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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翊會, 以漢城府言啓曰, 每式年成籍後, 五部帳籍江都件, 例於翌年春, 臣府郞官, 持往江都, 舊籍曝曬, 竝與新籍藏置矣, 己卯式帳籍, 發遣本府郞廳,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迫在朝夕。 令道臣關問該邑, 往復京司, 卽爲査正事也。 立馬錢之自營句管, 雖有操縱之弊, 今若付之本驛, 則亦安知無冒濫消瀜之患乎? 令道臣, 詳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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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設祠以祀之。 夫惟弘之策名立朝, 首尾十有二年, 其觸危履險, 生死向國, 西謫南遷, 成就大節, 一何其奇偉卓犖哉? 仁弘之疏, 是何等凶圖, 而能首起而折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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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令該曹申明嚴飭, 使之隨現重繩, 兩驛事, 令道臣査處。 其一, 江都乃海路要衝, 保障重地, 在傍諸鎭, 宜受節制, 而統禦之職, 在於喬桐, 不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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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江都乃海路要衝, 保障重地, 在傍諸鎭, 宜受節制, 而統禦之職, 在於喬桐, 不在於江都, 無保障之實。 三道統禦使之職, 使守臣兼帶, 而喬桐爲左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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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八十五負五束, 特許準劃事, 請令廟堂稟旨分付矣。 道臣所請, 雖有斟量, 朝家許劃, 亦有考據, 實無以有請輒施, 而第其再煩登聞, 必有所不得已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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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備邊司言啓曰, 卽見京畿監司李羲準年分狀啓, 則分等不爲擧論, 仍以爲事目災二百結外, 不足災二千四百九結一負四束, 特爲許劃, 後錄諸條, 竝請令廟堂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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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瓚曰, 卽見黃海監司趙鐘永所報, 則以爲, 道內各軍門·各衙門軍布·身布, 自是錢木參半者, 而今使之折半代錢, 江都選武布, 例以純錢輸送者, 而今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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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則備陳本府凋弊之狀, 仍以爲本府每年應下米, 爲四千四百餘石, 而不恒上下, 不在此中, 一千石以田稅米用下, 九百石以軍官番米用下, 其餘二千五百餘石, 專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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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永宗爲右防營, 凡干軍制, 一依己亥判下定例, 竝受節制於江都事也。 己亥改制之議, 以南路爲要衝, 而欲歸重於江都, 己酉復設之論, 以西海爲咽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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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在昌, 以漢城府言啓曰, 每式年成籍後, 五部帳籍江都件, 例於翌年春, 自臣府郞官持往江都, 舊籍曝曬, 竝與新籍藏置矣。 甲子式帳籍, 發遣本府郞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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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在昌, 以漢城府言啓曰, 每式年成籍後, 五部帳籍江都件, 例於翌年春, 自臣府郞官持往江都, 舊籍曝曬, 竝與新籍藏置矣。 甲子式帳籍, 發遣本府郞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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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鄭來百, 以備邊司言啓曰, 卽見京畿監司金在昌災實分等狀啓, 則分等不爲擧論, 仍以爲地部所劃二百結外, 不足災三千八百二十結八十一負五束, 特許加劃, 後錄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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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煩屑之意, 嚴飭放送爲良如敎。 又啓目粘連, 都摠府經歷柳相奎矣本府議啓內, 婢屬之被捉, 若非別肉, 則往復法司, 以待査處, 何所不可, 而縛致禁隷, 擅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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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千三百結, 則較之昨年所劃, 幾加千結。 論以年事, 分數庶足稱當, 使之均一分排, 無或有冤漏之弊。 後錄諸條中, 北漢·平倉移餉穀之捧留本邑, 雖有昨年特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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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事關邊政, 當卽專報, 而去月二十八日之報, 始於本月十五日因便到營, 誠極駭忽, 不可尋常置之。 該水使李周鳳罪狀, 請令廟堂稟處矣, 鎭將雖已請勘, 常時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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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錄諸條, 竝請令廟堂稟旨分付矣。 其一, 瑞興等五邑, 綿農尤慘歉, 當年條各軍門各衙門所納軍布·身布及訓局納布, 竝許限明秋純錢代納事也。 其一, 無論尤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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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施行。 後錄諸條中, 瑞興等綿歉五邑, 各軍門各衙門所納軍布·身布, 限明秋純錢代納, 事係紓力, 例亦有間有依請施行, 而至於訓局納布, 事體自別, 不當混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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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備邊司言啓曰, 卽見黃海監司徐能輔狀啓, 則備陳道內綿農判歉之狀, 仍以爲, 今年訓局砲保木, 三分二代錢, 各軍門各衙門身布, 竝純錢代捧, 江都選武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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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論以各穀之成就, 則此疆彼界, 穰歉或殊, 準折代捧, 依道啓許施。 其一, 辛未壬申癸酉停退還餉, 尤甚邑及之次邑中, 延·白兩邑, 全數仍停事也。 當此少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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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申綋, 以備邊司言啓曰, 卽見江華留守金相休所報, 則以爲, 本府廣城堡之按海樓, 處在海路之要衝, 實爲江都之咽喉, 創建年久, 棟宇傾頹, 內城之北門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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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黃海監司徐能輔狀啓, 則備陳道內綿農判歉之狀, 仍以爲, 今年訓局砲保木, 三分二代錢, 各軍門各衙門身布, 竝純錢代捧, 江都選武布, 依例代錢收送事, 請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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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使之三分一收捧。 其一, 訓局砲保布, 尤甚之次邑折半, 稍實邑三分一代錢, 各軍門各衙門軍保布, 尤甚之次邑純錢, 稍實邑木邊中, 折半代錢, 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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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備邊司言啓曰, 卽見開城留守金啓河狀啓, 則以爲, 舊豐德今年穡事, 猶未善就, 合有恤隱之政, 禁御兩營所管江都留餉米太, 依詳定例代捧, 耗條則本色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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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以表白於斯世, 臣等之所尋常慨鬱于中, 而況舊甲每回, 天褒益新, 丙子一回之年, 臣鄭瀁贈吏參, 再回而臣洪宇定贈吏議, 今三回而臣恰, 臣沈長世, 臣洪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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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恒權, 以備邊司言啓曰, 卽見黃海監司趙晉和狀啓, 則以爲, 道內綿農, 山野俱歉, 軍布代錢, 亦多已例。 遂安等六邑訓局砲保木折半代錢, 各軍門各衙門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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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津民, 曉以大義, 修飭船具, 整備以待, 孝考嘉其忠義, 下詢爲誰, 漢明對以職名, 未幾又有一行, 成群步來, 其中一人, 乃是掖隷, 而所負卽仁烈王后魂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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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較摠多寡而已。 本道今年災摠之至過四千, 終涉太多, 事目劃下外三千結, 特許加劃, 使之以此均俵, 各年停退, 所當無遺準充, 而豐歲恤民, 尤合加意, 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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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目今大無之歲, 又當窮春, 到處餓殍之報, 聞極慘切。 雖以都城內言之, 市價太高, 列廛之米, 幾乎乏絶, 閭巷貧民, 貿貿來肆, 不盈升龠, 歎息虛歸, 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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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矣。 上曰, 危則甚於丙子乎? 儀泳曰, 丙子十二月二十八日, 胡人興兵而來, 丁丑三月十四日回還矣。 上曰, 從何地入去乎? 儀泳曰, 從遂安·谷山之間入去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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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徐鼎輔, 以備邊司言啓曰, 卽見黃海監司洪羲臣狀啓, 則以爲, 本道今年綿農, 到處災傷, 各樣價布, 措辦無路, 道內各邑, 今年條各軍門·各衙門所納軍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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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率稧房及冒稱投托之爲逋逃巨藪也。 苟有必捄之意, 豈無可捄之道乎? 亟令道臣留心矯革, 期於漸次釐正, 無至如前因循。 其一, 戰船軍器, 法意嚴重, 而廢壞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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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又別敎營·閫·州·縣·鎭·驛, 諭以保活之意, 丁寧反覆。 蓋此二敎, 不尙文華, 而纖微曲折, 無不該悉, 仍令宣諭於諸路, 上自搢紳, 下至愚賤, 無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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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陰雨之備, 法意惎重, 而戰船之改造, 軍器之修補, 皆不免有名而無實, 從以許多奸弊, 疊生層出, 如是而尙何論緩急有恃乎? 令帥臣知悉此意, 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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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南穀, 劃下爲辭矣。 關西耗不足條給代, 已成年例, 以嶺南所在加分耗及本司句管各名穀會錄耗中, 依此數折米許劃, 使之從便取用, 何如? 上曰, 依爲之。 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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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錢收送事也。 其一, 新還餉, 三分二詳定代捧, 三分一相當穀準折代捧, 待明秋還作本色事也。 其一, 辛巳壬午停退還餉及辛巳停退各衙門各軍門身軍布, 竝許仍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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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稍實邑三分一, 以相當穀, 準折代捧事也。 其一, 辛壬停退還餉, 竝許仍停事也。 其一, 沿海各邑拯劣米太, 竝許仍停事也。 其一, 北漢平倉城餉, 尤甚邑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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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不能詳知, 爲先關問該道後, 奉來修正似好, 故敢此仰達矣。 上曰, 依爲之。 出擧條 履翼曰, 凡有都監, 成出儀軌, 內而春秋館·議政府·禮曹, 外而史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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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備邊司言達曰, 卽見黃海監司沈能岳, 公忠監司徐俊輔狀達, 則各陳該道綿農歉荒之狀, 海西則海州等九邑訓局砲保木折半代錢, 各軍門·各衙門軍身布及江都所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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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備邊司言啓曰, 卽見沿海諸邑, 偏被沈墊者, 則餘外山野列郡, 豐歉相錯, 優劣互半, 折補彼此, 幾得免歉, 較諸關西, 不啻差勝, 分等, 依道啓施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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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洪義浩, 以漢城府言啓曰, 每式年成籍後, 五部帳籍江都件, 例於翌年春, 臣府郞官, 持往江都, 舊籍曝曬, 竝與新籍藏置矣。 庚午式帳籍, 發遣本府郞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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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一, 還穀當捧條, 尤甚邑三分二, 之次邑折半, 稍實邑三分一, 以相當穀準折代捧, 待明秋還作本色事也。 其一, 各邑所在各年拯劣米太, 竝許停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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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黃海監司沈能岳, 公忠監司徐俊輔狀達, 則各陳該道綿農歉荒之狀, 海西則海州等九邑訓局砲保木折半代錢, 各軍門·各衙門軍身布及江都所送選武布竝全數代錢, 湖西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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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洪義浩, 以漢城府言啓曰, 每式年成籍後, 五部帳籍江都件, 例於翌年春, 臣府郞官, 持往江都, 舊籍曝曬, 竝與新籍藏置矣。 庚午式帳籍, 發遣本府郞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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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備邊司言達曰, 卽見開城留守李鍾運狀達, 則備陳本府所屬舊豐德農形災損之狀, 仍以爲, 禁·御兩營所管江都留餉米太, 以詳定代捧, 耗條則本色輸送, 摠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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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矣。 中宮殿氣候, 若何? 上曰, 各殿宮氣候一樣矣。 晩錫曰, 醫官入診, 何如? 上曰, 唯。 醫官玄在德等以次入診, 退伏楹外奏曰, 脈候左右三部調均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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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行副護軍洪學淵書曰, 伏以臣, 伏奉冬至副价之令, 義重往役, 何敢辭免, 而第臣私情, 有不敢冒赴者, 臣之五代祖母, 殉節於丙子江都之亂, 含冤忍痛, 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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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定式施行, 至有京外衙門揭板之命, 凡在有司之臣, 孰敢違越, 況土之所産, 皆地部所管, 非他司之所可侵官? 自今以後, 毋論金銀銅鉛, 設店一事, 各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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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鶴秀, 以宣惠廳言啓曰, 魂殿陵所三年內所供菜蔬柴炭等價, 本自戶曹磨鍊, 分定於京畿各邑, 而己亥以後國恤時, 爲除畿民之弊, 始令本廳, 句管給價, 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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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勢, 萬無一時盡捧之望, 依近例限十年除耗分捧事, 請令廟堂, 稟旨分付矣。 前逋之排捧, 未及收殺, 新逋繼而現發, 該邑倉簿之紊亂, 誠末如之何矣。 排捧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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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次邑, 以相當穀準折代捧, 待明秋還作本色事也。 其一, 延安等五邑辛未停退還餉全數仍停事也。 其一, 各軍門各衙門保米太尤甚各邑每名二兩式, 代錢收納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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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是壞心術之資, 而其所以陷溺心術者, 又不但治擧業而已。 科第固非盡人才之道, 而其所以詿誤人才者, 又非特由科第而已。 何者? 良以請囑賄賂, 已作不可醫之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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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備邊司言啓曰, 卽見開城留守金履載狀啓, 則以爲, 本府合屬之舊豐德, 災形最甚, 禁御兩營所管江都留餉米太詳定代捧, 待明秋還作本色, 摠廳所管臨津餉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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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之年前筵稟, 固不可遽議移易, 而道臣狀請, 亦出爲民, 則一切防塞, 有傷事面, 九邑中擇其最尤甚三數邑, 使之更爲狀達後稟處, 耗條代錢, 城餉體重, 本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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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其一, 還餉尤甚邑之尤甚面里三分一, 尤甚邑之之次面里, 之次邑之尤甚面里四分一, 以相當穀準折代捧, 待明秋還作本色事也。 其一, 昨年代捧還穀, 仍爲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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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江華留守金相休疏曰, 伏以, 臣姿本闇孱, 老益惛憒, 雖尋常任使之責, 決知其不能堪勝, 故杜門鏟跡, 不敢生當世之念者, 厥惟久矣。 不意昨年首夏, 謬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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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010402]江都留餉米太, 依已例以錢代捧, 待明秋還作本色事也。 其一, 各衙門軍布乙酉停退條及辛巳以前各年舊布, 無論之次稍實邑, 竝全數仍停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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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昨年代捧之仍爲代捧, 其勢似然, 大興·臨津·長山城餉之捧留本邑[本色], 穀物之分數代捧, 卽是昨年已施者, 竝爲依施, 北漢城餉尤甚四邑, 依昨年例捧留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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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之一年條, 竝停。 九邑之兩年條, 未免停多而捧少, 畢竟當捧之歲, 反爲後弊, 之次邑之辛·壬停退, 使之折半收捧, 平倉所納, 雖與城餉有間, 該營支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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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而初無加分仰請之資, 此固已萬萬矜憫, 保釐重地, 緩急攸恃, 而倉無甔石之留儲, 豈不誠凜然寒心哉? 況各項公用之每年應下, 有增而無減, 歲不下數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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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備邊司言啓曰, 卽見開城留守李龍秀狀啓, 則備陳本府合屬舊豐德農形災損之狀, 仍以爲, 禁·御兩營所管江都留餉米·太, 以詳定代捧, 耗條則本邑輸送摠廳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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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鄭東觀, 以備邊司言啓曰, 卽見黃海監司朴宗來災實分等狀啓, 則尤甚名色, 不爲擧論, 海州等十二邑, 置之之次, 谷山等十一邑, 置之稍實, 仍以爲事目災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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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色, 之次邑只今昨年條仍代, 摠廳餉米之毋得捧留, 非但事目之本嚴, 又有新頒飭令, 有難議到, 而該邑事勢, 與洊歉無異, 平倉所納, 比山城有間, 特許捧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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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幾以此爲不報之報, 千萬不自意, 遭逢我邸下不世之恩眷, 拔之衆棄, 置諸邇密, 自春徂秋, 步武不離於鑾坡, 出入陪衛, 起居昵近於香案, 以臣管蒯[菅U+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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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推之望。 設令比歲而大登, 亦無停退盡捧之勢, 在今日欲行裒益之政, 則惟有他道穀之請得轉輸耳, 湖西安興鎭所管, 本有江都穀名色萬餘石散置沿邊列邑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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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備邊司言啓曰, 卽見京畿監司李羲準年分狀啓, 則分等不爲擧論, 仍以爲, 新舊災二千一百六十九結八十四負二束, 特許準劃, 後錄諸條, 請令廟堂稟旨分付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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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進伏。 醫官吳千根·秦東秀·李命運, 進伏楹外訖。 用龜等曰, 昨於南殿展拜, 勞動旣多, 經宿日候陰濕, 聖體, 若何? 上曰, 一樣矣。 用龜等曰, 王大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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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備邊司言達曰, 卽見黃海監司沈能岳狀達, 則以爲, 本道綿農, 無論沿野, 俱致歉荒, 最尤甚海州等六邑, 訓局砲保木折半代錢, 各軍門各衙門軍身布, 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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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備邊司言達曰, 卽見黃海監司沈能岳狀達, 則以爲, 本道綿農, 無論沿野, 俱致歉荒, 最尤甚海州等六邑, 訓局砲保木折半代錢, 各軍門各衙門軍身布, 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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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江都所送選武布純錢, 其外諸邑各軍門各衙門軍身布, 江都所送選武布, 竝令全數代錢事, 請令廟堂稟令分付矣。 綿農雖未免歉, 軍需自有所重, 當此年形稍康之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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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雖是儲窠之月, 爲先甄復, 兩西及他道善地察訪中, 待窠卽爲差送之意, 分付該曹, 何如? 上曰, 依爲之。 出擧條 載瓚曰, 刑曹諸堂閫帥·守令有闕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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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備邊司言達曰, 卽見開城留守金炳朝狀達, 則備陳舊豐德農形災損之狀, 仍以爲, 禁御兩營所管江都留餉米太, 依已例詳定代捧, 耗條亦以代錢收送, 摠廳所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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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浩上疏批旨, 有令廟堂稟處之命矣, 取見其疏本, 則以爲, 倉儲枵然, 公用有增, 湖西安興鎭所管江都穀散置沿邑者, 待秋成限一萬石移運, 而此或難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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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是誠智謀者所見矣。 噫, 自此以後, 猶無一事之措置, 每値兵患, 幾亡僅存, 此臣所以慷慨憂憤, 深有望於殿下者也。 臣曾爲鳳山·安岳郡守, 歲月雖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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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猝難調用, 且九月·長連·瑞興·首陽四城, 俱是絶險難得之地, 而其中安岳, 在僻物衆, 山有九月險阻可守之形, 水有關西·江都相通之便, 若得牧馭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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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上謂領敦寧府事金堉曰, 延安屯田事, 曾已言于戶判矣。 明年則不可不着實爲之, 覓給農牛多數, 以爲江都之用。 戶曹判書李時昉曰, 當初開墾時, 調用各邑煙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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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啓曰, 以掌令徐元履所陳, 保障之地, 土木·收糴, 大失民情事, 傳曰, 令攸司審處事, 命下矣。 賓廳會議時, 徐元履, 以南漢之收糴, 江都之土木爲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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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竝隷, 則可得精兵五六千矣。 不但蓄銳, 爲緩急之用, 且有戰船, 於江都亦當爲一助也。 長水城海二字缺人皆知險阻可守, 以保其父母妻子, 是人心所固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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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行大司諫李應蓍, 司諫李俊耉, 獻納睦兼善, 正言尹飛卿啓曰, 江都牧埸募民入耕之事, 實是聖代之長慮。 民之應募者, 猶恐或後, 折受田土, 造作家舍, 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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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啓曰, 以掌令徐元履所陳, 保障之地, 土木·收糴, 大失民情事, 傳曰, 令攸司審處事, 命下矣。 賓廳會議時, 徐元履, 以南漢之收糴, 江都之土木爲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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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甚被災之邑, 自上特下全減之敎, 使之相議抄出, 故臣等更加商量, 以本道監司狀啓觀之, 則舒川·韓山·林川·石城·恩津·尼山·扶餘等七邑, 爲尤甚, 以御史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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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啓曰, 因右相箚子, 下道田稅米, 卸下江都, 換受江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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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備邊司草記, 江都牧子事。 答曰, 依回啓施行爲乎矣, 旣有元居人勿許給田之令, 則牧子兺, 別爲給田, 似未妥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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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水城海二字缺人皆知險阻可守, 以保其父母妻子, 是人心所固預二字缺謀者, 經營則可以爲西門之一屛也。 瑞興之城, 在路傍, 可謂要衝, 地形亦險, 有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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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而還設牧場於許耕之地哉? 當初旣不募入則已, 旣爲募入而又令還撤者, 豈非擧措之顚錯耶? 國家之失信百姓, 久矣。 今又如此, 則日後大少命令之下, 孰信而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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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川·韓山·林川·石城·恩津·尼山·扶餘等七邑, 爲尤甚, 以御史書啓觀之, 則唐津·瑞山·沔川, 亦爲尤甚, 而尼山則山野參半, 爲沔川之之次云, 此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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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啓曰, 因右相箚子, 下道田稅米, 卸下江都, 換受江都留米, 來納京倉等事便否, 令廟堂稟處事, 各曹覆啓, 及平壤進士盧夢修等上疏據試文課武, 慰況其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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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二字缺可矣。 時昉曰, 上年海西管餉皮穀二千石, 換二字缺新鐵事, 問于本道, 酌定其價後, 不別送差二字缺諸本道監司, 隨便貿送, 而至今二年, 迄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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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備邊司啓曰, 政院啓曰, 在先朝時, 九王前, 例有別贈之規, 今番使行, 有異於前日。 且其當初入往江都, 又攝政, 似不可無心, 此意如何?事, 傳敎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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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軍器寺官員, 以都提調意啓曰, 別造鳥銃打造時所用薪鐵, 則本廳遺在及江都所在, 姑爲繼用, 而豆錫等物, 則自前, 例以餘丁木, 啓請取用, 今亦依舊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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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軍器寺官員, 以都提調意啓曰, 別造鳥銃打造時所用薪鐵, 則本廳遺在及江都所在, 姑爲繼用, 而豆錫等物, 則自前, 例以餘丁木, 啓請取用, 今亦依舊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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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義禁府啓曰, 傳旨罪人閔應協, 時在延安配所, 金鼎鉉, 亦在陰竹配所, 依例發遣書吏·羅將拿來, 而還上冒受人李庭芳·朴宗岳·鄭東益, 時方在京, 故卽爲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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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該司題給何如事草記, 傳曰, 依啓。 江都所在鐵, 何樣鐵, 而欲爲取來用之乎事, 傳敎矣。 禦敵之要, 莫如鳥銃, 別設一局, 而所用鐵物, 他無拮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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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乎事, 傳敎矣。 禦敵之要, 莫如鳥銃, 別設一局, 而所用鐵物, 他無拮据措備之路, 不得已入啓, 長淵地, 別遣官吏, 自本寺, 米布下送, 吹鐵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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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道之以德, 齊之以禮, 自不至於改嫁, 乃王道也。 拘於法制, 不爲改嫁, 豈純則王道乎? 上曰, 改嫁之子孫, 勿齒東西班正職, 無乃羞愧而然耶? 廷夔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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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404]長淵地, 別遣官吏, 自本寺, 米布下送, 吹鐵繼用矣。 庚寅年分, 因本道監司狀啓, 姑爲停罷, 而所謂江都所在薪鐵, 則己丑冬, 新鑄佛糧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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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東萊而□將能辦此事者, 莫如市井而亦有所難便之意, 仰陳於榻前矣。 適於其時, 譯官李亨男, 下去東萊, 啓請兼管本廳貿販之事, 而亨男以獨身, 勢難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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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戶曹啓曰, 備邊司啓辭, 己丑十二月二十七日晝講後, 韓興一所啓, 江華牧場, 旣爲革罷, 許民耕食, 則自前本寺屯田外, 其餘田畓收稅事, 自江華爲之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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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徽, 以司僕寺官員, 以提調意啓曰, 今九月十八日引見時, 洪命夏所啓, 以京畿監司狀啓, 江都驅馬軍之事, 曾有登對時面稟之敎, 敢稟。 上曰, 此時責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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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刑判啓曰, 凶年恤民之政, 無踰於蠲減賦役。 故畿內則方議賓惠廳[宣惠廳]收米蠲減之事矣。 (必)事必須先計本廳用度, 然後可免匱乏之患, 而今年則勅使刷馬及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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