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총 1,550,573건의 연구성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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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66년 신석손(申碩孫) 초사(招辭) [한국학자료센터 중앙허브 구축(1단계) | 한국학중앙연구원]1466년 신석손(申碩孫)이 영해부에 올린 사실확인서이다. 남수(南須)와 그 처 백씨가 자녀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주면서 상속문서를 작성할 때, 신석손은 증인으로 참석하였다. 상속을 받은 둘째 아들 남...내용분류법제-소송‧판결‧공증-초사 | 형식분류고문서-증빙류-초사
- 1466년 오응(吳凝) 고신(告身) [한국학자료센터 중앙허브 구축(1단계) | 한국학중앙연구원]1466년(세조 10) 1월에 세조가 오응을 가선대부함길도관찰사에 봉하는 문서이다. 함길도는 조선시대의 팔도 중 하나로 현재의 함경도 지역에 해당한다. 오응은 1457년(세조 3)에 장원으로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내용분류정치‧행정-임면-고신 | 형식분류고문서-교령류-고신 | 현소장처국립중앙도서관
- 1466년 오응(吳凝) 고신(告身) [한국학자료센터 중앙허브 구축(1단계) | 한국학중앙연구원]1466년(세조 10) 2월에 세조가 오응을 가선대부함길도관찰사겸함흥부윤에 봉하는 문서이다. 함길도는 조선시대의 팔도 중 하나로 현재의 함경도 지역에 해당한다. 오응은 1457년(세조 3)에 장원으로 급제한 후, 여러 관...내용분류정치‧행정-임면-고신 | 형식분류고문서-교령류-고신 | 현소장처국립중앙도서관
- 1466년 임모(林某) 초사(招辭) [한국학자료센터 중앙허브 구축(1단계) | 한국학중앙연구원]1466년 임아무개가 영해부에 올린 사실확인서이다. 오랜 세월 전해지는 과정에서 훼손되어 말미만이 겨우 남았다. 그러나 풀로 이어붙인 신석손(申碩孫)의 사실확인서 등을 통해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내용분류법제-소송‧판결‧공증-초사 | 형식분류고문서-증빙류-초사
- 1466년의 행정구역 복원도자료문의성신여대 양보경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진흥사업단
- 1467년 김교(金嶠) 적개공신교서(敵愾功臣敎書) [한국학자료센터 중앙허브 구축(1단계) | 한국학중앙연구원]1467년(세조 13) 11월에 김교를 정충출기포의적개공신으로 책록하면서 그 공을 치하하기 위하여 발급한 문서이다. 김교는 함경도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허종 등 44인과 함께 적개공신으로 책록되었고, 1등 ...내용분류국왕‧왕실-교령-공신교서 | 형식분류고문서-교령류-공신교서 | 현소장처함양 선산김씨 양양공 김교 후손가
- 1467년 손소(孫昭) 적개공신교서(敵愾功臣敎書) [한국학자료센터 중앙허브 구축(1단계) | 한국학중앙연구원]1467년(세조 13) 11월에 손소를 정충출기적개공신으로 책록하면서 그 공을 치하하기 위하여 발급한 문서이다. 손소는 함경도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허종 등 44인과 함께 적개공신으로 책록되었고, 2등 공신...내용분류국왕/왕실-교령-공신녹권 | 형식분류고문서-교령류-공신녹권 | 현소장처경주 양동 경주손씨 서백당
- 1467년 이부(李溥) 적개공신교서(敵愾功臣敎書) [한국학자료센터 중앙허브 구축(1단계) | 한국학중앙연구원]1467년(세조 13) 11월에 이부를 정충적개공신으로 책록하면서 그 공을 치하하기 위하여 발급한 문서이다. 이부는 함경도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김교 등 44인과 함께 적개공신으로 책록되었고, 3등 공신으로...내용분류국왕‧왕실-교령-공신교서 | 형식분류고문서-교령류-공신교서 | 현소장처국립중앙박물관
- 1467년 장말손(張末孫) 적개공신교서(敵愾功臣敎書) [한국학자료센터 중앙허브 구축(1단계) | 한국학중앙연구원]1467년(세조 13) 11월에 장말손을 정충출기적개공신으로 책록하면서 그 공을 치하하기 위하여 발급한 문서이다. 장말손은 함경도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허종 등 44인과 함께 적개공신으로 책록되었고, 2등 ...내용분류국왕‧왕실-교령-공신교서 | 형식분류고문서-교령류-공신교서 | 현소장처영주 화기 인동장씨 장말손 종택
- 1467년 장안량(張安良) 별급문기(別給文記) [한국학자료센터 중앙허브 구축(1단계) | 한국학중앙연구원]1467년 장안량(張安良)은 맏아들 선손(善孫) 몫으로 상속하였던 서울집 한 채를 둘째 아들 말손(末孫)에게 다시 내려주었다. 서울에서 관리로 승승장구하던 말손이 집이 없어 불편하였기 때문이다. 대...내용분류경제-상속‧증여-분재기 | 형식분류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 현소장처영주 화기 인동장씨 장말손 종택

근현대 소실위기 재중동포 서신 DB화 및 생활문화 분석(178,6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