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1,548,274건의 연구성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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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리역(加里驛)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 편찬 | 한국학중앙연구원]
    상위어청암도(靑巖道) | 관련어승나주도(昇羅州道), 역도(驛道), 속역(屬驛), 역리(驛吏), 역노(驛奴), 함평현(咸平縣)
  • 가리영인;嘉里榮仁 [근대 한국의 학력 엘리트 데이터베이스 구축 | 한국교원대학교]
    청주공립농업학교동창회원명부(1943―02―28)
    학교소재지역충북 | 학교명청주농업학교 | 자료문의한국학교원대학교 교육박물관 한국근대교육사 연구센터
  • 가리왕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북평면과 평창군 진부면에 걸쳐 있는 산.
    이칭별칭갈왕산
  • 가리왕산 전설 [한국 구비문학대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 조사자가 “지명에 얽힌 이야기를 해 주시겠어요?” 라고 하자 다음 이야기가 나왔다. *
    조사일시1983-05-23 | 조사장소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 제보자김진홍
  • 가리키기 행동 이해에 기반을 둔12개월 영아들의 행동 목표 예측 능력 [한국연구재단 기초학문자료센터 | 한국연구재단]
    저자 : 김은영, 게재일 : 2014
    유형논문 | 게재일2014
  • 達梁營 在郡南九十里○水軍萬戶一人新增正德壬午草移于康津加里浦
    출처전거新增東國輿地勝覽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全羅道觀察使金澍馳啓曰: “五月十一日, 倭船七十餘隻, 來泊達梁【浦名。】外, 自梨津浦、達梁浦, 分東西下陸, 焚蕩城底閭閻, 遂圍其城” 云。 初倭船十
    출처전거明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方軍卒不知軍令, 但知窺避, 雖或斬頭徇示, 而頓無救援之意。 衆心不一, 百計無策。 軍卒盡散而後, 倭賊各持槍劍, 闌入城中, 不得已棄城出來。” 云云。”
    출처전거明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辛未 / 巡察使李浚慶啓本: “五月二十七日, 倭船來泊加里浦, 僉使李世麟, 以單弱, 恐不能支, 出城門外, 登山結陣以禦之。 二十八日, 賊入城中, 盡
    출처전거明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壬申 / 傳于政院曰: “昨見巡察使啓本, 則倭人剽掠加里浦兵船, 或奪或焚而去云。 若預知寇來, 則當移避以藏之, 何如是處置之踈乎? 問于備邊司。”
    출처전거明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備邊司啓曰: “加里浦, 在絶島援孤, 恐難守城。 因巡察使馳啓, 軍糧、軍器, 使之處置, 空鎭出來矣。 僉使李世麟見賊棄城, 竄伏林藪, 使公廨盡爲煨燼,
    출처전거明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兵於遠地, 有何益焉? 金景錫則(分)〔才〕量淺狹, 年且衰老, 只斬百餘級, 而自多其功, 急於簿錄, 頓忘出軍之事。 雖云日暮, 若出大兵, 則可以盡殲餘賊
    출처전거明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甚不可也。” 上曰: “昇平日久, 狃於尋常, 防備諸事, 不爲措置, 猝遇倭寇。 元績以孤軍入小城, 至於見殺, 死有餘罪矣。 金景錫受命而去, 所當力戰,
    출처전거明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南征將士之罪, 有一人而二三犯者, 姑擧其罪犯之最重者論之。 罪人崔潾爲珍島郡守, 倭寇尙未犯境, 先率衙屬, 棄城出來, 使百姓蒼黃渡江, 爭舟而溺死者甚衆。
    출처전거明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前所未見, 而漢城府終不啓之。 又於正月二十二日, 軍器寺池水, 無故自湧立, 有頃而止, 匠人及典僕等, 見者甚衆。 亦是可怪之甚者, 而其日晝直官員, 不
    출처전거明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聞於上。 輦轂之下, 可怪之災, 亦未盡達於聰聽, 則四方可知也。 豈人臣愛君警災之道也? 漢城府堂上、軍器寺其日晝直官員, 請竝推考。 濟州, 在滄海
    출처전거明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時, 賊若直搗加里浦、珍島, 則雖有守城假將, 士卒以其假將之令而不聽, 則事機之失, 決於呼汲。 將有陷城失地之禍, 雖悔何益? 若有聲息之時, 離鎭
    출처전거明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傳于政院曰: “今觀全羅道右水使啓本,【加里浦、莞島、大茅島等處敗船唐人, 合計一百五十名, 下陸列伏攅首云。】則此亦唐人漂到者也。 譯官斯速下送。”
    출처전거明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11213 竹島到泊倭船, 經宿不去, 各放銃筒, 擧火相應, 觀其布置, 似非徒然。 諸船出來, 皆由於南, 則必是專往上國地方, 還向本國也。 許多
    출처전거明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三公及備邊司堂上, 同議啓曰: “濟州措置事宜, 時方磨鍊書啓, 而但濟州有事, 則加里浦僉使當先入援。 時任僉使金滌有濕證, 不合於緩急之用。 請遞, 以他
    출처전거明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三公及備邊司堂上, 同議啓曰: “濟州措置事宜, 時方磨鍊書啓, 而但濟州有事, 則加里浦僉使當先入援。 時任僉使金滌有濕證, 不合於緩急之用。 請遞, 以他
    출처전거明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綿, 或以京中木綿充給, 則其於公私, 兩爲便益。’ 大抵州郡之米, 皆雜以糠粃沙土, 一石之中, 可食無幾。 以此充數而給之, 欲軍士之飽食無飢, 豈不難哉?
    출처전거明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非可食者也。 方當戰酣之際, 何暇舂正? 況縮元數, 亦難舂正? 持無實之米, 禦方張之寇, 縱望士卒之盡力, 其可得乎? 方今禦寇之策, 足糧爲上。
    출처전거明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全羅監司黃爾章狀啓, 條列新設各鎭存罷利害, 廟堂覆奏行之。 槪以爲:○羅老鎭則自防踏以西, 至加里浦、於蘭等鎭, 水路屢百里之間, 島嶼羅絡, 環擁回抱,
    출처전거景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石零。 湖南, 羅州、南原、順天、長興、寶城、靈光、靈巖、珍島、樂安、萬頃、光陽、康津、扶安、茂長、務安、興德、高敞、同福、鎭安、長水、雲峯、興陽、求禮
    출처전거正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右道水軍節度營羅州、長興、靈巖、珍島、寶城、樂安、龍潭、萬頃、興陽、康津、海南、沃溝、鎭安、咸悅、求禮、雲峰等邑, 蛇島、古今島、加里浦、古群山、羣山
    출처전거正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湖南設賑, 自正月始設, 至是畢賑。【全州、羅州、靈巖、靈光、珍島、臨陂、萬頃、金溝、扶安、康津、沃溝、興德、茂長、務安、興陽、海南、咸平、古阜、奉仁等邑,
    출처전거正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口實。 行船之際, 向本營則無險濤, 向右營則有險濤。 舟師便否, 當論水路之險夷, 康津境馬島、薪智島及古今島、加里浦等四鎭, 一依左右分界, 請移屬
    출처전거正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嶺南暗行御史李相璜復命, 進書啓, 命吏、兵曹覆啓。 尙州牧使李趾菜、善山府使朴綏源、居昌縣監兪漢紀, 俱以不治, 勘罪有差。 知禮縣監李采, 以糴精賑普,
    출처전거正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鎭安縣監尹永僖, 引義不赴任, 更補加里浦僉使, 至是到防, 道臣以聞。 敎曰: “與共去就, 首已設言。 前待敎沈象奎, 前檢閱洪樂游、徐有聞敍用。 獒樹察
    출처전거正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湖南設賑自正月始設, 至是畢賑。【公賑: 全州、羅州、光州、南原、長興、順天、礪山、古阜、靈巖、靈光、珍島、金堤、臨陂、萬頃、龍安、扶安、咸平、康津、沃溝、興
    출처전거正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木浦、格浦、古突山、黑山島等鎭, 興德牧場, 摠飢民四十六萬九千七十二口, 賑穀二萬七千五百四石。 私賑左水營、右水營、全州、羅州、長興、順天、礪山、益
    출처전거正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命全羅右水使李恒林待秩滿直擬兵使, 加里浦僉使尹永僖畿沿定配。 恒林以加里僉使尹永僖角勝, 上營報辭詬詈, 莞島生松不報徑斫, 而係是恩補, 不得罷黜, 請令
    출처전거正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丁亥 / 次對。 命加里浦, 專屬康津。 該僉使仍作履歷窠。 大臣因湖南道臣狀請, 言該鎭釐(弊)〔弊〕之方也。
    출처전거純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備邊司因全羅監司韓用龜啓, 請: “加里浦土地則專屬康津, 黃腸則依金鰲、折爾等島例, 與靈巖、海南兩邑, 合力均當, 松田禁養, 則依古例屬之監營。 該鎭僉
    출처전거純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而揆以事面, 亦不如禁之之爲得宜。 自今爲始, 銀子一種之館市賣買, 一切禁斷, 如有犯者, 亦自該府, 狀聞勘律。” 從之。 兵曹判書李存秀啓言: “武弁之
    출처전거純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庚戌 / 設水軍鎭管於蝟島ㆍ加里浦。 以臨淄、古群山、山木浦、多慶浦、法聖浦、黔毛浦、羣山浦、智島八堡屬蝟島, 以古今島 ...
    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南桃浦、金甲島、於蘭浦、梨津、薪智島、馬島、會寧浦八堡屬加里浦。 以兩鎭當兩南水路咽喉, 故詢議於本道監司、水使, 置鎭管。
    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 臨急調用, 每於農隙, 守令率其境內各色軍兵, 點閱鍊習, 明示賞罰, 沿邊城壘, 仍舊修築, 可以得力於緩急。 竝令廟堂, 商確稟處。 一, 卽今
    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柳葉箭一巡試才, 取一中以上, 報監營, 監司秋巡時, 更試通一道計分數, 居首一人, 直赴殿試, 之次一人, 直赴會試, 之次五人, 免其當年身布事,
    출처전거英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戰船一, 兵船一, 伺候船一, 珍島, 戰船一, 兵船一, 伺候船二, 務安, 戰船一, 兵船一, 伺候船二, 海南, 戰船一, 兵船一, 伺候船二,
    출처전거萬機要覽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H020209]馴象于此島, 象不食水草, 逢人則墮淚且啼, 其時觀察使以聞, 上憐之押而豢養, 樂安, 興陽蛇渡․呂島․鹿島․鉢浦․損竹島․宣祖二十年
    출처전거萬機要覽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汚之自縊死) 新增人物盧㻶(麗朝平章事蔓之後咸陽郡守善卿之子也孝友出天且潛心性理之學與金宏弼同學於金宗直之門己卯補錄云盧㻶學識淳正且有才行 中廟朝薦 聞特除吏曹
    출처전거輿地圖書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全羅道會寧浦防軍二十八人、童男女十餘人, 入海船覆, 十人渰死。 加里浦防軍二十八人, 準立後罷歸, 船覆十四人渰死。 監司以聞, 令本道施恤典。
    출처전거顯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全羅道會寧浦防軍二十八人、童男女十餘人, 入海船覆, 十人渰死, 加里浦防軍二十八人, 准立後罷歸船覆, 十四人渰死。 監司以聞, 令本道施恤典。
    출처전거顯宗改修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十六日。 兵曹啓: “格浦鎭, 今旣復設爲僉使矣。 殿最依加里浦僉使例, 自巡營磨勘事, 分付何如?” 允之。
    출처전거高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初十日。 敎曰: “今見完伯狀啓, 則加里浦僉使李暐沼之貪饕, 已過萬餘兩之多, 民怨狼藉。 以此小鎭, 何至此極? 又況璿源後裔, 有此僨誤, 尤爲痛駭。
    출처전거高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十四日。 議政府啓: “卽見全羅監司金聲根狀啓, 則‘加里浦亂民等犯罪, 臚列登聞, 請令廟堂稟處’矣。 島俗愚頑, 憑託呼籲, 敢售恐動之計者, 一則許士兼
    출처전거高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於湖右御史事, 誠不勝駭惋矣。 非但聽聞所及, 已有莫掩, 儒疏聲討, 道査指的。 若是狼藉, 毒流列邑, 贓至鉅萬, 若有一分嚴畏之心, 豈容如此?
    출처전거高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災最尤甚 興陽、珍島二邑各年未納舊稅米太를 癸巳條지 每石三兩으로 고 京納錢은 待秋寬限올 事와 被災尤甚 樂安、光陽、海南、靈巖、康津、羅
    출처전거高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十七日。 議政府啓: “卽見全羅監司徐相鼎狀啓, 則‘頃因靑山鎭珍島府隊伍之變通, 加里浦龜船一隻, 竝與防結錢二千一百九十兩, 移屬薪智島。 則各樣應用,
    출처전거高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臺諫啓前事。 憲府啓曰: “全羅道會寧浦、加里浦倭奴入寇, 累日接戰, 不得擒斬一人。 邊將遇小賊, 尙且畏怯如是, 若遇大賊, 則事不可測。 其萬戶等令其道
    출처전거中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兵曹判書張順孫啓曰: “彌助項、防踏、加里浦等處, 已令築城。 防禦至緊, 或令遣官擲奸, 或下諭, 然後其道必知重邊之意。 今對馬島主求請, 未得盡從, 邊
    출처전거中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00000]出陸, 隱伏林藪窺見, 則寺奴天同纔出陸, 賊倭二名, 持槍劍追突衝剌, 卽仆于地。 他餘人, 則或把風帆, 或執櫓隻, 漂流西大洋。 賊倭
    출처전거中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自慶尙道移文, 而任置不報。 其罪犯於軍令, 此書狀, 不言其囚禁推考, 此則不當。 李繼綱與金仁佑, 幷爲囚禁推考啓聞事, 言于兵曹, 移文于敬差官處可也。【
    출처전거中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之, 而群議皆以爲難, 故不爲之, 然飮食侈靡之事, 一切禁斷可也。 京中則法司禁之, 當於飮食之時, 饌品及器具奢侈之物, 摘奸罪之, 外方則監司摘發
    출처전거中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全羅道御史尹止衡入來, 以全州等所犯書啓曰:○達梁城子完固, 然築城於山腰, 賊若登城後山頂, 則俯視城中矣。 且近者, 倭奴三人, 赤身上山頂大呼曰: “有
    출처전거中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曰: “興治處回揭一款, 臣等反覆商量, 終涉未妥。 但念禮接差官之意, 所以使彼不疑也, 差官之還, 若無回揭, 則彼之生疑必矣。 爲大計者, 不可拘
    출처전거仁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武科職至三和府使朴尙夏武科職至延日縣監郭千重武科職至機張縣監金南瑞武科職至熊川縣監徐宅臣武科職至加里浦僉使金潤澤武科職至守門將
    출처전거全羅道邑誌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邑城周四千三百六十九尺門四井四(倉二)(鎭堡)梨津鎭南一百二十里城周二千四百七十八尺井二○水軍萬戶一員於蘭浦(倉二)鎭南一百五十里城周一千四百七尺井一白海南移屬
    출처전거大東地誌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擒二十餘級 辛禑二年全羅道元帥柳濚撃倭于靈巖○本朝 明宗十年倭船七十餘艘寇全羅道遂圍達梁鎭節度使元續及長興府使韓蘊靈巖郡守李德堅往救之兵潰皆死之德堅被擄
    출처전거大東地誌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淸海鎭徙其人於碧骨郡○高麗元宗十三年三別抄焚掠耽津縣 恭愍王元年倭寇萬德社殺掠而去全羅道萬戶以輕騎逐之悉還其俘 二十一年倭寇耽津道康 辛祦五年倭寇道康
    출처전거大東地誌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右道水軍節度使 中軍虞候兼各一(倉庫五)員屬邑羅州靈岩珍島靈光海南務安咸平屬鎭法聖浦群山古群山蝟島臨淄島古今島加里浦南桃浦(黑山島不入)金甲島於蘭浦梨津
    출처전거大東地誌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以李舜臣爲全羅左道水使。 時, 舜臣聲名始著, 論薦相繼, 自井邑移拜珍島郡守, 未赴任除加里浦僉使, 未幾擢拜水使。
    출처전거宣祖修正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之罪狀, 自上旣已洞燭, 不必更爲枚擧, 而身爲主將, 棄城逃走, 使一道士民, 殲滅於兇鋒之下, 嶺南人心, 至今痛惋。 軍律之不嚴, 未必不由於此, 得保首
    출처전거宣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權慄書狀:○晋州牧使羅廷彦馳報內, 新出身鄭思憲、李孟等, 自舟師潰散進告內, 統制使見乃梁下陸, 賊徒無數追逐, 被害丁寧, 全羅右水使、忠淸水使、助防將裵
    출처전거宣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再三請于都監, 而終不肯來, 薄晩, 令都監郞廳李鐵, 就見之其下處, 則說稱: ‘俺等頃日嶺南, 陪護張相公待臣, 行到通州江還來。 側聞準封、準貢等事, 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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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諫院啓曰: “全羅右水使李應彪, 前爲加里浦僉使, 與其時水使李億祺, 同赴閑山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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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諫院啓曰: “全羅右水使李應彪, 前爲加里浦僉使時, 與水使李億祺, 同在戰所, 約以死生, 及億祺與賊鏖戰之時, 應彪見其勢孤, 促櫓先遁, 仍致億祺之敗死
    출처전거宣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府啓: “加里浦僉使李旭, 以捕獲飄倭一船, 至加嘉善, 重加官爵猥濫, 請改正。” 不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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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左議政李德馨馳啓曰: “本月十九日, 泗川、南海、固城之賊三百餘隻, 合勢來到露梁島, 統制使李舜臣領舟師, 直進逆戰, 天兵亦合勢進戰。 倭賊大敗, 溺水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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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丙戌 / 全羅右水使馳啓, 倭賊犯加里浦伏兵處, 兵船四艘被掠。 僉使李䟆左目中矢, 退走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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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之所爲, 已非虛矣。 一番交鋒, 燒船殺將, 直搗無難。 而遲回曠日, 不進不退, 其情雖似叵測, 而豈有深遠難知之計乎? 分泊設疑, 使我聚兵一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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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才, 或陞敍邊將, 或移授邊邑守令。”【先是, 都元帥韓浚謙巡到海陣, 點閱舟師, 則臨淄僉使宋德馹、於蘭萬戶林英立、鹿島萬戶宋敬臣、天城萬戶金時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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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島人也。 被擄而去, 因効忠於倭奴, 謂介同曰: ‘此地, 風俗人心甚好, 可居也, 汝可無懼。 朝鮮則賦役甚苦, 大小全鰒, 無限徵出, 不勝支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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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偏近於全羅右道, 故遠則乙卯, 近則丁亥, 侵擾湖南, 皆是五島之賊。 目今右水使戰船, 只十一隻, 而頃日抽出統制標下船十隻, 添防嶺南, 故又移右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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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曰: “人心不古, 無死長之心故也。 朴犀ㆍ金慶孫之守龜州也, 至於君已出降, 而堅守不降, 只在能得人心而已, 如張巡獨守孤城, 軍卒盡死, 只餘二十餘人而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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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而不降, 兵雖多, 不得人心, 則安能如此乎?” 上曰: “乙卯年, 李德堅降耶? 卿知之矣。” 協曰: “五月初九日, 監司入海南, 向康津矣, 小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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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在縣東二十里卽獐浦下流又禮山縣無限川合流入沔 川郡犯斤乃 獐浦 在縣西二十里源出道髙山入井浦渡 車輪灘 在縣東十里温陽加里川及天安郡浦川合流大浦 大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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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以李滌爲同知, 權克正爲五衛將, 金蓍國爲副摠管, 崔德仁爲所斤僉使, 咸應元爲天城萬戶, 金大海爲梨津萬戶, 金賢立爲登山萬戶, 許仁國爲許沙僉使, 柳光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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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兵批, 以申晉翼爲加里浦僉使, 張自好·曺後益爲司直, 嚴鼎耉·尹洙爲副司直, 金弘郁爲司果, 朴長遠·朴泰元爲副司果, 李袗爲副司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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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下直, 甑山縣令李洽, 所斤僉使崔德仁, 加里浦僉使柳士春, 豆毛浦萬戶柳沚, 長淵縣監閔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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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禁府還爲遠竄, 鄭湛 柔遠鎭, 朴光先 明川洛蛇梁澳加里浦, 朴以章 機張, 任徽之 順天, 李憺 明川, 韓惟翔 端川, 任吉後 乶下, 辛義立 利城, 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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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禁府, 圍籬罪人趙裕善 彌助項, 李厚載 加里浦, 李尙載 天城堡, 定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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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鄭世矩, 以備邊司言啓曰, 詔使之行, 出於該曹經用渴乏之餘, 雖有三結收布, 三名日方物作木之命, 而計其所收, 不過爲五萬餘兩。 銀子之價, 人蔘雜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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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下直, 加里浦僉使金以誠。 以上出燼餘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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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下直, 彥陽縣監金興祖, 大靜縣監安翼龍, 多慶浦萬戶柳時忠, 慶基殿參奉南得朋, 防垣萬戶尹得莘, 連源察訪閔洛, 白翎僉使金運海, 加里浦僉使李循性, 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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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禁府, 圍籬罪人趙裕善 彌助項, 李厚載 加里浦, 李尙載 天城堡, 定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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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禁府還爲遠竄, 鄭湛 柔遠鎭, 朴光先 明川洛蛇梁澳加里浦, 朴以章 機張, 任徽之 順天, 李憺 明川, 韓惟翔 端川, 任吉後 乶下, 辛義立 利城, 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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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兵批, 以申晉翼爲加里浦僉使, 張自好·曺後益爲司直, 嚴鼎耉·尹洙爲副司直, 金弘郁爲司果, 朴長遠·朴泰元爲副司果, 李袗爲副司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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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下直, 加里浦僉使盧守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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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正言兪榥來啓曰, 在十九日洪柱一獨啓中 請還收澳·洛量移之命。 請還收林健·崔濩·姜文翼·申恜·沈之淸·尹昈·蔡有濟·辛敬業·申瑞廷·李宗英·李埁·李慕·朴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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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忠勳府啓曰, 會盟祭吉日, 七月十三日推擇, 啓下矣。 入參功臣, 在外守令, 邊將中, 廣州府尹洪振文, 中軍李慶禎, 水原府使具仁墍, 加里浦僉使盧守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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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忠勳府啓曰, 會盟祭入參親功臣守令·邊將在外人及嫡長·衆子等, 及期來參事, 入啓蒙允矣。 乙丑以前謄錄則見失, 無憑可考, 而取考戊辰年謄錄, 則寧社會盟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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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以備邊司公事, 南平格軍, 未及期限之罪, 在於加里浦僉使李綣拿鞫事, 捧承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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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兵曹官案, 則卽是影職之流也。 其全無履歷, 聖明亦已洞知, 雖曰稍解練兵, 別無大段功勞, 四品臨民之官, 不官遽授於此人, 政體顚倒, 物情駭異, 請命遞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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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正言兪榥來啓曰, 在十九日洪柱一獨啓中 請還收澳·洛量移之命。 請還收林健·崔濩·姜文翼·申恜·沈之淸·尹昈·蔡有濟·辛敬業·申瑞廷·李宗英·李埁·李慕·朴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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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好善·安佺等, 量移放送之命。 軍器寺副正曺浩, 爲人泛濫, 本寺失銀之後,符同庫子, 不告提調, 擅自分徵於別破陣輩, 已極可駭。 且捕盜廳推覈之際, 綢繆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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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獻納金元立來啓曰, 措語已見上, 廿一日金元眞立獨啓中 請還收澳·洛量移之命。 請還收林健·崔濩·康文翼·申恜·沈之淸·尹昈·蔡有濟·辛敬業·申瑞廷·李宗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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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獻納金元立來啓曰, 措語已見上 請還收澳·洛·康文翼·林健·崔濩·申恜·沈之淸·尹昈·蔡有濟·申瑞廷·辛敬業·李宗英·朴乾甲·全璥·任瑗·李之皓·朴弘猷·李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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