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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事, 命下矣, 臣有所懷, 不敢不達矣。 自點墳山, 則但葬其父於忠州矣, 逆賊墳山掘塜之事, 始於鄭汝立, 以其葬其父於興王之地故也。 逆賊之門, 竝與墳山奪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榻前, 禮曹判書洪命夏所啓, 兩湖飢民, 朝家旣已軫念, 凡事賑救之策, 靡極不用, 而畿內之民, 當此飢歲, 又値客行, 將無以支過, 秋等收米, 旣爲量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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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啓曰, 以掌令徐元履所陳, 保障之地, 土木·收糴, 大失民情事, 傳曰, 令攸司審處事, 命下矣。 賓廳會議時, 徐元履, 以南漢之收糴, 江都之土木爲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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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啓曰, 以掌令徐元履所陳, 保障之地, 土木·收糴, 大失民情事, 傳曰, 令攸司審處事, 命下矣。 賓廳會議時, 徐元履, 以南漢之收糴, 江都之土木爲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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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臣意, 二萬石一年取耗, 只二千石, 恐有不足之患, 若以三萬石爲限, 則其間雖有未盡分糶之邑, 猶可推移前過矣。 且本廳下三道穀物, 今年則秋節已迫, 勢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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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極以爲悶。 今此還上取耗之事, 一定之後, 可爲永久之計, 而外方穀物, 未及上來, 今年則已無及矣。 本廳及宣惠廳米穀, 時在各邑者, 亦至九千餘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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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九千餘石, 若欲准二萬之數, 則江都還上米, 上年留捧海邑者, 其數必累千, 以此仍爲海邑會錄之穀, 年年用耗, 其他山郡, 則除給宣惠廳收米, 以充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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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試以成服一款言之, 前銜三品以下, 白衣·白笠·成服, 與儒生·生徒等無異, 此雖五禮儀所載, 而揆以情禮, 似不當然, 此則已往之事, 言之無益, 至前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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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備邊司啓曰, 今二月二十六日承旨引見時, 右承旨洪命夏所啓, 長湍·江華等地, 觀象監生徒, 降定驛子奉足, 似爲冤痛。 上曰, 如此等事, 備局當知而處之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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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戶曹啓曰, 今九月十三日大臣·備局堂上引見時, 江華留守李曼所啓, 問于該曹, 可也事, 傳敎矣。 瑞·泰兩邑田稅, 專屬江都者, 蓋爲補餉之地, 而自戊寅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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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二字缺可矣。 時昉曰, 上年海西管餉皮穀二千石, 換二字缺新鐵事, 問于本道, 酌定其價後, 不別送差二字缺諸本道監司, 隨便貿送, 而至今二年, 迄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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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戶曹啓曰, 今九月十三日大臣·備局堂上引見時, 江華留守李曼所啓, 問于該曹, 可也事, 傳敎矣。 瑞·泰兩邑田稅, 專屬江都者, 蓋爲補餉之地, 而自戊寅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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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大臣·備局堂上引見時, 領議政鄭太和所啓, 江都陳米, 與宣惠廳米換用事, 貢物主人等聞知, 而高聲呼訴曰, 所謂此米, 不可爲口食, 諸物貿易之際, 決不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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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問于該曹, 可也事, 傳敎矣。 瑞·泰兩邑田稅, 專屬江都者, 蓋爲補餉之地, 而自戊寅以後, 本府穀數漸多, 本曹經費不足, 故瑞山田稅, 輸納於京倉, 而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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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大臣·備局堂上引見時, 領議政鄭太和所啓, 江都陳米, 與宣惠廳米換用事, 貢物主人等聞知, 而高聲呼訴曰, 所謂此米, 不可爲口食, 諸物貿易之際, 決不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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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副校理徐憲淳疏曰, 伏以臣銜命江都, 竣事還肅, 奉旨玉署, 橫經昵侍, 寵光遍體, 愧懼交隨。 臣性本庸愚, 學又昧方, 古人所謂論思啓沃, 尙矣無論, 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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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備邊司言啓曰, 卽見開城留守李彦淳年分狀啓, 則備陳本府舊豐德農形受損之狀, 後錄條件, 請令廟堂稟處矣。 其一, 禁·御兩營江都留餉米太, 詳定代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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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後錄條件, 請令廟堂稟處矣。 其一, 禁·御兩營江都留餉米太, 詳定代捧, 耗條本色, 輸送摠廳, 臨津餉穀, 捧留本邑, 耗條代錢輸送事也。 其一, 各軍門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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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捧條七百石, 全數捧留該邑, 而耗條, 依海西移轉例, 詳定代錢, 輸送摠廳事也。 其一, 各邑戊戌己亥停退還, 折半仍停事也。 其一, 大興·臨津·長山等餉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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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憲球, 以備邊司言啓曰, 卽見開城留守尹命圭狀啓, 則備陳本府及舊豐德農形受損之〈狀〉, 後錄諸條, 竝請令廟堂稟處矣。 其一舊豐德禁御兩營所管江都留餉米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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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備邊司言啓曰, 卽見開城留守徐左輔狀啓, 則備陳本府及舊豐德農形受損之狀, 後錄諸條, 竝請令廟堂, 稟處矣。 其一, 舊豐德禁御兩營所管江都留餉米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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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江都留餉米太, 詳定代捧, 而耗條本色輸送, 摠廳所管臨津餉穀, 捧留本邑, 而耗條代錢輸送事也。 其一, 各軍門各衙門身軍布之舊豐德辛巳壬辰癸巳停退條及大小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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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備邊司言啓曰, 卽見開城留守李彦淳狀啓, 則備陳本府及舊豐德年形慘歉之狀, 後錄諸條, 竝請令廟堂, 稟處矣。 其一, 本府城鎭餉三分一停退, 三分二或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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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漢城府言啓曰, 每式年成籍後, 江都件, 臣府郞廳, 持往江都, 舊籍曝曬, 竝與新籍藏置事, 因山後, 擧行之意, 草記蒙允矣, 今玆發遣本府郞廳, 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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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漢城府言啓曰, 每式年成籍後, 江都件, 臣府郞廳, 持往江都, 舊籍曝曬, 竝與新籍藏置事, 因山後, 擧行之意, 草記蒙允矣, 今玆發遣本府郞廳, 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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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病恒苦, 自少及老, 曾無錙銖才能之可言, 而徒荷我純祖大王曁我翼考大王, 覆燾如天地, 涵育如雨露, 拂拭之推遷之, 滾到卿月之班。 臣雖稟性魯鈍, 知識闇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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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蒙允, 至今擧行, 而今此三南所捧之木, 又以純錢四啓矣。 禁旅軍兵之許多接濟, 已極萬萬罔措, 而外此內需司年例輸送之木, 尤無以排比, 一依昨冬例, 以錢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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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本色輸送, 可也。 出擧條 蘭淳曰, 軍需分排, 萬無措手之路矣。 大王大妃殿敎曰, 予亦略知如此, 若有當用, 而着手無處, 則戶曹兵曹惠廳之外, 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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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因江都內帑庫銀子之罄竭, 度支需用關西小米一萬石, 以兵曹封不動錢三萬兩, 劃給貿置, 糶糴取耗作, 爲本曹之穀, 年年句管, 仍使箕營, 作錢移送江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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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漢城府言啓曰, 每式年成籍後, 五部帳籍江都件, 例於翌年春, 臣府郞官, 持往江都, 舊籍曝曬, 竝與新籍藏置矣。 癸卯式帳籍, 發遣本府郞廳, 藏置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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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百石以上, 只有兩邑, 又是荐經歉荒者, 亦令依之次邑例, 更加區別以啓, 代捧則與停退稍異, 許令依請施行。 城餉所重, 有不宜逐年捧留, 而歉餘民力, 亦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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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漢城府言啓曰, 每式年成籍後, 五部帳籍江都件, 例於翌年春, 臣府郞官, 持往江都, 舊籍曝曬, 竝與新籍藏置矣。 癸卯式帳籍, 發遣本府郞廳, 藏置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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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竝從重推考, 仍令與各項免稅未納條, 一體刻期董督, 而如又視若文具, 如前遷延, 則該守令, 竝用先罷後拿之典, 何如? 大王大妃殿答曰, 依爲之。 出擧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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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摠, 本自不足, 無以支及於明年新捧矣。 左右摸擬, 無處辦出, 固知惠局所儲, 近雖不敷, 其在共濟之義, 合有相資之方, 而從便推移, 多有已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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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備邊司言啓曰, 卽見開城留守金大根狀啓, 則備陳本府及舊豐德農形受損之狀, 仍請後錄諸條, 令廟堂稟處矣。 其一, 舊豐德禁·御兩營江都留餉米太, 詳定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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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備邊司言啓曰, 卽見開城留守金大根狀啓, 則備陳本府及舊豐德農形受損之狀, 仍請後錄諸條, 令廟堂稟處矣。 其一, 舊豐德禁·御兩營江都留餉米太, 詳定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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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備邊司言啓曰, 卽見開城留守金大根狀啓, 則備陳本府及舊豐德農形受損之狀, 仍請後錄諸條, 令廟堂, 稟處矣。 其一, 舊豐德禁御兩營江都留餉米太, 詳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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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備邊司言啓曰, 卽見開城留守金大根狀啓, 則備陳本府及舊豐德農形受損之狀, 仍請後錄諸條, 令廟堂, 稟處矣。 其一, 舊豐德禁御兩營江都留餉米太, 詳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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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江華留守權大肯疏曰, 伏以臣, 倥侗湔劣, 百無肖似, 偏蒙我殿下陶甄之化, 剪拂而拔擢之, 四三年來, 從下列而滾躋卿班, 然其實則抱蘊旣赭, 踐歷無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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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偏蒙我殿下陶甄之化, 剪拂而拔擢之, 四三年來, 從下列而滾躋卿班, 然其實則抱蘊旣赭, 踐歷無素, 姑無所施爲於試可之地, 故不至顚沛者, 卽臣之大幸也, 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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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備邊司言啓曰, 卽見開城留守趙容和狀啓, 則備陳本府及舊豐德農形受損之狀, 仍請後錄諸條, 令廟堂稟處矣。 其一, 舊豐德禁·御兩營江都留餉米太詳定代捧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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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備邊司言啓曰, 卽見開城留守趙秉駿狀啓, 則備陳本府及舊豐德農形受損之狀, 仍請後錄諸條, 令廟堂稟處矣。 其一, 舊豐德禁·御兩營江都留餉米太, 詳定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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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臣爲江華府留守者, 臣聞命惝怳, 歷數日而誠莫省所以也。 夫是職也, 以分司之寄, 而兼保障之重焉, 顧其責則成周之保釐也, 問其名則有宋之居留也, 而其地則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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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趙得林, 以備邊司言啓曰, 卽見開城留守李奎鉉狀啓, 則備陳本府及舊豐德年形, 仍請後錄諸條, 令廟堂稟處矣, 其一, 大小南面昨年停退城鎭餉, 特許仍停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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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曺錫亨, 以備邊司言啓曰, 卽見開城留守徐左輔狀啓, 則備陳本府及舊豐德年形, 仍請後錄諸條, 令廟堂稟處矣。 其一, 舊豐德禁·御兩營所管江都留餉米太詳定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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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捧留本邑, 耗條本色輸納, 楊州餉米中, 今春排捧條七百石, 全數捧留該邑, 而耗條依海西移轉例, 詳定代錢, 輸送摠廳事也。 其一, 驪州還餉流逋之昨年當捧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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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備〈邊〉司言啓曰, 卽見開城留守金學性狀啓, 則備陳舊豐德民少還多離散相續之狀, 仍以爲, 江都所在禁御兩營還米太之移轉分給, 實爲豐民難支之瘼, 而秋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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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備〈邊〉司言啓曰, 卽見開城留守金學性狀啓, 則備陳舊豐德民少還多離散相續之狀, 仍以爲, 江都所在禁御兩營還米太之移轉分給, 實爲豐民難支之瘼, 而秋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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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太之移轉分給, 實爲豐民難支之瘼, 而秋糴運納之時, 糜費許多, 京校督納之際, 誅求無厭, 若不及今釐捄, 勢將糴民俱失, 本穀捧留豐倉, 從便糶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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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敎江華留守朴永元書。 王若曰, 地是關防, 江都重保釐之任, 望叶廟剡, 奎垣撤邇密之班。 雖宿儒當處深嚴, 惟通才合試內外, 煩卿一往, 宣予十行。 睠彼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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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吏曹參判李寅泰疏曰, 伏以臣待罪江都, 行將報瓜, 千萬不自意, 伏奉除旨, 以臣爲吏曹參判者, 臣聞命驚惶, 不知措躬之所也, 臣本樗櫟材散, 重以桑楡景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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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漢城府言啓曰, 每式年成籍後, 五部帳籍, 江都件, 例於翌年春, 臣府郞官, 持往江都, 舊籍曝曬, 竝與新籍藏置矣, 丁酉式帳籍, 發遣本府郞廳, 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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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漢城府言啓曰, 每式年成籍後, 五部帳籍, 江都件, 例於翌年春, 臣府郞官, 持往江都, 舊籍曝曬, 竝與新籍藏置矣, 丁酉式帳籍, 發遣本府郞廳, 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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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檢校差下, 使之入直, 何如? 大王大妃殿答曰, 依爲之。 出擧條 象奎曰, 陵所封標時, 臣等俱爲進去例也。 今番亦當出去擧行, 故敢此仰達矣。 大王大妃殿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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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曰, 山陵三看審, 明日爲之事, 命下矣。 臣等依例除下直出去, 何如? 上曰, 依爲之。 出擧條 命書傳敎曰, 三看審時, 時原任大臣·豊恩府院君·永興府院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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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敎江華留守李寅泰書。 王若曰, 當方面則不辭也, 視峻秩於東都保釐, 遇錯節以別利乎? 畀重任於西京留守, 管我保障, 藉卿老成, 睠彼江都名區, 實是海門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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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徐戴淳, 以奎章閣言啓曰, 江都奉來大行王妃敎命玉冊, 今姑權安于本院之意, 敢啓。 傳曰, 知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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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源命以漢城府言啓曰, 每式年成籍後, 五部帳籍江都件, 例於翌年春, 臣府郞官持往江都, 舊籍曝曬, 竝與新籍藏置矣。 丙午式帳籍, 發遣本府郞廳, 藏置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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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源命以漢城府言啓曰, 每式年成籍後, 五部帳籍江都件, 例於翌年春, 臣府郞官持往江都, 舊籍曝曬, 竝與新籍藏置矣。 丙午式帳籍, 發遣本府郞廳, 藏置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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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備邊司言啓曰, 卽見開城留守趙容和狀啓, 則備陳本府及舊豐德穡事受損之狀, 後錄諸條, 竝請令廟堂稟處矣, 其一, 舊豐德禁御兩營江都留餉米太, 詳定代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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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備邊司言啓曰, 卽見開城留守尹命圭狀啓, 則備陳本府及舊豐德農形受損之狀, 後錄諸條, 竝請令廟堂稟處矣。 其一, 舊豐德禁御兩營所管江都留餉米太, 詳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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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江都留餉米太, 詳定代捧, 而耗條本色輸送, 摠廳所管臨津餉穀, 捧留本邑, 而耗條代錢輸送事也。 其一, 各軍門各衙門身·軍布之舊豐德辛巳壬辰癸巳停退條及大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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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㘾, 以宣惠廳言啓曰, 魂殿陵所三年內所供菜蔬柴炭等價本, 自戶曹磨鍊, 分定於京畿各邑, 而己亥以後國恤時, 爲除畿民之弊, 始令本廳句管給價, 而價本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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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備邊司言啓曰, 卽見開城留守金鍏狀啓, 則備陳本府及舊豐德穡事穴農之狀, 後錄諸條, 竝請令廟堂稟處矣。 其一, 舊豐德禁御兩營所管江都留餉米太詳定代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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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遽議, 無論尤甚·之次邑, 被災最酷之處, 令道臣更加區別, 詳細登聞, 以爲分數許停之地, 代捧則與停退稍異, 而還簿紊亂, 亦所當念, 尤甚·之次邑, 依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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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備邊司言啓曰, 卽見開城留守金學性狀啓, 則備陳本府及舊豐德農形受損之狀, 仍請後錄諸條, 令廟堂稟處矣。 其一, 舊豐德禁御兩營江都留餉米太, 及摠廳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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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備邊司言啓曰, 卽見開城留守金學性狀啓, 則備陳本府及舊豐德農形受損之狀, 仍請後錄諸條, 令廟堂稟處矣。 其一, 舊豐德禁御兩營江都留餉米太, 及摠廳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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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敎嘉善大夫江華府留守兼鎭撫使趙亨復書。 王若曰, 周畢公之往釐東郊, 惟予愼簡, 宋張詠之出守西蜀, 得卿無憂, 撤自金鞓之華班, 庸畀旄鉞之重寄, 眷彼江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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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漢城府言啓曰, 每式年成籍後, 五部帳籍江都件, 例於翼年春, 臣府郞官持往江都, 舊籍曝曬, 竝與新籍藏置矣。 庚子式帳籍, 發遣本府郞廳, 藏置曝曬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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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漢城府言啓曰, 每式年成籍後, 五部帳籍江都件, 例於翼年春, 臣府郞官持往江都, 舊籍曝曬, 竝與新籍藏置矣。 庚子式帳籍, 發遣本府郞廳, 藏置曝曬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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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宣惠廳言啓曰, 魂殿陵所三年內所供, 菜蔬·柴炭等價本, 自戶曹磨鍊分定於京畿各邑, 而己亥以後國恤時, 爲除畿民之弊, 始令本廳, 句管給價, 而價本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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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漢城府言啓曰, 每式年成籍後, 五部帳籍江都件, 例於翌年春, 臣府該掌郞官, 持往江都藏置矣。 甲午式帳籍, 今當依例擧行, 而本府判官洪鼎周, 以轝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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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漢城府言啓曰, 每式年成籍後, 五部帳籍江都件, 例於翌年春, 臣府該掌郞官, 持往江都藏置矣。 甲午式帳籍, 今當依例擧行, 而本府判官洪鼎周, 以轝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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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而留守李台佐到任以後, 留意賑政, 凡事亦多施設矣。 向來臺啓, 堂箚有潛入之說, 雖不擧名, 以此爲不安之端, 尙不下去云。 本府事勢, 殊甚可慮, 設有難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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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眞望, 以備邊司言啓曰, 永宗鎭, 實爲江都門戶, 關防至要之地, 故庚申, 自萬戶陞僉使, 庚午陞防禦使, 其前戊午年間, 本島所在牧場馬, 移放他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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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銓長, 皆有故而然也。 兵判則纔已出肅, 而吏判則自遭臺彈, 辭單一入, 受暇未及再呈。 適値國有非常之變, 一參登對, 仍呈辭疏, 迄未承批, 旣無自辭之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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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庶可免因此失農之患矣。 且念農民, 雖欲力作, 而種資不贍, 器械未備, 多有失時廢農之歎。 若令各其隣里, 或相借貸, 推移資用, 保無愆期之患, 則必有益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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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江界聖廟移建事。 致龍讀兵曹啓目, 巡將李泳等減下事。 爾章讀禮曹啓目, 木手劉文善上言, 冀蒙加資事勿施事。 致龍讀掌隷院單子, 以國忌決等不得事。 爾章讀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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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吏曹啓目粘連, 觀此全羅右道暗行御史魚有龍書啓, 則咸悅縣監曺命宗段, 官用淸蜜, 聖堂倉主人等處, 例使之貿納, 而淸價刁蹬, 一斗之價, 殆過三十餘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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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亦不下十一萬石, 則以此六七萬石, 將何以支用許多經費乎? 臣於癸巳年, 待罪戶曹, 其時稅入, 亦不過六萬石, 而他無調度之道, 關西舊稅米五萬石, 移送賑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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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待罪戶曹, 其時稅入, 亦不過六萬石, 而他無調度之道, 關西舊稅米五萬石, 移送賑廳, 而賑廳米五萬石取來以繼事, 定奪於榻前, 而僅僅支用矣。 其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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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成起寅, 則正月瓜滿, 榮州郡守李宜著, 則四月瓜滿, 而兩邑連歲荐饑, 賑政方急, 迎送有弊, 請爲仍任矣。 守令仍任, 雖非法典, 從前凶歲, 亦多仍任之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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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尋常恧蹙, 恒切辜負之懼, 今又以久次陞秩, 服之不稱, 臣猶自知苟然充數, 人謂斯何? 不問才具器識之如何, 只以登朝久近, 爲進用之序者, 實非命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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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擧法, 使之隨事賞罰, 所以重選擧也。 向日朝家有命, 使三公以下, 至三司諸臣, 各擧所知, 必選其才, 意甚盛也。 小臣亦忝在三司之列, 有所剡擧, 而第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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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識慮淺短, 顧無以隨事論列, 仰贊新化, 尋常愧懼, 如坐針氈, 豈敢有因仍盤礴之計哉? 且臣甫經草土, 一縷僅存, 而疾疢侵尋, 形神幻脫, 同朝之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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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台佐曰, 本曹需用虛竭, 前頭勅需及方物措備, 實無其路, 事甚渴悶矣。 庚子年間, 江都戶南庫天字木二百同, 因本府狀請, 改色允下之後, 出給全州居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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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實無其路, 事甚渴悶矣。 庚子年間, 江都戶南庫天字木二百同, 因本府狀請, 改色允下之後, 出給全州居朴姓人者, 每匹折錢二兩, 使之備納, 而厥後不卽收拾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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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每匹折錢二兩, 使之備納, 而厥後不卽收拾矣。 卽今留守沈壽賢, 各別督徵, 所捧幾至半餘, 待其畢捧後, 自本曹先爲取用其代木, 二百同內百同, 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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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盛定分數, 收合以送, 則恰滿二百同矣。 以此推移, 本曹庶有所賴, 江都軍需, 亦不至虛疎, 事甚便宜, 故敢達。 江華留守沈壽賢曰, 天字木, 雖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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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來, 及其回還, 又復護送, 此非他邊邑所有之事, 勞勩實爲非細, 一經勅行, 多至破家亡産, 事尤可矜, 渠輩情願, 皆望久勤調用, 兵曹久勤之數多, 誠爲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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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必疊床, 而隋城一邑, 以平野濱海之故, 其所被災, 比他尤甚, 民皆遑遑, 若難保存。 至於軍兵無依之類, 預怯於秋間徵督之將至, 破家流丐, 散而之四, 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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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傳曰, 大臣·備局堂上引見, 引見入侍時, 左議政李健命所啓, 此乃京畿監司李㙫狀啓也。 上年農事失稔, 民間形勢孔慘, 各邑還穀, 其數甚些, 接濟之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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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邑, 不過一二□石, 而□東作□急, 種糧俱乏, 以前日劃給之穀, 萬無賑救之道, 更爲□數移粟救活, 在所不已, 江倉·京倉米各二千石加給, 以爲從□□之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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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傳曰, 大臣·備局堂上引見, 引見入侍時, 左議政李健命所啓, 此乃京畿監司李㙫狀啓也。 上年農事失稔, 民間形勢孔慘, 各邑還穀, 其數甚些, 接濟之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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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備邊司啓曰, 江都災荒, 振古所無, 且因留守之遞易, 以致許久曠官, 賙賑凡事, 多未措置, 而近聞島中飢困轉甚, 流散出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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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吏曹言啓曰, 今六月初二日, 承旨持公事召對入侍時, 檢討官李顯章所啓, 故承旨臣洪命亨, 以文章淸直, 見重一世, 丙子之難, 入江都, 與故相臣金尙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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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邑, 不過一二□石, 而□東作□急, 種糧俱乏, 以前日劃給之穀, 萬無賑救之道, 更爲□數移粟救活, 在所不已, 江倉·京倉米各二千石加給, 以爲從□□之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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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十哨, 爲二十哨, 則雖似比前減額, 而其實則義旅·壯旅三十哨及武學束伍二十哨, 合爲五十哨, 比諸當初三部六司之制, 猶增二十哨, 不可謂減數, 而此係變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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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赳赳武夫, 今若團束此輩, 以充行伍, 則必將樂赴, 而亦可爲緩急之用, 雖過三部之數, 不厭其多, 依守臣所達, 變通增減, 宜矣。 泰耉曰, 束伍·武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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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仁復, 以備邊司言啓曰, 江都災荒, 振古所無, 且因留守之遞易, 以致許久曠官, 賙賑凡事, 多未措置。 而近聞島中, 飢困轉甚, 流散出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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