕食事, 有令廟堂稟處之命矣, 因諸臣陳達,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利害, 事力之有無, 姑舍勿論, 城不必先思可守之策, 然後可以動役, 而以諸道舊城論之, 擧皆不能收拾, 便作空城, 朝家則或恃其可守, 而其實則不然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근현대 소실위기 재중동포 서신 DB화 및 생활문화 분석(178,6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