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총 76,835건의 연구성과가 있습니다.
홈 > 연구성과별 자료보기
- 남해현(南海縣)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禁府啓言, 賊鏡之子, 緣坐爲奴, 罪人正海, 方在南海縣, 寧海方在康津縣, 請發遣都事處絞。 敎曰: “寧海雖曰年滿, 一允臺啓, 戮其兄弟, 非當初酌處출처전거英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남해현(南海縣)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門大吹打, 訓鍊大將金聖應、御營大將洪鳳漢、禁衛大將李昌誼, 先以軍禮參見, 命拿入光勳, 問曰: “汝幾日上來乎?” 對曰: “待新水使交龜後奪符, 故自爾遲출처전거英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남해현(南海縣)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掌令尹鵬擧上疏, 略曰: “南海縣監鄭宅洙, 督捧還穀, 捉致一士子之拒納者, 爲邑校所敺斃。 仍投屍水中, 以滅其跡, 宜按査也。” 上聞甚驚惻, 以校理李출처전거英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남해현(南海縣)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命罷慶尙道暗行御史李徽中職。 初徽中以疑獄按覈, 往南海, 路經全羅道求禮縣, 以不治封罷該縣監池道涵。 而道涵卽雲觀卑微者也, 且執贓不明白。 又啓論全羅左출처전거英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남해현(南海縣)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丙辰 / 時新榜謁聖人, 或以上處分之非常, 有不入者, 上使之査稟。 而下吏只以徐郁修等三人知入, 上以爲隱漏, 下〔吏〕令訓將, 於宮門外回示六匝後, 南출처전거英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남해현(南海縣)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之計, 論其情狀, 萬戮猶輕。 謂宜査問該院, 摘發究問, 得情置法, 斷不可已也。○又言倭譯梁時雄慢不致察之罪, 宜刑推定配, 又言年事災荒之狀, 賑政料理之출처전거英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남해현(南海縣)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正言洪鳳祚上疏。 略曰:○人君之動靜有常, 王家之典禮有序, 不可不愼也。 私廟展拜, 出於至情, 則時時展省, 未爲不可, 而季春稟定, 雖出於隆殺之義,출처전거英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남해현(南海縣)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命李基敬 南海縣爲庶民, 敎曰: “今已見欺, 關係莫重, 何可置諸豐沛之鄕。” 遂有是命, 前日所賜御筆, 使之還納政院。출처전거英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남해현(南海縣)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臣於夜深後始聞知。” 上曰: “今知鄭杺果爲之, 而鄭枋未及持來, 故府吏追後來納, 鄭枋之意, 非欲逐李昌壽也。” 承旨金善行曰: “宗班疏章, 外朝不爲聯출처전거英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남해현(南海縣)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命慶尙右兵使, 梟示許寬。 寬首醫許礈之子, 而家置朱璘《綱鑑》者。 事覺, 初命南海縣充軍, 至是有是命。출처전거英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근현대 소실위기 재중동포 서신 DB화 및 생활문화 분석(178,647)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76,8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