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76,835건의 연구성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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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己未七月初三日甲申右議政趙挺啓曰: “國事至此, 朝野遑遑, 如臣無狀, 忝在大臣之列,(當此主憂之日, 未有絲毫之補,) 恒切慙懼, 若隕淵谷。 頃承嚴命,
    출처전거光海君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舟師者, 皆以爲: ‘板屋戰艦, 用於大洋,(而)如江華(之)急流, 決難運動, 若體小兵舡, 則可用禦賊也。’ 伏聞‘舟師廳, 中舡八十餘隻, 只爲卜物所載修
    출처전거光海君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終以兩全之, 其亦艱矣。 踰歷險阻, 未嘗一日安, 而至七日丙寅, 次于伊川, 越翌日丁卯, 移檄七路, 號召諸城, 諭以討賊興復之義, 檄書所過, 人心奮發,
    출처전거光海君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江都爲餘事, 請移留置之穀, 都監載運之舡, 連絡於京江, 宣惠廳督運之文, 相望於道路, 保障之意安在?(措置之意亦蔑如, 臣實悶焉。) 君臣上下, 一
    출처전거光海君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請朴燁罷職不敘。李善行削黜京城之外, 名在金吾之籍,(則其爲罪人明矣。) 晝夜料度, 巧生奸計, 納石都監, 干時自媒,(無朝廷、探上意、蔑公論之狀, 言之痛心
    출처전거光海君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備邊司啓曰: “江都雖(曰)險(固), 方略(有所)未盡, 則不可謂保障之地, 誠如聖敎(之所及)也。(臣等之晝夜憂慮者, 常在於是。) 大臣與體察使, 旣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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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備邊司啓曰: “江都雖(曰)險(固), 方略(有所)未盡, 則不可謂保障之地, 誠如聖敎(之所及)也。(臣等之晝夜憂慮者, 常在於是。) 大臣與體察使, 旣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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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之跡矣。 蒙無知識, 亦安有謀逆之心乎? 如使德秀之輩, 立乎本朝, 其不肯請殺也明矣。 恭惟殿下深憐童子之無知, 仰體先王之遺敎, 思所以保護而安全之者, 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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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大司憲朴楗、大司諫金緻、掌令裵大維・李挺元、持平柳活、獻納朴弘道啓曰: “臣等伏見副司直鄭蘊上疏, 大槪有曰: ‘請斬鄭沆, 以正擅殺之罪, 追復永昌之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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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遠不下六十餘里。 今以何民力, 築城、樹柵, 作如許長圍; 又以何等兵力, 計垜、分哨, 守如許長圍? 其難一也。 山之爲形, 旣無主峰, 可以瞭望遠近, 又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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