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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領議政金昌集所啓, 卽接江華留守李台佐狀啓, 則本府合操, 姑爲停止, 境內軍兵赴役船頭堡, 外營各邑軍兵遣中軍點視之意, 旣已稟定, 而卽今所屬各邑軍兵,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說, 則所謂驪尹大恚之說, 自歸孟浪。 噫, 江都事, 旣不足以累宣擧, 䥴事, 又不足以病宣擧, 則右時烈者, 乃更承襲時烈之遺算, 復以誣聖祖之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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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時烈修[售]怨之地, 其亦駭矣。 其曰, 誣聖祖云者, 尤不成倫理。 粵我孝廟, 勵薪膽之志, 懷復雪之義, 傍搜山林, 徵起群儒, 宣擧首膺召命, 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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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江都不死之事, 過自引咎, 以明不仕之志, 上以陳情於君父, 下以移書於親知, 輒每以外負朋友, 內愧妻子等語, 說得激烈, 瀉得痛切, 不少以自貶爲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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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今番事, 由於拯父子, 何疑? 噫, 宣擧之沒, 在於己巳前二十年, 而時烈忍爲此言, 略無愧怍, 則其徒之襲其餘沫, 益肆誣辱者, 亦何足誅也? 所謂辱及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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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之, 意似忠厚矣。 及其詰覈院儒, 初無是事, 則人多來質於時烈者, 而所答, 亦各不同, 於李翔則曰, 聞之於柳壽芳, 於拯則曰, 聞之於許璜, 其子基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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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字也。 若使時烈, 果聞之於寀, 則又何以知寀所不知之奴字也? 其言左托右諉, 終無歸宿, 而拯, 猶不忍直疑於時烈之所揑造矣。 及其後沃川人之出入於時烈門下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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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江華留守李台佐所啓, 戶曹判書閔鎭遠, 曾任江都時, 築得船頭浦, 以爲起墾收稅, 以除兵曹每年代布八十餘同, 輸送本府各鎭堡之弊, 而鎭遠纔爲完築而遞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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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之出入於時烈門下者, 公然以醜穢暒膻等語, 揭之通文, 其所誣辱, 浮於所謂木川說, 而時烈, 不惟不深責, 顧反咎於拯之弟推, 則前所稱深斥互鄕, 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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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而若無自官家顧助勸課, 則五百餘石堰畓, 有非私力所可盡墾矣。 當初旣費許多財力, 到今事又垂成, 而因循廢置, 不爲起墾, 則前功將盡棄矣。 今年畿甸農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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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妻而已, 竝與益熙·益兼而誣之, 世安有己無欲死之心, 而爲人所驅迫而死者也? 亦安有以同氣之捨生取義, 爲被迫於人, 而反咎其人者也? 此則必無之理也。 且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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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前後京外貸去之穀, 有出無入, 戶曹則三次貸去者, 合爲三萬一千石, 訓局則貸去者三千九百石, 御營廳貸去者七百石, 其他各邑移轉未捧之數, 亦甚夥然。 卽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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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戶曹判書閔鎭遠所啓, 上年實結多縮, 故戶曹·宣惠廳一年應下不足之數, 各至萬餘石, 而今番吉禮後, 加出貢物, 又至萬石許, 戶曹經用所加之數亦多, 新捧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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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肆然筆之於奏御之文, 先大王, 亦嘗照燭其誣辱之實狀, 頃年筵敎, 有曰, 其父受辱, 其子豈可安而受之云者, 誠萬古不易之定論也, 然則其所相絶, 果出於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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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米, 使之趁卽劃送還報, 至於外方, 則移轉未報者, 居末守令啓罷, 亦令解由拘礙, 以爲各別飭礪之地。 且慶尙道各鎭堡所在別餉米, 係是江都待變軍餉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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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戶曹判書閔鎭遠所啓, 上年實結多縮, 故戶曹·宣惠廳一年應下不足之數, 各至萬餘石, 而今番吉禮後, 加出貢物, 又至萬石許, 戶曹經用所加之數亦多, 新捧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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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言出於師, 不敢背絶, 而猶自處於弟子之列, 則天理滅矣, 人倫喪矣。 求諸人情事理, 豈容如是哉? 蓋自江都事, 至己酉擬書, 卽時烈之所以誣宣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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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且慶尙道各鎭堡所在別餉米, 係是江都待變軍餉云, 而屢十年斂散, 次次生耗, 其數夥然。 取考宣惠廳別餉米置簿, 則都數三萬七千石零內, 時留庫三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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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殘, 不得成樣之狀, 已陳於日昨草記, 至有令廟堂, 稟處之命, 似聞戶·兵曹物力, 亦甚凋弊。 今此災減劃給之請, 皆有持難之意, 而卽今春節將半, 陵幸迫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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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嗚呼, 時烈所以齮齕宣擧父子者, 不過䥴與江都兩款事也。 其根源得失, 固已略辨於右, 而若其枝流之千弄萬幻者, 愈出愈新, 或鑿空而傅會之, 或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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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則都數三萬七千石零內, 時留庫三萬四千石。 當初儲置之意, 旣爲江都而設, 則到今生耗數多之後, 量宜移置於江都, 以添軍餉, 事涉便當, 限一萬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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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竝行, 秋等中旬, 姑爲停止, 則賞格木一百同, 亦可除減。 只以緊重需用四百四十餘同, 某條推移, 兵·戶曹各木五十同, 禁·御兩營各木一百同, 經理廳銀子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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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0402]江都兩款事也。 其根源得失, 固已略辨於右, 而若其枝流之千弄萬幻者, 愈出愈新, 或鑿空而傅會之, 或構虛而張皇之, 或換易事實, 而抑勒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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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領議政金昌集所啓, 京畿監司沈宅賢狀啓也。 春夏以來, 雨澤未洽, 牟麥不實, 卽今民無見糧, 且全無移秧之地, 欲爲改播他穀, 而亦無貿換種子之勢, 南北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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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領議政金昌集所啓, 京畿監司沈宅賢狀啓也。 春夏以來, 雨澤未洽, 牟麥不實, 卽今民無見糧, 且全無移秧之地, 欲爲改播他穀, 而亦無貿換種子之勢, 南北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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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千五百石劃給似宜矣。 左議政李健命曰, 今此移轉, 不過三千石而已, 則京畿三十七邑, 決難遍給, 不如不給之爲愈, 且往來輸運之際, 徒勞無益, 而卽今國儲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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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江華留守李台佐所啓, 江華周回數百餘里, 必要多得軍兵, 然後可以把守各處, 而本府軍兵, 十分單弱, 所謂武學束伍, 無非貧殘無根着之類, 決無得力之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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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台佐所啓, 江華周回數百餘里, 必要多得軍兵, 然後可以把守各處, 而本府軍兵, 十分單弱, 所謂武學束伍, 無非貧殘無根着之類, 決無得力之望。 故小臣曾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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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而亦以銃技爲重事, 定爲節目啓下, 而臣徑遞本職, 未及擧行矣。 厥後兵曹判書崔錫恒莅任時, 始爲設行都試, 而此最精銃, 庶可得力緩急, 加抄一千, 合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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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勸[激勸], 昔宋臣种師道, 邊鎭在時, 以銀爲的, 仍賞得其中, 故一軍聳動, 技藝日精, 終得其力矣。 卽今江都事力, 銀的非所暇論, 而如三升小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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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而其間或有無時別祭, 則亦依此例一體磨鍊事, 分付該曹, 何如? 傳曰, 允事命下矣。 長寧殿一年正朝·寒食·端午·秋夕·冬至五名日及臘享大祭合六祭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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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兪命凝, 以訓鍊都監言啓曰, 都監之設置待變船者, 專爲緩急之用, 則其事體之緊重, 非如募聚私船之比, 而許多格糧, 無他出處。 故秋冬則回泊待變於江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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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而其間或有無時別祭, 則亦依此例一體磨鍊事, 分付該曹, 何如? 傳曰, 允事命下矣。 長寧殿一年正朝·寒食·端午·秋夕·冬至五名日及臘享大祭合六祭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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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付本府, 而其間或有無時別祭, 則亦依此例磨鍊事, 分付該曹, 何如? 傳曰, 允事, 命下矣。 長寧殿一年正朝·寒食·端午·秋夕·冬至五名日及臘享大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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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領議政金昌集所啓, 江都一境, 今年被災孔慘, 自朝家今方各別軫恤, 而留守李台佐到任以後, 留意賑政, 凡事亦多施設矣。 向來臺啓, 堂箚有潛入之說, 雖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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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頹??漏之患, 而從前留守, 不敢擅自開閉之, 故每每因循棄置, 使莫重御藏之物, 多有透濕屬傷之患云, 揆以事面, 極甚悶然。 及今一番考閱, 在所不已, 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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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亨元, 以備邊司言啓曰, 卽見江華留守朴祐源所啓, 則以爲江都軍餉, 本爲十七萬一千四百七十三石, 而京衙門之貸去不報及外各道之區劃未捧者, 合爲十三萬六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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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履成, 以備邊司言啓曰, 卽見江華留守鄭好仁狀啓, 則以爲本府昨年穡事, 僅僅免?, 如干秋穀, 已盡納?, 見今民窮轉甚, 口食農糧, 專?於還穀, 而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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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重, 民弊營用, 孰輕孰重? 苟爲民弊, 還穀之莫重而蕩之, 田租之惟正而減之, 而況於私授之債乎? 且債錢之來, 不過三十餘年, 亦非一人一時之事, 節次添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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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兪漢寧, 以漢城府言啓曰, 壬子式帳籍, 今春當爲藏置於江都, 而待秋擧行事, 筵稟蒙允矣。 今則秋節已屆, 發遣本府郞廳, 持往江都藏置曝灑等事, 依前擧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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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兪漢寧, 以漢城府言啓曰, 壬子式帳籍, 今春當爲藏置於江都, 而待秋擧行事, 筵稟蒙允矣。 今則秋節已屆, 發遣本府郞廳, 持往江都藏置曝灑等事, 依前擧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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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01]四忠祠致祭之由, 當初處分之後, 重臣處義, 似或難進, 旣召其人, 又罪言者, 不無召其入閉其門之嫌, 而今則重臣, 不可以此爲引嫌之端矣。 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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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甲寅舊還, 沿邑民勢, 實無新舊竝納之望, 交河等四邑, 竝停退, 長湍等七邑, 折半停退停退外, 當捧條, 以相當田穀, 準折代捧, 其外二十三邑鎭, 使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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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廣, 則非特與民同慶之意也, 乃登極之初, 擇取人才之義也。 上曰, 登極增廣, 予意則終有所如何矣。 溎曰, 日前因判禁吾所奏, 各道爲奴婢罪人十二名, 已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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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其一, 大興·臨津·長山等三處移轉穀, 許令捧留本邑, 其中在於長湍·坡州者, 則從民願, 或捧留或輸納, 而耗條, 如前收納本所事也。 其一, 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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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參贊官李義弼, 侍讀官李儒慶, 檢討官朴天行, 假注書徐鼎修, 記事官李信祜·鄭東浚, 行副護軍金樂淳, 以次進伏訖。 上進講論語, 讀前受音, 自子曰賢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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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元劃外, 一千五百八十七結四十三負, 特爲準劃, ?無一夫白徵之弊, 甲寅條舊還之竝令準捧, 實出永除民弊之意, 而今所論列, 亦有所據, 交河等四邑, 竝姑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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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之竝令準捧, 實出永除民弊之意, 而今所論列, 亦有所據, 交河等四邑, 竝姑置之, 長湍等七邑, 折半收捧, 而以相當穀, 準折代捧, 其他二十三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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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出擧條 鄭民始曰, 以倭銅之愆期不來, 前後朝家申飭, 非至一再, 而一年條出來之後, 又復如前遵滯, 非但貢人之稱冤, 此乃年例上納者, 則違越年限, 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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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爲內修外攘之策, 凶黨大惡, 行讒于虜, 而六使壓境, 則時事又大變矣。 慶餘遂反初服, 臨死之日, 口呼遺疏, 縷縷數百言, 無非務聖學堅聖志, 尊周室攘夷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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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訓別輩若能惕念擧行, 則豈有如此之弊乎? 令該府使嚴飭訓別, 使之各別催督, 趁卽推出, 而若又不善奉行, 則訓別從重勘治, 該府使亦難免不飭之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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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此出擧條另飭, 何如? 上曰, 依爲之。 出擧條 民始曰, 年前仍江都御史書啓, 本府防軍給伐木, 以海西選武木, 區劃直納事定式矣。 頃因海西道臣狀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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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亦於閣臣入侍座目中, 竝書之, 好矣。 浩修等曰, 內閣設置, 專爲典守列聖御製, 編次當宁御製, 則閣中最重之事, 急先之務, 莫過於此, 而到今本閣規模措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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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裨補風化, 使萬世爲人臣者, 有所激勸, 則其所崇報之道, 豈是聖朝之所可忽哉? 噫?, 年代如彼其悠久, 子孫如彼其零替, 而?昔多士, 尙且鳩材, 建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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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以京畿監司金憙狀啓, 江都移轉米耗條, 以錢代送, 交河郡摠廳餉還, 特許捧留本邑, 令廟堂稟處事, 傳于李敏采曰, 依狀請施行事, 回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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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代, 以檢校直提學望書入, 而待敎減下, 代以檢校直閣望, 亦爲書入。 志儉曰, 然則檢校直閣, 爲二人矣。 上曰, 原任待敎, 或帶外任, 或已減下, 則以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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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而勿以朝令, 私以卿等之意問之, 可也。 戶判之意, 何如? 兼戶曹判書蔡濟恭曰, 從民願爲之, 則民似爲便, 而第以結米爲定, 朝令一出之後, 毋論豐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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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爲罪, 設置承傳窠, 不能檢飭下位之罪, 殆有甚於下位之不請標信, 令該府從重勘處罪。 金始采段, 傳旨內, 莫重巡監軍單子, 不善擧行, 令該府從重勘處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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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負我殿下勤懇之意也哉? 念臣本以疎賤之蹤, 猥荷庇覆之恩, 仰戴洪造, 何由報答? 區區所欲自效者, 惟思竭心於職分內事, 而識見鹵莾, 智慮淺短, 了無尺寸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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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量者, 玆敢忘其猥越, 而冒昧陳之。 臣待罪本府, 或因糶事, 或因田政, 周行疆內, 則大抵地形, 三面環海, 船隻之自三南來者, 皆從本府大阜外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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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雖或有勿許之議, 而此則有傷風化, 蓋自十六歲至六十, 其間四十餘年, 皆是供役之年, 則三年喪?, 所損幾何? 且若不許施, 則安在其軍官之異於卒伍之義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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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三面環海, 船隻之自三南來者, 皆從本府大阜外洋, 而達于江都, 粵昔水路朝天也, 亦從本府唐城前洋, 而直向浙東, 一葦海路, 南可通日本, 西可至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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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在學, 以備邊司言啓曰, 取見右通禮禹禎圭疏陳冊子, 則其一, 統禦使變通之議也。 以爲當初置水使於喬桐者, 或有外寇, 則喬桐·永宗, 領其水軍, 左右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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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而欲退泊於富平·仁川界, 則兩邑旣近江都, 而通津·金浦, 又在項背, 賊必畏其逼, 而不敢向富平·仁川, 欲退舶[泊]於水原·陽城界, 則水原旣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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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營提調鄭民始, 以次進伏訖。 上敎海愚曰, 今日諸承旨遞差傳旨, 右副承旨鄭尙愚亦入其中, 右副之服制出去, 在於仕記捧入之前, 則傳旨之混同捧入, 極爲不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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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馬入大次。 上命戶曹判書·訓鍊大將·京畿監司各務差使員入侍。 戶曹判書趙?, 訓鍊大將具善復, 京畿監司徐有防, 都差使員廣州府尹李義寬, 植炬差使員坡州牧使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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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減額減斗之代, 自廟堂, 以畿邑所在江都米耗三百石, 勅需米耗五百石, 合八百石給代, 而自屬邑取耗輸送, 自外營收捧需用之際, 多有難便之端, 且其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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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交, 海水環圍, 只有一山, 脊束如甁項, 廣僅數百步, 而七面之路, 皆從此脊, 而出于東外, 此則皆是潮頭泥淖, 人不得行焉。 近年以來, 築堰於脊之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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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南格臺乎? 有防曰, 此是南格臺, 而若登此臺, 則城中形止, 皆爲俯瞰, 東至武甲山雙嶺以內山谷迂回處, 皆可坐見云矣。 上曰, 故判書李箕鎭, 修築南格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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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然堰毁則無由以行焉。 苟有賊船之退泊於本府者, 則必從西七面之浦口, 而自西七面出者, 非此脊則更無他路。 土人自古以爲, 若築小城於此脊, 而守之以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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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皆由邑底而行, 西七面亦從此而出, 其外則無他大路, 若築城於邑基而橫截, 則此爲要害可守之地也。 邑之前後, 雖有山谷間小路, 而旣有中間城守, 則賊必有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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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次次陞遷, 不得不移除。 此時?政方張, 付之生手, 民將受害, 新除守令之自外邑移遷者, 還穀畢捧後上來事, 令廟堂, 申飭。 上曰, 李萬運所編摩冊子, 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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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江華留守趙㻐疏曰, 伏以日吉辰良, 嘉禮順成, 臣民慶祝, 曷有其極? 仍念臣杜門屛息, 追愆訟尤, 自分爲明時之棄物, 不意給牒之恩, 甄敍之命, 竝下於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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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省而功倍矣。 至於上下水門, 東西城門, 當以石築之, 而水門幾如都城水門, 然後可以受其水, 匠石之料, 雉堞之工, 費將不貲, 而本府還穀, 爲數萬餘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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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方今穀簿, 到處?然, 其在慮後之道, 宜遵半留之制。 八道牟還, 擧大數計之, 合爲一百十三萬九千六百餘石, 若爲半留,則雖或有隨邑闊狹之政, 國中所儲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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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己亥正月[二月]十九日午時, 上御誠正閣。 江華留守入侍時, 行左承旨鄭民始, 記事官李兢淵·李信祜·鄭東浚, 江華留守李鎭衡, 以次進伏訖。 上曰, 何當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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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四十里間, 無非如此, 古人之築土城也, 起於月串以上, 止於草芝者, 足稱高見也。 其險如此, 島中人民, 男女三萬三千餘口歲出穀, 當不下十餘萬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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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濟州牧使李命俊, 三年絶海, 年迫七?, 自經昨年大賑, 累狀乞遞, 且聞病勢沈痼, 惟願生還云, 參究其情, 有難强令察任, 今姑許遞, 何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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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在學, 以備邊司言啓曰, 頃因慶尙道別武士等都試優等沒技直赴殿試事上言, 兵曹草記, 此後沒技人, 一依左右列之次例, 自本道從優施賞爲請, 而批旨有廣考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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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以啓日後之弊, 此則置之。 其一, 三南漕舡, 盡入本營, 目下檢察之中, 咫尺元山, 不必別置護送之官, 元山點檢, 仍爲革罷事也。 蓋聞舡路, 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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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詢大臣處之, 何如? 上曰, 大臣之意, 何如? 致仁曰, 聞守臣之言, 則欲先繕修內城, 而無他措手之道, 若得曾前朝家區劃之外城修築一年財力, 則庶可畢役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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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任其頹?, 則前頭費力, 必將倍以徙依其言, 外城一年條物力, 移用於內城, 使之刻期完役, 似好矣。 性源曰, 外城一年所入財力果恰當, 內城修築之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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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所謂港口, 殆同陸地, 潮盛之時, 始能浮動, 而一朔之內, 不過一次對, 無臨急駕海之望。 臣意則統禦移屬, 甚無意義, 更爲還屬喬桐, 但受節制於鎭撫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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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何如? 上曰, 一樣矣。 彦鎬曰, 惠慶宮氣候, 何如? 上曰, 一樣矣。 彦鎬曰, 此江華留守曺允大狀啓也, 以爲臣營將卒, 每朔支放及所屬井浦·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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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敎江華留守蔡弘履書。 王若曰, 惟王政以孝理爲先, 才允奉檄之請, 念居留非老成不可, 爰?壯?之任, 玆宣絲綸, 庸侈旌鉞。 惟卿, 贍敏之學, 謹厚其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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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則統禦移屬, 甚無意義, 更爲還屬喬桐, 但受節制於鎭撫使, 恐合事宜, 故敢達矣。 上曰, 此事當初移屬之意, 則或謂其便好, 而故相鄭領府每以爲不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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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而都監則三月旬前說行, 好矣。 上命九卿以下先退。 尙喆曰, 禮山以尤甚設賑之邑, 前縣監曺允精, 旣有治績, 此時遞易, 誠爲可悶, 而願留之民情, 亦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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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非計之得者。 至於銷刻之嫌, 則不必爲拘, 昔在先朝, 守·摠兩營之出鎭未幾, 亦旋卽罷還, 則但觀其利害所在故也。 性源曰, 統禦營旣屬鎭撫營之後, 戰船之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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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請施行, 何如? 上曰, 依爲之。 年前亦有道內似此處, 蕩滌之例, 如果指徵無處, 則更令道伯, 指陳實狀可也, 出擧條 彦鎬曰, 頃因京畿御史洪樂游書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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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尙度, 以備邊司言啓曰, 傳曰, 向因迎華驛許貸公貨事, 以華城歲捧之錢劃給之意, 許施於領相擧條, 而更思該府公貨, 姑未就緖。 該驛則均廳給代條中, 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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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申應顯, 以漢城府言啓曰, 京帳籍二件內, 一件則藏於江都後, 舊籍曝曬, 自是每式年應行之例, 今丁酉式帳籍, 歲前已爲磨勘。 今當發遣本府郞廳, 持往江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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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亦以櫰木造成, 則似甚便宜矣。 上曰, 造弓時, 必以榦事人着役而後, 若有頉, 則自當其罪, 果有善造, 則必賞其勞, 卿以此意, 另加指揮, 可也。 命善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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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見, 互相阿好, 持論每在於兩端, 處身自同於脂韋, 末流之弊, 漸益汚下, 甚至於懲討大典, 關係如何, 而强爲?血之請, 或懷沽市之計, ?防一事, 名義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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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節制於鎭撫營, 則未知事面之如何, 而雖以統制營言之, 元無受節制於本道監營之例矣。 濟恭曰, 臣則未見其地, 無以審量形便, 故不能仰對矣。 載經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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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所論, 矯救之方, 尤宜軫念, 官隷供給之弊, 已令本邑, 嚴飭痛禁, 而內需司所納麻鞋細繩粘米粟糖等, 屬在本司, 不過無用之微物, 在本寺, 實爲難支之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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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申應顯, 以漢城府言啓曰, 京帳籍二件內, 一件則藏於江都後, 舊籍曝曬, 自是每式年應行之例, 今丁酉式帳籍, 歲前已爲磨勘。 今當發遣本府郞廳, 持往江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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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里三分一, 稍實坊里四分一, 相當穀準折代捧事也。 其一, 舊還, 稍實邑, 待備局知委, 分數徵捧, 之次邑, 限明秋停退事也。 其一, 各衙門所納保軍米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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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不過無用之微物, 在本寺, 實爲難支之痼?, 量宜?減事, 請令廟堂, 稟旨分付矣。 華城陞府之後, 京畿穀簿都會, 宜卽移定于他邑, 而尙今遷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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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大興山城餉還, 捧留本邑事也。 其一, 牙兵入防停止事也。 其一, 尤甚·之次邑, 勿定配所事也。 其一, 推奴徵債, 限明秋防塞事也。 依下敎就議于大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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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則卽速變通, 在所不已, 分付道臣, 穀簿都會官, 定送于他長官, ?德府禁御軍之江都米受食, 誠爲偏苦之弊, 邑牒道啓, 皆請變通, 然江都之設置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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