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총 1,545,707건의 연구성과가 있습니다.
홈 > 연구성과별 자료보기
- ○약을 먹지 않았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2월 18일 임신, 맑음. ○약을 먹지 않았다. 배 왼쪽에 덩어리가 있고 또 힘줄이 얽힌 것 같은 무엇이 있어 뱃속이 편치 않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약을 먹지 않았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2월 17일 신미, 맑음. ○약을 먹지 않았다. 침을 놓았는데도 두통이 그치지 않는다. ○아내는 익기탕(益炁湯)을 먹었다. 밤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養) 증조모 한(韓) 씨의 기일이라 소식(素食)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8년 8월 14일 무오, 맑고 달이 매우 밝음. ○○○양(養) 증조모 한(韓) 씨의 기일이라 소식(素食) 했다. ○아이를 돌보며 당(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동(梁同)이 사모(紗帽)를 다시 칠해서 가져다주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3월 26일 을사, 맑음. ○양동(梁同)이 사모(紗帽)를 다시 칠해서 가져다주었다. ○조막(祖莫)이 알현하고 갔다. ○밥을 먹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사(兩司)가 사직(辭職) 청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3월 18일 경진, 가뭄. ○양사(兩司)가 사직(辭職) 청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재상(宰相)이 모여 계(啓)를 올리기를, “대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사가 함께 새 우상(右相) 이기(李芑)는 물망(物望)에 부합하지 않다고 탄핵하며 개정할 것을 청했다고 한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1월 14일 무신, 입춘, 맑고 추움. ○양사가 함께 새 우상(右相) 이기(李芑)는 물망(物望)에 부합하지 않다고 탄핵하며 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養曾祖)의 기일이라 소식(素食)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10월 6일 정사, 맑고 서늘하며 서리가 얼고 나뭇잎이 모두 떨어짐. ○○○양증조(養曾祖)의 기일이라 소식(素食)했다. ○아이를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모 기일(忌日)이므로 소식(素食)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2년 8월 14일 갑자, 흐림, 저녁때 바람이 크게 불어 나무가 뽑히고 벼가 쓰러짐. ○○양증조모 기일(忌日)이므로 소식(素食) 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모 한(韓) 씨의 기일이라 소식(素食) 하고 재계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3년 8월 14일 무자, 맑고 상쾌함. ○○양증조모 한(韓) 씨의 기일이라 소식(素食) 하고 재계했다. ○당(堂)에 머물며 솔가루[松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모 한(韓) 씨의 기일이라 소식(素食)하고 재계하며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8월 14일 병인, 추분(秋分), 맑음. ○○○양증조모 한(韓) 씨의 기일이라 소식(素食)하고 재계하며 지냈다. ○아이를 돌보며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모(養曾祖母) 한(韓) 씨(氏)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8월 14일 경신, 비가 내림. ○○○양증조모(養曾祖母) 한(韓) 씨(氏)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당(堂)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모(養曾祖母)의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10월 6일 신해. ○○○양증조모(養曾祖母)의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비호석(非乎石)의 이충량(李忠良)이 와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모(養曾祖母)의 기일이므로 소식(素食)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6년 8월 14일 경자, 맑음. ○○○양증조모(養曾祖母)의 기일이므로 소식(素食)했다. ○당(堂)에 머물렀다. 손자를 돌보았다. 산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모의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4년 8월 14일 임오, 비가 그치고 해가 나옴. ○○○양증조모의 기일이다. 내가 지낼 차례라 죽당(竹堂)에 차려놓고 혼자 지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모의 기일이라 소식(素食)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5년 8월 14일 무인. ○○○양증조모의 기일이라 소식(素食) 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모의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8월 14일 신미, 흐림. ○○○양증조모의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약을 재탕해 먹었다. ○손자는 글공부를 하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부(養曾祖父)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2년 10월 6일 을묘, 밤에 잠깐 비가 내리다가 바로 그치고, 맑음. ○○양증조부(養曾祖父) 양증조부(養曾祖父) : 李繼寧을 말한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부(養曾祖父)의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10월 6일 정묘, 흐리고 춥지 않음. ○○○양증조부(養曾祖父)의 기일이다. 수원(水原) 댁(宅)에서 제사를 지낼 차례이지만,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부(養曾祖父)의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10월 6일 신해, 맑음. ○○○양증조부(養曾祖父)의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복명산(復明散) 등의 약을 먹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부[養曾祖考]의 기일이어서 소식(素食)을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6년 10월 6일 신묘, 맑다가 흐림. ○○양증조부[養曾祖考]의 기일이어서 소식(素食)을 했다. ○당(堂)에 머물렀다. 아이를 돌보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부의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8년 10월 6일 기유, 맑고 따뜻함. ○○○양증조부의 기일이다. 제사를 친가(親家)에서 지낼 차례이므로 당(堂)에 제사를 차렸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부의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5년 10월 6일 기사. ○○○양증조부의 기일이다. ○당(堂)에 머물렀다. ○보명(普明)이 산 과일[山果]을 보내 자미(資米) 5되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부의 기일이라 소식(素食)을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4년 10월 6일 계유, 맑음. ○○○양증조부의 기일이라 소식(素食)을 했다. ○당(堂)에 머물렀다. 솔가루[松末]를 먹었다. ○직산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부의 기일이라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4년 10월 6일 을해. ○○○양증조부의 기일이라 제사를 지냈다. ○어제 개동(介同)이 와서 4곳 논에서 난 벼를 바쳤는데 전(全)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부의 기제인데, 내가 지낼 차례이므로 제사를 차려서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10월 6일 임술, 흐리다가 저녁에 비를 뿌림. ○○○양증조부의 기제인데, 내가 지낼 차례이므로 제사를 차려서 지냈다. ○아이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두울 무렵 휘(煇)와 덕응(德應) 두 사람이 군기감 앞에서 극형을 받았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9월 11일 신미, 맑음. ○어두울 무렵 휘(煇)와 덕응(德應) 두 사람이 군기감 앞에서 극형을 받았다. 어두울 무렵 ∼ 받았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 기일(忌日)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1월 5일 갑신. ○○○어머니 기일(忌日)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3년 1월 5일 임오, 안개가 자욱했다가 낮에는 맑음. ○○○어머니 기일이다. 죽청(竹廳)에 제사를 차려 노성(老成)과 함께 지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2년 1월 5일 무자, 맑고 바람 붊. ○○○어머니 어머니 : 이문건의 어머니는 고령신씨 申澮의 딸이다. 1463년(세조 9)에 서울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8년 1월 5일 임오, 맑음. ○○○어머니 기일이다. 온(熅)을 데리고 소사(小祀)로 지냈다. ○같은 집에 머물렀다. ○전에 앓던 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7년 1월 5일 무오, 흐림. ○○○어머니 어머니 : 이문건의 아버지 允濯과 혼인한 고령신씨 申澮의 딸이다. 1463년(세조 9)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 기일이라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4년 1월 5일 기묘. ○○○어머니 기일이라 제사를 지냈다. ○김담로(金聃老)가 와서 민물생선을 주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 기제사라 집에서 재계하며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1월 4일 무술, 맑음. ○어머니 기제사라 집에서 재계하며 머물렀다. ○밤중에□□□□□□□. 고약은 먹지 않고 소합환(蘇合丸)만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 생기일(生忌日)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3월 8일 병술. ○○○어머니 생기일(生忌日)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신(辛) 판관이 소 염통[黃心] 1개, 전협[胸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 생기일(生忌日)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차렸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7년 3월 8일 신유, 맑고 따듯함. ○○○어머니 생기일(生忌日)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차렸다. 현배(玄培)가 제사를 도왔고, 숙길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 생기일(生忌日)이라 제사를 차렸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4년 3월 8일 경술. ○○○어머니 생기일(生忌日)이라 제사를 차렸다. ○정(鄭) 랑(郞)의 종마(從馬)가 서울로 돌아갔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 생기일(生忌日)이라서 제사상을 차렸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1년 3월 8일 병신, 흐리고 바람이 불다가 비가 내려 흙을 적심. ○○○어머니 생기일(生忌日)이라서 제사상을 차렸다. ○당에 머물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 생휘일(生諱日)이므로 당(堂)에 제사를 차렸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2년 3월 8일 경인, 흐리고 바람 붊. ○○○어머니 생휘일(生諱日)이므로 당(堂)에 제사를 차렸다. 천택(天澤)이 제사를 도왔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 신위에 시사(時祀)를 차려 혼자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9년 2월 19일 신유, 한식, 맑고 바람이 심함. ○○○어머니 신위에 시사(時祀)를 차려 혼자 지냈다. ○죽은 아들과 딸의 제사는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의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6년 1월 5일 을축, 맑음. ○○○어머니의 기일이다. 당(堂)에서 제사를 차렸는데, 천택(天澤)이 제사를 도왔다. ○숙길(淑吉)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의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1월 5일 기해, 날씨가 맑고 따뜻함. ○○어머니의 기일이다. 제사는 누님 댁 차례이다. 아침 일찍 휘(煇)와 청파(靑坡)로 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의 기일이라 당(堂)에 제사를 차려 혼자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7년 1월 5일 신유. ○○○어머니의 기일이라 당(堂)에 제사를 차려 혼자 지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9년 1월 5일 정축, 정월로 듦, 맑음. ○○○어머니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새벽에 대추탕을 마셨는데, 기침이 더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4년 1월 5일 병자, 맑다가 약간 흐림. ○○○어머니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천택(天澤)이 제사 지내는 것을 도왔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1월 5일 경인, 밤에 오던 눈이 낮까지 이어져 맑지 않고, 눈 깊이는 여러 자[尺]임. ○○○어머니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5년 1월 5일 계묘. ○○○어머니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서동(西同)이 평안도(平安道)에서 돌아오면서 정(鄭) 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의 기일이어서 당(堂)에서 제사를 차렸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1월 5일 신축, 입춘, 맑음. ○○○어머니의 기일이어서 당(堂)에서 제사를 차렸다. 천택(天澤)이 제사를 도왔다. ○며느리는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의 생기일(生忌日)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9년 3월 8일 경진, 흐리고 비가 뿌림. ○○○어머니의 생기일(生忌日)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밤중에 지냈는데, 차를 올릴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의 생기일(生忌日)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3월 8일 임진, 흐리고 저문 뒤에 비가 잠깐 내림. ○○○어머니의 생기일(生忌日)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숙길(淑吉)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의 생기일(生忌日)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차려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3월 8일 무진, 밤에 비가 내렸는데, 낮에도 비가 뿌림. ○○○어머니의 생기일(生忌日)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차려 지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근현대 소실위기 재중동포 서신 DB화 및 생활문화 분석(178,6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