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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略, 甚爲愛信。 臣在島中時, 有徐璉者, 自袁軍門來言, 經略, 欲阻海路, 都督, 發怒, 極口凌辱。 徐璉曰, 何必老爺親往乎? 俺當歸達, 經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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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管餉使書目, 椵島潛商田松山, 依事目梟示, 物貨屬公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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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啓曰, 伏見林慶業所送別紙, 其中一款, 乃渡江後逃亡人事也。 我國之人, 萬死逃還, 捉給則情所不忍, 不從則恐有後弊, 此事甚爲難處, 林慶業所答之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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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二行缺乏絶如此, 臣等亦未知可繼之策。 冬間姑二字缺以待歲船之來而已。 似聞開城府有硫黃庫, 其來已久, 試爲採取則不無補用之道。 令該司聞見處之, 似或無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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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本月二十日成貼, 椵島問安使李俔狀啓, 天使十九日來泊椵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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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平安監司書目, 興治若不北走, 仍據 椵島, 納和于瀋陽, 以舟師直犯登萊, 則其爲我國之患, 有所難言, 而興治前後所發八十九隻, 一船所載, 必不下三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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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本月二十日成貼, 椵島問安使李俔狀啓, 天使十九日來泊椵島前洋, 臣卽奉御帖, 候於天使坐船下, 都督乘船, 卽爲出迎, 從容打話, 卽通承命問候之意, 則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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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興治若不北走, 仍據椵島, 納和于瀋陽, 以舟師直犯登萊, 則其爲我國之患, 有所難言, 而興治前後所發八十九隻, 一船所載, 必不下三四十人, 槪計軍數三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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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明榑以備邊司言啓曰, 椵島游擊高進功, 抵書于本司, 有催促船隻之語, 自本司措辭爲答, 似當。 高進功書, 竝爲書入之意, 敢啓。 傳曰, 依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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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幸甚, 若有呈文之事, 則吏文寫字, 亦須極缺可得應用之才, 吏文學官權侙寫字官朴缺 亦令該曹, 知委差送。 且往來軍門, 不無中缺水賊之弊, 京砲手四五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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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備邊司言啓曰, 沈都督接伴使沈之溟, 纔以書狀官往還時, 徑由椵島。 今以正二品, 結銜下去, 則島中之人, 必有致訝之患。 令該曹改送他人, 似當, 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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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民宬, 以吏曹言啓曰, 政院啓曰, 卽接黃戶部接伴使金守玄狀啓, 王監軍已到石城島云, 不多日內當抵椵島矣, 問安使·接伴使, 令該曹急急差出, 數日內發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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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平安監司書目, 獐子島家丁王稱右進告, 劉將請兵瀋陽, 問其去處。 答曰, 去四月步漢二名, 自椵島, 持密書入去瀋陽, 本月初四日右人等, 皆剃頭, 賞給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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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洪命耉, 以內醫院, 以都提調意啓曰, 本院所儲龍腦乏絶, 前頭藥用及臘劑, 數字缺得無路, 極爲悶慮。 伏聞管餉使成俊 缺處, 椵島出來物貨中龍腦, 多數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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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景曾, 以備邊司言啓曰, 撤去禁旅, 設置把撥者, 專爲急傳西報, 而今者, 平安兵使柳琳等狀啓, 陪持人馳到畿甸初面, 則立撥禁軍等, 不許給馬, 使之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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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平安監司書目, 椵島船向蛇浦云, 而宣鎭馳報, 尙不來到事。 入啓。 朴鼎賢家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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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傳曰, 大臣·備局堂上·三司長官命招引見。 聞榻前予使鄭忠信, 雖無興治前進椵島, 剿殺興治之黨, 封府庫器物, 以待他將之來, 而使德憲, 仍爲入去島中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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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備邊司言啓曰, 平安監司南銑處所送, 沈都督票文, 今來本司, 故敢爲入啓。 且林慶業所製椵島檄書, 亦爲來到, 令廟堂指揮云, 而事過之後, 已無議處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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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行大司諫崔惠吉, 獻納崔繼勳, 正言鄭之虎啓曰, 銀臺之長, 素稱極選, 決非人人所據之地也。 都承旨朴明榑事措語見上請亟命遞差。 平安兵使贖還及椵島相換人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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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毛都督接伴使書目, 大鷄島人民, 載來船二隻敗沒事。 出來加次島人民九百餘名, 已爲出送定州事, 去八月二十五日入椵島, 見都督仍辭歸, 本月初五日乘船, 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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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少無輕重矣。 上曰, 今次奏文, 只通其情願而已。 彼雖不喜, 亦不必以此生怒矣, 若或以言語爲酬酢, 則當曰我國軍兵, 本無可用, 大國非不知之, 而所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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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副元帥鄭忠信書目, 鐵山呈以高哥問答, 十三日興治有西去之語, 此爲巧心甚, 不無渡我之計, 不論其去與否, 督率舟師, 直到椵島計料事。 入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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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別無久留之事, 而異國之事, 何可必乎? 聞彼中失農, 穀物甚貴云, 贖還之人入去時, 則自持糧資, 而出來之時, 糧資甚難, 雖贖得人口, 亦難備糧率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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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少無輕重矣。 上曰, 今次奏文, 只通其情願而已。 彼雖不喜, 亦不必以此生怒矣, 若或以言語爲酬酢, 則當曰我國軍兵, 本無可用, 大國非不知之, 而所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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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H010402]江都, 限四五月防守, 公淸道戰船, 又使移置于水使處, 預爲備虞, 可也, 若不思遠慮, 則恐無以應卒也。 上曰, 卿言不無所見, 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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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備邊司草記。 答曰, 知道。 以已往檟島[椵島]之意言之, 可也。 以上內下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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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別無久留之事, 而異國之事, 何可必乎? 聞彼中失農, 穀物甚貴云, 贖還之人入去時, 則自持糧資, 而出來之時, 糧資甚難, 雖贖得人口, 亦難備糧率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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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齎咨官書目, 今二十日入往椵島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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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虞, 可也, 若不思遠慮, 則恐無以應卒也。 上曰, 卿言不無所見, 而予意, 則不知此憂, 在於目前也。 古語曰, 季氏之憂, 不在顓臾, 此其可慮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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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若於有糧處離散, 其可出給乎? 上曰, 渠若入掠則必生事, 給之可也。 上曰, 本道民生, 何以得活乎? 銑曰, 有穀則可以賑之, 而有無未能知。 且山縣不能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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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聖節使書目, 本月初四日到椵島, 督府行禮後, 初六日發向登州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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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黃都督接伴使書目, 本月初三日, 到椵島, 四日將爲見官, 回還冬至使狀啓上送事, 冬至使狀啓登州留滯辭緣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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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島中之事, 如不速決, 則於我國, 亦必有難處之事, 故以是爲慮矣, 豈料其陷沒之若此速乎? 漢人多死云, 甚可慘惻也。 上曰, 島人必不專於備豫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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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今之事勢則如此, 甚難矣。 上曰, 大司憲避嫌中, 亦有所云云, 彼若問之, 若如大憲所言而答之, 則其意則甚好, 而彼何以知我之情事乎? 上曰, 出城之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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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島中之事, 如不速決, 則於我國, 亦必有難處之事, 故以是爲慮矣, 豈料其陷沒之若此速乎? 漢人多死云, 甚可慘惻也。 上曰, 島人必不專於備豫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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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接伴使書目, 沈·李兩將送言曰, 造船漢人六十餘名, 出在椵島, 貴國舟師, 放砲捕捉云, 査問于兩西監司云云事。 入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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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趙緯韓, 以備邊司言啓曰, 前見伴臣狀啓, 皮島退送船隻, 將爲交付於本道監司處云。 船到仍置本營, 自本道粧備可合船隻, 送于椵島, 宜當。 此意監司及管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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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今之事勢則如此, 甚難矣。 上曰, 大司憲避嫌中, 亦有所云云, 彼若問之, 若如大憲所言而答之, 則其意則甚好, 而彼何以知我之情事乎? 上曰, 出城之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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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尹知敬, 以備邊司言啓曰, 仲男出來時, 留蔘義州之事, 非但目今難爲貿給, 日後之弊, 有不可勝言。 義州板蕩之狀, 金差等所自目覩, 數百斤蔘, 不得貿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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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而此則冗官也。 旣有宮官, 於此豈無可學者乎? 師傅徐元履, 有老親, 呈疏於政院, 則政院不捧云, 在渠之道, 極爲猥濫, 可治其罪, 而至於入送, 則似爲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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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之仁, 當如何也? 惟望大國諸大人, 量度其情禮耳。 獻女之事, 則前雖或有此事, 實非可法可行之事, 卽爲停止, 更無此事, 今者大朝, 正當新化, 以女色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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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而此則冗官也。 旣有宮官, 於此豈無可學者乎? 師傅徐元履, 有老親, 呈疏於政院, 則政院不捧云, 在渠之道, 極爲猥濫, 可治其罪, 而至於入送, 則似爲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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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平安監司書目, 龍川呈以唐船七隻, 自獐子島向椵島事。 及龍胡到安州, 作蒙古書, 差送從胡于義州越邊屯胡處, 前頭處置之事, 朝廷以明日指揮事。 及平安兵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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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必遠, 以接待所言啓曰, 遊擊言于譯官曰, 回去咨文中, 必須添入李聲龍事, 然後可免自己中間增衍之責, 且四字缺聞於漢人張應龍處, 所謂張應龍 四字缺此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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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炡, 以數字缺捕盜從事官, 以大將意啓曰, 因刑曹啓辭, 私入椵島漢人處, 貸貨成文沈差 數字缺時, 貽弊人李志珀·南應信, 送于數三字缺 敢啓。 傳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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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同知李尙吉啓曰, 臣等昔年, 久在西邊, 與毛將有相知之分, 而義無私交, 自監司遞來時, 及還朝後二三年, 未嘗修一札以候, 時因往來人, 得聞毛將致憾於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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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上御養和堂, 左議政李聖求, 右議政崔鳴吉, 請對, 承旨李景曾, 注書柳淰, 記事官兪㯙·金振入侍。 鳴吉曰, 椵島之事, 意以爲, 不至如此矣, 終至於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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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承旨李景曾, 注書柳淰, 記事官兪㯙·金振入侍。 鳴吉曰, 椵島之事, 意以爲, 不至如此矣, 終至於陷沒, 都督竟能死節, 極可驚歎矣。 但我軍, 則似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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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平安監司書目, 興治若不北走, 仍據椵島, 納和于瀋陽, 以舟師直犯登萊, 則其爲我國之患, 有所難言, 而興治前後所發八十九隻, 一船所載, 必不下三四十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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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延平府院君李貴身病出仕啓曰, 今者請討空島之議, 出於慮外, 殿下曾有告孫閣老后伐椵島之敎, 必不以一二臣之議, 有所撓改聖算也。 恐不無先入之慮, 故迫於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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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興治若不北走, 仍據椵島, 納和于瀋陽, 以舟師直犯登萊, 則其爲我國之患, 有所難言, 而興治前後所發八十九隻, 一船所載, 必不下三四十人, 槪計軍數三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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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民·崔震立皆能戰死, 俱是常時擢用之輩矣。 鳴吉曰, 喬桐事, 前以退去相議爲敎, 而各陳所懷, 則自上, 裁擇可矣。 當初, 或以濟州, 或以嶺東爲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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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裁擇可矣。 當初, 或以濟州, 或以嶺東爲可, 而其時天使出來, 故仍置江都矣。 缺二行若遷動於彼, 似有驚動之患, 移置濟州則彼亦好矣, 濟州亦不無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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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則上年收納之數, 一千五百兩, 可以論賞, 而自古有錄事, 去官而爲東班職者, 依其規爲之, 何如? 上曰, 觀今年來納之數, 該曹更爲, 取稟施行。 溟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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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鄭百昌, 以禮曹言啓曰, 政院啓辭, 以禮曹草記, 平壤以東, 四處迎慰使, 今當差出矣。 但今此詔使之行, 當於石多山下陸, 則石多山, 乃甑山地方, 我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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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所當擇差, 則與平壤·黃州·開城府·碧蹄, 當爲五員矣。 且乙丑丙寅兩年, 則皆有椵島別問安使, 今則何以爲之? 竝令禮官議定, 何如? 傳曰, 允事, 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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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平安監司書目, 獐子島家丁王稱右進告, 劉將請兵瀋陽, 問其去處。 答曰, 去四月步漢二名, 自椵島, 持密書入去瀋陽, 本月初四日右人等, 皆剃頭, 賞給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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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鐵山呈, 以焰硝所載落後唐船一隻, 到泊椵島, 譯官二員爲興基拘執, 不得上來事。 入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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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景奭啓曰, 今日爲政事, 命下矣。 都承旨鄭廣成有故不來, 右承旨姜弘重以式暇不來, 左副承旨李敏求有故出去, 廳中只有左承旨李明漢, 及臣景奭, 同副承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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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民宬, 以吏曹言啓曰, 政院啓曰, 卽接黃戶部接伴使金守玄狀啓, 王監軍已到石城島云, 不多日內當抵椵島矣, 問安使·接伴使, 令該曹急急差出, 數日內發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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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德洙, 以軍器寺官員, 以都提調言啓曰, 硫黃乏絶之後, 問諸昔日所産各邑, 皆不得眞狀, 求於椵島, 而都督不許, 且於通信使之行, 或其貿來, 而今因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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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各處迎慰使, 安州行大護軍金光炫, 平壤行護軍洪霙, 黃州行刑曹參判朴, 開城府行副護軍呂爾徵, 碧蹄行僉知中樞鄭廣成, 中路問安。 假承旨僉知中樞府事宋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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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接伴使書目, 許副摠, 已到椵島, 王監軍, 來到鹿島, 王太監·翟同知, 亦將出來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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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敏求啓曰, 以譯官宋業男等拿來事, 書吏何時發去, 而罪人等, 緣何今日拿囚乎? 問啓事, 傳敎矣。 問于禁府, 則譯官等, 有乘船後拿來之命, 故初八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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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接伴使書目, 王監軍初十日當到椵島, 王太監翟同知出來事段, 都督言皆是虛傳云, 許副摠監軍相會之後, 還歸次時留島中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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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平安兵使書目, 鐵山呈, 以唐船十八隻, 自西大洋, 指向椵島事。 入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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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接伴使書目, 唐船十五隻來到, 劉興治已到鹿島事, 及劉興治率兵船三十餘隻, 還來椵島事, 及糧船二十一隻又到探問曲折事, 及採蔘漢人三百餘名, 送于麟山越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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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都監郞廳, 以領·右相意啓曰, 卽者鄭使, 使李馨長, 送言于臣等曰, 前府使閔應騫, 昔攻椵島之時, 頗有戰功, 久在西邊, 諳熟事情, 罪犯重輕, 雖未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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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接伴使書目, 初十日申時, 監軍椵島下陸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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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摠戎使書目, 劉興治已到椵島云云事。 入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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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敏求啓曰, 卽聞遠接使, 以來月初四日西下, 而驛官張禮忠帶去云。 一路迎候, 誠爲重大, 而但御前通使, 爲先擇定者, 蓋以事體然也。 未知張禮忠外, 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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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興一, 以禮曹言啓曰, 沈都督處三四字缺禮單揭帖, 令該曹承文院照例磨鍊, 別六七字缺本道守令, 稱以問安官, 使之依例呈進爲當, 七八字缺未可的知, 而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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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上御養和堂, 問安使南斗瞻引見, 右承旨韓亨吉, 注書柳淰, 記事官兪㯙入侍。 上曰, 前見本道監兵使狀啓, 今見爾書啓之辭, 而亦不可以細知其間事情, 今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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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平安監司書目, 宣川呈, 以因伴臣軍官, 得聞興治欽差摠兵卒遊擊三員, 二十四日出來云, 而舟師軍官, 今明當爲出來, 盤問事情, 追乎馳啓計料旀, 本營譯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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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前見本道監兵使狀啓, 今見爾書啓之辭, 而亦不可以細知其間事情, 今爾往來島中, 口達必詳, 爾其詳細陳達。 斗瞻曰, 臣隨往八王, 果爲詳知其事情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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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王監軍接伴使書目, 老江乘船入往椵島, 中路聞監軍, 已爲還歸, 還到永柔待罪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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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冬至使書目, 本月十九日都督前行見官禮, 二十一日椵島離發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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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擒, 押來于八王前, 則沈也, 與夫大同坐, 而箕踞, 小無畏屈之色。 夫大曰, 何不下坐耶? 沈曰, 吾豈有下坐之理乎? 只願速殺我也。 夫大曰, 汝可脫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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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王監軍接伴使書目, 老江乘船入往椵島, 中路聞監軍, 已爲還歸, 還到永柔待罪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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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兵使書目, 李見齎劉將副摠官敎出來, 梁戶部則雖不知名, 而管餉使糧貨等船二十隻, 二十九日朝水, 來泊椵島事。 入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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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睦敍欽, 以禮曹言啓曰, 壬申年國喪, 椵島唐差致祭魂殿時, 有先告之禮, 而至於胡差弔祭, 無有此禮。 今亦依舊例, 勿行先告之意, 敢啓。 傳曰, 知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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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德洙, 以遠接使言啓曰, 詔使, 旣有四月中旬自登州乘船之言, 而本國使臣, 由寧遠出來, 則詔使之自登州乘船的奇, 必不能知。 且詔使來到前, 使臣之出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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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初頭式樣講定, 臨事周旋應變之策, 專在譯舌, 決非尋常通官之所可堪也。 張禮忠, 曾爲王·胡時差備, 而此行所率, 多是前度人, 顔情稔熟, 據例爭辨, 必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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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義州以賊路初程, 守潔之備未完, 老爺數字缺駐箚, 屹然作長城則何幸, 而然非萬全必保之地, 老爺不可不察云, 則答曰, 俺亦熟數字缺督府畀我以便宜, 從事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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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事義州, 有屯駐之數字缺勢則守之, 不便則觀勢進退, 何可膠柱, 正是該國相咨叶議處置之事云云。 仍以牌文, 愼密勿漏, 只持納於殿下前, 而還持數字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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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不聞之理哉? 彼旣稔聞而熟知之, 姑以設問, 勿引我之公家文字, 以試其誠僞耳。 夫一戰一和, 自古兵家之常用, 何可以此一向諱閟, 終至於呈露, 以重其取侮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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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此正貴國豪傑, 奮義滅賊, 數字缺名之秋也。 臣相與酬答, 以椵島形勢賊數字缺犯等語, 再三講論, 將罷之際, 副摠動容撫手曰, 蒙殿下款待之誠, 銜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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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啓則不言我兵掠財, 未知何說是乎? 斗瞻曰, 入島之初, 我兵終不下船矣, 厥後淸人, 頗以此爲疑, 故不得已, 暫掠其米斗靑布麴子等若干物, 以解其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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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愆候而然耶? 遙自費慮, 生[臣]受命西征, 事與意乖, 尙未有所效, 若終如是而已, 則不但仰累聖眷, 將西土人心, 彌見背馳, 到此地頭, 還服台前日疏箚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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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缺以都提調意啓曰, 遠接使啓辭, 張缺式樣完定後, 卽爲上來, 則似爲缺本院參酌事, 允下矣。 臣等, 竊念今番詔使, 難處之患, 有甚於王·胡, 安州下陸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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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崔惠吉, 以禮曹言啓曰, 梁監軍出來時, 椵島問安數字缺謄錄, 無現出處, 而甲戌勅使時, 則稱以別問安使, 前期下送, 且梁監軍時, 則有問禮官差送之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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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形於言語辭色乎? 斗瞻曰, 臣則別無目見其形色, 而累次言及于通事, 兵使等處矣。 臣亦以經亂之後, 國計無形, 陪臣問安, 今已稽遲等意, 措辭爲言矣。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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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權鑊以備邊司意啓曰, 伏見義州府尹及平安監兵司狀啓, 差胡所傳之說, 似出於缺詡恐動, 雖難準信, 聞來極可驚駭, 令本道秘加詳探, 毋使透漏, 期於得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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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無前之例, 而意外可憂之端, 不一而足, 臨事周旋, 決非尋常驛官所可辦, 故使臣之必欲得張禮忠者, 眞切且迫矣。 詔使差備, 不得差定, 故請令張禮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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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云, 而又走不數里, 氣盡自斃云矣。 上曰, 然則追之者我人乎? 斗瞻曰, 不得已我人追之矣。 斗瞻曰, 近聞淸人, 來住九連城近處, 仍爲留屯居生云矣。 上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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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六百六兩備給, 則遊擊以渠之稱子手自稱量, 故縮數幾至七十餘兩, 此刻內, 必欲畢捧, 發其家丁三人, 毆打下人, 困辱郞官, 不得已將言于戶曹判書而處之云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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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曰, 初六日當爲缺馬上宴時往見, 何如? 上曰, 豈不太泛然乎? 缺非緊重軍務之意也。 李溟曰, 副摠所謂缺遣重臣相議等言, 乃督府牌文中語也。 當急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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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同船現形之初, 劃卽飛報, 留軍防岸, 嚴飭瞭望, 在我之道, 無以加此, 而彼無恕量之意, 我在疑信之中, 究厥所望, 則莫非瞭望之顚錯, 狀達之差誤, 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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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缺接待入京後, 下馬宴·翌日宴·上馬宴數字缺餞慰宴設行事。 傳曰, 依啓。 只行上數字缺似當更議處置事, 傳敎矣。 王御史差人, 參將稱號, 故依參遊以上接待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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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甲子·丁卯之變, 已試之矣。 頃日賓廳之議, 李植發言以爲, 士大夫奴僕數字缺團束作兵, 臣則以爲, 當此艱虞之際, 非但奴僕, 雖子弟亦可從軍, 臣有壯子八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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