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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순의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6년 10월 19일 계묘, 맑고 바람 붊. ○배순의 집에 머물렀다. 처자식도 함께 머물렀다. ○약을 먹었다. ○이승창(李承昌) 씨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배순의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6년 10월 15일 기해, 맑고 서리 내리고 바람 불고 얼음이 얾. ○배순의 집에 머물렀다. 소토사자원(小兔絲子元)을 먹었다. ○아내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배순의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6년 10월 9일 계사, 맑고 서리가 내리고 얼음이 얾. ○배순의 집에 머물렀다. 처자식도 함께 있었다. □□□□□□. ○관찰사가 성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배순의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8년 6월 30일 계유, 흐리다 맑음. ○배순의 집에 머물렀다. ○밤에 향유산(香薷散)을 먹었다. 몸이 여전히 편치 않다. ○사우(士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배순의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8년 6월 27일 경오, 말복, 맑고 더위가 지독함. ○배순의 집에 머물렀다. ○몸이 편치 않았다. 먹고 싶지는 않고, 다만 냉수만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배순의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8년 6월 17일 경신, 중복, 맑다가 저녁에 천둥치고 비가 사납게 일어남. ○배순의 집에 머물렀다. ○오미자를 먹었다. ○밤에 아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배순의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8년 5월 26일 경자, 잠깐 비가 내리고 번개가 침. ○배순의 집에 머물렀다. ○생맥산(生脈散)을 먹었다. ○해인사 승 행호(幸浩)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배순의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8년 3월 18일 계사, 맑고 시원함. ○배순의 집에 머물렀다. 토사자원(兔絲子元)을 조금 먹었다. ○목사께 처방□□, 또 집주인에게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배순의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8년 2월 15일 신유, 맑다가 흐림. ○배순의 집에 머물렀다. ○괴각원(槐角園) 약간을 먹었다. 치질 때문에 아프다. ○아내는 출령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배순의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8년 1월 26일 계묘, 맑음. ○배순의 집에 머물렀다. ○조장원(釣腸元)을 조금 먹었다. 치질은 그치지 않고 남아있다. ○온손(昷孫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배순의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8년 1월 22일 기해, 맑고 서늘함. ○배순의 집에 머물렀다. ○괴각원(槐角元)을 먹었는데, 항문의 치질은 낫지 않았다. ○아내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배순의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8년 1월 16일 계사, 맑음. ○배순의 집에 머물렀다. ○약은 먹지 않았다. 치질은 사라지고 순해진 것 같다. ○비 주질지(注叱之)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배씨의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6년 4월 22일 무신, 맑음. ○배씨의 집에 머물렀다. ○하혈했다. 반총산(蟠蔥散)과 수중금원(守中金元)을 먹었다. 냉습증(冷濕證)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배와 복숭아가 만개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3년 3월 29일 을사, 매우 가물고 흙비가 내려 먼지가 낀 것처럼 어두움. ○배와 복숭아가 만개했다. ○당(堂)에 머물렀다. 솔가루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백거추(白巨鰍)의 집에서 자고, 영천군(永川郡)에 가서 묵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8년 윤7월 25일 경자, 저녁때 비가 내리고 바람 붊. ○백거추(白巨鰍)의 집에서 자고, 영천군(永川郡)에 가서 묵었다. 백거추(白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백씨(伯氏)의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2월 25일 갑술, 맑음. ○백씨(伯氏)의 기일이다. 제주(祭酒)를 보내면서 기성(箕星)으로 하여금 가서 제사에 참석하게 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백씨(伯氏)의 기일이라 소식(素食)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2월 25일 무오, 짙은 안개가 낌. ○백씨(伯氏)의 기일이라 소식(素食)했다. 휘(煇)가 그의 집에서 제사를 지냈다. ○김호(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백윤(伯胤)이 올라가 조전상(朝奠床)의 과일을 살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윤1월 12일 을해, 흐리고 따뜻하며 벌레가 날아다님. ○백윤(伯胤)이 올라가 조전상(朝奠床)의 과일을 살폈다. 나는 요사이 연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별시 초시(初試)가 열렸는데, 삼장(三場)이 될 것이라 한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6년 3월 19일 병자, 청명함. ○별시 초시(初試)가 열렸는데, 삼장(三場) 삼장(三場) : 과거와 관계된 용어로 初試‧覆試․殿試를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별시(別試) 초시(初試)의 대책(對策)에서, 온 도내에서 우도(右道)는 개령(開寧)의 박대립(朴大立)이 좌도(左道)는 경산(慶山)의 이순(李順)이 감시(監試)에 올랐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8년 윤7월 10일 을유, 비가 종일 퍼부음. ○별시(別試) 초시(初試)의 대책(對策)에서, 온 도내에서 우도(右道)는 개령(開寧)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별시의 중장(中場)에 출제된 부(賦)와 표(表)는, ‘한나라 조정의 여러 신하들은 (황제가) 학문을 권장하고 예를 일으킨 것에 대해 하례(賀禮)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6년 3월 21일 무인, 흐리고 잠깐 비가 내림 ○별시의 중장(中場)에 출제된 부(賦)와 표(表)는, ‘한나라 조정의 여러 신하들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병(病)으로 소식(素食)하지 못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8월 13일 경오, 흐림, 달이 밝음. ○병(病)으로 소식(素食)하지 못했다. 익위탕(益胃湯)을 먹었다. ○손자를 돌보며 당(堂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병을 조리하면서 여막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6년 9월 23일 을해, 흐리다가 밤에 소나기가 내리고 바람이 붊. ○병을 조리하면서 여막에 머물렀다. 요사이 전(奠)신위에 술과 과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병을 칭해 휴가를 청하고 관서에 나가지 않았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9월 7일 정묘, 맑음. ○병을 칭해 휴가를 청하고 관서에 나가지 않았다. ○효억(孝億)과 규성(奎星) 등이 새벽에 보러 와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복명산(復明散) 등의 약을 먹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10월 5일 경술, 맑음. ○복명산(復明散) 등의 약을 먹었다. 손자를 돌보며 당(堂)에서 잤다. 손자가 글공부를 조금 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복명산(復明散) 등의 약을 먹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10월 3일 무신, 맑음. ○복명산(復明散) 등의 약을 먹었다. 오른쪽 눈이 더욱 어두워져 사물을 보지 못한다. 숙길(淑吉)이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복명산(復明散) 등의 약을 먹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10월 2일 정미, 맑다가 흐림. ○복명산(復明散) 등의 약을 먹었다. 손자를 돌보며 당(堂)에서 잤다. 손자가 글공부를 하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복명산(復明散) 등의 약을 먹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9월 30일 을사, 맑음. ○복명산(復明散) 등의 약을 먹었다. 손자를 돌보며 당(堂)에서 잤다. 손자가 글공부를 조금했다. ○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복명산(復明散)을 먹었는데 가지고 있던 팔미원(八味元) 약간과 함께 삼켰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9월 27일 임인, 맑음. ○복명산(復明散)을 먹었는데 가지고 있던 팔미원(八味元) 약간과 함께 삼켰다. ○목사 중방(中房)수령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복명산(復明散)을 먹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9월 26일 신축, 맑음 ○복명산(復明散)을 먹었다. ○어제부터 소식(素食)했는데 왕세자의 상(喪) 때문이다. ○아내가 이곳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복명산(復明散)을 먹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9월 24일 기해, 맑고 바람 붊. ○복명산(復明散)을 먹었다. 식상(食傷) 기운이 있어 편안하지 않았다. ○아내가 이곳에 머물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복명산(復明散)을 먹었으나 눈이 어두운 것이 차도가 없고 더 심해진 것 같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9월 25일 경자, 흐리고 비가 뿌림. ○복명산(復明散)을 먹었으나 눈이 어두운 것이 차도가 없고 더 심해진 것 같다. ○왕세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복명산(復明散)을 먹으면서 팔미원(八味元)을 삼켰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10월 1일 병오, 맑다 저녁에 흐림. 맹동(孟冬) 10월 큰달 계해 ○복명산(復明散)을 먹으면서 팔미원(八味元)을 삼켰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복명산(復明散)을 연이어 먹었지만 눈이 어두운 것은 여전하니 약으로 치료할 것이 아닌 것 같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9월 23일 무술, 맑음. ○복명산(復明散)을 연이어 먹었지만 눈이 어두운 것은 여전하니 약으로 치료할 것이 아닌 것 같다. 평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복숭아꽃은 떨어졌고 배꽃도 시들었으며 개구리가 울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9년 2월 30일 임신, 청명함. ○복숭아꽃은 떨어졌고 배꽃도 시들었으며 개구리가 울었다. ○아이를 돌보며 당(堂)에서 잤다. 아내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복숭아와 배꽃이 피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3년 3월 27일 계묘, 가물고 바람 붊. ○복숭아와 배꽃이 피었다. ○당(堂)에 머물렀다. 솔가루[松末]와 약을 먹었다. ○아내는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부모님 신위(神位)에 시사(時祀)를 올렸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2년 8월 7일 정사, 맑지 않고 비가 퍼부음. ○○○부모님 신위(神位)에 시사(時祀)를 올렸다. 아들과 손자 숙희(淑喜)‧수기(壽祺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부모님 신위(神位)에 제사를 지내고, 죽은 자식들을 배식(配食)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8월 15일 정묘, 추석, 맑고 달이 났다가 구름에 들어갈 때 가려짐. ○○○부모님 신위(神位)에 제사를 지내고, 죽은 자식들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부모님 신위(神位)에 제사를 차리고 죽은 자녀를 배식(配食)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5년 1월 1일 기해. 가정(嘉靖) 44년(1565) 을축 정월 작은달 무인 ○○○부모님 신위(神位)에 제사를 차리고 죽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부모님 신위를 설치하고 시사(時祀)를 올렸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8년 5월 20일 정묘, 맑고 바람 붊. ○○○부모님 신위를 설치하고 시사(時祀)를 올렸다. 민물 생선이 없어서 올리지 못했다. 죽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부모님 신위에 시사(時祀)를 차리고, 죽은 아들‧딸에게 배식(配食)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8년 8월 15일 기미, 맑다가 조금 흐렸으며 달이 아주 밝지는 않음. ○○○부모님 신위에 시사(時祀)를 차리고, 죽은 아들‧딸에게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부모님 영좌(靈座)에 시제(時祭)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8년 5월 25일 기해, 맑음. ○○○부모님 영좌(靈座)에 시제(時祭)를 지냈다. ○밤에 일어나 아들 아들 : 온(熅, 1518∼15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부모님 위패에 제사를 지내고 죽은 아들과 딸을 배식(配食)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11월 27일 임인, 동지, 맑다가 조금 흐려짐, 춥지는 않음. ○○○부모님 위패에 제사를 지내고 죽은 아들과 딸을 배식(配食)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부모님‧두 누님‧두 형님에 모두 지방(紙榜)을 써놓고 속절(俗節)기제사 외에 설‧단오‧한식 등에 지내는 제사를 말함 제사를 지내며 영원히 사모하는 마음을 표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2년 1월 1일 갑신, 날씨가 아침에 약간 흐리다가 낮에 구름 끼고 흐렸으며, 저녁에는 바람 불고 맑음. 가정(嘉靖) 31년(1552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부모님께 설날 제사를 지내고 죽은 자녀를 배식(配食)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1월 1일 병술, 낮에 흐리고 비가 뿌리다가, 저녁에 바람 불고 컴컴해짐. 가정(嘉靖) 41년(1562) 임술 정월 작은달 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부모님께 제사를 차리고, 죽은 딸에게는 배식(陪食)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1월 1일 정유, 맑고 바람이 없음. 가정(嘉靖) 34년(1555) 을묘년 정월 작은달 무인 ○○○부모님께 제사를 차리고,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부모님을 제사하면서 죽은 아들과 딸을 배식(陪食)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8년 1월 1일 경술, 맑고 따뜻함. 가정(嘉靖) 37년(1558) 무오년 정월 작은달 갑인 ○○○부모님을 제사하면서 죽은 아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부모님의 시사(時祀)를 지내고, 죽은 딸을 배식(配食)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6월 1일 갑자, 비가 내림. 계하(季夏) 6월 작은달 계미 ○○○부모님의 시사(時祀)를 지내고, 죽은 딸을 배식(配食)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부모님의 신위(信位)에 시제(時祭)를 지냈는데 해가 나서 더울 때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6년 5월 17일 정미. ○○○부모님의 신위(信位)에 시제(時祭)를 지냈는데 해가 나서 더울 때 지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부모님의 신위(信位)에 제사를 차려 홀로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7년 1월 1일 정사. 가정(嘉靖) 46년(1567) 정묘년 정월 큰달 임인 ○○○부모님의 신위(信位)에 제사를 차려 홀로 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근현대 소실위기 재중동포 서신 DB화 및 생활문화 분석(178,6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