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총 1,545,707건의 연구성과가 있습니다.
홈 > 연구성과별 자료보기
- ○하가(下家)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6월 20일 계미, 맑고 바람이 붊. ○하가(下家)에 머물렀다. 근심이 더욱 심해졌다. ○환자의 기맥(氣脈)이 위급해져서 입으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6월 19일 임오, 맑음. ○하가(下家)에 머물렀다. 근심으로 마음을 졸인 것이 말로 할 수 없으며, 신경을 써서 몹시 괴로웠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 있으며 근심을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6월 16일 기묘, 비가 내고 바람이 크게 붊. ○하가(下家)에 있으며 근심을 했다. ○아픈 아들이 밤에 간혹 입을 벌릴 때면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서 무사(巫祀)를 행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2년 12월 15일 계해, 맑고 가뭄. 남정자(南亭子) 아래에서 성주(星州) 장시(場市)를 열도록 관찰사가 지시했다 한다. 남정자(南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서 묵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1년 10월 19월 계유, 맑음. ○하가(下家)에서 묵었다. 약을 먹지 않았다. ○숙길(淑吉)의 이질 증세는 아직 다 낫지 않았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서 잤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2월 30일 을미, 흐림. ○하가(下家)에서 잤다. 솔가루[松末]를 먹었다. 저문 후 당(堂)으로 돌아와 거처했다. ○천택(天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서 잤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2월 29일 갑오, 밤에 비가 내리다 아침에 그치고 낮에 맑음. ○하가(下家)에서 잤다. 솔가루[松末]를 먹었다. ○밥을 먹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서 잤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2월 27일 임진, 맑음. ○하가(下家)에서 잤다. 솔가루[松末]를 먹었다. 올라가 천택(天澤)을 보았다. ○천택의 기맥이 조화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서 잤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2월 26일 신묘, 맑고 바람이 붊. ○하가(下家)에서 잤다. 솔가루[松末]를 먹었다. 술을 마셨다. 올라가 천택(天澤)을 보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서 잤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2월 25일 경인, 비가 흠뻑 내림. ○하가(下家)에서 잤다. 솔가루[松末]를 먹었다. 올라가 천택(天澤)을 보고 저녁에 내려왔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서 잤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2월 24일 기축, 바람이 불고 맑음. ○하가(下家)에서 잤다. 솔가루[松末]를 먹었다. 공숙(公叔)을 위해서 술과 고기를 먹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서 잤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2월 23일 무자, 맑고 바람이 붊. ○하가(下家)에서 잤다. 솔가루[松末]를 먹었다. 일찍 올라가서 천택(天澤)의 병을 살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서 잤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4년 10월 21일 경인. ○하가(下家)에서 잤다. ○이경성(李景星)이 꿩 2마리를 보냈다. ○삼가(三嘉) 현감 류직경(柳直卿)이 사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서 잤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4년 10월 20일 기축. ○하가(下家)에서 잤다. ○정랑(正郞) 육대춘(陸大春)의 부탁으로 성주 관속이 쌀‧콩[太] 각 1섬을 주었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서 잤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4년 10월 19일 무자. ○하가(下家)에서 잤다. ○귀손(貴孫)이 괴산(槐山)에서 돌아왔다. 금손(今孫)이 따라왔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서 잤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4년 10월 18일 정해. ○하가(下家)에서 잤다. ○권자효(權子效)가 소 염통[牛心] 1개를 보냈다. ○임(任) 판관이 청어 10마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서 잤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4년 10월 17일 병술. ○하가(下家)에서 잤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루 종일 검은 벼루 갑 깨진 곳을 다시 다듬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4월 4일 병신, 지독하게 가뭄. ○하루 종일 검은 벼루 갑 깨진 곳을 다시 다듬었다. ○남근지(南勤之)에게 푸른 안갑[靑韉]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빈(河濱)에서 백(白) 봉사(奉事)의 집으로 갔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3년 8월 29일 계묘, 맑음. ○하빈(河濱)에서 백(白) 봉사(奉事)의 집으로 갔다. ○판관이 아침에 의령(宜寧) 현감을 초대했는데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빈(河濱)에서 성주(星州)로 돌아왔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3년 9월 2일 을사, 맑다가 안개 낌. ○하빈(河濱)에서 성주(星州)로 돌아왔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재촉해서 먹고 해가 뜰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빈(河濱)으로부터 성주 관내로 돌아왔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3년 3월 5일 신사, 크게 가물고 바람 붊. ○하빈(河濱)으로부터 성주 관내로 돌아왔다. ○주인이 청하여 말하기를, “부사의 행차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빈(河濱)의 역자(驛子) 집에서 잤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2월 23일 계축, 맑고 바람 붊, 아침에 서리가 내리고 매우 추움. ○하빈(河濱)의 역자(驛子) 집에서 잤다. 방 벽에 틈이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한밤중에 일어나 이른 아침을 먹고, 파루(罷漏) 후에 노원(盧原)으로 나갔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2월 17일 병인, 맑다가 안개가 낌. 한식(寒食). ○한밤중에 일어나 이른 아침을 먹고, 파루(罷漏) 후에 노원(盧原)으로 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한성부판관 정경중(鄭敬仲)이 보낸 차부(車夫)‧색장(色掌) 등이 곽판(槨板)을 실으러 왔기에 술을 먹이고, 콩[太] 1말, 목면 1필을 주어 보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6년 1월 22일 무인, 흐림. ○한성부판관 정경중(鄭敬仲)이 보낸 차부(車夫)‧색장(色掌) 등이 곽판(槨板)을 실으러 왔기에 술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한세린(韓世麟) 댁에서 성주(星州)의 우가(寓家)로 돌아왔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8년 5월 10일 갑신, 가끔 비가 내림. ○한세린(韓世麟) 댁에서 성주(星州)의 우가(寓家)로 돌아왔다. ○밤에 주인과 함께 잤는데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할머니의 기일(忌日)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7년 8월 17일 정유, 맑음. ○○○할머니의 기일(忌日)이다. ○당(堂)에서 묵었다. 손자를 돌보았다. ○판관 부인의 지문(誌文)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할머니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8월 17일 기사, 소나기가 내리고 흐리고 더움. ○○○할머니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새벽에 일어나서 기제(忌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할머니의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8월 17일 갑술, 비가 몰려옴. ○○○할머니의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사물탕(四物湯)을 먹고 조리했다. 아내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할아버지의 기일이나 제사 차례가 다른 집이라 소식(素食) 만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10월 11일 정묘, 맑고 바람이 붊. ○○○할아버지의 기일이나 제사 차례가 다른 집이라 소식(素食) 만 했다. ○내려가 함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할아버지의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2년 10월 11일 경신, 맑음. ○○○할아버지의 기일이다. 재계하고 소식(素食)만 하고 제사를 지내지 않았는데, 제사를 다른 댁에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할아버지의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4년 10월 11일 경진. ○○○할아버지의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판관의 아내가 날홍합[生蛤]‧문어 등의 식품을 보냈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할아버지의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10월 11일 병진, 밤에 비가 내렸는데 높은 산에는 모두 흰 눈이 쌓이고 아침에는 맑음. ○○○할아버지의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할아버지의 기일이어서 소식(素食)하고 재계하며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1년 10월 11일 을축. 맑다가 흐림. ○○○할아버지의 기일이어서 소식(素食)하고 재계하며 지냈다. ○당(堂)에 머물렀다. 약을 먹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할아버지의 기일인데, 제사 차례는 매년 다른 집으로 돌아가서 한 차례도 행하지 못했고, 재계하고 소식(素食)만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10월 11일 임술, 맑음. ○○○할아버지의 기일인데, 제사 차례는 매년 다른 집으로 돌아가서 한 차례도 행하지 못했고, 재계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함양(咸陽)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4월 6일 경오, 흐리고 동풍이 붊. ○함양(咸陽)에 머물렀다. ○군수가 아침 일찍 나와서 점심(點心)을 함께 하고는 바로 사창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함양(咸陽)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4월 5일 기사, 조금 흐리고, 해가 때때로 비치고, 서풍이 붊. ○함양(咸陽)에 머물렀다. ○군수가 일찍 나와서 이른 아침밥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함양(咸陽)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4월 4일 무진, 흐림. ○함양(咸陽)에 머물렀다. ○군수 서경(瑞卿)이 아침에 찾아와서 이른 아침밥을 같이 먹고는 바로 사창(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함양(咸陽)에서 안음(安陰)으로 갔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4월 7일 신미, 맑음. ○함양(咸陽)에서 안음(安陰)으로 갔다. ○새벽에 일어나 머리를 빗고 아침을 기다렸다. 주인이 나와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합천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8년 3월 27일 임인, 맑음. ○합천에 머물렀다. ○노 야찰(也札)이 하초(下焦)에 산병(疝病)배꼽 아래의 복부에 병이 있어 복통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합천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8년 3월 26일 신축, 맑음. ○합천에 머물렀다. 단성 현감 도현보(都鉉輔)를 만났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합천에서 최우(崔祐)의 집으로 갔는데, 도중에 더워서 토하고 설사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8년 3월 28일 계묘, 맑고 더움. ○합천에서 최우(崔祐)의 집으로 갔는데, 도중에 더워서 토하고 설사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해인사(海印寺)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9월 4일 신묘, 흐리고 바람 불고 비가 내림. ○해인사(海印寺)에 머물렀다. 숙길(淑吉)도 같이 머물렀다. ○합천(陜川) 현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해인사(海印寺)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8년 8월 18일 임술, 맑음. ○해인사(海印寺)에 머물렀다. ○일찍 일어났는데, 밤잠이 매우 불편했기 때문이다. ○관찰사가 아침 일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해인사(海印寺)에 유숙하는 바람에 약을 먹지 않았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2년 10월 3일 임자, 맑음. ○해인사(海印寺)에 유숙하는 바람에 약을 먹지 않았다. ○판관이 아침에 와서 함께 밥을 먹고, 식사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해인사(海印寺)에서 성주로 돌아왔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2년 10월 4일 계축, 맑음. ○해인사(海印寺)에서 성주로 돌아왔다. ○판관이 일찍 왔기에 식사를 재촉하여 함께 먹었다. 밥을 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해인사(海印寺)에서 성주로 돌아왔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8년 5월 3일 경술, 맑음. ○해인사(海印寺)에서 성주로 돌아왔다. 머리를 빗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흰죽을 먹고 몽정(夢井)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해인사로부터 신당촌으로 돌아왔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6년 9월 26일 경진, 맑음. ○해인사로부터 신당촌으로 돌아왔다. 아침밥을 먹은 후 은경(殷卿) 및 성원(性元)‧현희(玄曦) 등과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해인사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6년 9월 25일 기묘, 맑음. ○해인사에 머물렀다. 순기원(順氣元) 순기원(順氣元) : 順氣散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가 약할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해인사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8년 3월 24일 기해, 맑음. ○해인사에 머물렀다. ○외조모 기제라서 소식(素食)했다. ○백상(百祥)이 집에 돌아갔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해인사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8년 3월 23일 무술, 맑음. ○해인사에 머물렀다. ○목사가 종자벼[種租] 3섬을 주었다. ○대구 부사가 진휼을 보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근현대 소실위기 재중동포 서신 DB화 및 생활문화 분석(178,6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