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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天朝叛將沈志祥領兵千餘人, 自椵島投入瀋陽, 林慶業馳啓以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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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甲申 / 迎接都監啓曰: “詔使入椵島後, 我國不可無問安之禮, 而七處迎慰、中路問安, 皆有定規, 此外添送, 事涉規外, 故令鐵山迎慰使, 先行問安於椵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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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上接見遊擊宋有倉。 有倉自登州向椵島, 遇風漂泊于全羅道靈光縣, 至是, 入京。 上謂有倉曰: “皇上萬福?” 有倉曰: “聖天子平安。” 上曰: “遠涉風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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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甲申 / 迎接都監啓曰: “詔使入椵島後, 我國不可無問安之禮, 而七處迎慰、中路問安, 皆有定規, 此外添送, 事涉規外, 故令鐵山迎慰使, 先行問安於椵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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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椵島後, 我國不可無問安之禮, 而七處迎慰、中路問安, 皆有定規, 此外添送, 事涉規外, 故令鐵山迎慰使, 先行問安於椵島, 措辭具告, 退候於鐵山, 仍行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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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漢船九艘出沒於獐子、椵島之間, 至是乘夜突入獅子島, 擄五人而去, 朝廷使宣川府使閔應騫, 領舟師追之。 我國運糧船一艘, 爲漢舡所獲, 漢人奪其米斛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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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上御崇政殿, 接見 椵島差官王良臣。 良臣曰: “目今一島飢乏之患方急, 而聞有二千石陸運之命。 願令從速陸運, 以致于鐵山, 則當以三板船, 連續運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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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諭椵島檄文:○大明御宇, 率土臣順。 無論遠邇, 咸囿至理。 凡有大小罪辜, 王法具在, 薄海內外, 無所遁匿。 雖復雲雷屯難, 遼、薊阻梗, 聖天子威靈燀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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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平安監司閔聖徽, 請移咨軍門, 具陳島衆無益於綴虜, 而貽弊於小邦, 自相廢置, 變亂屢起之狀。 朝廷欲以此移咨,而未得其便。 會, 游擊宋有倉, 漂到我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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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凡在島中將士、軍民, 各自矜奮, 毌爲竝取馘滅。 須知叛將之變, 甚於胡虜, 亟縛興治, 來詣軍前。 爵賞自有皇朝優典, 義烈足以昭揭宇宙, 豈不休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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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己卯 / 命赦羅德憲, 爲劉興治接伴使。 德憲曾任吉州, 偸竊官穀, 至累千石, 貿銀以歸。 其後, 權鑊爲牧使, 發其事, 遂械治之, 罪至死。 上特免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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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壬午 / 鄭忠信馳啓曰: “偵探人來呈小紙以爲: ‘胡差曲虎言: 「毛帥, 年前委差漢人, 言于我國曰: 『新天子卽位以來, 有意於和親』 云, 而我國不信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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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癸丑 / 上幸南別宮, 方宴監軍, 而報書自椵島來, 有虜賊震汚園陵等語。 上議於大臣, 請勿擧樂、勿揷花, 監軍許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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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庚寅 / 申景瑗馳啓曰: “卽見義州馳報: ‘被擄人買賣之日, 胡人之入往椵島者, 與毛差二人來到, 卽時撤市, 入往鎭江。 大槪聞其事情, 則曲胡及從胡二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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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丙辰 / 上引見大臣、備局堂上, 議送使瀋中。 領議政金瑬對曰: “臣等已與之相議, 欲送朴蘭英, 以示自我不絶之意。” 上曰: “講和與絶和, 定于一可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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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戊戌 / 平安監司金時讓馳啓曰: “卽見接伴使羅德憲狀啓草, 則興治領四十九船向登州, 而興基亦從之云。 向者趙堅所謂載馬于船, 以待陸九州者, 只疑其東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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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諸島多不服興治, 故自往而攻之也。 登州雖空虛, 豈敢以孤軍侵犯乎?” 兵曹判書李弘冑曰: “興治若先攻諸島之不服者, 則天朝已明其爲叛賊, 雖欲歸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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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辛酉 / 初, 椵島留管都督黃龍, 聲言進討登州之亂, 領兵船, 前往旅順口。 至是, 遣其參將于椵島, 率軍兵、妻子及沈世魁女以歸。 沈女卽都督妾也。 邊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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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州, 亦甚明矣。 以數千之卒, 萬里越海, 輕犯上國, 而一有所失, 則必至枯死, 豈爲此危計哉? 謂之投虜, 則又有所不然者。 蓋納款於瀋陽, 聲勢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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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辛酉 / 初, 椵島留管都督黃龍, 聲言進討登州之亂, 領兵船, 前往旅順口。 至是, 遣其參將于椵島, 率軍兵、妻子及沈世魁女以歸。 沈女卽都督妾也。 邊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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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乎? 其不投虜明矣。 我國亦不可罷兵也。 擧師而中止, 則是行盜賊之事爾, 非明正之擧也。 不如進兵椵島, 檄告逆順之理, 諭以伐罪之義曰: ‘所當問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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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備局啓曰: “臣等退而思之, 邊臣所報, 殊甚疎略。 只言興治發船向登州, 而不能詳問發去之由, 遽爾馳啓, 眞的與否, 實未可知。 請姑停下諭之擧, 更得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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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都承旨金尙憲啓曰: “伏見胡書回答中, 毛文龍之在椵島, 本非我心所喜云。 措語事體, 決不當如此。 此一款, 必在更議。 且戶曹磨鍊禮單物件內, 有各色有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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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憲府啓曰: “逆賊李繼先、閔濧, 乃主謀之渠魁, 特以不承〔服〕之故, 初置於未正刑之類, 緣坐、籍沒之律, 閣而不施。 請依承服之律施行。 椵島之行, 實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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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上下敎曰: “告急之事, 至緊且重。 黃珀等受命二朔, 始達椵島, 因毛將攔阻, 不傳而歸, 慢蔑國法, 莫此爲甚。 還收加資, 拿鞫定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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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癸酉 / 是時, 劉興基自長山還椵島, 聞我軍已至海港, 乃卑辭遣使, 以觀動靜, 朝廷却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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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丁亥 / 先是, 上於榻前, 論賑飢之策。 右相李廷龜曰: “或具奏、或移咨于中朝, 而仍送兵曹木數百同, 貿穀以來似當。” 上曰: “椵島商賈, 多載米穀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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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亦已深矣。 況以越干棷逆顔行, 則疆場之力臣, 奉皇上之威靈, 而殊其軀, 固貴藩之忠計等語, 結之, 則其辭愈益嚴矣。 其所以羈縻者, 不過姑安其反側之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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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戶曹啓曰: “卽見管餉使成俊耉移文: ‘以銀子四千兩, 將入送椵島貿米, 而島中市價太高, 以此貿米, 少無所利。 卽今旱災之餘, 偶得小雨, 處處早穀, 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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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癸酉 / 平安兵使柳琳辭朝。 上召見之, 問椵島被陷時事, 琳曰: “椵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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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癸酉 / 平安兵使柳琳辭朝。 上召見之, 問椵島被陷時事, 琳曰: “椵島之西, 連陸二十里, 中有一山。 馬夫達萆山而陳, 取小船七十艘及我船四艘, 載車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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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戶曹啓曰: “卽見管餉使成俊耉移文: ‘以銀子四千兩, 將入送椵島貿米, 而島中市價太高, 以此貿米, 少無所利。 卽今旱災之餘, 偶得小雨, 處處早穀, 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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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0000 諸島, 依舊不絶, 戶部調糧, 陸續出來。 皇上亦有相機撫慰之命, 業奉聖旨云, 可見安撫之擧, 已十八九成, 而關內肅淸, 皇靈已暢, 興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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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內, 只言 ‘待以不死’, 而貸死之後, 則或依前聖旨, 仍住雙島; 或姑副其願, 許歸椵島。 要不出此二者, 若住雙島, 固爲大善, 不幸而還入椵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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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域, 捐金以贖, 民情大慰。⁄〔○〕王自反正以來, 事大甚謹, 海路艱險, 而朝聘惟恪。 聞熹宗皇帝諱音, 率群臣哀臨服衰, 遣洪霶陳慰進香, 又遣韓汝溭等賀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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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辛酉 / 金起宗馳啓曰: “都督自登州還椵島時, 奪取管餉及體府、巡營貿販三船所載之物, 竝與譯官等七人, 而拿回島中, 有同前春義州米船搶掠之擧, 又從而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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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將此意, 移咨閣部, 具陳前後曲折, 則伸縮之權, 皆出於我, 而興師之大義, 自暴於天下。 渠等必皆服罪而知感, 日後侵陵之患, 或可因此少紓矣。 且閣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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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與以後日之維新。 今盡釋前罪, 詳定規例, 以爲君臣世守之信義也。 爾若悔過自新, 不忘恩德, 委身歸命, 以爲子孫長久之計, 則將明朝所與之誥命、冊印獻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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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結局無期。 且龍胡已發同力攻島之言, 若以難便之言, 發於攻島之後, 則爲患莫大矣。” 答曰: “明當面議處之。” 翌日, 上引見諸臣, 問之曰: “昨見卿等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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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備局啓曰: “目今敵情, 萬分可憂。 若或傾國蠢動, 而黃都督方在旅順口, 聞卽出兵, 乘虛擣穴, 則彼必不敢久留。 令承文院, 備將近日虜情, 移咨椵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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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朔癸巳 / 椵島糧船斷絶, 軍民飢困。 都司夏尙進告急於餉臣朴簉, 乞以錦帛換糧, 備局請許一二千石, 上從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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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島, 誠無益也。 興治旣還, 稱以受命, 責以兵糧, 侵擾胡差, 使之生梗, 則終爲我國之大患, 此宜熟講者也。 且島中糧盡, 僅支一月云者久矣。 天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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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淸人將襲椵島, 使耿仲明、孔有德, 大治舟楫, 又令本國調送舟師。 命信川郡守李崇元、寧邊府使李浚, 領黃海道戰船赴之。 仲明、有德, 卽明朝叛將之降於虜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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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王下手札敎曰: “御供之物, 減尅殆盡, 而獨貂裘未減。 西民凍死時, 身着輕裘, 於予心安乎? 今年罷貂裘進獻。” 庚午四月敎曰: “敬老尊賢, 治國之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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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久必遣興治而歸矣。” 瑬進曰: “臣之愚計, 旣已盡陳, 而殿下終不用臣之策, 以爲椵島不可討, 世魁、永平不可誅, 而空留久困之舟師, 以待不來之興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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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劉興治之弟興基, 在椵島送揭帖, 不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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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壬戌 / 平安監司馳啓: “五月十八日, 詔使到泊椵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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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書狀官鄭之羽還自京師。 時, 焰硝、弓角及雜貨所載船,隨後到椵島, 爲劉興基所拘。 平安兵使以其狀聞, 備局回啓曰: “此船乃欽命貿送之物, 且閣部之具船所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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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引見大臣及吏曹判書崔鳴吉。 上曰: “欲以近日之事, 密通于椵島如何?” 金瑬曰: “中原每欲使我國, 與虜生隙。 今若通之則生事必矣。” 洪瑞鳳亦以爲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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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迎接都監啓曰: “兩天使曰: ‘俺等到椵島, 始聞國王私喪。 初意欲製祭文, 行弔祭之禮, 繼聞已爲襄葬。 旣已頒慶行宴, 勢難別行弔禮, 而俺等與國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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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平安監司金世濂馳啓曰: “運米船到椵島前洋, 忽遇大風雨, 昌原船一艘失米七十一石, 靈巖船一艘覆沒, 而水手十三人, 無一人溺死者, 可見其謀避越海之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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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甲辰 / 劉興治自登州, 復還椵島。 上命招大臣、備局諸宰、三司長官, 議之。 上曰: “罷兵之令, 纔過數日, 興治之船, 將近椵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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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甲辰 / 劉興治自登州, 復還椵島。 上命招大臣、備局諸宰、三司長官, 議之。 上曰: “罷兵之令, 纔過數日, 興治之船, 將近椵島, 爲之奈何?” 左議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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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甲辰 / 椵島副摠沈世魁送票文言: “登州叛將孔有德、耿仲明, 被我大兵攻圍, 死亡居半, 餘賊奪船逃至旅順。 或恐奔投麗岸, 加意防守。 如有遼船到彼, 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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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癸丑 / 備局啓曰: “自沈副揔權守 椵島之後, 節日問信, 竝皆停廢, 邈然不相問, 事理未安。 當此登變討平之日, 合遣使臣, 持揭帖、禮單致賀, 仍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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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丙子 / 平安監司金世濂馳啓曰: “西運米舡二十四艘, 到椵島遭風, 皆全船覆沒, 失米凡一萬四百六十八石, 水手溺死者三人, 不知去處者又三人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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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自點請推考。” 答曰: “此賊形勢, 似無卸下於義州之理, 而調發農軍, 奔走於無糧之地, 似非得計。 元帥之不輕動, 不無意見也, 且遮截投虜之路, 實今日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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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甲戌 / 天朝都督吳安邦、周文郁, 追賊船到彌串。 吳安邦所管船一百艘、兵三千二百人; 周文郁船八十艘、兵二千五百人。 太監侯用以監軍來, 船十二艘、內丁三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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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癸未 / 孔、耿兩賊移屯, 與虜兵相連結陣, 天兵退向椵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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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己丑 / 胡差龍骨大、彔只入京。 句管所啓曰: “臣等入見金差, 問其出來之由, 則答曰: ‘我國受天之祐, 阿奴、車訖羅兩國歸順者甚多, 又毛兵投降者, 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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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問安官鄭維城, 入椵島, 劉興治高張紅旗, 書以奇功大捷四字, 受軍將拜賀後, 接見問安官。 興治曰: “島中繼餉無路,未免阻飢。 不得已曾送物貨, 請貿糧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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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庚午 / 初, 平安監司金時讓馳啓言: “劉興治欽差之說, 出於島中, 而勑命則實未下。 自今中外文書, 竝宜勿用欽差二字。” 備局亦以爲: “宜從時讓之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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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甲子 / 孔有德等導虜兵, 潛襲旅順, 殺都督黃龍。 椵島聞旅順敗, 大懼, 備舟楫, 荷擔而立。 都督周文郁, 退住鹿島; 孫、楊兩都督, 退住長山。 副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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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椵島差官李豹義, 持劉興治票文, 率降㺚、獵狗, 馳到義州府, 責出廚供, 侵擾村閻。 府尹以爲, 觀察使時無供饋之令, 爾雖來, 此不可徑先給餉。 豹義大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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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戶曹啓曰: “毛都督於 島中, 接置客商, 一年收稅不啻累巨萬云。 若使都督, 不盡入己, 其補軍餉, 豈淺鮮哉? 我國則京外商人, 雲集椵島, 齎持銀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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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劉副揔接伴使李景憲, 入往椵島, 興治行見官禮, 仍受禮單。 翌日親到景憲館所, 回謝畢, 設宴待之曰: “所輸軍糧,若於氷凍前, 不能畢運, 則當縱軍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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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平安監司李尙吉領兵到劒水, 朝廷以接應査官, 不可無道主, 令還往椵島。 尙吉馳還, 使判官陳誠一代領其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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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遊擊李梅等, 自甑山還向島中, 掠其刷馬七十餘騎, 竝與驅人刼載以歸, 西路民心大駭。 監司閔聖徵馳啓曰: “近日, 唐差責出刷馬之弊, 罔有紀極, 至於刼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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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甲申 / 差官錢國海, 稱以孫閣部差官, 受咨文, 請得軍糧二萬石、戰馬三千匹, 以資興治討賊之具, 由椵島, 將向京城。時, 接伴使李景憲在島中, 爲見國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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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己未 / 上引見領議政金瑬、左議政洪瑞鳳、右議政李聖求、吏曹判書崔鳴吉曰: “使臣將往瀋陽, 多有議定事, 故召見卿等耳。 助兵, 最是難從之事, 何以處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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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故召見卿等耳。 助兵, 最是難從之事, 何以處之?” 瑬曰: “從之則有不可忍; 不從則必生大患, 前頭之事, 大可慮也。” 瑞鳳曰: “我國, 與中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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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將向京城。時, 接伴使李景憲在島中, 爲見國海, 諭以: “我國本非産馬之地, 而兩西旣已蕩殘。 國王事大之誠, 非不至矣, 而其奈力不贍何? 何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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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瑞鳳曰: “我國, 與中朝有父子之義。 一朝以兵刃相加, 誠有所不忍也。” 弘冑曰: “此則異於攻椵島。 若以情勢言之, 或不無動聽之理。” 聖求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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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路, 書啓曰:○臣在蛇浦, 探聽督府情形, 而漢人之言, 取實爲難, 故不及於狀啓中矣。 然旣有聞, 故更爲書啓。 近來皇上恩眷, 日以益隆, 冊封夫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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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時務。 予當體念焉。” 上又曰: “曾在山城, 予以爲, 宗廟、子孫, 盡在江都, 若江都保存, 則山城雖陷, 廟社有托, 豈意人謀不臧, 天塹失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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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甲寅 / 椵島千摠夏國柱, 率家丁八十餘人, 來到祥原縣, 猝入民家, 括取財畜, 打傷民人。 縣監金迪馳往禁之, 國柱怒縱其卒, 或發矢、或拔劍, 使不得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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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摠督軍門胡良輔, 本月初八日, 來泊椵島, 宣川、郭山之賊, 退屯所串, 元鐸馳啓以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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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時, 朝廷以 毛將情形異前, 將遣重臣往覘之, 厚其幣以釋其疑, 遂以戶曹參判李景稷稱問安使, 將送椵島。 副提學鄭經世上箚, 陳其六不可曰:○臣竊聞, 李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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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淸將馬夫達, 領舟師七十餘艘, 襲破椵島, 都督沈世魁, 不屈而死, 軍兵死者萬餘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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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左議政李聖求、右議政崔鳴吉請對, 上召見之。 鳴吉進曰: “椵島失守, 極可驚慘。 但我兵不與云, 此其幸矣。 且天朝之路, 今已絶矣, 缺然莫甚。 他日雖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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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丁未 / 遣京官, 問慰毛都督于椵島, 又送御帖、禮單, 使之問慰任世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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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上引見問安使南斗瞻, 問之曰: “爾能詳知其事情而來乎?” 斗瞻對曰: “八王初以攻島爲難, 而一日稱以出獵, 歷觀椵島形勢然後, 舁舟上山, 乘霧而行, 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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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毛將之搆毁, 一至於此, 夫復何言?” 尙憲曰: “虜賊請和於中朝, 帥臣則有羈縻之計, 朝議則皆以爲不可和。 臣等到登州, 金地粹所知士人范明鏡, 出給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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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丙戌 / 正朝問安官到椵島, 劉興治言曰: “我票下家丁三十餘人, 到中和, 太半被殺。 這人原是天朝赤子, 而麗人打殺如草芥。 爾等傳報于布政司, 査得殺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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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庚子 / 上命査考椵島今年給糧之數。 正月因夏尙進齎來物貨, 令餉臣許貿者一千石, 其後因沈都督咨, 白給者二千石, 又因高進功之來, 許貿者三千石, 前後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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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江都之後, 本府留守及檢察使, 各有所事, 而臣名雖大, 臣實無所管, 其於軍務、防守等事, 有同秦、越。 一日望闕禮罷後, 臣語諸官以: “君父方受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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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楊摠兵領兵到椵島, 御帖及禮單, 下送于接伴使宋錫慶處, 使之問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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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濟州牧使李廓馳啓曰: “漂流唐船, 來泊州境。 問之則濟南府屬邑濱州、定州等處人, 以椵島運糧事, 裝載登州和豐倉小米四百六十碩, 十月初九日擧帆, 幾至皇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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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辛卯 / 晝講《書傳》。 講訖, 同知事朴東善曰: “近來天災時變, 罔有紀極, 而不意火災, 出於眞殿, 自上尤當恐懼修省也。” 上曰: “夙夜恐懼, 而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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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者亦稱是。 計無所出, 收出城中牛馬四十餘頭, 鬻于毛營, 貿糧百餘包, 僅救涸轍之命。 唐差毛永璇告急於毛營, 幸賴督府垂憐, 給米七百包。 安衛、李穳等領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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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乙未 / 椵島守將劉興治謀叛, 爲張燾、沈世魁等所殺。 興治欲投虜, 而恐島衆不從, 潛與降㺚, 結爲腹心, 先殺將校之不與己者, 又欲盡除島衆之不從者。 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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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之後, 王子爲适所戴, 雖奪奉慈殿, 是出於爭國而爲簒賊明矣。 知此逆順, 則當知請兵之爲急矣。’ 今聞安訥對玉堂官員曰: ‘未踰年三字, 出於臣口’, 而渠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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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天朝以我國之事爲何如?” 堉曰: “天朝洞知我國情事, 故每言: ‘勢窮力弱, 至於此’ 云。 兵、禮兩部及沿路帥臣, 亦厚待使臣矣。” 上曰: “皇帝明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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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引見大臣、備局堂上。 上曰: “椵島之事, 處置甚難。 此賊若欲投虜, 則不可說也。” 吳允謙曰: “輕易下手, 則終恐難處。” 上曰: “予意亦不必殺戮,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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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起宗馳啓曰: “義州之賊, 移陣龍川。 都督之兵, 遇賊二十餘騎, 或舍干戈; 或赴水中, 悉引兵船, 還向椵島, 義州之事, 更無可望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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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壬寅 / 領府事李元翼, 聞椵島生變, 眞殿被災, 自衿川入來。 上聞之大悅, 遣承旨存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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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癸巳 / 毛文龍參將曲承恩, 率兵千餘, 自椵島向理山等地, 侵掠居民, 江邊一帶騷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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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以濟州漂流漢人李如果等十人, 送還椵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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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則揖而已。” 上曰: “分東西而坐耶?” 聖求曰: “初見時則彼輩主壁, 而其後則分東西矣。 且東宮體候萬安, 是可喜也。 第齎去奏文, 終不得呈進, 不勝皇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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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可惜也已。” 自點曰: “隨往之人, 其罪似輕, 取其重者而罪之, 以懲後弊似當, 而孝元情狀, 尤極奸詐, 仍刑可矣。” 上曰: “慶業已死, 今何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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