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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作穀儲置, 果爲便好, 而閔鎭厚所達, 亦甚得宜。 若任事之人, 不能着實典守, 則日後耗失, 極爲可慮。 初頭事目, 所當詳定, 如有擅動之事, 則論以重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不必盡數差送, 要害十五六處以內, 三廳薦擇送, 限三十朔, 陞六品試才後, 與三廳一樣調用, 何如? 上曰, 依爲之事, 命下矣。 三廳被薦中, 宣傳將鬼之類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更無大段措置之端, 與抗寇尾事勢有異, 以其別將, 仍差僉使, 恐無不可矣。 上曰, 此與抗寇尾, 輕重有異, 仍以前去別將, 差出僉使, 可也。 兪得一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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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不無潛自拯出之弊, 沈沒旣久, 亦必腐傷, 今雖自軍門送人, 難保其善爲拯出, 設或有若干拯得之物, 朽腐不可以入送彼國, 則反有難處之事, 臣意則輟罷守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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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世紀曰, 南桃浦唐人敗船物貨, 朝家棄置, 沈於水邊, 其時海南人金俊, 與本官眼同, 自丙戌七月至九月, 逐日拯出, 不無功勞, 而未及論賞矣。 厥後海南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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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入侍時, 右議政李濡所啓, 南桃浦漂人, 留置南別宮, 再明當津送, 而其物件, 旣令商賈輩論價, 當自戶曹出給, 而詳問論價之數, 則似爲從輕云, 彼以萬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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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僉使, 具廷良爲都摠都事, 金成鐸爲伐登浦權管, 金興俊爲武兼, 李思訥爲訓鍊僉正, 李後望爲訓鍊判官, 李東亮爲宣傳官, 鄭載禧·崔仲一爲副護軍, 任奎爲副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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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下直, 甕津縣令朴東相, 南桃浦萬戶牟有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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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不必盡數差送, 要害十五六處以內, 三廳薦擇送, 限三十朔, 陞六品試才後, 與三廳一樣調用, 何如? 上曰, 依爲之事, 命下矣。 三廳被薦中, 宣傳將鬼之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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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備邊司啓曰, 連見慶尙左兵使鄭弘佐, 監司金演狀啓, 則蔚山舊開雲浦前洋, 及同府東江日山津前洋, 未辨唐船二隻, 連次漂到, 以文字問答, 則俱係福建人畜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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