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총 1,545,707건의 연구성과가 있습니다.
홈 > 연구성과별 자료보기
- ○조상의 신위(神位)에 시제(時祭)를 올렸는데, 신선한 고기를 올리지 못한 것이 한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3년 2월 16일 계해, 가물고 바람 불고, 밤에 잠깐 눈이 내려 땅을 하얗게 적심. ○○○조상의 신위(神位)에 시제(時祭)를 올렸는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조상의 신위(神位)에 작은 제사를 차려 올렸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5년 8월 15일 기묘. ○○○조상의 신위(神位)에 작은 제사를 차려 올렸다. ○판관이 술과 안주를 보내 대접했다. ○○○경원공(敬元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조상의 신위(神位)에 제사를 지냈고 죽은 아들과 딸을 배식(配食)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6년 9월 10일 정유. ○○○조상의 신위(神位)에 제사를 지냈고 죽은 아들과 딸을 배식(配食) 했다. ○이득중(李得中)‧이대성(李大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조상의 신위에 시사(時祀)를 지내고, 죽은 아들딸에게 배식(配食)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5월 24일 정미, 맑음. ○○○조상의 신위에 시사(時祀)를 지내고, 죽은 아들딸에게 배식(配食)했다. 정섭(鄭涉)‧숙길(淑吉)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조상의 신위에 시사(時祀)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5년 8월 3일 정묘. ○○○조상의 신위에 시사(時祀)를 지냈다. ○향교(鄕校)에서 복주(福酒)‧번육(膰肉)을 보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조상의 신위에 제사를 지내며 죽은 자녀를 배식(配食)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8월 15일 신유, 흐리고 서늘함. ○○○조상의 신위에 제사를 지내며 죽은 자녀를 배식(配食)했다. 혼자 제사를 지냈다. 숙길(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조상의 신위에 제사를 차렸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8월 15일 신유. ○○○조상의 신위에 제사를 차렸다. ○삼보(三寶)가 무청[菁菜]를 보내고 또 땔나무 2바리[牛]를 보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조식(早食) 후에 전체 회의로 사간원에 출근했다가 늦게 돌아왔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4월 17일 을축, 가뭄. ○조식(早食) 후에 전체 회의로 사간원에 출근했다가 늦게 돌아왔다. 헌납이 온 뒤 정오가 될 무렵 사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조중탕(調中湯)을 먹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2월 21일 을해, 가뭄. ○조중탕(調中湯)을 먹었다. 아이는 글공부를 하지 않았다. 몸이 편치 않기 때문인데, 마구 뛰어노느라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조중탕(調中湯)을 먹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2월 20일 갑술, 가물고 매화가 지기 시작함. ○조중탕(調中湯)을 먹었다. 아이는 글공부를 조금 했다. ○아내는 익기탕(益炁湯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조헌조(趙憲祖)가 와서 성(城) 위의 대지(代地)에 집을 지어도 무방하다는 것을 홍섬(洪暹)에게 아뢰게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3월 16일 무인, 가뭄. ○조헌조(趙憲祖)가 와서 성(城) 위의 대지(代地)에 집을 지어도 무방하다는 것을 홍섬(洪暹)에게 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졸곡제(卒哭祭)를 친히 행하시고 재실에 머물며 친히 아침 상식(上食)의 예를 행하셨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2월 21일 갑인, 맑고 버들이 누렇게 됨. ○○졸곡제(卒哭祭)를 친히 행하시고 재실에 머물며 친히 아침 상식(上食)의 예를 행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종묘에 시호를 청하는 것을 미시(未時)오후 1시에서 3시 사이에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윤1월 21일, 갑신, 맑음. ○종묘에 시호를 청하는 것을 미시(未時)오후 1시에서 3시 사이에 했다. ○아침에 죽을 먹고 출근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종일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4월 3일 신해, 맑음. ○종일 집에 머물렀다. 오늘 양사(兩司)가 모두 좌기(坐起)하여 서경(署經)을 했다고 한다. ○편지를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종장(終場)의 책문에서 묻기를, “옛날과 지금은 다스림[治]의 효과가 같지 않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6년 3월 23일 경진, 청명함. ○종장(終場)의 책문에서 묻기를, “옛날과 지금은 다스림[治]의 효과가 같지 않다. 어떻게 하면 옛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주인 화경(和卿)이 이른 아침밥을 차리고 또 술상도 차렸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6년 9월 28일 임오, 가끔 비가 내리고 맑고 바람 붊. ○주인 화경(和卿)이 이른 아침밥을 차리고 또 술상도 차렸다. 아침에 모인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주인이 죽을 내왔기에 함께 먹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3년 9월 27일 경오, 부슬비가 내리다가 바로 그침. ○주인이 죽을 내왔기에 함께 먹었다. 경우(景遇)가 와서 모이고 나와 여권(呂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죽은 누님 이씨(李氏)의 기일(忌日)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2년 11월 12일 경인, 맑다가 흐림. ○죽은 누님 이씨(李氏)의 기일(忌日)이다. 생각해보니 정성스런 마음으로 제사를 차릴 사람이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죽은 아들의 기일이나 역(疫)이 집에 들어와 제사를 지내지 못하고 소식(素食)만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6월 25일 계미, 안개가 끼다가 맑음. ○죽은 아들의 기일이나 역(疫)이 집에 들어와 제사를 지내지 못하고 소식(素食)만 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죽은 아들의 기일이라 손자가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5년 6월 25일 경인, 중복(中伏). ○죽은 아들의 기일이라 손자가 제사를 지냈다. ○목사가 조(趙) 도사가 칭념한 쌀과 벼를 주었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죽은 아들의 기일이라 하가(下家)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6월 25일 신미. ○죽은 아들의 기일이라 하가(下家)에서 제사를 지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죽은 아들의 기제(忌祭)를 하가(下家)에서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6월 25일 정축, 비가 내림. ○죽은 아들의 기제(忌祭)를 하가(下家)에서 지냈다. 정(鄭) 랑(郞)정섭(鄭涉)을 가리킴과 숙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죽은 아들의 소상(小祥) 날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8년 6월 25일 신축, 비가 내리다가 낮에 그침. ○죽은 아들의 소상(小祥) 날이다. 새벽에 숙길(淑吉)을 데리고 내려가 과일상과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죽을 먹고 도감으로 나가 근무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1월 17일 신해, 맑고 추움. ○죽을 먹고 도감으로 나가 근무했다. 추워서 나가지 않고, 동료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낮에 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죽을 먹고 도감으로 나가 동료와 점심을 먹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윤1월 5일 무진, 잠깐 눈이 내림. ○죽을 먹고 도감으로 나가 동료와 점심을 먹었다. 오늘 숙직□□ 이 피하려고 온갖 꾀를 내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죽을 먹고 도감으로 나갔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윤1월 3일 병인, 아침에 흐리고 잠깐 비가 내렸다가 낮에 맑아짐. ○죽을 먹고 도감으로 나갔다. 백윤(伯胤)과 태용(太容)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죽을 먹고 도감으로 나갔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1월 23일 정사, 맑음. ○죽을 먹고 도감으로 나갔다. 태용(太容)과 효선(孝善)은 옥당의 전체 모임에 참석하러 갔다. 응명(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죽을 먹고 도감으로 나갔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1월 20일 갑인, 맑음 ○죽을 먹고 도감으로 나갔다. 백윤(伯胤)은 나오지 않았다. □□□□□□□함께 올라가 석전(夕奠)을 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죽청(竹廳)에서 조상의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4년 8월 15일 갑신. ○○○죽청(竹廳)에서 조상의 제사를 지냈다. ○목사가 돌아왔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중당(中堂)에서 담제(禫祭)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3월 18일 정유, 흐림. ○중당(中堂)에서 담제(禫祭)를 지냈다. 박(朴) 씨댁 누님‧형님[伯氏]‧형수님을 배향했다. 제사를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중당(中堂)에서 예전 의식대로 삭제(朔祭)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3월 1일 경진, 맑음. 계춘(季春) 3월 작은달 갑진 ○중당(中堂)에서 예전 의식대로 삭제(朔祭)를 지냈다. ○나는 감기를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중응(仲應)을 위해 소식(素食)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3월 3일 계해, 햇무리가 생겼다가 저녁에는 흐림. 손자를 돌보며 당(堂)에서 잤다. 손자는 몸이 편치 못하다. 좌우의 허리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중임(仲任) 댁에서 비(婢)를 붙잡는 일로 남원(南原) 부사에게 편지를 써 달라고 해서 써서 보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3월 26일 무자, 맑고 시원함. ○중임(仲任) 댁에서 비(婢)를 붙잡는 일로 남원(南原) 부사에게 편지를 써 달라고 해서 써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중종(中宗)의 국기일(國忌日) 일이라 집안에서 고기를 쓰지 못하게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6년 11월 15일 경오, 맑음. ○○○○중종(中宗)의 국기일(國忌日) 일이라 집안에서 고기를 쓰지 못하게 했다. ○당(堂)에 머물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중종(中宗)의 국기일(國忌日)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11월 15일 신축, 맑고 바람이 불고 추움. ○○○○중종(中宗)의 국기일(國忌日)이다. ○손자를 돌보며 당(堂)에서 잤다. 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중종(中宗)의 국기일(國忌日)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4년 11월 15일 갑인. ○○○○중종(中宗)의 국기일(國忌日)이다. ○김환(金渙)이 와서 곶감 1속(束)을 주었다. ○최손(崔孫)이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중종(中宗)의 국기일(國忌日)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4년 11월 15일 임자, 맑고 바람이 심하게 붊. ○○○○중종(中宗)의 국기일(國忌日)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했다. ○선산(善山)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중종(中宗)의 국기일(國忌日)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4년 7월 1일 기해, 크게 가뭄. 맹추(孟秋) 7월 큰달 임신 ○○○○중종(中宗)의 국기일(國忌日)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했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중종(中宗)의 국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8년 11월 15일 무자, 맑고 건조함. ○○○○중종(中宗)의 국기일이다. ○소식(素食) 했다. ○아이를 돌보며 당(堂)에서 잤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중종(中宗)의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7년 11월 15일 갑자, 맑음. ○○○○중종(中宗)의 기일이다. ○당(堂)에서 묵었다. 손자를 돌보았다. ○아침에 하가(下家)로 내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증조모 조(趙) 씨의 기일이라 소식(素食)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7월 29일 신해, 안개 끼다가 맑음. ○○○증조모 조(趙) 씨의 기일이라 소식(素食)했다. ○내려가서 정섭(鄭涉)이 떠나는 것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증조모의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5년 7월 29일 계해. ○○○증조모의 기일이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증조모의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4년 7월 29일 기사. ○○○증조모의 기일이다. ○이온(李溫)이 조홍감[早紅] 150개를 보냈다. ○여응해(呂應諧)가 큰 배 50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증조모의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4년 7월 29일 정묘, 밤에 비가 내리고 바람 불고 흐림. ○○○증조모의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했다. 제사는 청양댁(靑陽宅)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증조모의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7월 29일 을사, 맑다가 흐리고 잠깐 비가 내림. ○○○증조모의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했다. ○손자를 돌보며 당(堂)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증조모의 기일이어서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2년 7월 29일 기유, 가뭄. ○○증조모의 기일이어서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당(堂)에 머물렀다. 솔가루[松末]를 먹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증조모의 기일이어서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7월 29일 을사. ○○○증조모의 기일이어서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군위(軍威) 현감 박미지(朴眉之)가 쌀 5말‧술 1그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증조모의 기일이어서 재계하고 소식(素食)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1년 7월 29일 을묘, 맑음. ○증조모의 기일이어서 재계하고 소식(素食)했다. ○당(堂)에 머물렀다. 약을 먹었다. ○아내가 이곳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증조부 기일(忌日)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8년 1월 29일 무인, 약간 흐림. ○○○증조부 기일(忌日)이다. 소식(素食)만 하고 제사는 내 차례가 아니라 지내지 않았다. ○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증조부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8년 1월 29일 병오, 흐리고 저녁에는 잠깐 비가 내림. ○○증조부 기일이다. 손(孫)이 제사지낼 차례이므로 간략하게 제사를 차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근현대 소실위기 재중동포 서신 DB화 및 생활문화 분석(178,6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