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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仍爲代捧, 事勢固然矣, 依施。 大興·臨津·長山移轉穀捧留本邑事, 軍餉, 與他自別, 已例不必每循, 而遠輸之際, 所費必倍, 亦爲依施。 長·坡附近之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敎嘉善大夫江華府留守兼鎭撫使林蓍喆書。 王若曰, 居留之名, 始自宋而重其任, 保釐之責, ?在周而難其人, ?玆江都一方, 控于邦畿千里, 樓櫓壯金湯之勢,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已例不必每循, 而遠輸之際, 所費必倍, 亦爲依施。 長·坡附近之地, 使之從民願, 或捧留或輸納, 而耗條竝令輸納於本所, 摠廳守堞軍官, 壯抄牙兵等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 而耗條竝令輸納於本所, 摠廳守堞軍官, 壯抄牙兵等身米及各軍門衙門自前納米者, 一體代錢事, 雖有已例, 軍門衙門之竝請, 亦罕其例, 尤甚邑依所請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戊戌七月二十二日未時, 上御誠正閣。 問郞入侍時, 行左副承旨鄭民始, 校理沈念祖, 修撰鄭志儉, 記事官鄭東浚·林錫喆·徐龍輔, 以次進伏訖。 上曰, 今番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重究, 該縣監趙重鎭, 當時不能檢飭之失, 不可無警責, 從重推考爲宜, 以此分付, 何如? 上曰, 依爲之。 被燒之如是?然, 聞甚矜惻, 當寒?離之狀, 如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曹事, ?有成命, 而本府餉穀, 或因各處貸去, 或因?歲停捧, 時在三萬二千一百餘石內, 當年還上, 依定式分給。 目下留庫爲一萬六千一百餘石, 若於此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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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燕尾亭往來京城耶? 善復曰, 然矣。 上曰, 若設置江華, 則物役幾入乎? 多入則難矣。 所造者龜船·戰船·防船而已乎? 善復曰, 役以都城之民, 使裝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監兵營接見之時, 勿以邊將視之, 隨其資級, 與守令序次而待之, 赴任之行, 西北邊將, 皆有草料驛馬, 而此則特以優異之意, 成給路文, 使之騎馹下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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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代之久, 而敎官·禁都等職, 始亦無?除擬, 則到今拘於近例, 惜一寢郞, 臣則常以爲不必然矣。 況何拘地處? 聖敎卓越, 而銓官之尙此因循, 未免太局, 先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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