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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道, 可矣。 上曰, 拯米則工判有守, 予欲從之, 而工判之言, 過矣。 筵中說話, 民人豈不得聞知耶? 廷濟曰, 橋梁修治邑, 則用力多矣。 上曰, 備局,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免爲緩急之倒置矣。 景夏曰, 臣於前夜, 仰陳愚見矣。 今左揆, 必欲築城江都者, 雖出於備陰雨之意, 而臣所見不同矣。 使留守, 依節目修築, 似爲便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經註疏, 有射禮儀, 必是周時所行也。 其間節目, 甚繁。 熊帿尺數, 似以禮器尺磨鍊, 而天子諸侯所射, 則稍大, 卿大夫所射, 則稍小, 今亦依此禮稍廣大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議李鼎輔, 有司堂上洪象漢·金尙魯, 兵曹參知金應福, 右承旨鄭履儉, 同副承旨權相一, 獻納李奎采, 假注書李宜馣, 記注官南溟翮, 記事官尹東星進伏訖。 備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或有異同, 如是狀請, 蓋欲得朝令藉重擧行, 更審而處之, 似好矣。 上曰, 卿兄句管堂上意見, 何如? 尙魯曰, 與臣無異矣。 應洙曰, 金尙魯所達,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上曰, 歐陽脩自初至終最源矣。 宋時諸賢中, 孰爲源乎? 得宗曰, 如文彥博·韓琦·范伊淹輩也。 上曰, 韓琦其所樹立誠壯哉? 亦有福乎? 得宗曰, 誠完福矣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雖爲窮民之大弊, 而防塞, 乃荒歲事也, 非豐年事也。 道臣旣知其弊, 則自當嚴飭各邑而已。 今年旣非荒歲, 而以朝令申禁, 不可創例, 置之, 何如? 晩曰,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屬, 束伍則不得不以兒弱苟充, 今番各邑整待時, 全不成貌樣云, 若至於徵發, 則豈不萬分可慮乎? 摠戎廳需米, 則雖兒弱, 足以備納, 通津·富平·延安·豐德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詳察守令之犯手與否, 則必倍加畏戢云, 則殿下下俯許採用矣。 不幸三南凶歉至此, 而臣意則曾前書員所偸, 守令私用之田結, 盡歸於國, 則凶荒雖如此, 田結庶不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命判下, 一番知委之後, 更無着落, 朝令之無實, 安有如此乎? 臣上來後, 取考備局文書, 湖南劃給條二萬石內一萬石, 又爲劃給賑廳, 三千石入送濟州, 三千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追述先志, 乃亦繼述, 其令禮官, 特爲致祭于書院。 今聞大臣所達, 贈議政臣尹暹, 贈判書臣尹棨等墓, 俱在此地云, 亦爲致祭。 文烈公趙憲, 纔已致祭於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江都者, 雖出於備陰雨之意, 而臣所見不同矣。 使留守, 依節目修築, 似爲便好, 而至於耗竭財力, 誠可惜矣。 雖都城, 只可從便修補, 其所耗財,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守護之地, 何如? 上曰, 戶判果善爲思量矣。 依爲之。 出擧條 上曰, 此永慶殿近處矣。 顯命曰, 南漢行宮, 府尹入處, 未知始於何年而修理, 則自守禦廳爲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曰, 金尙魯所達, 似有其慮矣。 上曰, 左相曾爲江都居留, 必知義旅事矣。 錫五曰, 江都則居民皆是守堞之卒, 不但義旅, 亦有閑良哨矣。 上曰, 江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弊, 而此是凶歲當禁之事, 今年旣非凶歲, 則有非朝家所可防禁者也。 令道臣申飭, 可矣。 令曰, 依爲之。 出擧條 尙魯曰, 此前統制使李景喆申本也。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不究事實, 一循時九之餘套, 終至於覆啓判下, 勿論京外士夫土着民人, 而其所費財築堰, 給價買得之地, 沒數還奪, 至於堰畓, 初是海澤, 元非牧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之世, 君兼師道, 在唐·虞則堯·舜爲之師, 在三代則禹·湯·文·武爲之師, 及夫衰季之君, 不能任其師道, 則於是乎君與師, 分爲二矣。 而師生之義, 與君臣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在矣。 仁廟朝設科, 專爲保障, 而今番則以奉安先朝影幀, 故必欲爲慰悅之擧者也。 然御容之初奉江都, 亦豈非以保障重地, 爲依歸之所故耶? 予意如此,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雖如此, 田結庶不至大縮矣。 其後臺臣之疏, 以發遣御史, 廉察田結爲不可。 夫御史之職, 專主於廉察守令治否, 而兼察田結, 有何所妨乎? 然而殿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賊兵若成軍容, 則不可抵當, 而若如柳孝立喪服入來者, 則足可捕捉。 使兩營標下軍伶俐者三四十名, 變服把守, 似好矣。 上曰, 變服一節誠好。 城頭斥候,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島中之民, 無以聊生, 將至渙散難保之境。 且軍餉米穀, 乃是緩急之需, 自祖宗朝, 設施儲偫者, 專爲保障重地, 而近年以來, 各邑移轉, 無歲無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張泰紹, 以備邊司言啓曰, 各衙門各軍門各樣未捧最多, 一年條定分數收捧事, 旣已成節目, 啓下頒降矣。 其中南·北漢·江都軍餉移轉舊未收, 各邑守令或諉以不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不知事而疏陳矣。 上曰, 承旨亦聞之耶? 尙賓曰, 其時臣無官在家, 本院仕進之後, 略聞云云之說, 而未得其詳矣。 上曰, 大抵尹游有過言耶? 在魯曰, 旣爲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千石移給南漢矣。 卽今所餘四千石, 則亦宜督納, 湖西劃給條一萬石內, 二千石劃給戶曹, 八千石上送江都, 中未收, 乃是六千一百石也。 更令備局, 更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乎? 興慶曰, 此非倉卒可言者矣。 上曰, 非卽今可言也。 俾欲不忘, 而大臣之意, 其欲勿施矣。 興慶曰, 小臣必欲擔當變通矣。 上曰, 常時行人, 皆由孔巖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目修築, 似爲便好, 而至於耗竭財力, 誠可惜矣。 雖都城, 只可從便修補, 其所耗財, 若如江都, 則臣亦當爭之矣。 上謂寅明曰, 卿與景夏, 於江都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辱, 噫嘻, 痛矣。 今日人心世道, 雖極危險叵測, 豈有不審人家故事, 以構陷無根之說, 而托以人言, 甘心害人, 如永福者哉? 臣等不勝痛傷憤鬱, 五內如割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家在官, 不必區別, 竝依受由例, 給七日寬限, 使之上來, 似好矣。 上曰, 依爲之。 出擧條 在魯曰, 故判書金錫衍, 以肺腑至親, 多年將兵, 淸白謹愼,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軍制之差錯, 狀報紛然, 其中或有不得不釐改, 如南漢事者。 而臣則自初不知裏面事, 今又專昧頭緖。 前戶判身死之後, 又無屬托處, 釐改與否, 將無以擧行。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守韓德一, 龍仁縣令李以楷, 砥平縣監金處說, 重林察訪申馹, 以次進伏訖。 上曰, 祭文正書後, 香室官員奉入, 上命書飭諭畿伯綸音曰, 噫, 古人云, 三代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此前統制使李景喆申本也。 備陳本營別會, 近因荐歉, 元數大縮之狀, 仍以別會耗米五百石每年輸納江都一款, 特爲還寢事, 令廟堂稟處, 爲請矣。 統營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非此時則更待何時乎? 不可已之事, 早蒙允從, 則尤爲懽忭矣。 上曰, 早則今日爲之乎? 鳳漢曰, 臣之所懷, 旣已仰達矣。 此是群下同然之情, 一國應行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意如此, 故初雖靳許於通儒之疏, 而更思下敎者也, 三府合設之後, 額數若少, 則一島之人, 想必落莫, 故以五人, 更爲判付矣。 雖然, 江都是主,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皆節省然後, 可以支保。 時任大臣出仕後議處, 似好矣。 上曰, 發遣繡衣之意, 蓋欲兼察田政, 而臺臣之疏, 以爲御史, 不按守令之治不治, 專察田政, 未免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變服一節誠好。 城頭斥候, 訓局主掌, 津頭譏察, 兩營爲之。 江外斥候, 則五營皆爲之。 上曰, 奉朝賀驚動入京, 京中此時人心, 自然有波蕩之憂,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上曰, 不覺有熱矣。 在魯曰, 喉門不乾燥乎? 上曰, 不至於乾燥矣。 在魯曰, 無引飮乎? 上曰, 引飮則無之。 在魯曰, 水刺有厭進之候乎? 上曰, 不至甚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邊尤甚, 精神暈騖, 若在煙霧, 脾土大虛, 食不知味, 連試峻補之劑, 若飮冷水, 種種症形, 雖不敢一一煩溷於天聽, 而若其關係死生之狀, 親友之所共目覩而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然後庶可爲守令動念奉行之道, 而江都米十六萬石內, 戶曹貸用, 至七萬石之多, 而一不還報, 雖緣經用之難繼, 每年如此, 何時責捧乎? 上曰, 向來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故今年年事, 反不如上年矣。 上曰, 守禦使, 今亦入侍, 而廣州軍餉甚小, 是爲悶事。 與之相議, 各別勉旃, 可也。 命敎曰, 臣曾有疏陳之事, 而所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事, 所見不同, 其爲甲乙之論乎? 寅明曰, 臣之欲築江都, 景夏之不欲築江都, 皆出於爲國公心, 此非爲甲乙之論, 而所見適不同也。 景夏曰, 誠如大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見失, 則待秋捧, 以該軍門還上移錄後, 仍留還分取耗, 或無妨耶? 上曰, 原任大臣之意, 何如? 在魯曰, 當初臣意, 則欲使該軍門, 從輕折價, 發賣以來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亦無一人被擄而北去者。 而況廷龜之子孫婦女, 而況臣之祖母, 自初隨其祖母及伯父之行, 舟入喬桐乎? 凡此所陳, 皆有文蹟之斑斑。 臣曾祖之見臣祖母於入海之船明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將至革罷, 實爲重難之意, 爭之而不能得, 只請割給場外陳荒未起墾處矣。 及至當宁壬戌, 本寺啓曰, 江華牧場, 乃是孝廟朝特設之所, 取其馬種之最良,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好矣。 泰遠曰, 緩好比午一樣, 而右三部虛軟矣。 膺祐曰, 脈候舒暢極好矣。 上曰, 翰林考出實錄乎? 其奏之。 下番柳敍五伏而奏之。 上曰, 當年依法行之矣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還寢事, 令廟堂稟處, 爲請矣。 統營以海防大鎭, 近甚凋弊, 年年五百石米之割出移送, 誠難矣, 而江都軍餉, 其數漸縮, 當初朝令, 意固有在。 今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粥云, 故予使入直別軍職, 往于東郊, 若有午餉之粥, 數匙持來云矣。 果有持來者, 而是則白粥也, 而民事誠極可悶, 何以爲濟活之道耶? 鳳漢曰, 萬石劃給,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音洪亮, 無異於昔年, 不勝慶忭矣。 上曰, 儒疏中, 潛通等語怪矣。 諸承旨之徑出, 似或然矣。 陽澤曰, 擅命二字, 尤怪矣。 豈不撕捱乎? 上命讀兵曹啓目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卿悶焉, 相當藥物, 令內局竝與御醫下送, 卿須體此意, 安心善攝, 待其日暖, 其卽登程, 予當聞卿來召見事, 令偕來史官傳諭, 史官先爲來焉, 以便奉朝賀心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江都是主, 通·喬是客, 若通融三府, 全無主客之分, 反致主不如客, 則甚非當初設科之意也。 南北字書塡事, 予未及思之, 而只欲分初終場, 江都則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成明曰, 通津, 爲江都捍蔽, 所關甚重, 臣曾以獨鎭事疏陳矣。 蓋不設獨鎭, 則通津之民, 渙散無餘, 不可不趁速變通, 而京軍門軍額, 移劃至難, 若從容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爲非矣。 其所收稅, 若納于地部, 則太僕無所收矣。 養馬巨達, 將何以給科乎? 此一節, 似當有區別之道矣。 台佐曰, 司僕形勢雖如此, 獨爲區別馬場非矣。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臣之疏, 以爲御史, 不按守令之治不治, 專察田政, 未免爲捨重取輕之歸云, 而況復當此設賑之時, 旣遣御史, 不察賑政, 則三南百姓, 必大違所望。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上曰, 稟定事有之乎? 成明曰, 小臣, 尙未赴任, 姑未知某事某弊之可以仰稟者, 故不敢枚陳, 而但江都習操, 例行於今月, 臣赴任之後, 知委擧行, 則漸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飮則無之。 在魯曰, 水刺有厭進之候乎? 上曰, 不至甚厭矣。 在魯曰, 肢節不痛乎? 上曰, 手脚麻痺, 而臨臥寒縮, 今日稍勝, 而猶未如常矣。 在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揆之意, 亦自如此。 臣雖愚昧, 非不念此大體, 而當民事之切急, 則專意救民, 値經費之匱絶, 則留心恤費, 乃是爲國之道, 卽今如兩南, 麥事大熟, 民食無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 上曰, 向來李箕鎭, 豈不執留米船乎? 東弼曰, 地部稅米之新捧者, 雖難除出劃送, 關西稅米太, 自是地部句管之穀, 卽今諸道中, 關西穀物, 猶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今無闕額之患, 而後世享闢異之名, 豈不誠兩得其宜? 且待之又十年, 則其所蕃育, 將不知幾百萬, 何患乎軍丁之不足哉? 中間死亡, 則使之卽出物故, 以爲徵信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10402]江都, 皆出於爲國公心, 此非爲甲乙之論, 而所見適不同也。 景夏曰, 誠如大臣之言, 非敢爲甲乙之論而然也。 在魯曰, 都城西邊甚虛, 若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更爲稟定宜矣。 出擧條 有龜曰, 日昨引見時, 大臣以兵曹木百同及禁御兩營木各五十同, 逐年輪回, 迭送於江都及南漢, 以備不虞事定奪矣。 此出於深遠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趙榮福啓曰, 本部凋弊之狀, 臣於辭陛之日, 略以所聞於前留守者, 有所陳達矣。 臣到營之後, 考見文簿, 凡事無不殘敗, 已至於莫可收拾之域矣。 臣嘗聞諸議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意也。 南北字書塡事, 予未及思之, 而只欲分初終場, 江都則使之竝赴, 通·喬則使之分赴, 而猶未得其善策矣。 今此依西北例, 南北書塡之說, 極爲便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免稅乎? 各司之續續草記防塞, 有損事體, 今番則一倂出稅後, 參酌區別, 似爲得宜矣。 臣今衰髦此則付諸領相爲之, 當有善處之道矣。 上曰, 此則廟堂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之, 啓下備局, 已經月, 而廟堂適無行公, 大臣·有司堂上, 亦方引入, 未及定奪矣。 凡外方習操, 必行於農前, 可以少除民弊, 而春耕漸迫, 尙未行矣。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上曰, 稟定事有之乎? 成明曰, 小臣, 尙未赴任, 姑未知某事某弊之可以仰稟者, 故不敢枚陳, 而但江都習操, 例行於今月, 臣赴任之後, 知委擧行, 則漸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而流寓上京, 立役雇軍云矣。 上曰, 渠爲加資, 用之何處? 反不如雇軍, 必爲飢餓矣。 申吉萬則爲同知追贈矣, 此則加資實爲無用, 而其在激勸之道, 不可只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江都留泊之船, 今方捉待京江, 則氷猶未泮, 江都所留船, 當先爲發送。 而自前嶺南大同船運時, 自惠廳, 成關文下送, 案付船則船人輩, 不卽直往嶺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稅米太, 自是地部句管之穀, 卽今諸道中, 關西穀物, 猶可下手, 分付地部, 除出關西收稅大小米一年條, 劃送江都, 則如其全失七萬石之米, 雖得此一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又不從令者, 現捉則卽施梟示之律, 捕捉者用捕賊之賞, 則必無逃匿難禁之理, 以此書之信史, 則亦豈不有辭於天下萬世乎? 以殿下高出百王之聖, 不待臣一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敢爲甲乙之論而然也。 在魯曰, 都城西邊甚虛, 若欲守都城, 則蕩春臺, 不可不築矣。 始炯曰, 都城誠不可棄, 而江都, 亦保障之地。 自祖宗朝, 已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40104]鵂巖墩至赤北墩, 舊築土城, 上加女墻, 而不甚高大, 若女墻破毁, 則人馬可一超而入矣。 留守金始㷜, 以甓代石, 且以泥灰, 築成體城及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辱, 噫嘻, 痛矣。 今日人心世道, 雖極危險叵測, 豈有不審人家故事, 以構陷無根之說, 而托以人言, 甘心害人, 如永福者哉? 臣等不勝痛傷憤鬱, 五內如割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也。 略記其槪, 以裕後昆, 是何歲? 卽予三十載, 亦予回甲之年也。 出傳敎 名漢曰, 宴饗亦不可廢, 此實出於君臣通流之意, 如鹿鳴章是矣。 濟恭曰, 後世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申命仁曰, 自泰安, 一妙山脊, 走入海中三十餘里, 陵起開局, 四峯角立, 屹然作城, 且有一脈, 潛入水底, 更起小島, 船泊便好, 城基水勢, 極其堅險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殘之效, 此時徑遞, 實爲可惜, 若依韓德會例, 姑爲仍任, 實合於軫念民事之義, 竝乞深留聖意, 亟降明旨焉。 取進止。 答〈曰〉, 省箚具悉卿懇。 前箚之批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曰, 實錄纂修後, 次次移奉, 無三朔留京之事, 而國有變亂, 且仍上番翰林之引嫌不出, 尙未擧行, 事甚未安矣。 上曰, 李宗白之引嫌, 其果得當乎? 光佐曰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矣。 東弼曰, 加資後, 給逆家田畓若干, 似好矣。 上曰, 田畓米布, 不可疊給, 此則米布田畓間, 自地部參酌, 或從其願給之, 可也。 出榻前下敎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欲移之他邑, 則民必稱冤, 且守令好勝之心, 每欲不給煩報, 防塞矣。 寅明曰, 移送, 旣有朝令, 而本邑, 不肯奉行, 則令道臣論罪, 似好矣。 上曰, 常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時, 如是而何信於民, 堂堂千乘之國, 反同寒乞兒, 湖南種租, 不能責出, 而以沁都已劃給者移送, 朝給江華, 夕移南漢, 又送戶曹, 高麗公事三日云者, 是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子孫, 有朝鮮後, 豈可不用耶? 顯命曰, 三學士事, 問于瀋陽, 則無人知之者矣。 臣以文天祥死後挽詞事言之, 則有一秀才答云, 宜得伸於百世云矣。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臣固不知, 而旣築之後, 任其崩毁, 不復修補, 則國家事甚顚倒矣。 然爲此修築, 使京外許多財力, 盡入於此, 蕩竭無餘, 則城雖完而國隨而弊, 亦何益哉?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不還償, 明春三南漕船過本府者, 準數直納於本府, 何如? 雲逵曰, 軍餉雖重, 國計甚乏, 此則不可爲矣。 鳳漢曰, 前各所貸之數, 方自廟堂, 欲爲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意則或恐有未盡處, 若使秦再奚·張景周摹畫, 則豈無所勝乎? 今若重摹, 汝能爲之耶? 榮祏曰, 雖使秦再奚輩重摹, 似無所加, 而臣則眼昏已久, 雖重着眼鏡,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軍餉居二·居三, 及還上私賑穀居末居二守令邊將, 係是宥旨前事, 竝依例分揀, 而莫重餉還之不爲準捧, 已成近來痼弊, 以昨年捧未捧言之, 朝家旣令參酌分數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其亦可望云, 則決非予意, 決非予意。 守禦使之不可復舊者有五。 一則守禦使何等將任, 而或內或外, 京鄕莫適乎? 二則守禦使本是外任, 便留于京, 將校在京,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矣。 晩曰, 然則江都米一千五百石許劃, 使之待秋還物, 似宜, 此外賑穀則前頭畿邑賑穀區劃時, 一體區劃, 何如? 上曰, 還納, 難矣。 海西有何米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則異於他藥, 每每顯有變動矣。 尙魯曰, 此是大劑故也, 方泰輿進伏。 上曰, 富平與利川, 豐薄何如? 尙魯曰, 利川勝矣。 上命泰輿診察, 泰輿入診退伏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年, 時府使李潤成, 農糧預爲判置, 無牛者, 自官買牛, 使之無牛面分給, 不但今年賑恤之無憂, 喬桐之民, 庶可回蘇, 從今以往, 不置於聖慮矣。 碩載曰,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依準折許其代捧, 使之待明秋還作本色, 新還及舊還中朝家酌定之數, 自當及期準捧, 非所可論, 至於推奴徵債, 最爲擾民, 許令限來秋防塞爲宜, 以此分付, 何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石, 舊還, 今年只以二千石分排, 本道旣非通一道亦地, 雖有尤甚之邑, 亦有稍實之面。 道臣若於一道之內, 區別其當捧不當捧, 則必無全然難捧之理, 一竝停退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下, 深念此弊, 依宋周宣幹之議, 罕設科擧, 且簡額數, 以淸官方, 以靖士習焉, 其言似見於朱書書牘中矣。 一, 近來私債殖利, 名色無數, 奇奇怪怪, 甚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江都事, 尹䥴事兩款, 以破時烈之肝腑, 惟聖明之留神焉。 其以江都事, 爲宣擧累者, 其言曰, 與友同事[死], 友死而不能死, 與妻約死, 妻死而不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之乎? 上曰, 江都事, 亦有可聞者, 而卿新自嶺邑上來, 先陳尙州事, 可也。 師洙對曰, 臣已於上疏陳之, 今無大段可達者矣。 江都事, 則百聞不如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以此足可支用。 冬前姑寢一萬石移轉之擧, 今年自江都出給畿內諸邑, 移轉中, 竝耗計除萬石, 直納戶曹, 則在江都, 旣無入庫餉米移納之弊, 在戶曹,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之。 在魯曰, 此乃全光監司尹得和狀啓也。 曾以江都劃送三南米, 各年條最不納守令拿問事, 僚相陳達後, 令本道査出現告矣, 此卽其査現之啓。 而光州·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付種則幾盡爲之, 雨澤則頃日之雨。 長湍以北, 雖未周洽, 而南漢自陽智·竹山·龍仁等地, 川渠漲溢, 兩麥則大登云矣。 上曰, 秋牟幾間可收耶? 益炡曰,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察其事情, 當條陳矣。 上曰, 近來則江都軍餉米, 能善聚乎? 拓基曰, 八道軍餉, 皆不備元定之數, 而江都·南汗, 雖云比他稍勝, 亦半減於元數矣。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漢, 不可不修葺矣。 寅明曰, 及此閑暇之時, 綢繆之策, 不可不爲之。 江都之築, 最勝於守都城矣。 固守都城則固好矣。 而其其在周慮之道, 不可忽預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禁府議處公事已入, 將勘以不應爲之律, 似至於笞四十收贖矣。 寅明曰, 金錫一旣有上下不察之失, 則依金吾照律施行, 無他矣。 上曰, 然則兵曹佐郞, 依金吾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祥死後挽詞事言之, 則有一秀才答云, 宜得伸於百世云矣。 刑人處見之, 則穿堇容一人之穴矣。 上曰, 然耶? 寅明曰, 今因江都節死事, 敢有所達矣。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之一族。 而其餘一千二百二十九石零, 旣無其身, 又無一族, 責捧於不當之民, 有所不忍。 一倂蕩滌然後, 本場民生, 庶有保存之望, 請令廟堂稟處矣。 前日朝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근현대 소실위기 재중동포 서신 DB화 및 생활문화 분석(178,6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